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1화 〉평화로운 하루. (71/99)



〈 71화 〉평화로운 하루.

고통의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을까, 누군가 날 흔든다.
감기는 눈으로 나를 깨운 이를 쳐다봤다.
그리고 나는 찰칵 소리와 함께 나를 찍고 있는 이들을 보았다.

"...?"
"너가 시윤이지?"

이름표를 보니 나보다 한살이 많은 남학생들.
내가 말없이 쳐다보자 한 남학생이 말했다.

"너 등교할 때 봤는데, 엄청 이쁘더라 나랑 사귀자."

초등학교 때는 나에게 '고백하는' 꼬맹이가 많았다면, 중학생이 되니 '질척거리는' 꼬맹이가 많아졌다.

"하아... 가세요."

갑자기 얼굴을 내밀며, 정색하는 꼬맹이.
나는 지훈이랑 김태오가 생각이 났다.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더니...

"나랑 사귀자고..."

나는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쳤다.

"꺼지라고 새끼야..."

내가 자기 위해서 다시 책상에 얼굴을 가져다 대자,  머리카락을 꽈악 쥐더니, 머리를 들어 올렸다.

투욱.

나는 파리를 잡듯 꼬맹이의 턱을 툭 쳤고, 내 머리카락을 쥔 손의 힘이 풀린 것을 느끼고 다시 엎드렸다.
내 머리가 책상에 닿는 것과 같은 속도로 천천히 쓰러지는 남자아이.
나는  그래도 찝찝한데, 움직이고 싶지 않아서 고개만 돌렸다.

"친구 데리고 가... 진짜 뒤지기 싫으면..."

콰앙!

박지훈의 책상을 발로 강하게 차며, 옆에 있던 덩치 큰 꼬맹이가 나에게 다가왔다.

"하... 어이가 없네 얼굴 좀 이쁘다고 뵈는 게 없..."

드르륵.

그때 내가 걱정됐는지, 체육수업을 땡땡이치며 먹을 것을 사  박지훈이 쓰러진 자신의 책상과  모습을 발견했다.
거의 약에 필요했던 개똥이 찾아온 격, 나는 오래간만에 지훈이 반가웠다.

"뭐야! 무슨 일이야?"
"나 쉬려는데쟤들이 사귀자고, 머리카락 잡아당기더라."

얼굴에 핏줄이 돋은 듯한 박지훈.
아직도 나를 형님이라 생각하는 지훈이는, 부하였던 시절처럼  편의를 꽤나 봐준다.

 뒤로 꼬맹이들은 지옥을 보았다.
그래도, 지훈이에게 반항을 하려는지 덤벼들었지만, 그대로 각자 3번씩은 더 기절했다.
저것도 충분히 어르고 달래면서 패는 거다.

그리고 하필이면 지나가는 학생부 선생이 기절한 애들을 발견했다.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던 선생이, 우리에게 상황 설명을 요구하려던 순간, 누워있는 3명의 이름표가 하얀색인 걸 발견했다.

"왜, 2학년이... 1학년 반에..."

잠에서 깨어난 꼬맹이들.
지훈이 뭐라고 하려는 찰나, 내가 나서서 말했다.

"제가요... 그날이라서 아파서 누워있는데... 선배님들이 오더니... 흐윽... 끅."

나는  번째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선즙 필승'

하지만 비장의 카드는 잘 나오지 않는 법이기에, 팔로 눈을 가리며 즙을 짜내는 척을 했다.
아빠라면 걸리지 않았겠지만... 당황하는 선생.
절묘하게 가렸기에 진짜로 울고 있는 줄  것이다.

"자고 있는 제 사진을 찍고... 머리카락 쥐어 잡으면서... 사귀자고... 협박했어요... 그때 지훈이가 안 왔으면..."

방금 일어난 양아치 꼬맹이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지훈이의 눈빛으로 인해, 겁을 먹고 있었다.
학생부 선생이 방금 일어난 꼬맹이들에게 말했다.

"시윤이가 한 말이 맞아?"
"...네?"
"핸드폰 내놔, 그리고 시윤이 머리카락 잡고 협박한 게 맞냐고."

