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74화 〉박지훈 vs 김태오. (74/99)



〈 74화 〉박지훈 vs 김태오.
사아아아악, 사아아아악.

누가 듣더라도 누군가 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소리가 조용한 반 안에서 울려 퍼졌다.
시험감독을 하는 선생님이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역시나 내가 시험을 포기한 줄 알았던 선생은, 답안지를 보고는 가득 적어놓은 서술형 문항에 움찔했다.

"시윤아...?"

내가 선생님을 쳐다보자 어색하게 웃는 선생.

"다들 시험 보는데 조금만 조용히 할까...?"

나는 자연스럽게 책상 밑에서 스케치북을 꺼낸  종이를 위에 올렸다.
누가 봐도 부정행위라  수 있겠지만,  시험지를 이미 선생에게 넘긴 상태였다.
한결 조용해진 연필 소리.

사아악..... 사아악.....

하지만, 숨소리까지 들리는 조용한 교실을 채우기엔 문제가 없는 사운드였다.
시험이 끝나며, 나는 기지개를 폈다.

"아~ 힘들어..."
"네가 뭐가 힘드냐... 어이가 없네..."


박지훈의 시선이 아래로 내려갔고, 천천히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지훈이를 확인한 태오와 다연이, 내가 그린 그림을 보더니 입을 벌렸다.
그림  내 시야에서 보이는 교실을 그대로 담고 있는 시험지...

누가 누구의 뒤통수인지 맞출정도로 퀄리티가 높기도 했지만.
특히나 빛이 들어오는 교실의 빛 표현은 평화롭게 보였고.
그와 대비되도록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문제를 풀고 있는 꼬맹이들이 있었다.
그 모습은 역동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와... 미쳤네..."

다연이가 박지훈의 말에 긍정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고.
김태오도 입을 벌렸다.
나는 박지훈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져와."
"....."

나는 주기 싫어하는 박지훈의 시험지를 뺏어서 빠르게 채점했다.
꽤 틀린  보였지만 그럼에도박지훈치고 꽤나 고생했음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입에서 나온 말은 달랐지만.

"어휴 병신아 이걸 틀리냐."

나는 국어와 다르게 당당한 표정을 하고 있는 다연이의 시험지를 채점했고, 전부 정답이었다.

"오오오~ 다연쓰~"
"우아앙! 시윤쓰~"

컨디션이 좋은 다연이의 모습을 처음 봤을법한 김태오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고.
다연이는 그런 김태오의 시선을 의식하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애써지었다.

"역시 다연이 똑똑해."
"응..."

내가 김태오에게 손을 뻗자, 김태오는 움찔하더니 생각보다 순순히 넘겨줬다.
그리고 문제지에 적혀진  점.

"".....""

김태오는 박지훈과 눈을 맞추고는 피식 웃었다.
그 눈빛을 보고, 목을 돌리며 뚜둑 소리를 내던 박지훈이 말했다.

"꼴에 사회는 좀 하나?"
"너보단."

어느새 김태오는 나와 멀어진 곳으로 자리를 이동했고, 앞에서 둘은 불같이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다른 시험과 마찬가지로 사회를 3분 30초에 클리어 한 나는 턱을 괴고 정면을 보고 있었다.

이번에도 선생님이 다가왔고 서술형 문제를 확인하더니 돌아간다.
한중 중학교는 선생님들끼리대화를 하지 않는  했다.
'같이 밥이라도 좀 먹든가 해서 말 좀 전해주지... 귀찮아죽겠네'
나는 엎드려서 자기 시작했고 교실엔  숨소리가 퍼졌다.

그리고 나를 깨우는 박지훈. 어느새 시험시간이 끝난 듯 보였다.
내 앞에 김태오와 박지훈이 시험지를 내밀었다.

"둘 다 존나 멍청하면서, 뭐가 이렇게 당당해."
"".....""

급격하게 말수가 적어진 둘을 두고, 나는 시험지를 받아서 채점했다.
승부욕이 있는 걸 알고 일부러 점수를 전부 더해서 적어주었다.
김태오의 점수가 75점이 나오자 김태오는 경직됐다.

