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화 〉박지훈 vs 김태오.
체육대회가 끝나고, 다음날.
나와 다연이는 아파트 안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이는 경호원.
나와 친분이 있는 경호원이다.
내가 손짓하자 경호원이 주변의 눈치를 보며 다가왔다.
"부르셨습니까?"
"태오 알죠?"
"당연하죠~"
자신들의 어린 막내를 떠올리며 흐뭇해하는 경호원.
"내일 제 친구랑 스파링하기로 했거든요?"
"...네?"
경호원은 김태오가 그런 일을 할 리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HSW에서 키운 작은 괴물 김태오가, 동갑내기랑 싸울 리 없기 때문에.
"근데, 제가 알기로는 내 친구가 동갑내기 중에 제일 강하거든요."
"아하하, 그럴 리 없습니다."
나는, 나를 비웃는 경호원을 여유롭게 쳐다보았다.
"눈으로 확인하면 되지~ 어차피 내일인데? 상대가 박지훈이란 친군데 걔는 선수들이랑 싸우거든요."
"...선수요?"
"주먹싸움이면 모를까 규칙 있는 스파링은 절대로 못 이길걸요?"
"저희도 각종 무술을 연마합니다."
내가 듣기로도 HSW는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들을 모아놨다고 들었다.
그만큼 자존심, 자부심 또한 강하다고.
"궁금하지 않아요? 최강의꼬맹이가 누구일지..."
"....."
"태오한텐 비밀이에요. 구경할 사람 모아줘요."
"예."
나는 내일 있을 팝콘각을 상상하며,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게 싸움 구경인데, HSW의 작은 괴물에게 자극이 되는 한판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연이를 지킬 수 있게, 더욱더 강해지도록...
나는 소파에서 아빠에게 기대고 있었다.
"아빠."
"응?"
"요즘 외로워?"
아빠는 나를 보더니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아빠는 내 머리를쓰다듬으며 말했다.
"시윤이가 있는데 아빠가 왜 외로워~"
"난 또~ 이제 따로 자니까 우리 아빠 외로운 줄 알았지~"
"시윤이도 다 커서 이젠 아빠랑 같이 자면 안 돼~"
아빠의 포근한 미소는 보는 이를 편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TV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난 또 아빠 방에서 휴지가 좀 나오길래."
".....어?"
아빠는 급격하게 경직되기 시작했다.
말을 잇지 못하는 아빠의 내 머리를 만지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가끔씩 아빠 방 가면 밤꽃 냄새나더라, 건강해보여서 하는 건 좋지만, 뒤처리는 확실하게 부탁해~"
"......"
아빠의 얼굴은 급격하게 빨개지기 시작하더니, 곧 터질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리고 베타가 자꾸 휴지통 뒤져서, 딸내미인 내가 치웠어."
"......"
"어휴, 안쓰러운 동생들인데 언니, 누나가 된 입장으로 치워줘야지."
경직된 아빠는 움직이지 못했다.
나는 아빠의 품에서 벗어나며, 기지개를 폈다.
"손은 씻고 나 만지는 거지? 그치? 그럴 거라 믿어~ 아빠 잘 자~"
"......"
아빠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시선을 TV에 고정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 나이는 이제 36세였다.
'한창이지.'
다음날, 학교가 끝난 뒤...
나는 다연이를 데리고 박지훈과 김태오의 뒤를 따라갔다.
박지훈이 운동하는 곳은, 꽤나 유명한 선수들을 많이 배출한 종합격투 훈련장이었다.
그중에 슈퍼스타 유망주로 활약하고 있는 박지훈.
14살이라고 하기엔 괴물 같은 피지컬과 뛰어난 센스, 두려움이 없어 보이는 야수 같은 스타일의 박지훈.
과거에 날붙이 앞에서도 두려움이 없었던 박지훈은...
