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화 〉평화로운 하루.
금요일 오후.
학교에 어느 정도 적응이 끝났고, 나는 김태오와 자리를 바꾼 뒤 다연이 옆에 앉아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우리는 다음 주까지 각자 들어갈 동아리를 정해야했다.
만약 정하지 않는다면, 동아리 시간에 자율학습으로 공부를 해야 했고.
나에게 자율학습이란 시간을 낭비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았다.
다연이는 동아리 중 가장 밑에 있는 동아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꼭 들어가고 싶어?"
"응!"
만화부...
다연이가 동아리들을 보며 가장 밑에 있는 만화부를 지목했다.
"그럼... 구경이라도 해볼까?"
"응!"
우리는 동아리실을 찾아서, 만화부라고 적힌 동아리실 앞에 섰다.
하필이면 3학년 교실이 있는 곳에 동아리실이 있었다.
만화부원들은 뭔 짓을 하는지, 동아리실이 엄청 더러웠다.
"".....""
"이래도 하고 싶어?"
"...아니..."
다연이는 급격하게 실망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웃으면서 귓속말을했다.
"물론, 우리가 동아리 먹으면 바꿀 수 있지."
나는 당당하게 걸어가서 문을 두들겼고, 동아리실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리고 열리는 문.
담배 냄새가 찐하게 올라온다.
내가 코를 막자, 얼떨떨한 표정으로 우리를 보는 3명.
모두 3학년으로 보였고, 2명은 숨쉬기도 힘겨워 보일 정도로 뚱뚱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멀쩡하게 생겼지만, 그를 중심으로 올라오는 냄새를 통해 담배를 태운 이가 누군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대체 뭐하는 애들일까 궁금해졌다.
"동아리 인원 안 구해요?"
나를 발견하고 눈이 커지는 사람들.
"가... 가인이다!"
나를 보고 저렇게 과장된 표정을 짓는 건 익숙한 일이다.
대체로 소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을 것 같은 2명과 담배를 피운 것으로 추정되는 한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들어올래?"
"5분 뒤에 들어갈 테니까, 거기 보이는 선풍기 틀고 창문도 좀 열죠?"
"아... 어, 잠깐만."
급격하게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던 다연이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가 꾸미면 된다니까?"
"응..."
5분이 지나고, 안으로 들어가자 비교적 냄새가 빠졌다.
우리를 보고 눈을 반짝이는 3명.
"담배는 왜 폈어요."
"만화 그리는데... 정보가 필요해서 실험해봤지..."
주변을 보니 노트북 3개가 있었고, 만화 캐릭터의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것도 말도 안 되는 비율의 여자 캐릭터가...
'시발 저런 몸매면 가슴 무게 때문에 허리 접히겄다.'
'아니지... 다연이가 크면 가능성 있을지도...?'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며, 마른 남자를 쳐다보았다.
"여기 다음 학기면 폐지되는 거죠? 인원 없어서."
"응... 유지하는데 최소 인원이 3명이거든."
문을 열어줬던 갈색 머리 남성은 동아리부장이었고, 뒤에 변태 같아 보이는 뚱뚱한 둘에 비하면 훨씬 나아보였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면 당연히 안 되겠지만, 관상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나와 다연이를 힐끔 쳐다보고는 과장되게 몸을 풀며 어필을 하는 듯한 둘.
얼굴을 붉히는 모습이 참...
"우리한테 여기 넘기시죠?"
"...비워줄까...?"
담배 냄새가 너무 심하게 나기에 지훈이를 시켜서 참교육을 해줘야 하나 싶었지만.
반응조차 한심한 이들을 보고 있자니, 안쓰럽기까지 했다.
나는 옆에 있던 의자에 앉으려다가, 생각 이상으로 더러워서 포기했다.
"포스터부터 좀 다 떼고..."
내가 손가락으로 가린 포스터의 캐릭터.
입고 있는 겉옷은, 옷의 기능을 하는 건지도 모르겠으며, 엄청나게 천박한 속옷을 입고 과한 몸매를 부각시키는 여자 캐릭터였다.
