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폭풍전야.
태오와 다연이의 경호원들은 집으로 향했고, 나는 관장님이 준 운동복을 입고 글러브를 꼈다.
"오늘은 네가 데려다주면 되겠네~"
"왜!"
"그럼 여자 혼자 밤에 돌아가라고? 위험한데?"
"...네가 왜 여자냐...?"
지훈이의 말은 진심이 담긴 말이었지만, 주변 사람이 듣기엔 중학생들이 흔히 장난치는 말로 들렸을 것이다.
나는 관장님이 말하는 대로 주먹을 뻗었다.
스ㅡ팡!
"...?"
관장님은 무언가 잘못 봤다는 듯이 내 손을 쳐다봤다.
"아, 이렇게 퉁."
그냥 던지는 듯이 주먹을 뻗기 시작하고, 관장님이 말하는 대로 움직였다.
주먹을 뻗기 가장 최적화된 동작.
왜 이걸 몰랐을까 싶을 정도의 깔끔함이다.
"오..."
혼자 감탄하면서 장난스럽게 샌드백을 치며, 김태오가 했던 동작들을 따라하다가 이어서 박지훈의 동작을 조금씩 따라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지훈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리고 다가오는 박지훈.
"관장님, 얘 알려주지 마세요."
"왜?"
"진짜 '괴물' 만들어낼 거 아니면..."
박지훈을 비웃는 관장님.
나는 장난하듯 대충 툭툭 치면서 격투기를 배웠다.
그리고 내가 있다는 것에 익숙해져서 아무도 나를 보지 않을 때, 무게를 실어서 샌드백을 발로 찼다.
스ㅡ펑!
곧바로 사람들의 시선이 꽂혔지만 나는 모르는 척 했다.
서있는 자세로 봐선 박지훈이 그런 것 같지만, 정작 옆에 있던 박지훈은 내 하이킥 속도와 파워에 경악하고 있었다.
나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글러브를 벗어서 박지훈에게 툭 던졌다.
"별거 없네~ 넌 이제 깝치면 뒤졌어..."
"...내...내가 언제 깝쳤다 그래..."
주말 아침.
나는 걷는 걸 꽤나 좋아한다.
다연이랑 같이 있는 이상, 아빠는 내가 어딜 가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4일 전까지만 해도 짜증이 났던 날씨는 따뜻했고 심지어포근하기까지 했다.
뒤에서 따라오는 김태오를 무시한 채 다연이에게 말했다.
"PC방 갈래?"
"PC방? 그 컴퓨터 많은데?"
"응."
"흐음... 하지만 난 할 줄 아는 게임이 없는 걸?"
나는 뒤에서 따라오는 김태오에게손짓했다.
어느새 다가온 김태오.
"너 게임 좀 하냐?"
"아니... 해본 적 없다."
"인생 뭔 재미로 사냐~"
"....."
내 말에 김태오는 조용했지만, 옆에 있던 다연이가 말했다.
"...나... 재밌게... 사는데... 힝."
"아? 다연이한테 한 말아니야~ 우리는 할 게 많잖아?"
"음... 그치...?"
"PC방 가면 재밌는 거 진짜 많아."
"갈래!"
나는 박지훈에게 전화를 걸면서 말했다.
"지훈이 부른다?"
"응!"
다연이와 나는 한강을 보며 걷다가 지훈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헉헉대며 전화를 받는 지훈.
"어디냐?"
-"허억... 죽겠네... 한강. 왜?"
"한강 어디."
-"잠수교."
"우리 한남대교 부분인데 와라."
잠시 숨을 고르던 지훈이 말했다.
-"아... 씻고 갈게. 한 50분?"
"그러면 우리 집 앞에 판타지 PC방 알지?"
-"아 오케이."
나는 전화를 끊고 바로 김태오랑 다연이를 이끌고 PC방에 갔다.
옆에서 김태오와 다연이에게 단풍잎 게임을 알려주고 있을 무렵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그것은 김태오가 다연이보다 게임을 못한다는 것이다.
'새끼... 너도 나랑 같구나?'
컨트롤을 하는 모습을 보니, 어떤 게임을 하던 100% 나보다도 못한다.
만화책과 유치한 걸 좋아했던 다연이는, 단풍잎 게임의 아기자기한 캐릭터와 설정으로 인해서 푹 빠져들기 시작했다.
1시간 만에 온 지훈이가 내 머리 위에 팔을 걸쳤다.
"피시방까지 와서, 단풍잎이 뭐야."
"옆에 앉아서 해라."
자연스럽게 컴퓨터를켠 지훈이 메뉴판부터 열었다.
"나는 망고 스무디."
내 말에 따라 자연스럽게 추가하는 지훈.
나는 다연이가 좋아하는 음료도 골라주었고, 김태오에게 물었다.
"뭐 먹냐?"
"괜찮다."
"까불지 말고 사줄 때 먹어."
"그렇다면 아아로 하겠다."
어디서 들은 건지... 저런 말투를 하면서 '아아'를 말하니 괴리감이엄청났다.
