소설리스트

〈 60화 〉다연이의 짝사랑 (60/99)



〈 60화 〉다연이의 짝사랑

거의 매일같이 수영장에 가서그런가, 아니면 숨을 참는 것에 익숙해져서 그런가...

가끔 이 몸은 진짜 인어일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숨을 10분정도 참아도 괴롭지 않았다.
시체처럼 물속에 얼굴을 처박고 몸을 띄우고 있으니, 밖이 소란스럽다.
나를 건져 올리려는지 다가오는 남성.
나는 얼굴을 빼며 쳐다보았다.

"...? 왜요?"
"아! 시윤이구나... 미안하다."

과거 파티를 한다고 수영장을 빌렸던, 아빠와 다른 소속사의 래퍼였다.

"괜찮아요."

나는 다시 시체처럼 둥둥 떠다니길 반복했다.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이진석.
내가 얼굴을 밖으로 빼자, 이진석이 말했다.

"...숨을  참는 건 알겠는데... 그게 5분이 넘어가면 누가 봐도 걱정하지 않겠니?"
"그런가?"

나는 물에 둥둥 떠다니며 다연이가 있는 얕은 깊이의 수영장 쪽으로 넘어갔다.
요즘 수영장에서 자주 봤던 여학생이, 이사를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 여학생이 다연이에게 수영하면 예뻐진다는 소리를 한 것이, 다연이가 수영을 연습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특히 다연이가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고 생각하는 내가 수영을 잘하니, 다연이는 더욱 열심히 했다.
나는 가연이의 수영 자세를 잡아주면서, 다연이의 수영을 지켜보았다.

수영선수를 준비해도 될 정도로 깔끔한 수영실력.
지난 5년간 꾸준히 수영을 한 보람이 있다는 듯이 완벽하다.
멀리서 나를 발견한 다연이 수영을 하며 다가왔다.

"나 잘하지?!"
"와... 다연이 이제 인어인데?"
"에이~ 그 정도는 아니야~ 시유니처럼은 해야 인어지!"
"나는 물고기 그 이상이지."

내 말에 잠시 멈칫한 다연이가 천천히 고개를 갸웃했다.

"인어도 사람물고기 아니야?“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기에 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멀리서 수영을 하던 가연이가 잠시 멈칫하더니, 부르르 떨었다.
나는  모습을 보고 밖으로 나왔다.

"시유나? 수영 그만하게?"
"아니, 잠시 밖에있으려고~"

다들 사실을 모른 채 열심히 헤엄쳤다.
어딘가 꺼림직 한 물속에서.





어느새 모기들이  다리를 물어뜯는 여름이 다가왔다.
세대마다 설치되어 있는, 이산화탄소를 활용해 모기를 잡는 스마트 시스템으로도 부족하다 생각한 아빠.
특단의 조치로 침대 위에 설치하는 모기장을 사왔다.
자기 전에 펼쳐서 모기가 들어오는 것을 완벽 차단했고, 나는 아빠보다 먼저 빠른 속도로 모기장 속으로 들어갔다.

"후후후... 이것이 21세기다... 미개한 모기들..."
"좋아?"
"응, 좋네~"

아빠는 커진 내 키 때문에 팔이 짧은 잠옷을 보았다.

"큰 옷 사러 가야겠네?"
"그러게~  생각보다도 빨리 크기 시작했어."
"벌써 아빠랑... 40cm밖에 차이 안 나..."

내가 뒹굴뒹굴하고 있자, 베타가 모기장이 신기한지 발로 툭툭 건드렸다.

"저거  찢어지겠다."

아빠는 피식 웃으면서 나를 자신의 품속으로 넣었다.



다음날, 다연이네와 국내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이진석이 운전대를 잡았고, 아빠가 조수석에 탔으며 둘이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김선화는 아빠와 이진석에게 아이들을 맡긴다며, 회사에 볼일을 보러 나갔다.

결국 내가 아이들을 봐줘야했지만...
평소였다면 내 안전을 걱정했을 아빠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수많은 검은 차량들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우리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동물원에 도착했다.
순서대로 차량에서 내렸고, 나는 김태오란 꼬맹이를 마주칠  있게 되었다.
사실 이번 여행은 내가 직접, 김태오란 꼬맹이를 알아보기 위해서 이진석과 계획한 것이다.
다연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도 보기 위해서.

하지만 다연이는 태오가 왔다는 것에 반가워할 뿐 좋아하는 티를 내지 않았다.
지금까지 사랑에 빠진 다연이의 행동을 지켜보았던 나는 이 장면에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아이고 이쁜 내 새끼!'

거기에 다연이는 내 눈치를 보는 것이, 내가 말할까 걱정하는 듯 했다.
다연이에게 정중하게 인사하고,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김태오.

"누구...입니까?"
"시유니야, 가장 친한 친구."
"아... 알겠습니다."

