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화 〉폭풍전야.
주말 아침, 나는 아빠 방에서 컴퓨터 위에 올라와있는 알파와 베타를 보면서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오오... 설레는구먼..."
나는 한쪽 이어폰을 끼고, 의자 위에 다리를 올려 쪼그리는 자세로 한참을 화면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때 씻고 나온 아빠가 나를 봤다.
"시윤아 뭐해?"
"응? 영상 보고 있어."
"무슨 영상?"
"음... 다큐멘터리 같은 거야."
"아..."
아빠는 굳이 자신의 컴퓨터로 다큐멘터리를 보는 이유가 궁금한 듯 보였지만,
그런가보다 싶었는지, 으쓱이며 요리를 하러 갔다.
나는 더욱더 화면에 집중했고, 내 표정이 심상치 않았는지 아빠가 빠르게 달려 들어왔다.
그렇다, 내가 보고 있던 건 아빠의 '판도라의 상자'랄까?
용량을 많이차지하는 폴더가 있기에 펼쳤더니 신세계가 열렸다.
'와오...'
아빠가 건강한데에는 이유가 있었고.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은 내가 상상했던 그 이상의 예술이었다.
과거는 잡지를 보며 설렜고, 지금은 너튜브를 보며 설렘을 느껴왔다.
빵빵한 여성들이 몸매를 부각시키면서 춤을 추는 것을 보고, 혼자 그렇게 설레었었는데...
이건 뭐... 살색과 역동적이며 가장 효율적인 움직임밖에 없다.
내 몸과 비교하면서 보고 있으니...
멀리서 아빠가 급하게 달려오는 것을 봤다.
순간 나도 당황할 뻔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난 당당했다.
어린 나에게 노출되기 쉬운 컴퓨터에 그것들을 깔아놓은 아빠 잘못이지.
아빠는 얼굴을 붉히며 급하게 영상을 껐다.
손놀림을 보니, 한두 번 꺼본 게 아닌 거 같았다.
"왜? 밥 다 됐어?"
".....아빠 방... 들어오지 마."
나는 폴짝 일어나며 아빠 방을 나섰고, 아빠는 자괴감에 빠졌는지 컴퓨터를 빠르게 껐다.
"아, 맞다. 엄마 고를땐, 나한테 허락 먼저 받아야 돼~"
아빠를 더욱 놀려주고 싶었지만...
아빠는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감정과 함께 내가 '판도라의 상자'를 봤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
나는 거실 소파에 철푸덕 누웠고, 나를 따라서 알파와 베타가 따라나왔다.
"어이구~ 예쁜 베타, 방금 언니가 신기한 거 봤는데, 다행스럽게도 언니보다 가슴 작더라."
아빠는 마음의 정리가 끝났는지, 방에서 나와 처량한 모습으로 천천히 밥을 만들었다.
"밥 먹으렴..."
아빠의 말과 함께, 나는 숟가락 젓가락을 세팅해놓고 밥을 담았다.
그 후에 밥을 먹으면서 비 맞은 강아지처럼 축 처져있는 아빠를 보다가 말했다.
"하긴... 엄마도 작았던 거 보면... 아빠는 그런 취향이구나~"
"푸학!... 쿨럭..."
"완전신세카이였어..."
아빠의 얼굴이 딸기처럼 변했다.
"히히 밥이 맛있네~ 이건 지은 이모한테 보여줘야겠다~"
아빠는 내 손에 들린 무언가를 쳐다봤고 끝내 경악했다
내 손엔 USB가 들려있었고. 아빠가 급하게 나를 불렀다.
"시윤아?!"
"응?"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수한 표정을 지었고 아빠는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용돈 필요하니?"
"에이~ 내가 요즘 원하는 게... 설마 그걸까?"
"...하... 아이디 만들어줄게..."
"어?! 아빠가 만들어준다면 난 땡큐지~ 근데 그 아이디를 어디에서 쓰고 싶은데, 어떻게 방법이 있을 거 같기도 하고~?"
"...PC방...이랑 통금 8시... 허락할게."