끝을 모를 것 같은 괴물 같은 피지컬을 얻고, 21세기 종합격투기를 만난 박지훈은 그 재능을 더욱더 꽃피웠다.
체육관 안에서, 교복을 입은 김태오를 보며,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지훈아... 애 상대로 뭐 하는 짓이냐..."
"쟤 존나 세요."
"...하아..."
지훈이의 말을 믿지 못하는 관장과 회원들...
박지훈이 김태오랑 같이 체육복을 갈아입고 오자, 김태오의 몸을 본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쩍쩍 갈라져 있는 김태오의 몸은 지구력과 스피드에 모든 걸 쏟아부은 듯 날렵했고, 몸에는 실전용 근육들이 매끈하고 자잘하게 자리했다.
그에 비해, 박지훈의 몸은 14살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울퉁불퉁했다.
하지만, 나와 다연이를 보고감탄하는 사람들.
땀 냄새나는 이곳에 미의 끝을 달리는 여학생 두 명이 들어오자 사람들은 매우 신나보였다.
"시... 시윤이야? 나 진짜 팬인데!?"
"뭐야!!! 지훈이 시윤이랑 아는 사이야!? 새끼야 왜 말 안 했어!!!"
결국 사인지를 가져온 사람들 때문에 나는 사인을 해줘야 했다.
"지훈이랑 무슨 사이니?"
"여자 친구요."
""!!!!!""
박지훈과 김태오, 다연이를 포함해 조용해진 공간.
"지훈이랑 나랑 사귀어요."
"진짜?!"
다연이가 놀래서 나를 쳐다봤다.
"응."
그때 박지훈이 빠르게 내려오며 나한테 외쳤다.
"야!!! 뻥치지 마라!"
나는 생긋 웃으며 다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뻥이지~ 내가 다연이한테 지금까지 말 안 했을까 봐?"
"그치?!"
"응."
그리고 뒤이어 입구에서 등장하는 사람들.
정장을 입은 덩치 큰 남성 20명이 밀려들어오자, 훈련장에 있던 사람들이 당황했다.
그중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남성이 다연이와 나를 보고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아가씨들."
"네! 동훈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대부분 다연이를보호하는 5팀과, 다른 소속의 사람들이었다.
나는 다들 오랜만에 본 남성에게 대충 손을 흔들었다.
다연이의 밝은 인사에 동훈이라 불린 아저씨가 웃으면서 끄덕였다.
태오를 보고 인사하는 사람들, 태오는 장비를 착용하다가 이마를 매만지며 말을 꺼냈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우리 막내가 오늘 처음으로 쉰다는데 궁금하지 않을 수 없지~"
그때 뒤에 있던 남성이 말했다.
"와~ 저 꼬마가 동갑이라고? 몸 봐라...이야... 시윤 아가씨가 거짓말을 한건 아닌가 보네~"
그 말에 다들끄덕였지만, 김태오가 이들이 온 이유를 파악했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 눈을 피하며, 가방에서 미리 사온 팝콘을 꺼냈다.
관장님이 지훈이에게 사람들에 대한 설명을 요구했고, 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저기 꼬맹이는 경호원이에요, 여기 사람들은 동료들."
옥타곤처럼 생긴 철조망 안에 있는 김태오와 박지훈이 한숨을 쉬었다.
나와 다연이를 기준으로 내가 있는 방향에는 훈련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다연이가 있는 방향에는 정장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앉았다.
유명 격투 프로그램 UMC을 방불케 하는 광경.
제대로 팝콘 각이다.
경기가 시작되기 전, 3분의 준비 시간동안 몸을 풀던 지훈이 말했다.
"너, 다른 놈들하고 넌 다르다 이런 생각 가지고 있는 건 알겠는데, 내가 보기엔 비슷하거든?"
"누가 할 소리..."
"실전이면... 아니지... 실전도 다를 바 없겠지만, 케이지 안에선 너나 못 이겨."
"하..."