이들은 학생부 선생의 말을 듣다가 지훈과 눈을 마주쳤다.
당황하며 핸드폰을 내밀자, 선생은 자고 있는 내 사진을 확인했다.

"너네... 쉽게 안 끝날 줄 알아라..."

이미 학교 안에서도 문제아였는지, 선생이 꼬맹이들과 지훈이만을 데리고 나가려고 하자,
지훈이 자신의 엎어진 책상을 돌려놓고 나에게 말했다.

"쉬고 있어..."
"그래."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선생이 나에게 말했다.

"몸도  좋은데 쉬고 있으렴..."
"네..."

지훈이의 반응과 내 반응으로 인해 완벽한 피해자가 된 나는, 지훈이 가져온 봉투를 봤다.
새끼 그래도 의리는 있어서, 이런  잘 챙겨준다.
나는 지훈이 가져온 딸기 우유를 보고 피식 웃은 뒤 의자에 앉아서 엎드렸다.
배 아픈데 하필이면 존나 차가운 것들이었다.
십새끼...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바빴던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나는 가방 속에 있는 생리대 봉투를 뜯고 있었다.
옆에서 부스럭거리니 박지훈이 궁금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먹을 거야? 나도 줘."
"병신 새끼... 나눠 먹을래? 새꺄?"

내가  장 뽑아서 박지훈에게 던지니, 그것을확인한 김태오와 다연이가 경악했다.

"너 새끼 쉬는 시간에 그거 차고 와라."

박지훈도 뒤늦게 무엇인지 확인하고 경악했다.

"어우... 미안..."

나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
"너한테 던진 거 갈아 끼우러 간다. 왜."
"".....""

말없이 다연이만 나를 따라왔다.
다연이가 나와 속도를 맞춰서 걷고 있었다.

"다연아 요즘 왜 이렇게 공부만 해?"
"음... 시유니랑 같은 대학교 가려고?"

나는 의외의 답변에 고개를 갸웃했다.

"나랑 같은 대학교 가는데, 공부가 필요해? 그냥 내가 다연이 가는 곳 가면되지."
"아니야~ 그래도 좋은 곳 가야지!"
"그럼 김태오랑 지훈이도 못 오는데?"
"아!?"

나는 피식 웃으며, 다연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기다려 빨리 갔다 올게."
"천천히 다녀와~"

나는 화장실에 다녀온 뒤, 기다리던 다연이와 같이 반으로 향했다.
내가 던진 생리대를 만지작거리는 지훈과,  모습에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는 김태오...
그리고 다연이의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저 병신새끼는 만지작거리다 냄새를 맡으려고 했다.
나는 그대로 달려나가서 하이킥을 꽂았고,
나를 발견하고 경악하며 뒤로 피하려던 지훈은 의자에 걸쳐 피하지 못했고,  하이킥이턱에 걸리며 그대로 잠을 잤다.
진짜로 기절한 지훈이를 보고 태오가 움찔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저 병신은  병신 짓을 하더라 그치?"
"응... 저질..."

너무나도자연스러운 다연이의 모습에 김태오가 눈치를 봤다.
나는  처져있던 지훈이 옆, 내 자리에 앉았고.
잠시 마취상태에서 풀린 지훈이, 깜짝 놀라며 일어나자마자 가드를 올리고 자세를 잡았다.

"뭐하냐."
"나 방금 조상님 보고 왔는데...? ... 시발! 뇌세포 파괴된다고!"
"변태 새끼야 거기에 코는 왜 박으려고 하냐? 그냥 코 박고 뒤져라 씹새끼."
".....궁금하잖아."
"핥을 기세던데? 미친새끼, 궁금하면 차고 오라니까? 쉬림프 새끼야. 어차피 없어서 착용감 좋을 듯."
"야!!!"

나는 박지훈을 무시한 채로 아침에 박지훈이 사줬던 뜨거운 유자차를 꺼냈다.
박지훈에게 건네자, 화를 내면서도 병뚜껑을 따주는 지훈.

"너  편하다?"
"고맙다가... 먼저 아니야?"
"뭐래."

