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평화로운 하루.
카페에서 다연이랑 떠들면서 요구르트 스무디와 초코 타르트를 먹고 있었고,
박지훈은 옆에서 식사를 쳐하고 있었다.
먹을 거란 먹을 거는 전부 주문해서 먹고 있는 모습을 보니 참...
미안하지만, 솔직히 같이 다니기 민망하다.
다연이도 한동안 지훈이 먹는 것을 지켜보더니, 다시 나와 떠들기 시작했다.
그때, 멀리서 깔끔한 슈트를 입은 누군가 다가왔고, 김태오가 길을 막았다.
"아, 난 이런 사람인데..."
자신의 명함을주는 남성이 김태오를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어디연습생은... 아닌 거 같네... 이런 거에 관심 있어 보이지도 않고..."
명함을 보니 JSM 엔터테인먼트가 적혀있다.
그리고 나를 발견한남성.
"아?! 시윤이구나? 이런 곳에서 보네... 아하하..."
가끔, 장성만 삼촌과 같이 있을 때, 봤던 얼굴이다.
"안녕하세요."
"어? 알아보는거니? 영광이네 하하... 그럼 가볼게 재밌게 놀아~"
"네, 안녕히 가세요~"
다연이가 명함을 보며 해맑게 웃었다.
나는 그런다연이를 보며, 음료를 쪽 빨고 말했다.
"내 얼굴은 못 본 거 같던데 이야... 우리 다연이 스카우트 당할 뻔했어."
"아니야 아... 태오... 보고 온 걸 수도..."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다연이한테 명함을 줬잖아~"
"으응..."
내 말에 기분이 좋아진 다연이가 얼굴을 붉히며 명함을 지갑에 넣었다.
다연이가 백화점에 빨리 가고 싶어 하기에, 우리는 백화점으로 향했다.
누가 우리를 보고 14살이라 생각할까.
백화점 안에서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다 주세요'를 직접 보여주고 있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만, 이미 나와 다연이, 태오, 지훈이가 구매한 옷이 30벌이 넘어갔다.
모두 그 자리에서 각자 집으로 보내주는 배송신청서를 작성하면서 계속 움직였다.
역시... 한성의 딸...평소엔 순수해 보이는 내 새끼 다연이지만.
마음에 드는 옷이 있거나, 우리가 만족하는 옷이 있으면, 가격도 보지 않고 긁는 모습은 참... 재벌다웠다.
나도 부족함 없이 구매를 할 수는 있지만, 습관적으로 가격을 본다.
옷 하나에 100만이 넘어가면 눈두덩이가 나도 모르게 파르르 떨리기도 했다.
어느새, 우리를 따라다니며 자연스럽게 다연이 옆에 붙어있는 직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다연이를 알아보고 에스코트하고 있었다.
다연이와 같이 나는 패션쇼에 온 것처럼 이것저것 입어봤고, 박지훈과 태오는 기계처럼 박수를 90bpm정도로 치고 있었다.
점점 다연이의 표정이 안 좋아졌고, 다시 옷을 갈아입으러 들어갔을 때 나직하게 말했다.
"리액션 똑바로 해라..."
"".....""
그리고 다연이가 나오자 환호성과 함께 눈을 반짝이며 물개박수를 치는 이들.
다연이의 입에 미소가 살짝 걸렸다.
이번엔 내가 옷을 갈아입으며 패션쇼를 시작했고, 박지훈은 이때다 싶었는지 야유를 보냈다.
"우우~"
나는 피식 웃으며 다시 들어가서 미리 생각해뒀던 옷을 입기 시작했다.
과거 재형이 좋아했던 스타일...
시간이오래 걸리자 다연이가 살짝 열어보며 들어왔다.
"시유나 왜 이렇... 헉! 안 돼!!!"
다연이가 급하게 들어오며 나를 막았다.
나는 검은색 하이힐과 망사스타킹을 신고, 가터벨트를 맨 채로 팬티가 겨우 가려질 정도의 짧은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비율을 자랑하듯 예쁘게 쭈욱 뻗은 다리가 강조되었다.