빤히 쳐다보고 있자 자기들도 부끄럽긴 한지, 얼굴이 붉어진 이들이 빠르게 포스터를 뗐다.
이런 정신 나간 놈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나봤더니, 생각보다 정상적이었다.
다연이가 노트북을 보더니 눈을 밝혔다.
"어! 저거 나도 보는 건데?"
웹툰을 그리는 이들이 다연이의 반응을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고마워."
동아리는 기본적인 장비를 제외하고, 활동비는 모두 직접 벌어야 했다.
상금을 타서 10% 수수료를 학생회에 내고, 나머지 돈으로 장비를 사는 방식으로 운영이 된다.
동아리에 필요한 모든 전자기기들은 학생회를 통해 스티커를 받아야 했다.
이래보여도 다들 금수저 집안이기에, 장비를 들여놓으면 끝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다연이가 웹툰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인기 많지 않아요? 조회수 비슷한 작가님이 돈 엄청 많이 번다고... 들었는데..."
나는 눈치를 보며 입을 여는 부장의 말을 들었다.
동아리의 활동으로 번 돈은 10%를 제외하고 동아리가 갖지만.
만화부 동아리가 벌어들이는 돈은, 너무 큰금액이라고 5%만 동아리에들어온다고 했다.
나는 아주 재밌는 소리에, 부장이랑 계약서를 썼다.
우리 4명이 동아리에 들어가서 기존 규정대로 90%를 받아내면, 50%를 동아리에 남겨두고 40%를 기존 멤버 3명에서 가져가라는 내용으로.
어떻게 보면 날로 먹는 것 같겠지만, 5%를 받던 이들은 온전히 8배를 더 받게 되는 것이다.
부장은내가 만든 계약서에 사인을 했고.
나는 동아리실 청소를 시작하라고 말한 뒤, 고민 없이 학생회로 달려갔다.
나는 고민 없이 학생회의 입구를 발로 찼다.
콰앙!
""...?""
아주 지랄이었다. 학생회실에 사치란 사치는 다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회장 옆에 거만하게 앉아있는 남자.
나는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만화부 수수료 뱉어내시죠?"
표정이 썩어 들어가던 이들이었지만,
내 뒤로 등장한 박지훈으로 인해 거만하게 앉았던 남자 꼬맹이가 움찔했다.
박지훈과 연이 닿아있는 듯 했다.
하지만, 나머지는 당돌함을 넘어, 싸가지없는 내 모습에 어이없어하고 있었고.
나는 그 모습에 생긋 웃으며 다가갔다.
"지금까지 2년간 먹은 돈 1억 2,840만 원 뱉어요. 일 크게 만들기 싫으면."
5%를 제외한 약 1억 3천만...
중학생 3명이 2년간 벌어들인 수입은 내가 생각한것보다 큰 금액이었다.
"".....""
"싫으면 싫다고 빨리 말해주세요, 혹시 모를 상황에 대한 절차는 이미 끝내놨으니까. 우리 아빠는 누군지 알겠고. 우리 다연이네 아저씨가 한성 이진석이거든요."
상황 파악을 끝낸 이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하기에 나는 끄덕이며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 한성 회계사 빌릴 수 있어요?"
"자... 잠깐!!!"
"어? 잠시만요, 아직 할 말 있는 거 같은데... 나중에 전화할게요."
물론 나는 이진석에게 전화를 건 적이 없다.
회장은 거만하게 앉아있던 남자의 눈치를 봤고, 거만하게 앉아있던 남자도 조용하게 말했다.
"나보고 어쩌라고."
잠시 상황을 정리한, 회장의 입에서 나온 말은...
지금 당장 줄 수 있는 돈이 없다고 말했다.
"그으래요~? 그럼 어디에 썼는지 기록 좀 보죠?"
"외부인한테... 함부로 보여주면 안 돼."
"그럼 뭐 나도 아저씨한테 전화해야지 뭐, 한성의 회계팀 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네."
결국 장부를받아내고, 나는 한 번에 쭉 훑었다.