저 딱딱한 행동은 무엇이란 말인가.
11살짜리 꼬맹이가 자신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임을 자각하는듯했다.
정연, 다연, 가연이를 보호하는 것에 몰두하여 자꾸 위치를 확인한다.

그래 인정한다.

꼬맹이가 엄청 열정적이고 열심이네.
외모도 화려하니 다연이가 빠질만하다고 생각한다.
생김새는 거의 만화 속 남자 주인공이니.
우리 다연이는 태오에게 티나지 않게, 혼자서 소녀미를 뿜뿜 뽐내고 있었다.
 눈엔 마냥 귀엽게만 보일 뿐이지만.
정연이와 가연이는 그런 다연이의 모습에 이상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나만이 다연이를 자연스럽게 대했다.

"판다 보러 갈까?"
"응!"

우리가 움직이자 우르르 움직이는 사람들.
평범한 복장을 하고 있지만, 덩치가 평범하지 않았다.
나는 판다 그림을 그리며 다연이에게 중얼거렸다.

"판다는 이쁘고 귀엽지만, 임대료를 따로 내야 한다?"
"임대료?"
"중국에서 귀여움을 외교로 이용하는 거야. 살아있는 동물을 가지고, 연간 12억씩."
"진짜?!"
"응, 그리고 아기 판다가 생기면 7억이 추가가 되고 3살이 되면 중국에 다시 가야 돼"
"헐..."
"먹이도 엄청 까탈스럽게 먹어서 연간 식비만 1억이라고 하더라구."
"우와... 비싼 아이구나..."
"하지만 중국을 무너트리면, 식비만 내면되겠지..."
"응?"

자꾸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김태오.
나와 눈이 마주치려는 순간, 자연스럽게 판다를 보는 척을 했다.
나는 김태오의 시선에서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여느 꼬맹이들이 나를 봤을 때와 같은 심상치 않은 표정.
바로 자신의 마음을 바로잡는 단계인... 고백하기 직전의 표정이었다.

다연이의 마음을 아는 나는... X됐음을 느꼈다.

엄청나게 좋아하는 이가 자신의 친구를 좋아한다면...
나에 대한 다연이의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눈앞에 훤히 보였다.

저 태오라는 꼬마 아이의 시선에 내가 오해한 것임을 빌면서, 모르는  판다 그림을 이어갔다.
이곳저곳 돌아다닐 때마다 김태오의 시선이 느껴졌으며, 나는 확신이 섰다.
 꼬맹이가 나를 좋아하는 것을.

그리고... 다연이도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나는 결국 다연이가 자리를 비웠을 때, 김태오를 끌고 가서 벽에 밀쳤다.
 꼬맹이에겐 미안하지만, 다연이를 위해서 선을 그어줘야 했다.

"야... 뭘 자꾸 쳐다보냐 족같게."

내 얼굴을 동그란 눈으로 보더니, 갑자기 시선을 돌리며, 얼굴을 붉히는 꼬맹이.
나는 피가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내가 좋냐?"
"...아니. 그럴 리 없다."
"하아... 그래, 나도 그럴 리 없길 빈다..."
"넌... 내가 마음에 안 들어?"
"뭐?"

갑자기 또 얼굴을 붉히는 꼬맹이.

"너, 벌레같이 생겼어, 나 쳐다보지 마. 볼 때마다 역겨워서 말하는 거야."

 충격을 받은 듯한 꼬맹이의 얼굴.
나는 고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이런 말을 하면서도,  꼬맹이에게 속으로 진심 어린 사과를 했다.
표정이 점점 심각하게바뀌는 꼬맹이를 두고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꼬맹이와의 대화로 확실해졌다.
일단 쳐내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임은 분명했다.
나는 지금 건들면 터질  같은 상황 속에서, 그림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 멀리서 정연이와 가연이를 놀아주던 이진석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빠르게 자리를 이동한 뒤 속사포로 말했다.

"김태오가  좋아해요."
"뭐!?"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손톱을 이빨로 물었다.

"난리 났네... 이러면  되는데... 다연이가 나 싫어하면 어떻게 하죠?"
"침착하렴. 시윤아..."

심각한 표정을 지은 이진석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 역겹게 생겼으니까, 쳐다보지 말라고 말했거든요?"
"애한테...?"
"그럼 어떻게 해요!!! 다연이 앞에서 당장 고백 당할 뻔했는데!!! 그리고 그게 무슨 말이야, 난 애 아닌가?!"

이진석은 김태오가 나를 좋아하게 될 거라고, 상상하지 못했는지 점점 심각해져갔다.

"어떻게 하죠?"
"일단 돌아가렴...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워도 좋지 않겠다..."

나는 이진석에 말에 끄덕인 뒤 다시 판다를 그리러 돌아갔다.
갑자기 나에게 다가와 어깨를 톡톡 치는 김태오.
다연이가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잠시 대화  하지..."
"....."

