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평화로운 하루.
나는 어느덧 중학생이 되었다.
잠시 작았던 과거를 회상하며.
거울 앞에서 모델처럼 자세를 잡았다.
"캬... 크면 클수록 빛이 나는구만!"
점점 내 얼굴은 엄마와 닮아가고, 아주 조금의 아빠모습도 보이고 있었다.
엄마의 미모에 더해, 아빠의 유전자로부터, 엄마보다 단 한 톨의 이쁜 유전자라도 내 얼굴에 집어넣겠다는 듯이...
왜 사람들이 나보고 압도적인 유전자라고 말하는지, 거울을 보면 끄덕여진다.
주먹만 한 얼굴에, 158이라는 작은 키지만 비율이 오진다.
거울을 보면서 무표정을 짓고 있으면 말 걸기도 힘든 비주얼을 자랑했다.
그리고 아빠와 엄마가 찍은 결혼사진...
툭 튀어나온 굴곡진 골반, 길게 뻗은 다리까지 완벽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엄마지만, 가장 아쉬운 것은 가슴이 없다.
다시 한 번 생각해도 다리와 잘록한 허리는 훌륭했지만...
하지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으로 가슴이 부풀어있는 것이... 할머니가 떠오른다.
오오오....
아직 아빠의 유전자가 남아있음에 기대하며,
나는 내 가슴을 만지작거리다 아빠에게 걸렸다.
".....뭐해."
이상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빠.
"신경 쓰지 마, 마사지 중이니까, 가슴 커져야 하거든."
"...?"
"완벽한 아름다움을 위해서..."
아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작업실로 향했다.
나는 거울을 보며 이런저런 자세를 취하며, 자아도취를 계속했다.
고민수 선생은 학원을 차렸으며, 나는 고민수 선생의 1대 제자가 되었다.
고민수 선생의 유명세 덕분에, 한종예대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가득한 학원이 되었고,
선생이 벌어들이는 돈은 사립초를 다닐 때와 비교해도 압도적이었다.
고등학생을 상대하는 고민수 선생, 요즘 들어 못 보던 모습들을 많이 봤다.
칼같이 선을 긋고 행동하며, 단호하게 말하는 고민수 선생은.
지금이 초등학생을 상대하는 것보다 적성에 맞아보였다.
지훈이는 나랑 붙어 다니기 위해서 부모님을 설득했었다.
자신의 꿈은 시윤이의 경호원이라며.
의아해했던 지훈의 부모님이지만, 박지훈은 내 전용 경호원이 되고 싶다고 강력하게 말했었다.
자신의 아들이 시윤이의 노예가 되겠다고 자처한 모습이었지만,
시윤이가 좋아서 붙어있고 싶어 그런 것이라고 이해한 부모님은 끄덕였다.
아파트에서 다연이와 수영을 하기 위해 움직였다.
다연이의 신체는 나보다도 빠르게 어른이 되었다.
나도 발육이 엄청 좋은 편이지만...
다연이의 몸과 내 몸을 비교하면 나는 아이로 보일정도로... 굉장히 엄청ㄴ...... 여기까지.
다연이의 자존감을 높여주려고 했던 내 노력으로 인해서, 이젠 자신의 몸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다연이지만...
그렇다고 강조하지도 않았다.
과거 다연이와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 박지훈이 물어봤다.
여자아이와 씻는 것에 배덕감이 들지 않느냐는 이야기.
박지훈의 말대로 무시할 수 없는 다연이의 그 존재감에, 내가 의식을 함으로써 배덕감이 들 수도 있었겠지만.
2차 성징이 시작될 때부터, 나는 전부 내려놓게 되었다.
여자로 태어나 14년간 살아오면서, 과거의 강한성은 그냥 기억만 가지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땐 그랬었지 라는 느낌으로 기억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나는지금 김시윤이다.
그리고... 아직 불규칙하게 나타나는 그것... 덕분에 1달에 한 번씩은 현실을 깨닫는다...
다연이는 김태오 때문에 참았던 애정을 나에게 쏟기라도 하는 듯이 애정표현을 많이 했다.
그리고 나를 세상에서 가장 친한 동성친구로 생각하기에, 이런저런 고민 상담도 많이 했다.
한참을 수영하던 다연이가, 물위에 누워있는 나를 불렀다.
나는 물 밖에서 나를 바라보는 다연이를 발견하고는 물 밖으로 나갔다.
"시유나 이제 진짜 같은 학교 다니네!"
"그러네~"
내가 수영장에 발을 담그고 있자 다연이가 옆에 오더니 나에게 기댔다.
"드디어... 시유니랑 같은 학교... 정말 기대돼!"
나는 다연이를 왕따를 시켰다는 아이들을 떠올리며 씨익웃었다.
"나도..."
이진석에게 듣기로 김태오를 다연이에게 붙였음에도,
다연이를 싫어하는 이들과 단순히 멀어졌을 뿐, 다연이가 혼자 다니는 건 마찬가지라고 한다.
무엇보다 다연이가 낯을 가리니,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이젠 내가 옆에 있어줄 수 있다.