수업이 시작되고, 연속 2시간 수업에 집중도가 흐려져 갈 때 옆을 보니, 김태오는 자고 있었다.
그리고 다연이는 웃으면서 힐끔힐끔 쳐다보며 수업을 들었다.
그리고 내 옆에 박지훈은 진즉 기절해있었다.
 김태오는 잠든 것처럼 보이고, 이 새끼는 기절한 것처럼 보일까...
잠시 그 차이가 궁금해서 고민하는 와중 옆에서 뿌앙! 소리가 들렸다.

"".....""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는데, 진짜 장난 안치고 내 얼굴이  화끈해졌다.

뿌앙! 뿌앙!

 미친놈이항문에 구멍이 뚫렸나, 하늘을날 기세로 엉덩이가 들썩거린다.
다연이도 경악하며 나를 보고 있었고,
내 얼굴이 다 화끈해져서 박지훈의 머리를 들고 있던 책으로 내리치자, 빡! 소리와 함께 깜짝 놀라며 일어나는 지훈.
"와... 나 알 낳는 꿈꿨어..."

역시, 병신 새끼가 분명했다.

"다른 건 안 낳았냐? 이 미친넘아? 냄새 쳐 돌았네."

이미 웃음소리로 가득해진 교실 안 때문에, 내가 욕하는 소리는 아무도 듣지 못했고.
살면서 처음으로 맡는 압도적인 냄새에 창문을 열었다.

박지훈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역시나 창피한 것을 몰랐다.
아니, '쉬림프'를 가지고 있기에 창피함은 알겠지만, 그래도 그 특유의 당당함이남아있다.
병신 같은 박지훈이지만, 그래도 의리 하나는 알아주니까 지금  옆에 딱 붙어있는 거겠지...
계속 도와주려고 하는 모습은 고맙긴 한데, 얼굴을 보고 있으면 역함이 올라오는 건... 역시 어쩔  없다.





고통의 시간이 끝나자, 하늘이 이렇게 맑을  없었다.
주말이 되고, 내려오는 앞머리를 머리띠로 넘긴 뒤 뒹굴거리고 있으니 문자가 왔다.

(다연) - 시윤아 뭐해?
(나) - 뒹굴어.
(다연) - 쇼핑 가자! 내가 사줄게!
(나) - 그럴까?
(다연) - 응! 2시간 뒤에 봐!
(나) - 알겠어~

다연이와 약속도 잡았겠다.
나는 머리도 감을 겸 샤워실로 향했다.
갑자기 일어나자 쳐다보는 아빠.

"어디 가?"
"다연이가 쇼핑 가자는데?"
"아빠도 같이 갈까?"
"뭐래."
"야, 아빠는 걱정돼서 하는 말이지."
"솔직히 다연이랑 같이 다니는 게 아빠보다 안전하거든?"
"하긴..."

나는 기지개를 펴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시유나~"

나를 보자마자 안기려는 다연이.
다연이의 말로 인해서 우리는 각자 스타일대로 입었고,   마스크를 착용했다.
나에게 안기는 다연이를 한번 꾹 안아주고는 같이 밖으로 향했다.

아파트 입구로 내려가자 정장을 입고 있는 김태오가 기다리고 있었다.
옷걸이가 좋아서 그런지 수트빨이 상당하다.
다연이는 아닌척하면서 힐끔힐끔 김태오를 쳐다봤다.
 꼬맹이도 주말부터 참 고생이라는 생각을 하며, 박지훈에게 전화했다.
다연이가 누구인지 궁금해 하길래, 스피커폰으로 바꾸었다.

-"어어"
"어디냐?"
-"한강에서 뛰는 중."
"다리에서는 안 뛰어 내리냐?"
-"아침부터 시비여, 뭔데?"
"옷 사줄게 나와."
-"와,  사주는 누나 그런 콘셉트임?"
"꺼져 그냥."
-"나 지금 땀 냄새 오져 기다려."
"내가 널 왜 기다리냐, 위치 찍어줄 테니까 씻고 와."

나는 자연스럽게 전화를 끄고 주머니에 넣었다.
보통 차를 타고 이동하지만, 나와 다연이는 걷는 걸 좋아해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일반인처럼 입고 있는 경호원도 멀리서 우리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고, 뒤에 있는 김태오도 이 주변을 보면서 따라왔다.

