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6학년.
지훈이는 지금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깨달았다.
과거 자신의 형님이었던, 마음속 구석에선 지금까지도 형님으로 자리잡고 있는 시윤이.
술 한 잔을 먹더니 그대로 기절했다.
'미친!!!'
얼굴이 상기된 채 딸꾹질을 하는 모습을 보니, 다행히도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했고. 주변을 둘러봤다.
"와... 조졌네..."
지훈이는 빠르게 증거인멸을 위해 소주의 뚜껑을 닫고 술들을 구석에 몰아넣었다.
그리고 시윤이를 업은 뒤, 호텔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기 위해 움직이자, 등에 있는 시윤이의 가슴 쪽에 무언가 울컥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에서 들리는 우웩 소리...
"아!... 시팔...진짜..."
지훈이는 어깨에서 등을타고 내려가는 뜨거운 액체를 느끼고, 시윤이를 들고 지영이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시윤이의 이물질로 범벅이 된 시윤과 지훈.
"조졌다... 조졌다... 조졌다..."
이대로 옷을 벗길 수도 없다.
지훈이는 빠르게 주변을 확인하고 자고 있는 지영이를 깨웠다.
"야... 지영아."
"으응...? 꺄악!"
지훈이를 보고 놀라는 지영. 다행히 지훈이가 입을 막았다.
지훈이 시윤이를 가리키자, 얼굴이 빨개져서 쿨쿨 자고 있는 시윤이를 보았고, 지훈이를 쳐다보았다.
"술 마셨어..."
"뭐?! 어떻게?"
"내가 가져왔지... 그게 문제가 아니야... 옷 벗기고 씻겨야 되는데... 아니다 그냥 데리고만 있어 봐, 나 밖에 증거 인멸해야 되거든?"
"....너부터 옷 갈아입어야 할 거 같은데...?"
"아... 그래야겠다. 부탁할게~"
"응..."
지훈이는 시윤이를 지영이에게 맡긴 뒤, 빠르게 움직였다.
빠르게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 씻은 뒤,
증거를 지우고 돌아온 지훈은 자신의 이마를 매만지며, 바닥에 자고 있는 시윤이를 보았다.
옆에서 같이 지켜보는 지영.
박지훈은 시윤이를 들더니 화장실로 끌고 갔고, 뒤이어 지영이가 따라왔다.
시윤이를 바닥에 눕힌 후에 뒷머리를 감기면서 대화를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건데...?"
"신나서 한잔 먹더니 저렇게 됐어."
"...?"
머리를 전부 감긴 뒤, 시윤이를 벗기려다 멈칫하는 지훈.
"네가 해라."
"응..."
박지훈은 시윤의 가방을 뒤지며 옷을 꺼낸 뒤 지영이에게 건넸다.
지영이가 옷을 갈아입혔는지, 지훈이를 불렀다.
"진짜 뭔 일 일어나는 줄 알고... 와... 일단, 입고 있던 옷 어디에 있어?"
"저기 놓긴 했는데... 왜?"
"빨아야지... 이대로 두면, 무조건 걸려."
지훈이는 시윤이를 침대로 옮기고 화장실에 들어가더니 토가 묻은 옷을 빨기 시작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지영이 말했다.
"...더럽지 않아?"
"뭐가? 토가?"
"응..."
"내 입에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뭐가 더러워."
"그렇구나..."
거리낌 없이 토를 씻어낸지훈이 시윤이의 옷을 빨았다. 그리고 멈칫하는 손.
".....이거 네가 해라."
"응."
시윤이의 아주 작은, 핑크색 바탕에 하얀 토끼 그림이 그려져 있는 속옷이었다.
따스한 햇살이 눈부시게 얼굴을 비췄다.
눈을 살짝 떠보니 밖에 보이는 에메랄드빛 수평선과 함께 하늘도 푸른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끄응... 아... 어지러워..."
"일어났어?"
주변을 보니 지영이가 나를 보고 있었다.