그날 잔인해서 19딱지가 붙은 게임들의 제한과, PC방의 제한을 아빠가 풀어줬다.
대신 아빠 컴퓨터에 있는 정보들을 보지 않겠다는 서약을 썻다.
그럼에도, 몇 년간 모은 건지, 아빠는 지우겠다는 말은 끝까지 안했다.
하긴, 저번에 휴지통을 걸렸을 때, 내가 아빠를 벌레 보는 표정으로 바라봤다면...
아빠는 그것을 스스로 묶어서라도 참았을 것이다.
다음날 파일들은 사라졌을거고...
하지만 나는 45년을 남자로 살았기에 아빠를 이해해줄 수 있었다.
나는 오른쪽에 알파와 베타를 두고 TV를 보고 있었다.
자기들이 뭘 안다고, TV에 집중하는 두 고양이들.
나는 TV에 시선을 고정하고, 새하얀 알파의 엉덩이를 손가락으로 푹 찌르자, 나를 휙 돌아보는 알파.
내가 모르는척하니 옆에 앉아있는 베타를 유심히 봤다.
다시 TV에 시선을 집중하는 알파의 엉덩이를 푹 찌르자 '너야아아아옹.' 소리를 내며 베타를 쳐다봤고.
베타가 알파를 힐끔 보자, 알파가 파바바박! 하며 베타를 때렸다.
알파의 엉덩이를 다시 찌르자, 하악질을 하며 나를 쳐다보더니 손부터 올라간다.
"뭐, 누나도 때리려고!?"
"먀아앙..."
내 손위에 자신의 손을 얹더니 핥는 알파.
베타 혼자 똥 씹은 표정을 하고 있엇다.
그때 옷을 갈아입은 아빠가 나왔다.
"아빠 어때?"
"어차피, 스톰 아일랜드만 입잖아. 아빠가 무슨 거기 홍보대사야? 다른 것 좀 입어."
"옷이... 예쁜 걸 어떡해..."
"다른 거 입고 나와."
아빠는 과거 나보다도 옷을 못 입었다.
나는 결국 아빠의 드레스 룸에 따라 들어가서 옷을 꺼냈다.
"이렇게 입어."
"응."
아빠에게 옷을 골라준 뒤, 나도 옷 방에서 내 옷을 골랐다.
"시윤아 끝났어~?"
아빠가 밖에서 부르기에, 박스형 티셔츠만 입은 채로 문을 열었다.
"아빠, 옷 골라줘."
"...이제다 컸는데, 바지는 입고 문을 열어야지."
"뭐래, 옷을 못 고르니까 안 입고 있지."
아빠는 나에게 옷을 대보더니 끄덕였다.
"이걸로 입으면 되겠다."
"진짜 눈 썩었다... 내가 몇 살인지 알고 이렇게 골라주는 거지?"
"...미안."
그래도 오늘은 아빠 스타일에 맞춰서 입기로 하고, 검은색 스타킹을 신고 편안한 복장에 밀리터리 저지를 입었다.
그리고 스톰 아일랜드의 모자를 썼다.
아빠가 나를 보더니 물개 박수를 했다.
"엄청 예쁘다!"
"알아."
"맞다, 밥 먹고 오래."
"그럼 순댓국 먹으러 가자."
"그럴까?"
아빠와 나는 밥을 먹고, 6년 만에 옆집 형님 스튜디오에 찾아왔다.
내가 근황을 밝히기 위한 매스컴으로 선정한 단 하나의 프로그램 옆집 형님.
근황을 밝히자고 마음을 먹게 된 계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내 얼굴은 어렸을 때 외모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어딜 가든 어차피 알아본다.
무엇보다 크면 클수록 미의 정점을 찍겠다는 듯 시선을 집중시키는 외모였다.
마스크를 벗는다면, 나를 모르는 사람들의 시선도 전부 사로잡을 정도로.
그리고 옆집 형님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옆집 형님의 열혈 시청자기 때문이다.
대기실에서 아빠 옆에 착 앉아서 과자를 먹고 있으니.
내가 엄청 커졌다는 것을 실감했다.