지훈이는 14살짜리 주제에 단 거나 먹을 것이지, 딱 지 같은 거 먹는다고 중얼거리면서 '아아'를 클릭한 뒤 시켰다.
나는 지훈이가 들어오기 전까지 경매장을확인하고 있었고, 곧바로 지훈이 단풍잎 게임에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지훈이와 같이 보스를 잡고 있으니 다연이가 놀란 듯한 반응을 보였다.
"우와... 엄청 세다..."
나와 지훈이는 랭킹 50위 안에 들어가는 딜량을 뽑아낸다.
1,000억 대를 넘어가는 데미지에 벙쪄서 쳐다보는둘.
"다연아 그거 10레벨까지 키우면 아이템 맞춰줄게"
"응!"
어느새 주문한 음식이 왔고, 내 얼굴을 확인한 아르바이트생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최근에 얼굴을 공식적으로 노출한 적은 없지만, 몇 살이나 먹었다고 어릴 때와 외모변화가 있겠는가.
1시간이지나고 어느새, 30레벨을 찍은 둘.
나는 다연이에게 교환을 눌러서 아이템을 넘겼다.
"이거 착용 하다가 50레벨 되면이거 끼고....."
이것저것 설명하면서 아이템을 넘겼고다연이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거 하나당 현금으로 1,000만 원짜리다? 성장용 아이템이라서 지훈이랑 나랑 캐릭터 새로 키울 때 써야 해서 돌려줘야 돼~"
"...어?"
다연이도 가격에 놀라는 눈치였지만 옆에 있던 김태오는 턱이 빠지려고 했다.
1,000만 원짜리 아이템을 연필 빌려주듯이 빌려주고 있으니... 그럴만했다.
김태오는 아직 와 닿지 않는 듯했다, 내가 다이아 수저라는 것이...
물론 이것은 수저와 관계가 없지만.
김태오에게도 아이템을 넘기니 나에게 천천히 물어보았다.
"이것도... 1,000만.....?"
"맞아, 그니까 돌려줘야 돼?"
"알겠...다."
게임 속 디지털 쪼가리가 현금으로 1,000만 원에 달한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못하는 태오였다.
게임을 하고 있으니 쉰에게서 연락이 왔다.
쉰은 내가 창설한 길드에 들어와 있었고, 나는 대화프로그램을 킨 뒤에 쉰과 대화했다.
"뭐요."
-"아니... 보스 잡고 있길래..."
"자꾸 버스타려고 하시네?"
-"와... 너무한 거 아니야?"
옆에서 지훈이 낄낄거렸다.
"끊어요, 지금 바뻐."
-"박듀랑 같이 있어?"
"네, 지금 라이언 잡고 있어요. 끝나고 다시 연락할게요~"
통화를 끊고 보스에 집중하자 다연이가 물어보았다.
"누구야?"
"응?아, 이 게임 같이하는 삼촌 있어."
"아하~"
김태오는 옆에서 박지훈의 아이템을 받고 사냥하면서 중얼거렸다.
"이게... 3,000만 원...이라니... 일반인 연봉수준 아닌가..."
옆에서 다연이가 내 눈치를 봤다.
나는 먹는 거에 열중하는 박지훈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오바워치 한 판 할까?"
라면을 먹다가 나를 쳐다보는 박지훈이 면발을 끊고 삼킨 뒤 말했다.
"너 존나 못하잖아."
"...?"
"하... 한 판만 할까?"
"꺼져."
갑자기 지훈이 사과의 의미로 자기가 아껴뒀던 수제버거를 나에게 넘겼다.
'이 새끼는 상대방 기분을 물물교환 할라하네.'
나는 그대로 받은 뒤, 태오에게 넘겼다.
나를 한참을 쳐다보다가 갑자기 얼굴을 붉히더니 수제버거를 먹는다.
옆에서 착잡한 마음으로 보던 다연이는 다시 단풍잎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PC방에서 게임을 이어가다 다연이가 급하게 말했다.
"6시다!!"
"어?! 벌써?"
내가 빠르게 컴퓨터를 끄고 옷을 주섬주섬 입자 박지훈이 나를 쳐다봤다.
"뭐가 그렇게 급하냐?"
"통금."
"엌? 통금도 있냐?"
"응, 꺼지시고."
나는 박지훈에게 엿을 날린 뒤, 김태오와 다연이랑 같이 빠르게 집으로 향했다.
주말이 지났고, 아침 일찍 누군가 내 얼굴을 톡톡 건드렸다.
눈을 천천히 뜨니 아빠가 침대에 걸터앉아 내 얼굴을 만지고 있었고,
나는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다.
"아빠."
"응?"
"밥 줘."
"해놨지롱~ 밥부터 먹고 씻어 학교 가야지."
"하아암... 5분만 더 잘까?"
"까불지 말고 밥 먹어."
나는 아빠의 단호한 말에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났다.
어느새 내 이불 위에 앉아있는 알파와 베타.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자 알파와 베타가 따라 나왔다.
"아침밥 뭐야?"
"네가 나와서봐."
할머니가 보내준 반찬들과 아빠가 끓인 미역국.