"응..."
"어제... 진짜 놀랬어... 갑자기 지훈이가 찾아와서."
"어?!"
나는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고 옷을 확인했다.
"어떻게 됐어?"
"지훈이가 말하기론... 한잔 먹더니 기절했다고... 너 온몸이 토라서... 지훈이가 옷 빨아줬어.
나는 머리카락의 냄새를 맡고는 끄덕이며 샤워를 하러 들어갔다.
그리고 내 옷을 빨아서 널어놓은 곳이 있었고, 한쪽에 내 속옷이 있었다.
"하아..."
씻고 나온 뒤, 머리를 말리면서 주변을 확인했다.
"한 잔 먹고 기절을 했다고...? 내가?"
"...그렇다는데? 사람이 술 마시고 그렇게 쓰러지는 거 처음 봤다고..."
나는 옷을 꺼내 입으며, 중얼거렸다.
"아니야... 에이... 아닐 거야... 내가 알쓰라고? 오바야..."
나는 그때... 현실을 자각했어야 했다.
각종 체험학습과 휴양으로 시간을 보내고 다시 밤은 찾아왔다.
"그냥 버리자..."
"아니, 그럴 리 없어, 아무리 내가 알쓰여도 소화하는 시간이란 게 있는 거지, 말이 돼? 넣자마자 기절한다는 게?"
잠시 고민한 지훈이 천천히 끄덕였다.
".....오케이."
지훈이 방에 돌아가더니 검은색 봉지에 먹다 남은 소주를 가져왔다.
"왜 이것만 가져왔어."
나를 지켜보던 지훈이가 나를 자극하진 않으려 하는지, 조심스럽게 천천히 말했다.
"난... 안 마셔."
"지랄? 양주 많았잖아"
한숨을 쉬던 지훈, 내 눈치를 보면서 말을 꺼냈다.
"...마시지도 못할 거면서..."
"가져와."
"하아..."
결국 지훈이는 처음 가져왔던 술들을 내 앞에 대령했다.
"솔직히 어제 내가 꼬맹이인 거 모르고, 종이 한 컵 가득은 너무 했어 그치?"
"1초 만에 기절한 게 더..."
"...?"
내가 쳐다보자, 눈치를 보며 조용해지는 지훈.
괜히 이상한 곳에 화풀이를 하는 것 같아 미안해졌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다.
나는 지훈이 따라주는 소주를 받았다.
바닥이 잠기지도 않는 극소량.
"...? 더 부어."
"아니... 천천히 늘려보면 되지."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아?"
"마셔보고, 주량을 천천히 알아보자고..."
나는 끄덕이며 극소량의 소주를 마셨다.
"봐, 멀쩡하ㅈㅏㄶ..."
그때 나는 알 수 있었다.
그때 나는 인정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완벽하게 인지했다.
살면서 본 적 없는 알코올 쓰레기, 그중에서도 원탑 알쓰인 몸을 타고났다고...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어지럽기 시작하며, 바닥이 움직이면서 내 얼굴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래, 인정한다.
이 몸은 술 냄새만 맡아도 기절한다는 것을...
솔직히 입에 넣기 전에 느꼈다.
술 냄새를 맡았을 때 얼굴이 화끈해지는 것을...
하지만 인정하기 싫었다.
천하의 술고래 강한성이 술 냄새를 맡고 취한다?
지나가던 개가 비웃을 정도로 지랄이다.
마피아들과 데낄라를 병째로 원 샷하며, 대결하던 아름답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아... 제주도의 바닥은 차갑구나...'
'밀라노 보다ㄷㅗ...'
쓰러지는 시윤을 받아든 지훈이 소리쳤다.
"아!!! 시발 진짜, 미친년아아악!!!"
평소였음 주먹부터 날아올 발언이었지만, 이미 잠든시윤은 얌전했다.
나는 침대에 앉아서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니야... 아닐 거야... 아니겠지... 분명 다른 이유가 있을 거야, 내가 그럴 리 없다.....'
