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평화로운 하루.
한중 중학교 교장은 명목상 수석으로 입학한 나에게 설교를 부탁했지만,
나는 당연하게도 단칼에 거절했다.
하지만, 몇 마디하면 학비를 대준다는 소리에, 결국 군말 없이 강당에 섰다...
10분 떠들고 학비 500만 원... 아무리 생각해도 개이득이었다.
형식적인 입학식의 막을 올리고, 나와 다연, 지훈, 태오는 같은 반이 되었다.
'아니 말도 안 되는 이런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안 봐도 비디오 아닌가. 이진석이 뒷돈 꽤나 썼겠지...
나와 다연이는 같은 짝을 하고 싶었지만, 칠판에는 남자와 여자가 한 줄씩 배정된 자리가 써져 있었고, 나는 창가 쪽에 앉았다.
내 짝꿍이 된 지훈이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다연이와 태오가 앉았다.
박지훈과 김태오는 서로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눈빛을 주고받는다.
아니면 마음에 드는 건가?
지훈이는 키가 빠르게 커져서 174cm가 되었다.
"너 2m 찍겠다?"
"내 꿈이 뭔지 알아?"
"뭔데."
"2M 되면 바로 몸무게 130kg 찍어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가 되는 거야."
"존나 너답다. 병신."
옆에 다연과 태오가 피식 웃었다.
한중 중학교.
이 학교에 김시윤이 다니게 된다는 소문이 퍼졌었다.
드라마에 나온 시윤이를 보았을 때 나랑 동갑이란 사실에 얼마나 설레었던가...
실제로 신입생 대표로서 말하는 김시윤을 봤을 때는... 빛이 나오는 것 같았다.
을지 초등학교 짱을 먹었던 나는 김시윤을 무조건 내 여자로 만든다는 생각으로 기대를 가졌다.
그리고 김시윤이 배정된 반이 몇 반일지 몰라서 친구들을 심어뒀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노력이 무색하게... 내가 배정된 반으로 들어가자 김시윤이 앉아있었다.
세상에... 상상 이상이다...
세상을 혼자 사는 듯한 미모를 가지고 있는 김시윤...
하지만 바로 옆에 앉아있는 양아치처럼 생긴 새끼가, 내 미래의 여자친구에게 장난을 치고 있었다.
반에 앉아있는데, 아는 얼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제, 시윤이에게 나를 보여줄 차례다.
외모가 꽤나 준수한 꼬맹이가 나를 한동안 쳐다보더니, 반대쪽 구석에 앉았다.
새로운 곳에 가면, 어디를 가던 똑같이 남, 여를 불문하고 모두 나를 힐끔힐끔 쳐다본다.
나는 그런 익숙한 시선들을 무시하며, 다연이와 웃으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그 꼬맹이가 누구를 발견했는지 손을 흔든다.
"어이~ 형섭이~"
형섭이라 불린 꼬맹이가 표정이 창백해지면서 자신의 이름을 부른 꼬맹이의 눈치를 봤다.
"강훈아...아...안녕..."
강훈이라 불린 꼬맹이가 형섭이에게 눈치를 주자 눈을 질끈 감은 형섭이 강훈이의 앞에 앉았다.
형섭이 앉자마자 발로 의자를 차는 강훈.
"오랜만이다?"
"으응..."
"나 안 반가워?"
"....바...반가워."
갑자기 강훈이 책으로 형섭이의 머리를 내려쳤다.
빠악!
"기분 나쁘게, 대답 졸라 느리네 새끼..."
"미... 미안."
다연이는 신경 쓰이는지 계속 힐끔힐끔 쳐다봤고, 나는 무시하며 지훈이랑 떠들었다.
내가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누가 왕따를 당하든 솔직히 내가 알 바는 아니다.
그런데 내 쪽을 자꾸 쳐다보면서 형섭이란 꼬맹이를 괴롭히는 강훈을 보고 있으니, 무슨 상황인지는 정확하게 알겠다.
그리고 다연이만 신경 쓰고 있을 뿐, 김태오도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꼬맹이들이 빈자리를 채우며, 반이 가득 찼고.
이어서 담임 선생님이 들어왔다.
칠판에 무언가 적는 선생.
그리고는 자신을 소개한 뒤, 선생님이 가장 앞에 있는 꼬마를 지목했다.
"먼저 자기소개 해볼래?"
"네."
왜 해야 되는지 모르겠지만, 담임의 지시로 갑자기 자기소개 시간이 되었다.
나는 칠판에 적힌 글씨를 보았다.
- 이름, 꿈, 취미, 특기, 좋아하는 말, 싫어하는 말, 학교를 다니며 이루고 싶은 목표 말하기.
요구 사항도 참 많다.
앞선 꼬맹이들이 발표를 하기 시작했고, 박지훈 이 병신은 한결같이 병신처럼 낙서를 하고 있었다.
내 차례가 되어서 한숨을 쉬며 일어났다.
평소에 발표를 듣지 않던 이들까지, 33개의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하아... 김시윤입니다. 꿈은 백수고, 취미는 그림, 특기 수영, 그림, 음악, 연기 정도겠네요, 좋아하는 말 없고, 싫어하는 말 사랑고백입니다. 목표는 없습니다."