다연이 앞에서 굳이 나만을 집어 부르는 김태오...
나는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기 시작했다.

'오... 신이시여...'

나는 다연이 앞에서, 다연이가 소중하게 여기는 이 꼬맹이를 함부로 할 수 없기에, 결국 둘만 있는 장소로 가게 되었다.

"하아..."
"나는 너에게 관심 없다."
"본론."
"내가 지켜야 사람의 친구이기에, 정보를 알기 위해서 쳐다봤을 뿐이다. TV에서 보던 얼굴이라 신기했을 뿐이고."

꼬맹이가 거절당한 게 창피했는지, 변명을 하기에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
"끝났지?  간다?"

나는 불안한 눈빛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다연이에게 얼른 다가가려고 하자, 꼬맹이가 내 팔을 잡았다.

'무슨 꼬맹이 악력이...'

"아직  끝났다."
"놓지? 아픈데..."
"미안, 그래도 변명 아니고 진심이다."
"내가 알겠다고 하지 않았어? 알겠다고, 좀 걸지 말라고."
"....."

나는 다시 한 번 꼬맹이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다연에게 다가갔다.
혼자 남겨져서 나를 끝까지 쳐다보는 꼬맹이.


다연이에게 도착하니, 다연이가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얼굴엔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태오가... 뭐라고 했어?"
"아, 내가 다연이랑 같이 다니니까, 내가 누구인지 궁금했나봐."
"진...짜?"
"그러엄."
"너무해, 왜 시유니한테 그래? 막, 정색하고, 팔 잡아당기고... 내 소중한 친구인데... 태오 실망이야..."

똑똑한 다연이다.
나는 다연이의 표정에서 나를 떠보려고 하는 말임을 정확하게 인지했고,
나는 그런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그래도, 다연이 지키려고 한 건데, 열정적인 거야."
"그런 거야?"
"응."

다연이가 다시 배시시 웃어주자, 나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한숨을 돌리고는 아기 판다를 이어서 그렸다.


농장 체험을 위해 우리는 옷을 갈아입었다.
농약을 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 생각 없이 딸기를 주워 먹으니 아빠가 말렸다.

"시윤아! 그거 벌레있어!"
"응, 알잖아? 그건 나를 못 피한 벌레 문제지, 내 문제가 아닌 거, 꼭꼭 씹으면 상관없어."
"...어?"

딸기에 애벌레가 보였음에도 씹고 있자, 아빠가 당황해하고 있었다.

"맛있네."
"".....""

나는 다시  번 김태오랑 눈이 마주쳤고, 여전히 저 꼬맹이는  눈을 피하더니 얼굴을 붉혔다.
45년간 남자로 살아왔던 나는 더욱더 확실하고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이건 X됐다...

김태오의 사진을 닳도록 만지던 다연이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가능한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나는 말없이 주워 먹던 딸기를 아빠 손에 내려놨다.
아빠가 쭈그리고 앉은 상태에서,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아... 아빠도 먹...을까?"
"그런 표정으로 뭘 먹어, 버려."
"응."

아빠는 창백했던 표정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들고 있던 딸기를 냅다 버렸다.
나는 다연이의 의심을 사지 않도록, 가연이와 정연이를 놀아주었다.
각종 체험학습을 하며, 하루가 빠르게 지나갔고, 나는 혼자서 다짐했다.

어떻게든 앞으로 김태오랑 마주치면 안 되겠다는...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김태오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번엔 지훈이를 대동한 채로.
바로 실내 수영장에 놀러 가게된 것이다.

나는 위기를 기회로 바꾼다는 말을 떠올리며, 하는  없이 지훈이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지훈이의 손을 잡자, 생각보다 부드러운 내 손에 온몸에 닭살이 돋은 지훈이가 움찔했다.

"부모님 앞에서 싸우자는 거냐?"
"오늘 나 좀 도와줘, 서로 마음이 있는 것처럼."
"꺼져 내가 왜."

이 십새끼는 말로 하면 들어준 적이 없었기에, 잠시 주먹이 올라갔지만 참았다.
움찔한 지훈이에게 천천히 말했다.

"이따가, 김태오라는 존나 잘생긴 꼬맹이 나올 거야."
"근데."
"다연이가 엄청 좋아하거든? 근데  꼬맹이가 날 좋아해."
"어엌?"

상황을 알게 된 박지훈이 과하게 웃는다.

"표정관리 똑바로 해라, 11살에 생 마감하기 싫으면."
"내가 억울해서라도 너보다 12년은 더 살아야겠어."
"그래그래, 오늘 부탁 좀 한다."

우리는 헤어진  각자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여자 탈의실엔 나와 다연이, 김선화, 지훈이네 어머니만 있었다.
다연이는 김태오를 본다는 생각에 들떠있었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다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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