"미쳤어!!?"
다연이가 내 등을 팡팡 때리기에, 어쩔 수 없이 하나씩 벗기 시작했다.
아직 상의를 안 입어서, 다연이의 손길에 등이 따가웠다.
"그래도 사야 돼."
"왜!?"
"아빠한테 보여줘야지~"
".....그러다 시유니 또 매 맞아..."
옆에 있는 다른 옷으로 갈아입자 다연이가 밖으로 나갔고, 나도 같이 밖으로 나갔다.
내가 나올 때마다 김태오가 반짝이는 눈으로 힐끔힐끔 쳐다봤고, 박지훈도 말이 없어졌다.
쇼핑을 끝내고 우리는 가장 마음에 드는 옷으로 갈아입은 뒤 움직였고, 박지훈이 나직하게 말했다.
"벌써... 4시간 돌아다녔는데..."
다연이가 커다란 눈을 작게 뜨고 박지훈을 쳐다봤다.
"그래서?"
"아니, 뭐... 그렇다고."
나는 다연이의 허리를 끌어당기며, 귓속말을했다.
"노래방 갈까?"
"응!"
한참 쇼핑을 해서 그런가, 배고픔이 몰려왔고 건물을 나와 길가로 나서자 눈앞에 포장마차가 보였다.
"떡볶이 먹을래?"
나는 다연이에게 물어보았지만.
옆에 있던 박지훈이 격하게 끄덕인다.
"너는 그만 좀 먹을래...?"
"어묵, 어묵."
"...병신새끼."
결국 포장마차에서 입안에 어묵만 40개를 쑤셔 넣는 지훈.
오늘 사장님이 팔아야 할 어묵을, 저 새끼가 다 처먹은 게 분명하다.
그러든 말든 다연이가 사준 옷으로 부티나는 모습으로 변한 양아치는 개걸스럽게 먹고 있었다.
나도 지훈이처럼 어묵 파여서, 뜨거운 국물과 함께 어묵을 먹고 있으니, 한곳이 수북해졌다.
어느새 김태오도 다 먹었는지 이쑤시개를 내려놨고, 박지훈은 그 모습을 보더니 자신의 입에 전부 넣었다.
"압깝껩 납깁냐?"
"존나 더러워 병신아, 먹고 나서 말을 하던가 그냥 닥치고 처먹던가..."
나를 보며 입을 벌리는 박지훈...
"냡냡"
나는 순간 박지훈의 안면에 어묵꼬치를 꽂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무시하며 계산을 한 뒤 다연이를 데리고 빠져나왔다.
나와 다연이는 통금 때문에 7시가 되기 전에 집을 가야했고, 노래방 앞에서 김태오가 전화를 하더니 차를 미리 불러놨다.
다연이는 노래를 부르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내가 노래하는 걸 듣고 싶어 한다.
노래방 검색창에 시윤을 치면 33곡이 나온다.
대부분 아빠와 같이 부른 거지만, 나 혼자서 부른 것도 5곡이나 된다.
한참을 노래를 부르니 내 노래를 처음 들어봤는지, 김태오는 눈을 반짝였다.
박지훈은 나에게 마이크를 건네받고는 바로 힙합을 불렀고,
더럽게 못했다.
나의 아빠, 김지호의 랩을 들어서 귀가 높아진 게 아니냐 할 수 있지만.
박지훈의 랩은 자타공인 음치, 박치였기에 우리는 깔깔 웃었다.
이어서 김태오는 발라드를 했는데, 더 못했다.
그리고 다연이의 선곡은 내 노래였다.
내가 아빠 파트를 맡아 같이 노래를 불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 후에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나는 신발을 대충 벗어던지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나왔어."
"왔어? 밥은?"
"먹었어."
"그래? 신발 똑바로 정리하고 와."
아빠는 보지도 않고 말을 한다.
내가 어떻게 벗어놨을 줄 알고, 보지도 않고 말하는 아빠한테 서운하고 괘씸했지만,
아빠의 예상대로 대충 벗었기에 조용히 신발을 정리했다.