"쪽 당하기 싫으면 집중해라~"
김태오는 박지훈의 말에 상대할 마음도 없다는 듯이 무시한 채 몸을 풀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김태오가 빠르게 잽을 날리자 가볍게 피하는 박지훈.
요즘 내 주먹도 피하는 박지훈의 수준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이 정도는 쉽게 피한다는 듯이 피하자, 김태오와 경호원 사람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박지훈이 가볍게 몸으로 들이받아 엎어뜨린 뒤 그라운드를 걸었지만, 김태오는 자존심에 탭을 치지 않았고.
박지훈은 충분히 팔을 꺾을 수 있었지만, 으쓱이며 김태오를 놔줬다.
"집중하랬지."
압도적인 박지훈의 모습.
HSW측의 경호원들은 방금 있었던 일에, 턱이 빠지도록 입을 벌리고 있었다.
빈정 상한 김태오가 스피드를 높이며 우위를 점하려고 했지만.
한국에서 보기 힘든 비율인 박지훈의 압도적인 윙스팬, 그 리치를 이용한 바디샷이 김태오의 옆구리로 깊게 들어갔다.
그것을 허용한 김태오는 숨을 헐떡이며 잠시 바닥에 기대고는, 괴물을 쳐다보는 듯한 표정으로 박지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박지훈은 다시 완벽한 승기를 잡을 수 있도록 달려들려다가 멈췄다.
경기를 보다가 옆에서 말하는 관장.
"지훈이를 14살이라고 생각하면 못 이길 거다, 저 새끼는 프로들과 붙여도 안 밀려. 미래가 너무 궁금할 정도로..."
아빠의 피지컬을 닮아 팔과 다리가 길쭉길쭉하고,
엄청난 양을 먹어대며 운동으로 소화하는 박지훈은 신체만 봐도 괴물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김태오의 아버지 김동훈 차장이 심각한 눈으로 박지훈을 쳐다보았다.
저 괴물 같은 박지훈의 모습은, HSW의 작은 괴물 김태오에게 눈높이를 알려주듯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보여주는 듯했다.
김태오는 얼굴로 오는 박지훈의 주먹을 가볍게 피했다.
하지만, 스쳐도 기절한다는 걸 느낀 김태오의 이마엔 식은땀이 흘렀다.
그리고 지훈이 가볍게 찬 레그 킥.
자세도 안 잡고 툭 찬 레그 킥이지만, 김태오의 몸이 붕 떴고 이어서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느라 중심을 잃고 엎어졌다.
박지훈은 이대로 붙으면 끝난다는 것을 몸으로 표현만 할 뿐 김태오에게 들어가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연이가, 자신의 두 손 사이에 있는 내 손을 꾹 쥐고는 눈을 감았다.
얼굴이 빨개진 김태오.
자신이 누구에게 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 같아 보였다.
'걘 지금까지 산 나이 다 합치면 46살이다... 꼬맹아.'
분을 삭이려는지 바닥을 한번 내려치고 일어서는 김태오 눈빛이 달라졌고, 그 모습을 본 경호원들이 말했다.
"이거 사단 나는 거 아니에요? 태오 눈 돈 거 같은데..."
하지만 김동훈 차장만이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듯했다.
태오가 무슨 반칙을 쓰더라도, 앞에 있는 저 꼬맹이를 이기진 못할 거라는.
역시나 전보다도 빠른 스피드를 가지고 지훈이를 압박하지만, 지훈이가 툭 친 주먹에 몸이 붕 떴다.
빠악!
이젠 발도 쓰지 않는 지훈이었다.
인정한다, 김태오란 저 꼬맹이는 희대의 천재가 맞다.
지훈에게 뻗는 김태오의 손은 거의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이며,
가볍게 엘보로 이어가는 기술부터, 하이킥들을 보고 있으면 아름답게 보일 정도로 깔끔하다.