하지만, 박지훈의 점수는 74점이었고, 김태오를 비웃던 박지훈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박지훈을 이겼다는 것에 뿌듯한지, 김태오는 감정을 숨기고 있었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박지훈의 분노지수가 올라갔다.

"남자는 과학이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역사를 알아야 하는 게 아니겠나."


1점 가지고 진심으로 불타오르는 박지훈을 보니, 역시나 14살이 맞는 것 같다.









결국 평균으로 치면, 박지훈이 이겼다.
진짜 예상 밖의 결과에 신기해하며 박지훈의 어깨를 툭 쳤다.

"열심히 했네."
"그치?"

박지훈은 나에게 칭찬을 받더니, 김태오에게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고상한  다하더니 머리 드럽게 안좋누 엌, 아아앙~ 점수 기모띠"
"....."

나는 어깨가 천장까지 닿을  같은 박지훈을 봤다.

"옛 말에 문무겸비라고 했지... 이것이 나를 가리키는 말."

신나서 떠들고 있는 박지훈을 한심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저 새끼는 싸움이랑 공부 둘 다 나보다 못하면서 아가리만...'

하지만 그런 박지훈을 무시하기 시작하는 김태오.

"아앜? 공부해보려고? 그 머리로?!"

내가 만약 박지훈보다 머리가  좋았다면...
만약에 내가, 박지훈에게 시험 점수를 지고 저 말을 들었다면...

고민 없이 공간이 부족해 보이는 대가리를 위해 뇌세포를 줄이고자 뻑치기를 시전 했을 것이다.
박지훈이 옆에서 깝죽거리자, 다연이가 말했다.

"멍청하면 자리에 앉아서 공부나 하지 그래?"

상당히 공격적인 다연이의 말투를 처음 본 김태오가 경악했다.

"야, 이건 남자들만의 자존심 싸움이거든?"
"뭐래 시유나~ 멍청이가, 멍청한 소리 해"

나는 다연이에게 다가가며 웃었다.

"맞는 말이네~"
"그치이~?"
"응."

김태오가  모르는 게 있다면, 다연이랑 지훈이는꽤나 친했다.
박지훈도 어렸을 적부터 생각보다 다연이를 자주 챙겨줬기에.
못생기고 멍청하다고싫어했지만...

이젠 인정하기 싫지만 박지훈은 완전 양아치 상으로, 문신이 어울릴 거 같은 그런 외모로꽤나 잘생겨졌다.
물론 나와 다연이, 태오 사이에 있으면 말린 오징어가 되지만.
이젠 덜 못생기고, 덜 멍청한 지훈이다.
박지훈은  옆에서 책을 보고 있는 김태오를 보며 말했다.

"와.. 평균이 2.4점 차이면 12과목이니까 내가 12문제를  맞췄네?"

나는 그런 박지훈을 보며 말했다.

"평균 61.4면서 그런 말이 나오냐?"
"".....풉.""

멀리서 꼬맹이중 누군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느껴지는 박지훈의 시선에 움찔거리는 꼬맹이들.
김태오와 박지훈의 시험지는 가관인 게, 주요 과목들을 제외하고 전부 바닥을 기고 있었다.
박지훈은 나를 보며 말했다.

"에이 그래도 앞자리 5랑은 다르지."

그때 책을 덮는 태오.

"이젠 한계다 그만하지."
"뭐가? 뭐가~? 50점이 한계인  자각한 건가~? 그래그래 자신의 그릇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

저렇게 진지한 태오의 표정은 처음 봤는지, 다연이가 움찔거렸다.
나는 그런 다연이를 발견하고, 김태오에게 지우개를 던졌다.

투욱.

"옆에 다연이 있어 앉아."
"....."

김태오는 다연이를 보더니 자리에 앉았고,
박지훈은 내 옆에서 김태오를 보며 키득 거렸다.
나는 그런 박지훈의 턱을 잡았다.