내 차례가 끝나고, 담임 선생이 내 짝꿍인 지훈이를 쳐다보았다.
아무 생각 없이 낙서를 하다가, 담임 선생과 눈이 마주친 지훈이 일어났다.
"박지훈입니다."
박지훈은 칠판의 글씨를 하나씩 읽으면서, 말한 뒤 앉았다.
그리고 여러 꼬맹이들의 순서가 넘어가며, 강훈이란 꼬맹이 차례가 되었다.
박지훈을 보면서 말하는 강훈.
"강훈, 격투 선수, 싸움, 싸움, 맞짱 뜨자, 싫어하는 말 없습니다. 목표는 시윤이랑 사귀는 것입니다."
노골적으로 지훈이에게 싸움을 걸고 나에게 사랑고백까지 하는 꼬맹이...
하지만 방금 한 말로 인해서, 선생님에게 밖으로 끌려 나가는 모습이 참... 애다웠다.
그리고 내가 싫어한다고 기꺼이 얘기해줬음에도 고백을 대놓고 하는, 여러모로 마음에 안 들기 시작한 꼬맹이다.
시윤이가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기 시작했다.
하... 역시, 강한 남자가 이상형일 줄 알았다.
내가 어떻게 알았냐고? 주변 여자애들도, 나를 짝사랑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윤이의 옆에 있는 녀석도 상당히 삐딱해 보였으니, 내 예상이 분명했다.
나는 빠르게 초등학생 때 같이 다녔던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시윤이의 옆에 앉은 양아치가 마음에 안 들기에, 참교육을 해주겠다는 생각으로.
점심시간에 강훈이란 꼬맹이가 친구들을 데려오더니, 조용한 반 안에서 떠들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와 다연이를 힐끔힐끔 보는 꼬맹이들.
"왼쪽에 있는 애는 네 거 해라. 시윤이는 내 거다."
"와... 가슴 개 커 우리 엄마만한데...?"
"엌? 뛸 때 볼만할 듯."
"미칰"
우리가 가만히 있자, 나와 다연이를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꼬맹이들.
다연이는 그런 시선이 익숙한지, 무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처음으로 지훈이가 아닌, 다른 꼬맹이에게 분노를 느꼈다.
'기분 나쁘네...'
그것보다 저걸 보고도 가만히 있는 김태오를 보고 있으니, 더 짜증이 난다.
저게 자신의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건가 싶은 생각으로.
김태오를 다연이에게 붙여놓은 것은, 육체적인 충돌만을 막기 위해서 붙여놓은 게 아니다.
내가 어깨로 지훈이를 툭툭 치자, 지훈이 나를 보더니 한숨을 쉬고 나섰다.
시윤이가 자신을 치자, 지훈이는 어깨를 으쓱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르륵.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태오랑 다연.
김시윤은 자기가 시켜놓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자신의 긴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책을 읽고 있었다.
"어휴..."
하지만 박지훈도 저 꼬맹이들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기 힘들었었다.
지훈이 다가오는 모습을 본 꼬맹이들이, 벌어져 있는 어깨에 움찔했다.
"무슨 얘기해? 나도 같이 놀까?"
남자애들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은 지훈이지만, 조금씩 늘려가는 악력에 꼬맹이들의 인상이 점점 찡그려지고 있었고.
시윤이를 노골적으로 보던 강훈이 피식 웃더니, 지훈이에게 다짜고짜 주먹을 날렸다.
터억.
주먹을 잡은 지훈이 힘을 주자, 시작된 강훈의 비명.
"아아아아악!!!"
지훈이 그대로 가볍게 턱을 가격하자, 전신 마취라도 당한 듯 책상에 누웠다.
"왜 갑자기 주먹을 뻗고 그래, 하마터면 놀라서 죽일 뻔했잖아... 니들 생각은 어때? 이건 죽여도 할 말 없는 거지?"
"".....""
자신들의 리더이자, 가장 싸움을 잘했던 강훈이가 그대로 뻗어버린 모습을 보고, 꼬맹이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다.
지훈이는 의자를 끌어와서 이들의 앞에 앉더니, 쓰러져있는 강훈이의 부어오른 손을 만지작거렸다.
"그래서, 무슨 얘기 하고 있었어?"
"".....""
침묵을 유지하는 꼬맹이에게 얼굴을 내미는 지훈.
눈 수술로 인해 양아치상으로 바뀐 지훈이는, 얽히면 꽤나 위험할 것 같은 이미지로 바뀌었었다.
"왜, 말을 안 하냐~ 사람 기분 나쁘게... 뭔 얘기 했냐고?"
"미... 미안."
"왜 미안해? 무슨 대화를 했길래 미안해?"
"아... 아니..."
콰앙!
지훈이 누워있는 꼬맹이 옆을 내려치자, 기겁하는 이들.
그리고 기절했던 강훈이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잽싸게 앉아서 차렷 자세를 했다.
"어? 내가 깨웠나? 미안하네...?"
"".....""
지훈이가 처음에 질문했던 꼬맹이에게 가볍게 어깨동무를 했다.
