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9화 〉평화로운 하루. (69/99)



〈 69화 〉평화로운 하루.

노란빛 미술학원.

고민수 선생이 설립한 학원이다.
우리 집과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어, 나는 항상 걸어 다녔다. 저녁엔 아빠가 데리러오지만...
입시 준비를 막 시작한 여유로운 학원에서 고등학생들과 고민수 선생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미 미술계의 슈퍼스타인 나는, 한종예대에 들어간다고 말만 해도 입학이 가능한 스펙이었고, 내 이름은 이미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내가 익숙해졌는지, 아니면 고민수 선생이 따로 말을 해놨는지, 학원 안에서 다들인사만 했다.

"시윤이 왔어?"
"네~ 왔어요."

나는 들고 온 캔버스를 고민수 선생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냐고 묻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고민수에게 말했다.

"파르지에가 또 그림 보냈는데 가질래요? 이젠 놓을 곳도 없는데..."
"어? 한번 봐도 돼?"
"준다니까 봐도 되는 무슨 말이야."
"그치..."

고민수 선생은 조심스럽게 뜯어보더니 눈을 반짝였다.

"...이거 진짜 가져도 되는 거야?"

파르지에의 습관이 그대로 들어가 있는 초상화.
파르지에가 거장인 데엔 이유가 있다는 듯이, 그의 복잡한감정이 그대로 녹아들어 있었다.
필요 없다고 생각한 부분에는 과감한 생략을 하는 것이 특징인 파르지에.
척 봐도 엄청난 가격대인 그림이지만 나는 으쓱였다.

"이제 그림 걸 곳 없다고 보내면 버린다고 했는데, 알아서 팔던지 아님 버리래요."
"....."
"근데 솔직하게 보면 아시겠지만, 차라리 다른 걸 버렸으면 버렸지 그건 좀 아깝거든요? 그리고 파르지에도 내가 이거 보면 못 버릴 거라고 생각한 거 같기도 하고요."

고민수 선생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림을 어떻게, 쓰레기통에 집어넣겠는가...

파르지에 본인이 찢어서, 쓰레기통에 넣는다고 해도 다른 사람이 이어붙일 작품이다.

"여기걸어놔요. 오픈하는 날 선물이라곤 제가 끄적인 그림이 다였는데."
"그 그림 저기에 있는데... 저것도 엄청 비싼 거... 모르지?"
"알아요~"

나는 내 고정석에 자리를 잡아두고, 자연스럽게 창고로 들어갔다.

오늘은 오랜만에 프리즈마 유성 연필을 집었다.
내가 고민 없이 내리긋는 선을 지켜보는 고민수 선생.
 그림 실력은, 이제 마음만 먹으면 사진처럼 찍어낼 수 있는 실력에 이르렀다.
프리즈마 유성 연필은 엄청나게 섬세한 작업까지 할 수 있어서, 요즘 푹 빠져있었다.
중앙부터 시작하는 그림에 집중하는 고민수 선생이 말했다.

"이젠 진짜 내가 알려줄게 없는데...?"
"그럼 재료  더 여유롭게 준비 좀 해요."
"응... 맞다, 혹시 수요일에 입시 그림 그리는 거 보여줄 수 있어?"
"굳이 저한테요? 저한테 배울 거 없어요, 선생님이 하는 게 낫지."
"그래도 어린 너한테 배우는 게 훨씬 충격이 크지 않을까?"
"한종예대 입시반이에요?
"응."

나는 으쓱이며, 고민수 선생에게 손을 내밀었다.

"응?"
"한 번도 해본 적 없으니까 미리 해봐야죠. 문제 줘 봐요."
"아 그렇구나! 잠깐만 작년 문제 줄게"

나는 고민수 선생이 건넨 종이를 봤다.


세상의 모든 모서리를 확대시키며 해가 진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저녁은 각각 그 결이 다르며, 어스름이 깃들기 시작하는 시간에 대한 상념이 묻어 있다.

[문제]

- 위의 문장에 드러난 시적 메타포를 참조하며, 빛과 공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시오.



