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박지훈 vs 김태오.
고인의 명복을 빈 것은 나뿐만이 아닌, 다연이도 마찬가지인 듯 보였다.
박지훈을 때린 꼬맹이가 갑자기 고개를 숙이면서 박지훈 머리에 팔을 얹더니 나와 다연이를 쳐다봤다.
"귀엽네? 이런 병신들 말고 오빠랑 사귈래?"
나는 빨대를 꽂은 우유를 쪼옥 빨아들이며, 반짝이는 눈으로 상황을 구경했다.
'우유가 아니라팝콘을 샀어야 했는데.'
나를 보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덩치 큰 꼬맹이.
"너 존나 예쁘다, 연예인 딸이라 그런가? 내가 학교생활 편하게 해줄까?"
그때 김태오가 일어나며 박지훈에게 말했다.
"화를 가라앉혀라 지훈, 굳이 네가 손을 쓸 필요는 없다."
박지훈은 '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냐'라는 듯이 김태오를 쳐다봤고.
김태오는 꼬맹이 5명을 쳐다봤다.
"사과해라."
"뭐?"
"먼저 지훈 친구에게 사과해라, 그리고 다연이와 시윤에게도사과해라."
"얼굴은 멀쩡해서... 어디 부족한 새끼인가? 말투 존나 소름 돋네."
박지훈의 뒤통수를 친 꼬맹이가 들고 있던 빵을 던졌다.
탁.
빵을 받아든 김태오가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오올~"
꼬맹이가 박지훈의 머리를 밀치며 다가가자.
'투욱'도 아닌 '팟'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
정확하게 본 것은 나밖에 없었을 거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그대로 꼬맹이의 턱에 꽂히는 주먹.
김태오의 주먹 속도에 맞춰서 돌아가는 턱까지...
나보단 많은것이 느리지만, 지훈이보다 압도적으로 빠른 주먹이었다.
김태오의 주먹을 본 지훈이도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었다.
왜 김태오 보고 HSW의 작은 괴물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저걸 보고도 낙하산이라고 하면, 말이 안 되긴 하지.
김태오에게 달려드는 꼬맹이들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직접 눈으로 보고나서야 이진석의 선택이 옳았음을 인정했다.
저런 천재가 크면 어떻게 될지 등줄기가 오싹할 정도였다.
당연히 지금은 지훈이가 압도적으로 이기겠지만, 나이를 먹는다면... 글쎄...
지훈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끄덕이고 있었다.
과거, 내가 천재라고 생각하고 데리고 와서 키운 재형이.
재형이는 남들과 달리 격투의 천재였다.
싸움꾼의 몸을 타고났으면서, 날붙이들 사이에서 두려움 없이 주먹을 뻗는 재능을 보이는 말 그대로 천재였었다.
나에게 많이맞기도 했지만, 어디 가서 맞는 꼴은 볼 수 없었다.
표정을 보니, 요즘 풀어진 지훈이의 자극이 되는 것 같았다.
꼬맹이에게 지는 건 상상하기도, 죽기보다도 싫겠지...
나는 다연이 옆에 앉아서, 방금 꼬맹이가던진 빵을 먹고 있는 김태오를 봤다.
학교가 끝나자 박지훈은 집으로 돌아가고, 나는 다연이를 데리고 미술관으로 향했다.
김태오가 다연이 뒤에서 주변을 보며 걷고 있었다.
다연이를 지키겠다는 듯이.
방금 김태오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저 꼬맹이가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더욱 안심이 되겠지.
내가 미술 학원으로 들어가자 김태오가 따라 들어오더니, 주변을 확인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아찔할 정도로 잘생긴 꼬맹이가 학원 내부를 보더니 나가는 모습은 꽤나 이질적이었는지, 나를 발견한 고민수 선생이 말했다.
"저 꼬마는 누구니?"
"다연이 경호원이요."
"어...?"
그리고 들어오는 다연이를 보고 고민수 선생이 깜짝 놀랐다.