문 앞에서 먕먕 거리는 알파와 베타가 나를 올려다보고는 계속 따라다녔다.
"아빠!"
"응?"
"내일 옷 오는데 패션쇼 보여줄게."
"오~ 기대해도 돼?"
"응, 다연이랑 같이 고른 거야."
나는 아빠가 뭘 하기에 나오지도 않고, 말만 하는지 궁금해서 게임방으로 향했다.
단풍잎 게임의 보스를 잡고 있는 아빠를 보고 정색했다.
"....."
내가 가만히 서있자 아빠가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더욱 장난치고 싶어졌다.
"금방... 끝나..."
"딸이 왔는데, 중요한 거 하네... 뭐, 이제 내가 뭘 하고 다녀도 상관없다 이거지?"
"아니야 시윤아..."
"이럴 거면 통금은 왜 만든 거야, 오케이, 이제 서로 뭘하든 신경 쓰지 맙시다."
아빠는 심각함을 느끼고 바로 컴퓨터를 껐다.
"시윤아!"
그리고 이미 내방으로 향하고 있던 내 뒤에서 어깨를 잡으려기에 빠르고 가볍게 탁! 하고 쳐냈다.
그러자 공주님 안기 기술로 나를 드는 아빠.
"미안해, 정말 중요한 보스라고 생각했지만 당연히 딸이 더 중요하지!"
내가 아빠에게 친 장난으로 인해, 한동안 아빠의 간지럼 태우기를 참아야 했다.
다음날 아침부터배송이 와서 바로 패션쇼를 열었고,
고양이 귀까지 착용한 내 19금 옷을 본 아빠는 경악하며, 고민 없이 전부 쓰레기통에 쑤셔 넣었다.
어느새 체육대회가 다가오고 그와 함께 중간고사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나에겐 시험기간은 크게 의미가 없었지만,
다들 공부에 열중하는 듯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건 박지훈과 김태오도 다를 바 없었다.
자율학습시간에 나 혼자 그림을 그리고 있으니, 옆에 앉아있는 박지훈이 나를 쳐다봤다.
"진짜 존나 부럽다..."
"뭐가."
"보는 대로 기억하는 게 무슨 느낌이야?"
"음... 아직도 생생해."
"뭐가?"
"쉬림프."
쿨럭!
조용한 반에서, 박지훈이 콜록거리고 있었다.
"아이씨.. 내가 하지 말랬지."
"뭐, 새우 좀 컸냐?"
"시발... 그래 컸다, 크레이 피시 됐다 뭐, 볼래?"
"크레이 피시는 무슨,새우젓처럼 안 작아졌으면 다행이지."
"...시발... 나쁜 새끼"
옆에 있는 다연이와 김태오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 하기에, 말해주려 하니 박지훈이 내 입을 막았다.
"읍!"
박지훈의 손은 생각보다도 커서, 내 얼굴보다도 박지훈의 손이 더 컸다.
"하지 마라."
"이겁 나랍."
이젠 힘으로 박지훈에게 비빌 수가 없어서, 손가락을 꺾자 그제서야 아파하면서 놔줬다.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끼고, 공부에 열중하는 이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편지를 적어서 지훈에게 건넸다.
지훈이 뭐냐고 묻자, 내가 다연이를 가리켰다.
어이없어하더니, 다연에게 던지는 지훈.
날아가는편지를 캐치한 김태오가 정색하며 박지훈을 쳐다보고는 다연이에게 건넸다.
- 나 오늘 미술학원 가는데 같이 갈래?
다연이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보고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공부에 열중하는 다연.
나는 내 앞에 있는 노트를 봤다.
그림도 한두 번이지, 수업을 한다면 수업이라도 듣겠지만, 자율학습은 나에겐 너무나도 무료한 시간이다.
이미 머릿속에 있는걸, 다시 공부한다는 것만큼 지겨운 일이 없다.
나는 결국 잠을 자기 시작했다.
하아아..... 피유우우.....
조용한 교실 안, 한 명의 숨소리가 너무나도 찐하게 들렸다.