영화를 보면, 고위 관직을 보호하는 경호원들이 나오는데.
과하다는 댓글이 많았지만,  모습을 보면 영화는 약과였다.

"고양이다!"
"우리 알파가 이겨."
"아...?"

체급 차이부터, 저 길고양이보다 알파가 3배 이상 크다.

"요즘 알파랑 베타랑 엄청 싸워."
"진짜?왜?"
"사나운 건 알파인데, 베타가 더 세거든. 그래서 알파가 베타 건드려서 싸워."
"나도 고양이... 키우고 싶다~"
"오늘 우리 집에서 잘래?"

나는 아무 생각도 없이 말했지만 다연이는  치의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응!"
"그럼 다연이가 오늘 쏘는 거야?"
"당연하지!"

다연이는 나에게 자신의 카드를 꺼내서 보여줬다.
이진석이 나에게 줬던 카드와 다르게 금테까지 두르고 있는 카드.
나와 같은 한국의 블랙카드다.

"오오오오...."
"내가 시유니 사주고 싶다고 조르니까 아빠가 줬어.'

한참을 걷자, 점점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마침 점심시간이기도 해서 다연이에게 말을 꺼냈다.

"밥부터 먹을까?"
"응!"


돈가스 집으로 들어가서 입구에 있는키오스크로 주문을 하려는데, 박지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모둠에다가 히레 가스 추가."

그리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박지훈.
이 족같은 새끼는 점점 내 한계를 알고 싶은지, 자꾸 나를 시험한다.

"....."

내 표정이 썩어 들어가자, 다연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아니야."

나는 박지훈이 주문한 것까지 클릭했다.
자연스레 다연이가 이진석에게 받은 카드로 긁었다.
미소를 띠는 것이 재밌나 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이 나왔고, 어느새 박지훈이 들어오며 인사했다.

"다연아 안녕~"
"응."

그리고 정장을 입고 있는 김태오를 보더니 웃는다.

"이야~ 때깔 보소? 그거 입고 돈가스 썰러 왔냨?"

나는 박지훈의 뒤통수를 때리고, 밥을 가리켰다.

"왜 때려!"
"용돈도 못 받으면서, 사줄  조용히 먹어라..."
"넵."

박지훈은 돈가스를 입에 쑤셔 넣기 시작했다.
저렇게 먹다가는 바삭한 튀김옷으로 인해, 목이 다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한참을 먹다가 나에게두 손을 내미는 지훈.
내가 박지훈을 쳐다보자 머리를 숙였다.
박지훈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는 나는, 지갑을 꺼내서 카드를 넘겼다.
나에게카드를 받자마자 키오스크로 달려가서, 고민 없이 버튼을 투투투툭 누르더니 카드를 긁고는 돌려줬다.
그리고 박지훈의 먹방이 시작됐다.

"와... 엄청 먹는다..."

김태오도 박지훈의 먹는 모습에 질린 듯한 표정이었고, 박지훈 이 새끼는 먹다 말고 내 그릇에 있는 걸 탐했다.

"진짜로, 계속 그러면 먹다가 뒤지게 해줄게..."
"옙."

많이 먹어서 죽는다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나한테 죽는다는 의미를 정확하게 인지한 박지훈이 자신이 시킨 음식을 먹었다.
다연이와 내가 웃으면서 떠들고 있는 동안, 박지훈은 다 먹었는지 자신의 배를 만졌다.

요즘 내가 격식 있게 살아와서 그런가...
아니면 박지훈이 과한 걸까...
나를 쳐다보던 박지훈이 무언가 올라오는 제스처를 취하더니 트림했다.

"꺽."

한동안 잊히지 않을 강렬한 냄새가 올라왔고.
나는 저 병신새끼의 목구멍을 막아주자는 마인드로 돈가스를 써는 용도의 칼을 쥐었고, 우당탕 소리가 나며 박지훈이 무릎을 꿇었다.

"미안...  참았어."

모든 시선이 집중돼서 더 창피하다.
나는 한숨을 쉬고는 급하게일행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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