"왜 그래~ 내가 원한 대답이 아닌 거 알잖아... 응?"
거의 오줌을 쌀 것 같은 표정으로 동공이 흔들리는 꼬맹이를 두고지훈이 말했다.
"강훈... 이랬나?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학교생활이 기대되네? 3년 동안 잘 부탁해?"
"...히끅!"
지훈이 놔주자 도망치는 이들, 하지만 남아있는 강훈이 움찔했다.
"격투기 같은 거 하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해라."
"응, 아니 넵..."
지훈이는 꼬맹이를 보며 웃어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훈이의 눈치를 보며 자신의 주먹과 턱을 매만지는 꼬맹이.
지훈이 다가오자 시윤이가 몰래 주먹을 살짝 내밀었고, 지훈이는 시윤이 내민 주먹을 가볍게 부딪혔다.
그 모습을 눈을 반짝이며 보던 다연이가, 태오의 눈치를 보고 조용하게 말했다.
"무식해..."
그리고 김태오도 주변을 둘러보며, 박지훈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약한 이에게, 힘자랑이라니... 너답군."
듣고 있던 내가 어이가 없는데, 지훈이는 어떻겠는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쳐다보니, 역시나 꽤나 마음에 안 들어 한마디 하려는모양이었다.
나는 그런 지훈이의 가슴을 툭툭 치며 김태오에게 말했다.
"다연이가 그런 말을 들었는데 가만히 있는다라... 만약에 말이야... 지훈이가 아닌 내가 갔으면, 상대가 약하든 말든 생각 없이 떠든 말에 책임지도록 쟤네 머리에 각자 다른 색깔로 연필 하나씩 꽂아줬을 거야."
"".....""
"다연이가 저렇게 무덤덤한 반응 보인다고 김태오 니가 잘하고 있는 게 아니야. 사실은 다연이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아냐."
"시... 시유나..."
나를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다연.
"다연이가 어른스럽다고, 신경 안 쓰는 줄 아는데 우리 14살이거든?네 일 제대로 하고 싶으면 다연이 마음부터 생각해, HSW 기관장 손주라고 월급 루팡 짓하지 말고."
나는 지훈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이게 남자지~"
"".....""
온몸에 소름이 돋은 지훈이를 두고 자리에 앉았다.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는 김태오.
자존감이 강하다고 생각한 김태오지만, 방금과 같은 말을 들었는데도 꽤나 침착하게 자신을 돌이켜본다.
다연이가 그런 태오를 보더니 걱정하자, 김태오가 말했다.
"미안하다... 전혀 몰랐어, 예전에 저렇게 했다가, 무서워하는 거 같아서... 정말로 미안하다."
"아... 아니야..."
얼굴을 붉히고 있는 다연이는 웃고 있었다.
처음 중학교에 들어왔을 때, 이곳이 내가 다녔던 서울 사립초만큼 화려한 곳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역시나, 식당도 화려했다.
뷔페처럼 되어있는 곳에 음식을 담고 자리에 앉았다.
나랑 지훈이와, 다연이랑 김태오의 입맛이 다르다는 것을 접시 내용물로 알 수 있었다.
나와 박지훈은 고기를 위주로 담았고, 다연이와 김태오는 채소를 위주로 담았다.
"채소만 먹고, 어떻게 그렇게 가슴이 커?!"
김태오와박지훈이 갑작스럽게 들린 내 노골적인 질문에 먹던 걸 뱉었다.
그리고 다연이가 자신의 신체를 창피해하는 것을 알고 있는 김태오가, 친구면서 그런 말을 하냐고 뭐라고 하려는 순간.
다연의 이어지는 대답에 아무 말도 못 했다.
"모르겠어... 엄마를 닮아서 그런 건가..."
아직 나와 다연이의 사이를 정확하게 모르는 김태오.
"와... 나도 다연이처럼 컸으면 좋겠다..."
"부끄럽게 왜 그래에...."
아직 다연이가 칭찬에 약하다는 것도 모르나보다.
특히나 내가 하는 칭찬에 목매는 다연이다.
나는 밥을 우걱우걱 먹는 박지훈을 바라봤다.
"안 부족하냐?"
"응? 더 가져다 먹음 되지."
"역시.. 잘 먹네..."
내가 지훈이에게 말하고 있었는데, 아주 미세하게 김태오의 먹는 속도가 빨라졌다.
이 급식실에 있는 고기란 고기는, 자기가 전부 처먹겠다는 듯이 먹고 있는 박지훈.
"너 3그릇째야 인마... 배터지겠다 새끼야."
"조금만 더 먹으면 배부를 거 같아."
나는 급식 아주머니가 주는 눈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기만 가져가는 지훈이 때문에,
내가 더 창피했다.
그리고 일어나서 식판에 고기를 담아다줬다.
"땡큐."
14살짜리 20명에서 먹을 고기반찬을 혼자서 처먹은 지훈.
""와...""
밥을 이미 다 먹은 나와 다연이는 감탄하고 있었다.
지훈이는 과거 재형이로 살았을 때보다 최소 배는 먹고 있었다.
"이 새끼 똥 만드는 기계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