"아핳? 뭘 어떻게 하면 학교에서 밥 먹는데 한 달에 941만 8,200원을 박았을까?"
나는 읽는 것과 동시에 계산을 끝내서 하나하나 설명했고, 학생회원들은 기겁했다.
무엇보다 이 장부, 정말 어이가 없었다.
길가는 사람에게 쥐어줘도 알 수 있을 정도로 허술했고, 비리의 끝을 달리고 있었다.
나는 장부를 태오에게 넘기며 말했다.
"2주 줄게요, 후회하기 싫으면 걸려도 안전한 항목들 제외하고 처먹은 거 다 뱉어요. 그 뒤는 알죠?"
그리고 장부를 보며 말했다.
"먼저 지금 있는 거라도 뱉어요. 에어컨, 공기청정기, 냉장고 좋아 보이네, 중고로 감가상각해서 현재 가치 판단해가지고 나중에 보낼게요."
나는 지훈이와 태오에게 침대를 하나씩 들라고 명령했고.
둘은 옆에 보이는 간이침대 2개를 들었다.
"이건 이자로 치고. 2주 뒤에 다시 봐요~"
바람같이 들어와서, 바람같이 사라지자 그제서야 장부가 나와 함께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분주해졌다.
학생회 약탈을 한 뒤, 우리는 물건을 들고 동아리실로 가고 있었다.
"I'm just a regular everyday normal motherfucker~(난 그냥 평범한 개새끼~)"
"".....""
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다보니 어느새 동아리실에 도착했다.
청소를 하고 있는 이들, 우리가 들고 있는 물건들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약탈한 물건들을 내려놓은 우리는 나를 필두로 정리하기 시작했고,
박지훈과 김태오는 에어컨과, 냉장고를 가지러, 다시 회장실로 향했다.
생각보다 넓은 동아리실에는 잡다한 책도 가득했다. 그런데...
"와... 씨발!!! 휴지...와... 존나 더럽네... 치워."
"미...미안."
"아... 왜 여기에서 딸을 치냐고 씨바알!!! 존나 더러운 새끼들... 소중한 거고나발이고 전부 밖으로 빼요. 후회하기 싫으면."
나에게 욕을 먹고 있지만, 얼굴을 붉히며 좋아하는 2명...
포상이라고 중얼거리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중 한 명은 부장이었다.
'와... 인간 폐기물 새끼들, 내가 이래서 관상을 본다니까? 씨발럼들.'
나는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가 있는데 역겨운 냄새가 난다던가, 저런 휴지조각 보인다... 그러면 고민 없이 빨간 줄 새기게 해줄게요."
그제서야 정신이 든 이들이, 급하게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대청소를 한 뒤, 하교 시간이 다가와서 내 눈치를 보는 선배들에게 말했다.
"종례 끝나고 집합해요. 튀면 진짜 뒤져."
""네!""
동아리실 청소는 해가 지고 나서야 끝이 났고, 이후에도 선배들은 점심시간마다 청소하기를 반복했다.
1주일이 지나고 깔끔해졌지만, 벽지가 마음에 안 들었다.
나는 동아리 전용통장을 확인하고, 4,000만 원이 들어온 것을 확인했다.
벽지부터 접착제까지 전부 구매한 뒤에 동아리실을 꾸미기 시작했고, 기존에 있던 책상은 전부 버리고 새 걸로 구매했다.
그리고 시몽스 침대와 OLED TV, 안마기, 신상 노트북 4개를 더 구입하자 돈이 전부 떨어졌다.
나는 그대로 다시 학생회로 달려가서 회장의 목을 졸랐고, 곧바로 돈이 나왔다.
테이블 PC까지 2개 더 구입한 뒤, 선배들에게 말했다.
"쓰고 계신 것들 전부 가져가세요."
내가 받아낼 8,840만 원을 제외한 한 달 정산금이 들어오자 통장에 1,500만 원이 찍혔다.
처음 말했던 대로, 40%를 주려고 했지만 받지 않는 이들.
"그거... 너희 써! 우리는 웹툰 가져가는 걸로 만족해!"