훌쩍 커버린 나를 보자 다들 당황한 듯 했다.
그때 옆집 형님 고정 출연진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세상에... 시윤아 엄청 컸다~"
"안녕하세요~"
"와... 너무 예쁘게 잘 큰 거 아니니?"
우리는 리허설을 마치고, 나는 교복으로 옷을 갈아입은 뒤 메이크업을 받고 있었다.
오랜만에 메이크업을 받아서 그런가, 거울을 보니 눈에 필터를 낀 것 같은 효과가 나타났다.
아빠가 나를 보고 경악했다.
"우리 딸 어디 갔지...?"
"뭐래, 까불지 말고 옆에 앉아."
"응..."
아빠를 발견하고 아빠의 팬인지 눈을 반짝이는 메이크업 아티스트.
아빠는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닳아, 보지 마."
"싫은데~ 계속 봐야지~"
결국 핸드폰까지 들고 촬영한다.
나는 한숨을 쉬며, 내 긴 머리를 땋고 있는 직원의 손놀림을 지켜보았다.
휘릭휘릭 하니 땋여진 머리가 뒤로 묶였다.
"오... 예쁜데요?"
서로 대화를 하면서,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만족스럽다는 듯이 나를 꾸몄다.
본방이 시작되고, 나는 아빠를 따라서 반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를 처음 본다는 듯 놀라는 연예인들에게 손 인사를 했다.
"안녕~"
"시윤이 와... 엄청 예뻐졌다~"
이젠 정확하게 시윤이라 발음하는 사람들.
나와 아빠는 교탁 앞에 서서 말했다.
"나는, '빌보드를 휩쓸고' 에서 온 지호야~ 반가워"
아빠는 30대 중반 같다가 관리를 받으니 다시 20대 후반 같아졌다.
나는 약간 성숙해 보이는 외모 때문에, 아빠의 늦둥이 동생 같은 이미지를 풍겼다.
"난 옆에 있는 아저씨 딸이야. 이름은 알지? 궁금하면 검색해."
아빠는 늘 똑같이 앨범을 내왔지만,
나는 딱히 활동을 한 적이 없어서, 강인성이 물어봤다.
"왜 요즘 방송에 안 나왔어?"
"음... 원래는 방송에 안 나가려고 했는데, 어차피 다들 알아보더라고."
앞에 있던 잘생긴 남성이 말했다.
"그치, 시윤이는 300m 멀리 있어도 티 나겠는데?"
"그니까, 엄마랑 아빠가 문제지, 어쩜~ 좋은 것만 쏙 빼닮아서어휴,"
내가 턱받침을 하고 미소를 지으며 말하니까, 아빠도 오랜만에 나한테 심쿵한 것 같았다.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외모로 예쁜 척을 하니 주변이 조용해졌다.
"어차피 작곡가 김지호의 딸이니까 조용하게 살 팔자는 아니라는 거지~ 그래서 나왔어."
아빠는 나를 보며 어색하게 웃더니, 주변을 보며 말했다.
"또 시윤이가 다른 건 안 보는데, 이 프로그램만 본방사수 하더라고."
""진짜?!""
"응, 그리고 만약 근황을 밝히더라도 이 프로그램에서 하고 싶다고 해서."
나는 윙크를 하며 손가락을 눈썹에 가져간 뒤 뗐다.
그리고 앞에서잘생긴 남성이 말했다.
"시윤아 남자친구 있어?"
"응."
""뭐?!""
옆에 있던 아빠까지 처음 듣는 소리라며 황당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지훈이라고 유치원 때부터 친했었어, 요즘은 김태오라고 걔랑도 친해."
"아... 남사친?"
"맞아."
옆에서 안도의 한숨을 쉬는 아빠...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인성이 다른 질문을 꺼냈다.
"이제 방송에 자주 출연할 계획이야?"
"아니? 나랑 아빠랑 같이 출연하려면 옆집 형님 제작비 박살날걸? 싸게 나오고 싶어도, 장성만 삼촌이 막아."
키 작은 남성이 나를 보며 말했다.
