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화 〉폭풍전야.
나는 다연이와 밖으로 나오면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김태오를 봤다.
다연이와 나에게 인사하는 김태오.
"다연이랑 할 말 있어서, 좀 뒤에서 와줄래?"
잠시 다연이를 지켜야 할 임무와, 내 부탁 사이에서 고민하던 김태오가 끄덕였다.
김태오의 반응에 다연이의 표정이 경직되는 것을 보았을 때...
역시 다연이는 내 생각 이상으로 예민해져 있었다.
일단 시간을 벌기 위해, 태오가 멀어지자마자 나는 다연이에게 말했다.
"다연아..."
"응?"
"난... 다연이 밖에 없는데..."
다연이가 깜짝 놀라며 나를 쳐다봤다.
"나도 시유니 밖에 없어!"
"아니, 다연이 보니까... 나보다 태오가 중요한 거 같아서..."
"아니야!"
나는 입에 바람을 넣고, 앙다문 뒤 다연이의 시선을 피하자, 다연이가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난, 진짜 다연이 밖에 없는데... 아빠 빼고 다 포기할 수 있는데..."
잠시 고개를 숙여서 나를 올려다보는 다연이.
"...미안해... 시유나..."
"아니야, 다연이 옛날부터 엄청 좋아했잖아..."
"...응."
"근데... 난 진짜 아무것도 안 했는데... 다연이 나빴어."
다연이는 자신의 실수를 정확하게 인지했는지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이거 비밀인데... 예전에 김태오가 나 좋아하는 거 같아서..."
나는 회심의 일격을 말했다.
"역겹다고... 말했어, 쳐다보지 말라고..."
"아..."
"어떻게 하면... 나 안 미워할 거야?"
"아니야!!! 내가 시유니를 왜 미워해!!! 절대 그럴 리 없어!"
나는굳히기에 들어갔고, 다연이에게 확실하게 말했다.
"내가 태오한테 좀 더 확실하게 말해볼게... 지훈이한테 말하듯이."
"아니야... 시유나..."
다연이가 애처롭게 내 팔을 잡았다.
나는 다연이의 손을 아주 살짝 내치려고 하자, 다연이가 꼬옥 붙잡으며 나를 올려다봤다.
"미안해, 나는 다연이가나 싫어하는 거 견디기 힘들어..."
다연이는 급기야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미안해... 나도 시유니 밖에 없는데... 내가 나빴어..."
훌쩍거리는 다연이를 보며, 미안함을 느꼈고곧바로 꼬옥 안아주었다.
결국 울음을 터트리는 다연.
"다연이가 왜 나빠... 김태오가 나쁜 거지, 괜히 우리 다연이 홀려가지구..."
"응... 태오가 나빴어..."
나는 다연이의 귀여움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학교에 도착하고 박지훈이 나를 쳐다봤다.
"뭘 봐."
"와... 너 진짜 날이 갈수록 예뻐지네... 무슨 혼자 다른 세계 사세요?"
"울 엄마 검색이나 해봐."
"이름이 뭔데?"
나는 박지훈에게 엄마 이름을 알려주었고, 박지훈이 핸드폰으로 검색하더니 경악했다.
"...진짜?"
"예쁘지?"
"와... 네 엄마 오진다, 와 침 나온다... 지리는데?"
미친 새끼가 점점 선을 넘기에 그대로 레그킥을 꽂았다.
"악!"
"그냥, 뒤져 씨발새끼야. 패드립을 하네 미친놈이 고인 능욕하냐?!"
쓰러지는 박지훈의 멱살을 잡고 안면을 향해 주먹을 꽂기 시작하자 다연이가 급하게 말렸다.
"시유나 참아!!! 나쁜 뜻은 아니었을 거야!!!"
내 주먹을 전부 팔로 막아서 얼굴은 멀쩡한 지훈.
오히려 때린 내 손이 더 아팠다.
나만 아픈 이 상황을 보고 있으니 무언가 울컥 솟아올라, 무기를 찾기 위해 가방을 뒤적거렸다.
박지훈이 그런 내 모습을 확인했는지, 빠르게 도망쳤다.