"어이가 없네...  개 꼬아 놓은거 봐. 시적 메타포는 무슨... 그냥 빛이 주제가 되는 그림을 그려라, 그러면  되는 거예요?"
"으응?... 그치..."

자신의 모교가 꼬맹이에게 욕을 먹었음에도, 고민수 선생은 아무 말 하지 못했다.
나는 고민수 선생에게 따지며 주어진 재료인 물감을 가지고 대충 그려갔다.

"자유롭게 해야 하는 미술을 이렇게 틀에 박아버리니까 한국 미술에 미래가 없지... 시간 촉박한 거 봐... 찍어내라는 건데..."
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고민수 선생님을 쳐다봤고, 고민수 선생은 아무 말도 없었다.
"....."

나는 대충 밑그림을 그리고, 그림에 집중하며 붓으로 도화지에 푹푹 찍어내기 시작했다.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던 고민수 선생이 중얼거렸다.

"역시... 너한테 부탁하는 게 맞았어..."

나는 피식 웃으며 빠르게 그려 내려갔다.
완성된 것 같은 그림을 보며, 끄덕이는 고민수 선생.

"와... 완벽해 시윤아, 이건 무조건 합격이다..."

이미 다 그린  같지만 마지막으로 팔레트에 카드뮴 옐로를 푹 짰다.
너무나도 강렬한 노란색에 당황한 고민수 선생.

"너무... 원색 아니니...?"
"그림은 제 길을 가야죠."
"....."
"과거에 노란색을 사랑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나는 아무 말 없이 걱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보는 고민수 선생의 시선을 무시했다.

"고흐도 노란색을 사랑했고, 중국에서도 노란색은 황제의 색이라 칭한 것처럼..."

나는 완성된 그림에 거침없이 아무 색도 섞이지 않은 카드뮴옐로를 찍어 내려갔다.

"밀밭 위에 황금이 녹아내린 것 같다... 해와 달과 별, 등불, 밀밭 그리고 해바라기."

카드뮴 옐로, 이것이 완벽하게 보였던 그림을 망친다고 생각한 고민수는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의 발전된 그림 실력을 믿고,침을 삼키며 나의 말에 집중했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노란 베일에 감싸져있었다... 지붕의 기와, 가마, 방석, 옷, 안감, 허리띠, 커튼... 심지어 먹고 마시는 그릇, 잔까지..."

내가 읽었던 글귀를 말하면서 붓 칠을 할 때마다, 도화지 위 아직 마르지 않은 색이 얽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피식 웃으며, 마무리를 지었다.

"내, 모든 것은 노랑이었다."
"....."

나는 입을 벌리고 있는 고민수 선생을 뒤로하고, 오른쪽 밑에 카드뮴 옐로를 찍어, '452'를 새겨 넣었다.

"아, 아빠 왔네요. 먼저 가볼게요~"

고민수 선생은 내 말을 듣지 못했는지, 그림만 보고 있었다.




아빠는 혼자 나오는 나를 보더니, 궁금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고민수 선생님이 왜 인사 안 받아줬어?"
"음... 새로운 세상을 두 눈으로 확인해서?"
"...?"
"그런 게 있어."
"그런... 게 있구나..."





고민수 선생은 자신이 정성스럽게 포장한 그림을 안준태 교수에게 들고 갔다.

"교수님..."

고민수 선생의  표정, 그리고 '452'라고 적힌 액자를 확인했다.
안준태 교수는 말없이 고민수를 기다렸고, 고민수가 포장을 개봉하며 말했다.

"입시 준비하는 학생들 도와달라고, 시윤이에게 부탁했습니다. 이건 시윤이가 한 번 연습해본다고 그린 거고요..."

그림을 확인한 안준태 교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허어..."

안준태 교수는 그림을 바라보더니 이내 평온한 미소를 지었다.

"자네가 부럽구먼... 옆에서 지켜볼  있어서..."
"예..."










나는 언론에 노출이 되던 안 되던, 이미 슈퍼스타 반열에 올라서 결국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아마도 아빠가 활동하는 이상, 그리고 내가 그림을 그리는 이상,
나는 계속해서 이슈가 되겠지...