'하아... 아니... 현실이겠지...'
한숨을 쉬며 심각하게 고민하는 내 모습을 바라보는 지영.
"시윤아 괜찮아?"
"....."
"시윤아?"
바로 병원에 가서 내 몸을 검사하고 싶지만, 알코올이 들어가면기절한다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13살짜리인데...
무엇보다, 어제는 지훈이의 간곡한 부탁으로 인해, 잔 밑이 가려지지도 않을 정도만 마셨다.
근데 이건 아니지...
이건 진짜 아니지... 시발...
어제 제주도 바닥과 첫 키스했다는생각만이 떠오르고, 그 뒤로는 아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런 쓰레기 몸으로 종이컵 한잔가득 마셨으니,
온몸에 토를 한 것도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어이가 없는 건, 지금도 시야가 빙빙 도는 게 숙취가 있다는 것이다.
'거, 가성비 뒤지게 좋은 몸이네 시발거...'
어디 가서 기억을 술로 씻어 내리듯 전부 잊고 싶을 때가 생긴다면...
그래서 죽도록 마시고 싶어진다면...
그냥 옆에 있는 사람에게 소주 한 잔 빌려서, 물 타먹으면 된다.
"와..."
1.5L짜리 물통에 소주 한잔 집어넣고 신나게 흔들고 천천히 마시면 되는 몸...
'와... 존나 좋네...'
지영이가 내가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시윤아 괜찮아?"
"으응? 어, 괜찮아... 미리 알아서 다행이네..."
"뭘?"
"주량을..."
이제 앞으로 맛있는 음식에 술을 못 마신다 생각하니 아찔하다.
가끔씩 음식을 먹을 때마다 얼마나 술을 마시고 싶었는가.
기름진 음식을 먹으며, 그 짜릿하고 시원한 맥주가 얼마나 간절했던가...
한가득 꿀꺽! 하고 넘어가는 시원한 목 넘김을 즐길 수 없다니...
이 얼마나 비루한 인생이란 말인가...
"하아..."
나는 내 몸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아직 어려서 그런 거라 생각하며... 끝까지 진실을 외면했다.
나는 지영이와 아침밥을 먹으러, 천천히 걸어 나왔다.
시선이 고정이 되지 않고 점점 움직이는 것이 숙취가 심한 것 같다.
술을 마셨으니 아침에 속이 울렁거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진짜 그거 먹고... 지랄 아니냐고...'
아침을 먹으려는데 하필이면 메인 요리가 갈비찜이다.
평소였으면 좋구나하고 먹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다행히도 계란국이 있어서 국그릇만 달랑 들고 지영이와 자리를 잡았다.
"그것만... 먹어도 돼?"
나는 뜨거운 국물을 마시며, 속이 개운해지는 것을 느꼈다.
"크... 나중에 간식이나 주워 먹지 뭐."
그리고 박지훈도 일어났는지 식당으로 들어왔다.
행색을 보니 아침부터 운동하고 온 듯 했다.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음식을 가지고 다가왔다.
"내가 마시지 말랬지."
"닥쳐..."
"와... 시발 어제너 옮기느라 뒤지는 줄 알았는데!!!"
나는 전날을 떠올리며... 조용하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하아... 미안하다."
바빴다면 바빴을까... 그렇게 찝찝함을 남긴 채 초등학교의 마지막 수학여행이 끝났다.
나는 집에서 수학여행의 기억이 계속 떠올라 쭈그린 채로 발톱을 만지고 있었다.
아빠의 눈에 그 모습이 꽤나 우울해 보였는지,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딸, 무슨 일 있어...?"
"하아... 아니야."
"...아빠가... 수학여행 따라가서 그래...?"
나는 아빠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아니야."
"...시윤아..."
아빠가 내 앞에서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있자,
나는 여기에 앉아보라는 듯이 내 옆자리를 탁탁 두들겼다.
1초의 고민 없이 내 옆에 앉는 아빠.