나는 핸드폰으로 너튜브를 보며천천히 먹었다.
"시윤아, 씻고 학교 갈 준비하려면 빨리 먹어야지."
"아직 학교 가려면 2시간 남았거든?"
"걸어가려면 30분 걸리잖아."
내가 아빠의 잔소리에 표정을 구기고 찌릿 쳐다보자, 아빠가 웃으면서 말했다.
"밥 뺏길래?"
"미안."
허리까지 오는 머리를 말리려면 시간이 꽤 걸리기에, 나는 밥을 빠르게 먹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뜨거운 물을 맡고 있으니 정신이 머엉해진다.
보통 물을 맞으면 잠에서 깨어나야 하는데,오히려 평온함을 주는 것이 확실히 나는 물을 좋아하는 것 같다.
빨리 씻기 위해서 시원한 온도로 바꾼 다음 머리를 감았다.
다 씻고 나오니 아빠가 빗이랑 드라이기를 준비했고, 내 머리를 말려줬다.
"시원하다~"
"그렇사옵니까, 마님."
"안마를 한번 해 보거라."
"예이~"
아빠가 두피 마사지를 해주면서 꾹꾹 눌러주었고, 잠시 붕 떠있는 내 이성을 원래 자리로 돌려놓았다.
"오늘 뭐해?"
"음... 지은 이모랑 콜라보 준비하지,"
"집에서?"
"응, 집에 놀러 온대."
"나 없다고, 동생 만들 생각하지말고."
아빠가 내 말에 관자를 꾹 눌렀고 나는고통에 빠르게 머리를 뺐다.
"아악!"
"지은이랑 그런 사이 될 거였으면 너 더 어릴 때 됐거든?"
"와, 그땐 엄마한테 미안했겠지!"
"그니까, 지금도 그러니까 그럴 생각 없다는 거야 인마!"
급발진 한 아빠의 모습에 도망치려 했지만, 아빠가 내 긴 머리를 잡아당겼다.
"아악!"
"앉아. 머리 다 안 말랐어."
나는 다시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머리 중처럼 밀어버릴 거야."
"그러기만 해봐, 집에 못 들어올 줄 알아."
"칫."
머리를 말리고 있자, 초인종이 울렸다.
"다연이다."
아빠는 빠르게 문을 열어주고 다시 내 머리를 말리는데 열중했다.
"실례하겠습니다~"
"다연아 안녕~"
"안녕하세요~"
다연이는 교복 차림으로 신발을 벗더니 정리하면서 들어왔다.
다연이가 아빠와 내 모습을 보더니, 아빠에게 말했다.
"아저씨! 제가 할래요."
"그럴래? 자."
아빠는 빗이랑 헤어드라이기를 다연이에게 건넸다.
다연이는 내 머리를 빗어주며 말했다.
"시유나."
"응?"
"태오..... 어떻게 생각해...?"
"태오? 갑자기 왜?"
"그냥~ 궁금해서 그렇지..."
목소리 톤과 머리를 빗어주는 손이 움찔거리는 걸로 봐서, 절대 그냥은 아니었다.
이유를 찾기보단 빠르게 답을 해주었다.
"흠... 운동 잘하는 꼬맹이?"
"잘생겼잖아..."
"내가 보기엔 지훈이나 태오나 거기서 거기야."
"아니야..."
나는 턱을 괴며 고민하는 척을 했다.
"흠...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멍청한 애인데?"
"...만약.... 만약에 말이야... 태오가 시유니한테 고백하면?"
나는 다연이를 쳐다보며 고민하는제스처를 취하자 다연이의 동공이 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연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다연이 마음 다 아는데, 내가 받을 리가 없잖아."
"내가 없으면..? 나 없다고 생각하구..."
"그래도 관심 없어. 내가 사귀려는 의지만 있으면 태오 말고도 전부 사귀고 돌아다녔을 걸?"
"...부러워..."
"왜?"
"내가... 시유니였다면..."
나는 다연이에게 딱밤을 먹였다.
"아얏!"
"너도 다른 꼬맹이들한테 엄청 부러운 존재거든? 이름만 검색해도 한국의 영애라고 나오는구만."
"....."
"그리고, 오히려 난 다연이가 부러운데?"
"거짓말..."
나는 삐진 듯한 다연이의 존재감을 감추지 못하는가슴을'뽀잉' 하고 만졌다.
"꺅!"
"엄청 부러운데..."
양손을 펼치고 꼼지락거리면서 쓰러진 다연이에게 다가가자, 다연이가 아빠한테 도망갔다.
"아저씨!!! 시유니가 또 만지려 그래요!!!"
"시윤아... 아침부터..."
아빠가 다연이를 뒤로 숨기고 내 앞을 막았다.
"지금 시기에 하루에 20분씩 마사지해줘야, 혈액순환도 되고 예쁘게 잘 큰데."
"...직접 하면 되는 거잖아. 그걸 왜 너가 하냐고..."
"아냐, 다른 사람이 만져야 더 좋지..."
내가 다연이를 보고 비릿하게 웃자 다연이가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