나는 교복을 입고, 소파에 누워 알파의 발바닥 젤리를 만지며,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오더니 내 모습을 보던 아빠.

"뭐."
"시윤아... 너무 빨리 크는 거 아니야...? 좀만 천천히 커주지..."
"뭐래."

내 외모는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았지만, 내 당돌한 행동이 어울릴 정도로 쑤욱 커버린 키에 아빠가 한숨을 쉬었다.
알파의 목을 간지럽히자, 기분이 좋다는 듯이 그르르릉 거리는 알파.
옆에서 베타가 자신도 만져달라고 다가오지만, 알파가 베타를 발로 밀었다.

"이에에에옹!!!"

싸우려는 고양이들에게 손가락으로 엉덩이를 푹푹 찌르니 움찔하며 얌전해졌다.

아빠가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알파와 베타를 보았다.

"배고픈가?"
"아빠 왁싱 받고 와, 냄새날 것 같아."
"...어?"

사람이라면 당연히 나는 겨드랑이 털.
다연이가 겨드랑이 털에 대한 고민을 할 때에, 나는 겨드랑이에선 털이 나지 않아 다연이의 부러움을 샀다.

내 키가 150이 넘어가면서부터 아빠와 따로 자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빠는 자기관리를 조금씩 덜하기 시작했다.

이제 40대를 바라보는 아빠지만, 외모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엄청난 동안이다.
5년 전보다 지금이 더 젊어 보일 정도.
그동안 트렌드에 맞게 거친 노래를    뒤로,
아빠는 내가 어느 정도 컸다고 생각했는지, 공연을 위해서 문신을 했다.
새하얀 피부에 박혀있는 문신들.
그중  얼굴 문신도 박혀있었다.

"나도 크면 문신이나 해볼까~?"
"안 돼."
"왜? 아빠는 하면서."

아빠는 자신의 문신을 수건으로 빠르게 가렸다.

"아빠는, 남자...잖아."
"그런  어딨어, 여자들도 하던데?"
"그래도 너는 아빠가 만들어준 몸이니까 안 돼."
"눼눼~ 만들어줘서 감솨합뉘뒈~"
"...너어."
"어차피 할 생각도 없었거든요~ 그치~ 알파야~ 베타야~"
""먕?""

나는  관리를 철저하게 해서 쩍쩍 갈라져 있는 아빠의 몸을 보며 말했다.

"배고파 밥 줘."
"응."

아빠는 평화로운 아침을 만끽하며 웃으면서 밥을 만들었다.

나도 나이가 차면서, 아빠에게 요리를 해주겠다고 한 적이 있다.
감동하며 내가 만든 요리를 먹어본 아빠가 웃으면서 끄덕이더니,
그 뒤로는 나에게 요리를 시키지 않았다.

 음식은 다연이네에서도 유명해진 계기가 있는데,
뭐든 잘하는 나에게 요리까지 기대한 다연이네가족.
다연이와 요리를 했다가, 그 뒤로 이진석 일가는 내 요리를 피했다.
심지어 다연이도 내가 만든 음식을 보면 식은땀을 흘렸다.

"아빠."
"응?"

나는 아빠에게 달콤하며,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 마스크 쓰면 사람들이 못 알아본다? 벗어도 모를 때 많고."

하지만  달콤한 목소리에, 아빠는  씹은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다.

"...그래서."
"PC방."
"안 돼."

내가 무엇을 원했는지 미리 예측이라도 했는지, 아빠는 1초도 되지 않는 시간에 답했고,
나는 단호하게 말하는 아빠에게 2번째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왜에에에엥!"
"....."

 비장의 무기로 인해 아빠는 결국, 하루 종일 나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나는 질 수 없다는 생각에 소파에서 일어난 뒤, 냉장고에 '터억' 하고 손을 얹었다.
 모습을 발견한 아빠가 움찔거렸다.

"너... 하지 마."

나는 아빠를 보며, 씩 웃고는 엉덩이를 튕기듯 뒤로 툭 빼자, 아빠가 심각하게 정색했다.

"하지 말라고 했어."
"PC방."