나는 그대로 아빠의 허벅지에 머리를 가져다댔다.
"아빠 때문에 아니야."
"그럼...?"
"말 못 하지만, 아빠 때문은 아니야."
아빠는 혼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내 머리카락을 만지며 고민했다.
알파와 베타는 자신도 만져달라고 소파 위로 올라와 꼬리를 살랑 흔들었다.
나는 내 앞에 보이는 알파를 끌어안았다.
괴로워하는 알파, 하지만 발톱은 세우지 않는다.
"아빠한테 말 못 할 고민이야?"
"응."
"큰일은 아닌 거지?"
"응."
"그럼 됐어, 우리 딸 똑똑하니까 잘 해결하겠지."
"당연하지."
아빠의 말대로 해결이 가능한 문제라면 다행일 것이다.
제발... 성인이 된다면 조금이라도...
맥주라도 마실 수 있도록... 내성이 생기길...
신은 내 탱탱볼을 가져갔으면서... 왜 하필 주량까지... 하아...
신이 나에게서 앗아간 목록이 하나 더 추가 되었다.
"내일 학교..."
아빠는 내 눈을 바라봤다.
빈말로 가기 싫다고 말한다면, 안 보낼 아빠다.
"아니다, 학교는 가야지... 할 것도 없는데."
"아빠랑 1박 2일로 여행 갈까?"
나는 아빠를 힐끔 쳐다봤다.
"어디로."
"음... 인천으로 가도 되고 동해도 괜찮고."
나는 해산물 철을 생각하며 아빠에게 말했다.
"동해가서 새우나 먹을까?"
"그럴까~?"
"그럽시다 그럼."
아빠는 내 말이 끝나자마자, 머리를 조심스럽게 들더니 일어나서 사립초에 전화를 걸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빠와 동해로 향했다.
철썩~
뜨거운 태양 아래, 하얀 벙거지 모자와 선글라스를 끼고, 출렁이는 바다를 바라보았다.
철썩~
가슴속 깊게 들어오는 바다내음과, 멀리서 들려오는 갈매기 소리들...
철썩~
소리와 함께 하늘과 바다를 갈라놓은 수평선...
전시회에서나 볼법한 한 폭의 그림 같은 바다 위, 나는 지금 아빠와 배 위에 있었다.
철썩~
흔들리는 배와 함께, 구역질이 올라왔다.
우웩!
"괘... 괜찮아...?"
내가 봉을 잡고 구역질을 하고 있자 아빠가 등을 두들겨주었다.
"아니... 왜 배를... 하아..."
"네가 타자며..."
구토로 인해서 눈엔 눈물이 고였고, 내 얼굴은 붉게 상기되었다.
"그게 아니...고오, 내가... 읍!! 하아... 멀미할 줄 몰랐지..."
술도 못 마시는 쓰레기 같은 이 몸은 심지어 뱃멀미까지 한다.
과거가 떠올라서, 도다리나 잡아 물회나 해먹을까 생각한 내가 바보였다.
출렁일 때마다 헛구역질이 올라온다.
아빠가 내 등을 두들겨주고 있었고, 나는 물고기들에게 고급진 재료들이 섞인 떡밥을 나눠줬다.
"으... 죽을 거 같아..."
"안되겠다. 선장님한테 말할게 돌아가자 시윤아."
"아니야, 괜찮아... 물회 먹을 건 잡아야지..."
"사먹으면 되지..."
"나도 낚시... 좋아하거든?!"
아빠는 강태공처럼 붕어낚시를 하던 내가 떠올렸는지 끄덕였다.
여유롭게 물고기 잡아 능숙하게 바늘을 빼며, 물가에 던지면서 풀어주던 모습.
처음에 초보자인 척 연기하는 게 힘들었다.
더 이상 속에서 게워낼 것도 없자, 그나마 살 것 같았다.
나는 벙거지 모자를눌러 쓰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날씨한번 더럽게 좋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