다연이는 한성의 이진석의 딸로 유명했기에...
"유치원 때부터 친구에요."
그리고 고민수는 초등학교 시절 내 학교폭력 위원회가 열렸을 때 이진석이 왔던 것을 떠올렸다.
"아...!"
나는 의자를 끌어와서 다연이를 앉혔다.
"구경하고 있어~"
"응!"
나는 다연이를 신경 쓰며, 전에 약속했던 보여주기 식 그림을 1시간 만에 끝낸 뒤 다연이에게 다가왔다.
"뭐하고 있었어?"
"응? 이거 그려보고 있었지~"
나는 다연이의 작품을 봤다.
형형색색의 색깔놀이 같은 그림.
나는 옆에서 다연이를 위해 밑그림을 그려줬다.
"풍경화인데 한번 색칠해볼래?"
"응!"
나는 다연이와 완전히 같은 밑그림을 하나 더 그린 뒤, 하나의 팔레트에 색을 섞어서 캔버스에 찍었다.
내가 그려가는 위치를 보며 따라하는 다연.
다연이가 재밌어하자, 나 역시도 불이 붙어서 다연이와 같이 그리기 시작했다.
"우와..."
"이쁘지? 여기에서 주황색 가지고 다듬어주는 거야."
노을을 표현하기 위해, 주황색으로 부분부분 칠하니 다연이가 어려워했다.
"대충 해도 예뻐."
"그...래?"
다연이는 예쁘게 완성된 그림에 자신이 손대서 망칠까 봐 조심스럽게 하고 있었다.
내 손을 타지 않고 완성된 그림, 형체가 일렁였지만 오히려 그것대로 보기 좋았다.
"오... 잘하는데?"
"에이... 꼬불꼬불하잖아."
"아니야~"
나는 내 그림을 창고로 치운 뒤, 고민수 선생에게 다연이 그림을 보여줬다.
"내 손 안 탄 거예요."
"다연이가 그린 거라고? 우와... 재능 있는데?"
다연이는 부끄러운지, 조심스럽게 말했다.
"시윤이가 그리는 거 따라 했어요..."
"아니야~ 그래도 진짜 잘했어."
나는 다연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치? 내 말이 맞지?"
"응..."
그 모습을 바라보던 고민수 선생이 웃었고, 나는 고민수 선생에게 인사했다.
"저희 가볼게요~ 고생하세요~"
"그래, 조심히 들어가~"
"네."
늦은 밤이지만, 아빠는 나를 데리러오지 않았다.
나를 자신의 울타리 안에 넣기엔 나이가 먹어서? 그건 절대 아니지만.
7시 안에만 도착하면 딱히 뭐라 하지 않는다.
그리고 오늘은 다연이랑 다닌다는 소리에, 아빠는 더욱 안심했을 것이다.
반경 500m에 다연이는 모르는 일반인으로 분장한 경호원들과 항상 같이 다니기에.
그리고 바로 옆에는 김태오가 있었다.
나는 주변을 보고 있는 김태오를 도발했다.
"흠... 지훈이랑 싸우면 어떨 거 같아?"
"안 진다."
역시나, 내가 잘못 본게 아니었다. 침착해 보이는 꼬맹이지만, 속은 불같은 꼬맹이다.
"그래? 하지만, 몸 크기도 지훈이가 훨씬 크잖아."
"몸이 다가 아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흠... 힘도 지훈이가 세보이고, 기술은... 엇비슷해 보이는데... 체급도 지훈이가 훨씬 크고 음... 아무리 생각해도 지훈이 더 센 거 같아."
나를좋아하는 태오.
짝사랑의 당사자가 자신을 무시하자, 태오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다연이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왜 그러냐는 듯이 툭툭 쳤다.
"그냥 궁금하잖아, 난 지훈이가 진짜 또래 중에 제일 강한 줄 알았는데, 태오도 캬... 막, 휙휙 하면서."