'고맙다 호구들아 거절하진 않으마.'
아직 이들이 졸업하기까지 1년이 남은 것을 떠올리면 개이득이다.
나는 더러워진 문짝도 갈아버리고, 카드키와 비밀번호로 바꾸었다.
모두 학생회 스티커가 박힌 채로.
전부 갈아 끼운 만화부는 이제서야 사람 사는 곳 같았고, 우리는 천장에 달린 커튼을 이용해서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더운 날씨 때문에 에어컨과 공기청정기를 동시에 돌리고, 다연이는 태블릿 사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었다.
박지훈은 자고 있었고, 김태오는 공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이제야 아지트 같았다.
나는 돈을 공짜로 쓰기엔 미안해서, 이들이 그리는 만화에 배경을 그려줬다.
보통은 사진을 대고 그리지만, 지금의 나에겐 어림없는 소리였다.
엄청난 속도로 만화를 찍어내면서, 다시 학생회 임원들의 목을 조르자, 학생회는 다른 동아리 부서들을 닦달하다 못해 개인 사비까지 들인 듯했다.
그럼에도 8,840만 원은 만들기 힘들었는지, 잘못했다고 싹싹 빌었다.
이것이 한성의 힘...
어느 정도 뽑아낸 뒤 남은 4,000만 원을 다달이 이자를 붙여서 갚으라고 했고.
그 대신 학생회에 있는 필요해 보이는 사치품들을 몽땅 동아리실로 가져왔다.
동아리실 안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얼음 분쇄기에서 스무디를 만들어 먹으니...
이것이 극락이니라.
전날부터 심상치 않더니 결국 그날이 왔다.
아빠는 내 주기를 알고 있었기에 슬슬 눈치를 봤고.
2일차... 갑자기 누군가 배에 어퍼컷을 꽂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내가 창백해지자 아빠가 걱정했다.
"괜찮니...?"
"저리 가, 아파."
"학교는... 쉴까?"
"가야지..."
멀쩡하다가 가끔씩 오는 고통이스트레스다.
무엇보다도 엄청 찝찝하다.
안 그래도 성격이 더러운 내가 자신의 행동에 기분이라도 상할까 봐, 아빠는 안절부절못했다.
나는 아빠의 차를 타고 학교로 갔다.
조수석에 앉아서 밖을 바라보는데, 날씨가 흐릿하더니 결국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
오늘따라 심각하게 내리는 비, 아빠는 내 눈치를 급격하게 보기 시작했다.
"아하하, 아빠가 학교에 말해줄...게 역시 쉬는..."
"됐어, 가."
"응..."
과거에는 학창시절에 대한 경험도 없고 많이 못 배워서 그런 걸까, 어떤 일이 있어도 학교는 빠지기가 싫었다.
우산을 들고, 나를 기다리는 김태오와 다연이.
내가 컨디션이 좋지않음을 알고 있는 다연이가 따뜻한 음료수를 건넸다.
"하아... 하필이면 날도 습하게 덥네..."
습기 가득한 날씨와 더위... 극한의 찝찝함을 느끼며, 반에 도착에서 자리에 앉았다.
옆에서 나를 툭 치는 박지훈.
"향수 뿌렸어?"
이 시발 새끼는 평소엔 건들지도 않더니, 내가 힘든 날을 알고 있는 거 아닌가 싶었다.
"건들지 마라... 아프다."
"아...?"
무슨 소리인지 눈치 챈 박지훈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엎친 데 덮친 격이며 설상가상이라고, 하필이면 또 체육시간이다.
"누워 있겠다고 전해줘."
"응..."
"태오야, 다연이 잘 지키고."
"...당연하다."
"새끼, 말만... 다른 사람이 다연이 눈도 못 마주치게 해."
"....."
나는 동아리실로 갈까 하다가, 박지훈도 없는데 3학년 교실에 있는 동아리실에 가는 동안, 피곤한 일이 생길 거 같아 아무도 없는 반에서 진통제를 먹고 편안하게 엎드렸다.
그리고... 시윤이가 잠든 반에 3명의 남학생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