하아압..... 퓨우우우.....
죽은 건가 싶을 정도로 숨소리의 박자가 왜 이렇게느린지, 거의 5분에 한 번씩 숨소리가 들렸다.
박지훈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김시윤을 바라봤다.
코에 손을 가져다 대자, 숨을 쉬지 않는 김시윤.
"와... 폐활량 보소... 마라톤 선수해라 그냥..."
누구에게나 들릴법한 목소리로 말하는 지훈이 때문에 몇몇이 풉... 하고 웃었다.
김태오는 그런 김시윤을 보고 있었고, 다연이는 그런 김태오를 보고 나서, 씁쓸한 표정으로 모르는 척 공부를 이어갔다.
하아아아압..... 퓨우우우우.....
"얘 이러고 밤에 게임하자고 나 못 자게 할 거 같은데..."
시윤이의 숨소리와 지훈이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함께 들리는 교실이었다.
"흐으윽... 잘 잤다. 밥 먹어야디~"
"....."
지훈이 어이없는 눈빛으로 나를 보다가 옆에 있는 다연이에게 말했다.
"쟤 저래놓고 나중에 성적표 보면전교 1등이다? 재수 없지 않아?"
"시유니는 대단한걸..."
나는 대화를 듣다가 다연이의 목소리가 이상한 것을 느끼고 쳐다보았다.
내 눈빛에 움찔하고는 다연이 어색하게 웃었다.
천천히 다연이에게 다가가자, 움찔한 다연이 뒷걸음질을 쳤다.
김태오가 그 모습을 보고 본능적으로 나를 못 다가가게 하려는지, 내 팔을 잡으려고 하자 지훈이가 김태오의 팔을 잡았다.
상황이 마치, 한 여주인공을 두고 싸우는 두 명의 남주 같았다.
"넌 왜, 함부로 만지려고 하냐?"
지훈이가 가볍게 잡은 팔이지만, 생각 이상의 엄청난 악력에 당황해하며 팔을 뺀 김태오.
자신의 팔을 쳐다보던 김태오가 자존심이 상했는지, 박지훈을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그 모습을 본 다연이가 김태오를 말렸다.
"...왜 화내는 거야?"
"미안..."
박지훈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손바닥을 펼쳐 내 머리에 얹더니, 내 머리를 급식실 방향으로 돌렸다.
자연스럽게 돌아간 몸.
"가자."
나는 박지훈의 행동에 어이없어하며 고민 없이 조인트를 까자, 박지훈은 그대로 바닥에 누워서 고통에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새끼가 머리를 왜 만져 뒤지려고."
나는 복도에서고통으로 인해 누운 지훈이를 사뿐히즈려밟았다.
"".....""
매점 앞에서 내 신발자국으로 가득한 와이셔츠를 벗어서 털고 있는 박지훈.
딱 붙는 옷으로 인해 갈라진 몸이 드러났고, 그 몸은 이미 왕년의 박기의 몸을 넘어섰다.
저게 어떻게 14살짜리의 몸인가...
김태오도 박지훈의 몸을 유심히 지켜봤다.
와이셔츠를 전부 털어낸 박지훈이 옷을 입으며 나를 봤다.
"뭐."
"매점 가자, 사람 너무 많다."
"네가 사냐?"
"나 돈 없는데?"
저 새끼는 돈도 없으면서, 항상 자기가 매점을 가자고 한다.
그래도 부담되는 금액은 아니기에, 나는 평소처럼 이들을 데리고 매점으로 향했다.
박지훈은 거만하게 다리를 올리고 빵을 먹고 있었다.
빠악!
갑자기.
진짜 말 그대로 갑자기, 지나가던 2학년이 박지훈의 뒤통수를 가격했고.
피자빵이 박지훈의 옷에 묻었다.
"".....""
고요해진 매점, 박지훈을 가격했던 덩치 큰 꼬맹이가 말했다.
"요즘 애새끼들 싸가지가 없네, 어디에다 다리를 쳐올리고 지랄이야."
나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