지훈이의 팔의 두께만 본다면 지금 같은 힘을 못 낼 것 같지만, 근섬유가 일반인의 그것과 다른 것 같은 박지훈.
김태오가 아무리 희대의 천재라고해도, 그 괴물 같은 피지컬의 박지훈에게 덤비기엔 태오의 몸은 너무나도 여렸으며, 기술 또한 부족해보였다.
지훈이가 놀아주듯 경기를 진행하며, 김태오의 하이킥을 허용하는 듯 했지만, 어느새 팔을 올려 가볍게 막고는 그대로 김태오에게 파고들어 주먹을 꽂으려다 멈췄다.
자신을 봐준다는 그 모습을 본 김태오가 더욱더 분노하며 달려들었고.
결국 박지훈은 김태오를 보며 자신의 왼쪽 턱을 툭툭 쳤다.
거기 때릴 거니까 막아보라는 듯이.
그리고 꽂히는 박지훈의 훅.
그대로 김태오가 기절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기대감에 미소를 참을 수 없었고, 자연스럽게 웃었다.
'부디 저 자라나는 새싹이 시들지 않길...'
방금까지 스파링을 했으면서도 숨을 고르게 쉬고 있는 박지훈은 진짜 괴물이 된 듯했다.
'이 몸으로 맨손으로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물론 이기겠지만.
싸늘해진 공간, 지켜보던 관장은 박수를 쳤다.
"저 꼬마 아이 대단한데? 지훈이를 상대로...이야..."
그 발언에 울컥한 경호원들이지만 말을 잇지 못했다.
엄청난 실력을 가진 박지훈의 경기 모습을 직접 보았기에...
저기 앉아있는 대부분도 지훈이랑 싸우면 질것 같을 정도였다.
김동훈 아저씨는 나에게 말했다.
"인정해야겠습니다... 진짜 괴물이네요."
나는 팝콘을 먹으면서말했다.
"그렇죠? 내 꼬붕 짱 세죠?"
"근데... 다음엔 안 질 겁니다."
"흠... 그럴 수도있을 거 같아요. 지금은 체격 차이도 많이 나니까요."
김동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박지훈을 바라보고 말했다.
"혹시, 아직 지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한 수 부탁해도 되겠나?"
박지훈이 경호원들을 쳐다봤다.
"물 좀 마시고요~"
"아하하하!!!"
이번엔 성인 남성이올라갔고 박지훈이 핑거 글러브를 끼며 말했다.
"아저씨 튼튼하죠?"
"허허... 당연하지."
경기가 시작되고, 이들은 지훈이가 태오를 봐줬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른을 상대하니, 피지컬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닌 스피드와 기술을 쓰기 시작한 박지훈.
지훈이의 오른손으로 깔끔하게 들어가는 카운터펀치에 잠시 경직되더니, 이어지는 스트레이트에 턱을 허용하고는 그대로 다리가 풀려 쓰러졌다.
"와우..."
다연이는 옆에서 태오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박지훈을 떨리는 눈으로 보는 다연.
"엄청 세졌지?"
"응..."
"누가 이길 거 같아?"
"...시유니랑...?"
"나도 궁금하네..."
김태오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자신의 식구들을 눕히는 박지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두 번의 경기를 더한 박지훈이 땀을 흘리며 케이지 밖으로 나왔다.
김태오는 그런 박지훈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졌다... 나도 안일했지... 1년... 아니 2년 뒤에 다시 붙어줄 수 있나?"
박지훈은 김태오를 보며 끄덕였다.
"나도 기대되는데? 너 2년 뒤 모습."
박지훈은 재형이었을 시절부터, 가장 큰 재능이 있었다.
그것은 훈련에 미쳐있다는것이었다..
박지훈의 훈련량은 보는 사람의 말을 잃게 만들었다.
다른 일이 없다면, 자기 직전까지 항상 훈련만을했으니.
지금도 박지훈은 스파링을 끝내고 자연스럽게 다른 운동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