"다연이 옆에 있다고... 새끼야... 몸으로 싸울 거면 나중에 알겠지...?"
"넵."

요즘 항상 펌핑 되어있는 박지훈의 몸을 보면,
저번에 매점에서의 김태오를 보고 꽤나 열심인 듯 했다.
김태오는 말없이 책을 폈고, 다연이는 태오의 눈치를 봤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중얼거렸다.

"보호 대상이 경호원을 걱정하는  맞나...?"

움찔한 김태오는 혼자서 끄덕이더니 다연이에게 말했다.

"걱정시켜서 미안해."
"아... 아니야."
"처음에 말했던 대로 허락 없이는 화내지 않을게."

다연이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에이~ 태오가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야지~"
"...알겠어."

김태오는 다연이의 그 말을 꽤나 기다렸는지, 일어나서 박지훈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둘의 소문을 알고 있는 우리 반 전체의 분위기는 순간 싸늘해졌다.
김태오는 박지훈에게 말했다.

"네가 운동하는 곳이 있나?"
"제일 종합격투라고 걸어서 10분 거리?"
"체육대회가 끝나고 2일 뒤에 찾아가겠다."

김태오는  말을 끝냈는지, 다연이 옆에 가서 앉았다.
나는 정확한 날짜까지 정해진 팝콘 각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덧 체육대회가 열렸다.
나는 지훈이와 태오를 계주에 집어넣었지만, 나는 여자 계주에 나가지 않았다.
배신당한 기분이라며 나에게 항의하던 박지훈.
박지훈은 어차피  느끼는 기분일 텐데 새삼스럽게 또 항의를 하고 있었다.

태오와지훈이를 계주에 넣었지만, 같은 팀이라서 서로의 속도를 확인할 방도는 없었다.
대신 나와 다연이에게 쥐어준 스톱워치, 봉을 쥐는 순간 눌러달라고 한다.
지훈이의 달리기 속도는, 내가 기억하는 것과 전혀 달랐다.
태오가 압승할  알았지만, 다연이와 내가 잰 시간이 달랐다.
나는 지훈이가 0.1초 정도 빨랐고, 다연이는 태오가 0.2초가량 빨랐다.
이 둘에겐 애매한 차이였지만, 경기로 봤을 때는 2등인 반과 반 바퀴 이상의 차이가 났다.

"어엌?"

오늘 4명이 반 바퀴 씩 뛰는 계주에서, 반 바퀴가 넘게 차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 2, 3학년 총합 점수에서 1위를 한 우리 반 꼬맹이들은 환호를 했다.
보유한 점수가 클수록 먹을 것과 바꿔 먹을 수 있었다.




- 1 : 물.
- 4 : 음료수 캔.
- 8 : 음료수 페트.

. . . . . .

모든 메뉴는 반 인원 당 하나씩이었다.
우리는 계주 1등을 하게 되면서참가 5점과 함께, 4개의 반에서 하는 경기에서 '1등 시 20점'이라는 추가 점수를 받았고.
응원 점수 5점.
총합 경기 시간 1등 150점'을 추가로 얻어 총 180점이 되었다.

나는 각 반마다 운영하고 있는 부스의 메뉴판을 봤다.

"오... 40점에 빙수 파티 가능하네?"
"맛있겠다..."
"지금 점수로만 콜라 페트로 시키고, 떡볶이에 순대, 어묵, 김밥 마무리로 빙수 캬... 그거 먹고 집 가면 되겠네."
"...응?"
"내일도 반복하면 딱 인데?"

꽤나 재밌는 규칙으로 만들어진 체육대회.
나는 메뉴판의 마지막을 읽어내리다가 갑자기 3,000점에서 7,000점을 뛰어넘는 메뉴에 피식 웃었다.

10,000 : 반 단합 1등석 경기장 관람.
20,000 :  단합 크루즈 제주도 여행.
50,000 : 반 단합 5성급 호텔 해외여행.
200,000 : 반 단합 우주여행.

나는 체육대회의 종목을 봤다.
총 3일에 걸쳐서 하는 체육대회.
나는 빠르게 계산을 하며, 다연이에게 말했다.