태오가 자신의 칭찬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나는 그 믿음에 배신하듯 말을 이었다.
"아... 하긴 태오가 무기 들면 가능성이 있어 보이기는 하네..."
"".....""
"그 허리에 있는 걸로 막 휙! 휙! 하면, 지훈이를 이길 가능성이 있을지도?"
다연이가 심상치 않은 태오의 눈빛에,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없어도 내가 이긴다."
"말로는 나도 너 이길걸? 지훈이도 그렇고"
"....."
말이 없어진 꼬맹이. 역시, 지훈이를 눈여겨보고 있었나보다.
어느새 집에 도착한 뒤, 아파트 앞에서 말이없던 태오랑 헤어졌다.
"시유나! 왜 그랬어!"
나를 보고 처음으로 화내는 다연.
다연이는 나에게 완벽하게 삐진 모습이었다.
다연이를 어렸을 때부터 봐온 대부된 마음으로 서운하긴 했지만, 미리 준비해둔 변명거리를 말했다.
"둘이 좀 친해지게 하려고 그랬지~"
내 대답에 눈이 동그래지는 다연.
"어? 그게 왜 친해지는 거야?"
"라이벌 끼리는 싸워야 친해지는 거야. 만화책에서 봤지?"
다연이는 눈을 반짝였다.
"진짜?!"
"그러엄~ 서로 싸우고 부족한 점을 보안하면서 둘 다 세계 최고를 향해 나아가는 거지!"
다연이는 잠시 상상했는지 얼굴을 붉히면서 끄덕였다.
"멋있지?"
"응!"
나는 다연이를 보낸 뒤, 집으로 들어가면서 다음날 김태오의 반응을 상상하며 비릿하게 웃었다.
다음날, 둘이 싸우는 일은 아쉽게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시종일관 서로를 무시하는 태도.
엄청난 팝콘 각이 나왔었는데, 너무나도 아쉽다.
하지만 나에겐 아직 비장의 카드가 남아있다.
그것은 바로 체육대회.
나는 체육대회의 인원을 뽑는 우리 반 반장을 쳐다봤다.
"우리 축구팀 인원 뽑아야 하는데..."
주변을 둘러보다 지훈이와 눈이 마주치고는 흠칫한 반장.
나는 김태오를 바라봤다.
"축구 좀 하냐?"
"내가 못하는 건 없다."
내 해맑은 미소에 움찔한 김태오와, 식은땀을 흘리는 박지훈.
"그으래? 다연아 나중에 둘이 축구하는 거 볼 수 있겠다 그치?"
"응!"
내가 반장에게 눈치를 주자, 반장이 조심스럽게 지훈이와 태오를 쳐다보았다.
지훈이를 볼 때엔 무섭다는 표정으로, 태오를 볼 때는 설렌다는 표정으로.
와... 사람이 순간마다 저렇게 표정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다.
'맨 얼굴로도 변검을 하네...'
"달리기는..."
"지훈이 잘하던데!?"
"".....""
싸늘하고 고요해진 교실 안, 지훈이 얼굴을 구기고 있었다.
나는 곧바로 말을 꺼냈다.
"에이~ 태오도 장난 아냐~ 손이 안 보여."
"...달리기는 발로..."
결국 달리기와 축구를 같이 나가게 된 박지훈과 김태오.
이거... 상당히 기대되기 시작했다.
내 뜻을 둘 다 알고 있는 듯 했지만...
둘이 눈을 마주친 모습을 보니, 역시나 너희들도 좋아할 줄 알았다.
박지훈 특유의 싸가지 없는 말이 이어서 들렸다.
"애랑 무슨..."
"...내가 할 소리다."
"...?"
늬들은 팝콘 각을 원하지 않았겠지만...
난, 이미 늬들 성격 파악을 끝냈다.
나는 박지훈과 김태오 중간에 껴서 웃고 있었고, 우리 반꼬맹이들은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와 다연이가 화장실에 들어가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둘.