이진석은 다연이를 일반 중학교에 보내더라도 평범한 건 싫었는지,
명문고 최고 입학률을자랑하며, 한국에서 손꼽는 복지와 각종 시설들이 있는 한국중앙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법이 개정되면서 뺑뺑이로 들어가야 하는 일반 중학교가, 뒤에서 비밀리에 돈을 받아먹고 있으니 경쟁률이 엄청났다.
말 그대로 뺑뺑이로 들어오는 사람 50%, 나머지 50%는 뒷돈으로 들어온 정도였다.
근데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 뺑뺑이마저도 서울의 노른자위에 살고 있는 재력 있는 아이들이 들어 오다보니
한중 중학교는 평범하지 않은 중학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나와 다연이는 수영을 끝내고, 운동을 하기 위해 산책을 나왔다.
나는 마스크를 쓰고, 모자를 눌러쓰며, 편한 트레이닝 복으로 갈아입었다.
이 옷은 다연이랑 커플룩으로 맞춘 거다.
같은 옷 다른 느낌을 몸소 경험하며, 다연이를 보니 살짝 억울한 생각도 들었다.
너무, 언니 옷을 따라 입는 동생 같지 않은가...
그 시선을 느낀 다연이가 어색하게 웃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밖으로 나가자.
멀리서 심상치 않은 덩치들이 일반인 처럼 자연스럽게 우리를 중심으로 움직였다.
"와... 아빠가 허락할 줄은 몰랐어."
"뭐가?"
"이렇게 돌아다니는 거, 우리 아빠 많이 발전했네."
다연이가 내 말에 나를 게슴츠레 뜬 눈으로 봤고,
다연이에게 그 눈빛을 받았다는 것에, 나는 살짝 서운한 감정을 느꼈다.
"시유니 네가 우리 아빠한테... 아저씨 설득하라고 협박했잖아..."
"...알고 있었어?"
"응."
나는 맑은 하늘을 지켜보다, 말을 돌리기 위해서 천천히 말했다.
"나 늦으면 1달간 외출 금지거든?"
"헐... 진짜? 너무해..."
"근데 김태오는 어디 갔어?"
"응?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1달간 해외에서 훈련받는다던데?"
김태오가 정연이나 가연이에게 배정받은 것은 아닐 텐데, 요즘 들어 왜 안 보이나 했었다.
나는 뒷짐을 지고 걷고 있는 다연이 옆에 섰다.
"떡볶이 먹으러 갈까?"
"진짜로?응!!! 짱 좋지!"
다연이가 나에게 달라붙었고, 나는 다연이의 완벽한 애착 인형이 되었다.
비운의 안토니오가 된 것 같달까.
나는 다연이와 시시덕거리며, 포장마차로 향했다.
몸이 커져서 그런가, 나는 생각보다 많이 먹기 시작했다.
가슴이 커질 거라는 기대감을 안고, 몸이 원하는 대로 많이 먹었다.
"으응~ 맛있어~"
다연이는떡볶이를 엄청 좋아했다.
나는 매운 음식을 잘 못 먹어서, 순대와 튀김, 어묵을 더 좋아했지만...
내가 자연스럽게 지갑을 열자, 다연이가 눈치를 본다.
"맨날 시유니가 사주고... 나도 사주고 싶은데..."
나는 피식 웃으며 다연이의 입에 묻은 떡볶이 국물을 닦아주었다.
"그런 거 신경 쓰는 거 아니랬지?"
"응..."
다연이에겐 미안하지만... 이건 이진석의 돈이었다...
그리고 내가 입는 옷들 대부분을 다연이의 어머니 김선화가 사준 거다.
무슨 옷까지 얻어 입느냐는 소리를 듣게 된다면 조금 억울한게, 아빠가 여자 옷을 보는 눈이 너무 허접한 걸 어쩌겠는가.
길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떡볶이를 사먹고 난 후,
우리는 음료수를 사기 위해서 편의점에 들어갔다.
음료수를 고르고 있을 때, 다연이가 말했다.
"1+1이다!"
"같이 먹을까?"
"응!"
'갈아 먹힌 배'라는 음료수를 쥐고 계산대에 올려놓자, 다연이를 빤히 보는 아르바이트생.
"저기요~ 계산해 주세요."
"아! 네."
다연이도 몸과 외모가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나처럼 마스크를 씌워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편의점에서 나오면서 우리는 잠시 걷다가 벤치에 앉았다.
"시유나 꿈이 뭐야?"
음료수를 먹고 있는 도중에 들어오는 다연이의 질문.
나는 턱을 괴고 잠시 고민했다.
나의 첫 목표는 S사의 끝... 태백의 끝을 보는 거였다.
하지만 지금은... 래퍼이자 작곡가인 김지호의 딸로 자라오면서 많은 것이 달라졌다.
어차피S사는 내 옆에 있는 꼬맹이의 아빠가 경영으로 누르고 있었고,
나는 부족한 것 하나 없는 대한민국 상위 0.001% 최상류층으로 태어났다.