"엌? 우주여행은 말도 안 되고 해외여행 행선지는 어딜까?"
".....저거 장난으로 넣은 거 같은데..."

계산을 해보니 전부 1등을 하더라도 5만 점은 어려웠다.
하지만, 박지훈과 김태오가 있다면... 개인점수도 있기에 5성급 호텔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점수는 꿈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5만 점을 주고 해외여행을 갈 바엔.

5만 점으로 물 50,000병씩 30명, 총 백오십만 병 돌리는 거 보는 게 꿀잼일  같았다.
백오십만 병은 누가 셀지도 궁금하고, 우리에게 어떻게 나눠줄지도 궁금하다.
갑자기 의욕이 생기자, 다연이가 눈치 채고는 나를 말렸다.

"...시유나 이상한 생각하지...?"
"응? 무슨 생각?"
"너, 표정 보면... 장난치고 싶어서 근질거리는 거 같은데..."
"에이~"

다연이는 생각보다 나를 너무 잘 알았다.





여자 피구 단체전이 시작됐다.
나는 다연이와 서로의 얼굴과 팔, 다리에 선크림을 발라주고 같이 밖으로 나갔다.
나를 처음 본 꼬맹이들이 꽤나 많은지, 나와 다연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사람이 많았다.

경기가 시작되고.
코트 안에서 한쪽 구석에 앉아 여자 꼬맹이들이 재밌게 놀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자, 내 뒤에 있던 꼬맹이가 공을 받더니 나를 맞췄다.
내가 상대방 아웃라인으로 가려고 하자, 박지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똑바로 안 하냐!!! 누군 죽어라 뛰었는데!!!"

목소리 한번 우렁차다.
나는 대충 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다연이의 얼굴에 공이 날아갔고, 다연이가 맞아 쓰러졌다.

"....."

다연이가 밝게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지만, 가슴속에 무언가가 끓어올라왔다.
웃고 있는 다연이의 얼굴에 묻은 흙을 털어주며다짐했고.
그때부터 꼬맹이들을 가볍게 눌러주기 시작했다.
다연이에게 오는 공을 전부다 캐치하며, 내가 공을 잡으면 상대방은 무더기로 아웃이 됐다.
혼자서 여포를 찍고 있으니 조용해진 운동장.

"와됴오~~."

결국 3학년과의 승부에서도 가볍게 이긴 뒤 1등을 따왔다.

"역시~ 시유니 못하는  없어!"
"당연하지."







박지훈과 김태오도꽤나 선전하며, '독식'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들에게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아직 오전 타임임에도 우리의 점수는 2,000점을 달리고있었다.
3학년 팀인 2등과 1,100점이 차이 나는 점수.
그리고 다음 종목은 골든벨이었다.
'음하하하하하.'

골든벨은 단계마다 점수가 들어갔다.
500명부터는 10점, 100명부터 20점, 30명부터 30점, 10명부터 40점이 중복되며 주어졌고,
3위에게는 300점, 2위에게는 400점, 1위에게는 500점이 추가로 주어졌다.
쉽게 말해서 혼자서 1등까지 가면, 600점이 들어오고, 2등을 하면 500점이 들어온다.

나는 집에서 사교육을 받고 있는 다연이를 쳐다보았다.
주제가 없는 문제들로 이루어졌음을 공지했고, 전교생이 배치된 자리에 앉았다.
반끼리 부정행위를 할 수도 있다고, 한 줄로 세워 놓았다.
 덕에 내 주변에 얼굴을 모르는 꼬맹이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봤다.
정면 커다란 스크린에서 문제가 떠올랐다.

- 이 '신'의 앞머리에는 머리카락이 있고 뒷머리는 대머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것'의 신이 왔을 때 빨리 잡지 않으면 놓쳐버리고 만다고 하는데요. 누구에게나 평생 세 번 온다는 이 신은 '무엇'의 신일까요?


다들 점수가 걸려있어서 그런가, 꽤나 진중하다.
나는 '기회'라고 답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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