"미안해애애!!!"
운동장에 멀어져가는 박지훈의 목소리가 울렸다.
변한 것 없이 매일 반복되는 학교에서의 하루가 끝나고,
다연이와 나는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아침에 있었던 일 때문인지, 다연이는 나에게 더욱더 애정표현을 했다.
"시유나! 오늘 미술학원 가?!"
"음... 아빠가 집에서 지은 이모랑 데이트하고 있을 텐데... 흠."
"진짜?! 아저씨가? 거짓말!"
"응, 거짓말이야. 음반 작업한대."
"아하~ 그럼 미술학원 갈 거야?"
"음... 아니, 우리 오랜만에 수영하러 갈까?"
"오, 좋아아!"
박지훈과 가는 방향이 같았기에 김태오와 박지훈도 우리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때 정면에서 꼬맹이들의 무리가 나타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던 것처럼 보였다.
나는 뒤에 있는 박지훈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 니 친구냐?"
"나 친구 없는 거 알면서 말하는 거지?"
김태오는 어느새 주머니에서 손을 빼더니 우리보다 앞서서 걸어갔다.
혹시나 하고 그대로 다가가자, 역시나 길을 막는 꼬맹이들.
얼핏 봐도 20명이 넘어가는 인원에, 3학년을 가리키는 노랑 이름표가 대부분이었고.
그중 2학년을 가리키는 하얀 이름표를 달고 있는 꼬맹이 중에 1명은 그날에 반에서 쉬고있을 때, 나에게 고백했던 꼬맹이었다.
그리고 2명의 1학년이 있었는데, 요즘 박지훈을 간보고 다닌다는 찬혁이라는 꼬맹이와, 우리 반 강훈이었다.
노란 이름표가 다가오며 태오 너머에 있는 우리들을 봤다.
"예쁘긴 더럽게 예쁘네."
"더 이상, 다가오지 마라."
"마라? 말이 좀 짧다? 여자 앞이라고 가오 잡는 거야? 엉?"
뒤에 있던 대장 격으로 보이는 꼬맹이가 말했다.
"저 새끼가 걔지? 정훈이 혼자 잔뜩 쫄아가지고 건들지 말라고 했던 놈. 와~ 덩치 봐 14살 맞아?"
아마도 박지훈을 보고 하는 소리겠지...
정훈이라는 놈은 내 기억 상 학회장 옆에 거만하게 앉아있던 꼬맹이였다.
지훈이를 보고 움찔했었던.
보는 눈도 많아, 박지훈이 김태오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넌 다연이랑 시윤이 데리고 가라~"
김태오는 박지훈의 팔목을 잡더니 내려놓으며 피식 웃었다.
"너는 명분이 없지 않나, 내가 한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다... 잠시 다연이를 부탁하지."
박지훈보다 큰키에 덩치를 가진 꼬맹이.
박지훈이 14살이냐를 논하기 전에 저기 저놈은 성인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였다.
김태오가 대장 격으로 보이는 꼬맹이에게 다가가자, 꼬맹이가 말했다.
"뭐하냐? 왜 너 혼자와?"
나는 멀리서 저 말을 듣고, 엄청난 구경거리를 기대하며 다연이에게 어깨동무를 했다.
이 모습은 마치 순하고 여린 착한 다연이를 양아치 학생이 괴롭히는 것 같은 모습이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다연아 볼 거야?"
"으응... 무섭긴 하지만 괜찮아."
김태오와 박지훈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봐서 그런가, 다연이도 내성이 생긴 것 같다.
우리가 순순히 따라가자, 골목길로 들어가는 꼬맹이들..
확실히 사각지대로, CCTV는 물론 우리가 이곳에 들어갔다는 것도 찾기 힘들 정도였다.
그 와중에 재밌는 건, 이 상황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연이 경호원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경호원이 왜 나서지 않는지는 미래를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다연이 옆에 있는 태오가 혼자서, 눈 앞의 23명을 상대로 때려눕히면 다음에 누가 우리를 건들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HSW의 작은 괴물이라 일컫는 김태오가 23 대 1의 맞짱을 실시간으로 직관하는 게 얼마나 꿀잼일까 기대됐다.