과거의 나는 싸움밖에 할 줄 몰랐지만, 이 몸은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S사가 무너진다고, 내가 행복할 것인가...
아마, 전혀 아닐 것이다.
그래서 내가 S사를 놔둔 것이고.
과거 내 왼팔이었던 재형이도 내가 관심이 없어 보이자 S사를 신경 쓰지 않는다.
무엇보다, 각자 알아서 잘살면 됐지 뭣하러 끼어들겠는가.
부족함 없이 태어난 나의 꿈이란...
정말로 내 꿈이 무엇일지, 잠시 고민했다.
그림을 그릴 땐 재밌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행복(?)'까지도 느낄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건 노래도 마찬가지...
최근에 아빠와 장난치며 만든 노래들, 내가 만든 멜로디를 김지호가 행복해하며 다듬을 때는 나 역시도 즐거웠다.
공부? 나는 언젠가 이 몸의 기억력을 시험해 보려고, 한 페이지를 1초씩 보고 넘긴 적이 있었다.
그렇게 했을 때, 내용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는 페이지를 읽어보면, 머릿속에 정리가 돼서 기억이 났다.
그렇게 필요한 시간은 페이지 당 5초...
머릿속에서 정리를끝내놓으면, 몇 년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내가 떠올리겠다는 의지를 보이면, 날짜별로 정리되어 있는 서랍 속에서 저장해둔 종이를 꺼내서 읽는 것처럼...
근데 딱히 즐거운 감정? 이런 건 없다 그냥 숨 쉬듯 당연한 일같이 느껴졌다.
수영?숨을 참고 있으면, 모든 것이 멈춘 것 같은 편안함을 가져다주지만, 이것도 꿈은 아니지...
싸움...
35년간 쉬지도 않고 지겹도록 해왔었다.
근데 21세기에 싸움이 웬말인가.
그리고 일상생활에서는 남의 자식 뺨 한번 잘못 후리면, 그대로 빨간 줄이다.
거기에 더해, 나의 아빠 김지호는... 대한민국 국민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어서 구설수에 쉽게 오른다.
지훈이를 제외하고, 누군가의 뺨을 후려쳤다가는 제벌 2세의 갑질로 뉴스에 나오기 충분했다.
꿈... 꿈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처럼 부족함 없이 평화를 즐기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
나는 고민을 끝내고 다연이를 쳐다봤다.
"흠... 다연이랑 계속 같이 있는 거?"
"진짜?!"
내 말이 의외의 답변이었는지 다연이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시 고민했는데, 아빠나 다연이랑 같이 있는 게 제일 좋았어."
"시~유나~~~"
다연이가 나를 안더니 내 긴 머리카락에서 나오는 샴푸 냄새를 전부 빨아들이겠다는 듯이 숨을 깊게 쉰다.
나는 다연이를 쳐다보면서 물어보았다.
"그래서, 다연이는 꿈이 뭔데?"
"음... 나도 시유니랑 같이 있는 거!!"
나는 피식 웃으면서, 내 품에 안겨있는 다연이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겼다.
산책을 끝내고, 집에 돌아온 뒤,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게임을 하고있는 아빠 옆에 자연스레 앉아 게임을 시작했다.
한참을 하다가, 옆에 있는 아빠를 쳐다봤다.
"물."
"가져다 먹어."
"물."
"야, 너 다 컸잖아. 알아서 먹어, 나는 충분히 다 키웠다고 생각하거든?"
"물."
내 단호한 대답에 아빠는 게임에 집중하며 한숨을 쉬었다.
"하아... 기다려."
"무울~"
"매 든다..."
"앗 쏘리~"
나는 게임을 하다가 일어나서, 아빠와 내 컵을 들고 정수기로 향했다.
얼음을 가득 담은 뒤, 물을 담았다.
다시 게임방에 도착하니 아빠는 여전히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장난을 치고싶어, 물 컵을 올려놓고는 핏줄이 서있는 아빠의 팔을 유혹하듯 손가락으로 쓸었다.
하지만 아빠는 모기를 쫓듯 내 손을 ‘탁!’ 하고 쳤다.
"칫."
나는 4번째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책상 밑으로 내려가 아빠와 컴퓨터 사이로 올라왔다.
"딸...? 아빠 집중하는데..."
자꾸 내 뒤편의 화면으로 시선을 두는 아빠.
내가 아빠의 무릎 위로 올라가서 앉은 뒤, 유혹하듯 지긋이 쳐다보자 자연스럽게 옆으로 내동댕이쳐졌다.
4번째 비장의 카드는 너무 약했나보다.
"헐... 너무해."
나는 비운의 여주인공 마냥 아빠를 쳐다봤고,
아빠는 다시 게임에 집중하면서 말했다.
"까불지 말고 앉아."
"넵."
"쉰 형, 집중 좀 해요."
-"어이가 없네... 딸이나 너나... 왜 나한테만 그러냐?"
쉰은 나와 게임을 하면서 친해진 뒤에, 최근에는 아빠랑도 친분을 쌓아왔다.
나랑 22살 차이가 나는 아빠의 나이는 36살, 쉰은 38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