"에이~ 뻥치시네~ 네가 말하면 출연시켜줄 거 아는데?"
"음... 그런가? 근데 출연료 다 내 통장으로 들어와서 그러고 싶지는 않네~ 아핳"
"아빠가 안 뺏어?"
나는 잠시 웃고 있는 아빠를 봤다.
"솔직하게 아빠한텐 코묻은 꼬맹이의 푼돈일 텐데 뺏겠어?"
""와...""
갑자기 못생긴 남성이 나를 보고 말했다.
"이상형이 뭐야?"
"넌 아니야."
역시나 단호한 내 대답에, 풀이 죽은 못생긴 남성.
"너무하네 증말~"
이번엔 아빠에게 질문 공세가 시작됐다.
아빠 신곡에 나오는 춤에 대해 묻는 사람들.
거기엔 마스크를 낀 내가 같이 춤추는 영상이 있었다.
"그건 표정이 중요해!"
30대 후반을 바라보고 있는 아빠는 멍뭉미를 자랑하며, 표정을 밝게 지었고.
내가 그 모습을 한심하게 쳐다보자, 나를 발견한 연예인들이 웃었다.
그리고 아빠가 차고 있는 시계를 발견한키 작은 남성.
"와... 난 뭐가 번쩍번쩍 하길래 형광등 터진 줄 알았어."
아빠가 급하게 시계를 가렸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아빠의 시계를 확인하자 보이는 금색으로 박혀있는 왕관.
아빠는 웃으면서 시계를 풀어서 줬다.
"우와... 형, 이거 형 4년 치 연봉보다 비쌀걸?"
그 소리를 들은 빚이 많은 남성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시계를 만졌다.
"이거면 빚 탕감이야?"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빠 그거 잘 차지도 않더구먼... 그냥 줘~"
"안 돼!"
아빠는 장난감을 남에게 빌려준 아이처럼, 안절부절못하며 시계를 쳐다보았다.
"그거 시윤이 엄마가 사준 거야."
아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급하게 돌려주려는 사람들,
나는 아빠를 보며 피식 웃었다.
"와... 아빠 카메라 앞에서 거짓말했어. 저거 뻥이야."
거짓말이 아니었지만, 내 말로 인해 아빠는 거짓말쟁이가 됐고.
안절부절못하는 그 모습은 꽤나 귀여웠다.
엄마를 가지고 거짓말을 했다고 소란스러워졌다가, 내가 진실을 말해주자 진정이 된 사람들.
"그거 엄마 액세서리 있는 곳에 있긴 했어. 장난친 거 미안하니까 그림 하나씩 줄까?"
""...!""
대한민국 사람들은 나에 대해서 뭐가 그렇게 궁금한지,
내 몇 번 그림이 얼마에 팔렸다는 소리가 뉴스에도 자주 등판했다.
저번에 고민수 선생과 한종예대 실기 시험 연습용으로 했던 '452'그림을 올리자.
내 그림들의 가격이 배로 뛰었었다.
내가 지금까지 그린 유화 그림은 총 521점.
내 말로 인해 대부분 눈을 반짝였다.
나는 웃으면서 분필을 들고 칠판에 그렸다.
거침없는 손놀림에 나와 아빠를 포함한 옆집 형님 멤버들이 자리를 잡고서 나를 지켜보았고,
나는 명암까지 넣은 뒤, 손을 털었다.
한 명을 완성하는 시간이 평균 4분도 잡아먹지 않았고, 다들 입을 벌리며 바라봤다.
"자~ 선물이야. 지우지 말고 간직해~ 본방으로 확인한다?"
촬영이 오래 진행되면서 나는 앞에서 말하고 있는 아빠를 두고, 교탁 아래에 있는 간식을 먹고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촬영하는 6대의 카메라.
나에게만 포커스를 잡고 있었다.
이런저런 게임을 하면서 시간이 흘렀고, 어느새 촬영이 마무리되었다.
"시윤이 잘 부탁합니다."
아빠는 PD에게 인사를 한 뒤, 모든 사람에게 한 명씩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