만약, 박지훈이 나선다면 저 덩치 큰 꼬맹이에게 곧바로 꿀밤을 먹일 테고.
저 덩치 큰 꼬맹이는 거품을 물며 쓰러지겠지...
그 모습을 본 꼬맹이들이 기겁하며 도망칠게 눈에 훤했다.
박지훈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팝콘이었다.
'이 새끼 준비성 철저한 거 보소...'
"야, 너만 먹냐?"
"당연히 2개지."
"오..."
뒤에서 우리 셋이 팝콘을 입 안 가득 우걱우걱 먹고 있으니, 꼬맹이들이 불쾌하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말했다.
"뭘 그렇게 처먹냐...?"
우리에게 다가오는 덩치 큰 꼬맹이를 김태오가 막아섰다.
김태오의 어깨에 손을 얹자마자 김태오가 팔을 비틀었고.
고통에 고개를 숙인 꼬맹이의 턱에 니킥을 꽂자, 그대로 스르르 누웠다.
""오오...""
나와 박지훈은 더욱 열정적으로 팝콘을 입 안 가득 넣고 있었고, 다연이도 조금씩 먹으며 우리를 힐끔 쳐다봤다.
그리고 시작된 본격적인 싸움.
실전을 중요시한다는 김태오는 모든 동작이 깔끔하고, 빨랐다.
동작 하나하나가 과하지 않은 실용적인 움직임.
그럼에도 아직 박지훈에겐 안 되겠지만...
그런 사실을 떠나서 대단한 건 확실했고, 나와 박지훈은 눈을 반짝이며 쳐다봤다.
말 그대로 날아다니는 태오.
물 만난 물고기처럼, 화려하게 움직이는 태오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새끼, 박지훈한테 처맞더니 때리면 픽픽 쓰러지는 꼬맹이들 사이에서, 오랜만에 신난 거 같다.
김태오는 스턴건이라도 달린 듯한 왼손 잽, 아찔함을 느끼는 꼬맹이에게 이어지는 깔끔한 스트레이트로 대부분을 정리했다.
그리고는 머리부터 뒤집어지는 꼬맹이의 옷을 잡으며, 천천히 바닥에 눕힌다.
얼굴이 찢어지거나 크게 다치는 인원이 없는, 말 그대로의 제압.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뻗어있는 20명의 꼬맹이들이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저렇게 맞는다면 어디 멍든 곳도 찾기 힘들 것이다.
서있는 인원은 우리 일행을 제외하고 3명이 남아있었다.
이 상황에 경악하고 있는 대장 격의 꼬맹이를 보고 있으니, 입안에 있는 팝콘이 더욱 달게 느껴졌다.
"힘내라~ 이겨라~ 이기는 편 우리 편~"
김태오가 나를 보고 피식 웃으며, 덩치 큰 꼬맹이를 쳐다봤다.
"싸울 생각이 없다면, 이만 가보겠다."
"....."
박지훈은 태오의 움직임에 감명이라도 받았는지, 혼자 옆에서 연습해본다.
"이 때는 이렇게 오른 발을 한단 말이지? 오호... 그 뒤에는 왼 손을 지르는 거구만...!"
진짜 병신이다...
그날 이후, 강훈이라는 꼬맹이는 더 이상 학교에 출석하지 않았다.
이를 갈고 있던 박지훈이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생각보다 재밌었다.
주말이 다가왔고, 아빠는 이진석을 통해서 지훈이가 태오를 이긴 사실과, 경호원을 이겼다는말을 들은 것 같다.
만약 지훈이가 나를 데리러 와서 지훈이랑 만나더라도 어딜 가던 딱히 말리지 않았다.
다만, 지훈이에게 명시한 것이 있었는데.
첫째, 무조건 7시 안에 귀가할 것.
둘째, 어디서든 시윤이의 모자와 마스크는 절대 벗지 못하게 할 것.
셋째, 2시간마다 사진을 찍어서 위치를 보고할 것.