내가 트월킹 시전하기 직전의 자세를 하면서 동시에 엉덩이를 천천히 들었다가 내리자.
아빠 손 위에는 어느새 오랜만에 보는 먼지 쌓인 매가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방으로 도망치며 문을 잠갔다.

"열어."
"아니 자세 잡은 지 얼마나 됐다고 손에 그게 있어? 한,  백  숨겨둔 거 아냐? 대체 어디서 가져오는 거야. 일단 손에 들린 그거 내려놓지?"
"안 들었으니까 열어."

나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헿, 그거 내가 3살 때 사탕주면서 말했어도 안 믿었을  인정?"

덜컥덜컥 소리가 더욱 심해졌다.

"김시윤! 열라고 했어!"
"어어? 아빠, 타는 냄새가 나는데? 음식 탄다, 아빠! 빨리 봐야 할  같은데?!"
"너... 안 열면 더 혼난다."
"내가 나이가 14살인데 왜 매를 들어! 21세기 맞아? 그거 아동 폭행이야!"
"신고해보던가, 인맥으로 묻는다는  뭔지 보여줄게"
"와! 와!! 이 청렴한 대한민국에서 그런 말 함부로 해도 돼?!"
"열어 빨리."

때마침 초인종 소리가 들리고, 아빠는 한숨을 쉬며 매를 던져놓은 뒤, 인터폰을 확인했다.
나는아주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학교  준비를 끝낸 다연이가 우리 집에 왔고,
아빠는 다연이를 확인하고 빠르게 바지를 입었다.
내가 다연이에게 문을 열어주자, 더욱 빠르게 입는 아빠.

"왔어?"
"시유나~ 안녕~"
"나 아직 밥 안 먹었는데, 밥 먹었어?"

다연이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엄마랑 아빠한테 시윤이랑 같이 먹는다고 했어, 아저씨는?"
"아빠~ 다연이."

아빠는 나를 찌릿 쳐다보며, 다연이에게 인사했다.

"안녕~ 다연아, 밥 먹었어?"
"아뇨, 아저씨 집에서 먹는다고, 엄마한테 허락받았어요."
"그래?"

아빠는 음식 냄새를 맡더니 빠르게 주방으로 뛰어갔다.
나는 다연이에게 엄지를 내밀었다.

"...?"
"너 안 왔으면, 아빠한테 맞을 뻔했어."

맞는다는 소리에 깜짝 놀란 다연이가 나를 쳐다봤다.

"진짜?!"
"응, 우리 아빠 매 들고  때려."
"허걱... 내가 아빠한테 말해볼까?"

나는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다연이가 이렇게 나를 구하러 와줬는걸?"
"응!"

아빠는 반찬들을 꺼내며, 다연이를 중심으로 올려놓았다.

"다연아, 맛있게 먹어~"
"네!"

나는 다연이를 보는 아빠를 쳐다보았고, 아빠가 나를 힐끔 쳐다봤다.

"나는?"
"넌 그냥 밥이나 먹어."
"치... 다연이네 갈래, 딸 바꾸자 우리."
"오우~ 너무 좋은데?"

나는 이렇게 싸움을 해봐야 주변에 내 편이 없어 내가 진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빨리 백기를 들고, 말없이 밥을 먹었다.
그 모습을 보던 다연이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때리면 안 돼요..."
"...어?"
"시유니 때리지 마요..."

나는 밥을 먹다 말고 순수한 다연이의 저격에, 밥그릇에 코를 박고 혼자 큭큭거리고 있었다.
내 그런 모습을 아빠만 발견했다.

"아니야 다연아... 내가 시윤이를  때리니..."

다연이가 방에 놓여있는 회초리를 바라보았다.

"오해야 다연아, 저건 시윤이가 큰 잘못을 했을 때 드는 건데, 저걸 들만큼 시윤이가 오늘 잘못했어."
"무슨... 잘못했어요?"

아빠는 다연이에게 급하게 상황 설명을 했고, 다연이가 나를 바라봤다.

"엉덩이를 흔들어...? 어떻게 했길래?"
"다연이도 배울래? 남자들이 좋아해."

다연이는 관심 있는 눈으로 나를 쳐다봤고,
아빠는밥을 먹다가 경악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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