다연이와 같이 손을 씻고 밖으로 나와서, 박지훈에게 귓속말을 했다.
"너, 지면 존나 쪽팔린 거 아냐?"
"내가... 이번 한 번만... 뜻대로 따라준다..."
나는 살짝 태오에게 들리도록 말했다.
"근데 솔직히 축구는 몰라도 달리기는 질듯 인정?"
"지랄? 내가 저런 꼬맹이한테 왜 지냐?
방금까지 내 뜻대로 안 움직이겠다고 선언한 박지훈은 그대로 옆에 있는 김태오를 자극했다.
박지훈은 이제서야 자신의 도발을 자각했고, 나는 박지훈을 보며 웃었다.
"데헷."
"시발..."
체육대회가 있기 1주일 전, 우리는 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나는 3초에 하나씩 문제를 푸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서술형 10문제를 제외한 객관식 30문제를 1분 30초 만에 풀고, 총 3분 만에 전부 푼 뒤 시험지를 뒤집고 누웠다.
"".....""
선생님이 너무 빨리 엎드려있는 나를 보고 다가와서 시험지를 보더니 말을 잃었다.
찍었다고 치부하기엔 서술형 문제도 가득 채웠기에...
이런 나를 알고 있는 다연이와 박지훈은 사기가 저하될 수 있어서 진즉에 멀리 떨어져 앉았고, 그나마 가까웠던 김태오는 역시나 말을 잃은 상태였다.
하아아아압..... 퓨우우우우.....
하아아아압..... 퓨우우우우.....
엎드린 지 30초 만에 잠드는 쾌거를 보여주는 시윤이.
5분 간격으로 들리는 숨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다.
시윤의 10번의 숨소리가 지나서야 시험시간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다연이가 나를 조심스럽게 깨우고는 자신의 시험지를 줬다.
"시유나... 채점해줘..."
"으응? 응..."
나는 빠르게 동그라미를 치고, 서술형에서 틀린 표시를 하니 다연이가 크게 동요했다.
김태오는 그 모습을 보며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고, 나는박지훈의 시험지를 보고 말했다.
"너도 줘."
"...싫어."
"빨리, 어차피 너네 엄마가 왜 나한테 검사 안 맡았냐고 혼낼 거 뻔하잖아."
"....."
내가 박지훈의 시험지를 받고, 빠르게 동그라미를 치자 얼굴이 밝아진 지훈.
딱 봐도 찍은 듯한 문제들이 보였다.
빠르게 체크한 뒤 나는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지훈에게 종이를 넘겼다.
"오지지?"
"꺼져."
김태오가 들고 있는 시험지를 힐끔 보자 자신의 시험지를 뒤로 휙 숨기는 김태오.
후후... 나의 동체시력을 무시하는듯했다.
"3, 6, 10 틀렸어."
"!!! 아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1번부터 10번까지 봤거든 순서대로 말해줘?"
김태오가 나를 괴물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
결국 말없이 자신의 시험지를 내미는 김태오.
다연이도 궁금한지 내 옆에서 시험지를 봤다.
나는 방금 봤던 대로 앞면에 3개를 체크한 뒤 뒷면으로 넘어가서 빠르게 답을 체크했다.
박지훈이 옆에서 김태오를 비웃는다.
"아앜? 국어 개 못하넼 야, 한국인이 슈바~ 국어를 잘 해야짘"
"...조용히 해라."
나는 어렸을 적 내 눈과 마주치고 얼굴을 붉혔던 김태오와 지금의 표정이 같다는 걸 확인했다.
다음 시험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쉬는 시간에 떠들던 아이들이 다시 공부에 집중했다.
확실히 난 사립 중학교로 갔어야 했다.
이 시간에 시험치고 그림이나 그리러 갔을 텐데...
'오? 그림 그려야지~'
나는 수학 시간이 되자마자 방금과 같이 3초에 한 문제씩 체크하며 넘겼고 총 4분 동안 문제를 전부 푼 뒤
가장 뒷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