마지막은... 박지훈이 나에게 나쁜 행동을 하면 손톱깎이로 젖꼭지를 뜯는다는... 진심 반, 장난 반의 당부를 했다.
나는 지금 지훈이의 훈련장에 앉아있었다.
운동을 끝내고 같이 PC방에 가기 위해서.
지훈이는 자신의 키를 찾아갔는지, 더 이상 빠르게 크지 않고 180에서 천천히 크기 시작했다.
카페에서 산 커피를 마시며, 케이지 안에서 선수들의 연습 상대가 되어주는 박지훈을 봤다.
어느새 내 옆으로 온 관장.
"지훈이 어때?"
나는 핸드폰을 하다가, 질문의 확실한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쳐다보자 관장이 웃었다.
"남자로서 어때? 지훈이는 꼭 성공할 아이야, 유명해지기 전에 잡아야지~"
"음... 아무리 유명해져도 지훈이가 저한테 아까울리는 없을 거 같은데요...?"
'UMC' 지구상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사람만 모인다는 경기장이다.
만약, 지훈이가 그곳에서 파이트머니를 엄청 챙겨갈 정도의 거물이 된다고 하더라도.
1년에 4번 뛸 수 있는 경기 규칙상, 내가 1년 내내 그림을 그리면 더 많은 돈이 들어올 것이다.
무엇보다도...
아빠의 저작권료와, 월세 미만 잡이다.
아빠가 소탈하게 살아서 그렇지...
버는 돈에 1%씩만 사용해도 억 소리가 나온다.
"...그렇구나..."
관장님은 반짝이는 눈으로 지훈이를 쳐다봤다.
"기대돼... 지훈이가 20살에 UMC 나가는 게..."
"근데 지훈이 경기에는 관심 없지 않아요?"
"그것도... 그렇지..."
현재 지훈이와 스파링을 하고 있는 상대는 미들급 UMC 선수, 오정수다.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에 오정수는 지훈이를 보며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물론 둘이 제대로 붙는다면 지훈이가 아직은 지겠지만.
지훈이의 킥을 받은 오정수는 다시 한 번 경악했다.
"와... 진짜 괴물이네... 14살 맞아?"
"아하하... 감사합니다."
달달한 커피를 마시며 지켜보다, 나와 눈이 마주친 박지훈.
잘 보라는 듯이 나에게 가리켰다.
타격 위주로 방식을 바꿨는지, 눈에 띄게 빨라진 속도.
아마도 나와 펀치 속도를 비교하려는 것 같지만, 자신도 느낄 것이다.
나보단 많은 것이 느리다는 것을.
그럼에도 지훈이는 엄청난 발전을 이뤘다.
나는 잠시 상상을 했다.
만약, 내가 알고 있었던 과거의 재형이랑 지금의 박지훈과 싸운다면...
아직은 피지컬이 많이 부족하지만, 기술은 압도적이다.
그럼... 과거 박기와 맨손으로 싸운다면...?
충분히 할만 해 보인다.
스타일리시 한 지훈이의 주먹에 실린 무게는 살벌하기까지 하기에.
만약 저 주먹을 내 연약한 몸에, 정타를 한 대라도 허용한다면, 마비가 오기 시작할 것이고 100퍼센트 질 거라 예측한다.
아직 웰터급인 박지훈이 괴물들만 모였다는 UMC 미들급 프로를 상대로.
근육이 완성된 나이가 아님에도 힘겨루기에서 지지 않고 있기에...
헤비급을 목표로 하는 지훈이가 피지컬을 키운다면... 말할 것도 없다.
지훈이의 훈련이 끝나고 우리는 PC방으로 향했다.
PC방에서 박지훈은 자신의 힘이 어디까지 닿는지 궁금했는지, 오정수의 경기를 보고 있었다.
랭킹 타이틀 방어전을 하고 있는 오정수.
미들급 7위와 싸우고 있었다.
꽤나 진지한지, 정색을 하면서 집중을 하고 있기에 말했다.
"너 옆에 내가 있는데 다른 목표가 보이냐? 나부터 이겨~"
잠시 나를 본 박지훈이 피식 웃었다.
"맞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