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1화 〉폭풍전야. (81/99)



〈 81화 〉폭풍전야.

짧은 것 같았던 여름방학이 끝나며, 나는 선망의 시선을 받으면서 반으로 향했다.
모르는 척하고 있지만, 단발머리 때문인지 들어오는 꼬맹이들마다 내가 있는 방향을 확인한다.
마치,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장면처럼.

점심시간이 되고, 우리는 곧바로 동아리실로 향했다.
짜장면을 먹고 있는 선배들.

"게걸스럽게도 먹네..."
"좁랩 맙입업"
"존나 맞을래요? 더러우니까 삼키고 말해요."

뚱뚱한 선배 2명은 그동안 살이 확 빠졌다.
확실히 보기에는 훨씬 좋아 보인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서, 준비된 짜장면을 뜯었다.
딱 봐도 박지훈한테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짜장면 곱빼기로 2그릇과 쌓여있는 탕수육이 있었다.
확실히 처음보다는 화기애애하고 좋아진 분위기의 동아리.

나와 다연이 덕분인지, 만화부원 사람들은 자신들을 꾸미기 시작했다.
이제야 사람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랄까...

그림을 알려준다는 핑계로 다연이를 저런 눈빛으로 보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내가 슬리퍼를 던지자 꾸엑 소리를 낸다.
옆에서 깜짝 놀라는 다연이가 나를 쳐다봤다.

"다연이 그딴 눈으로 보지 말죠... 눈 뽑아버리기 전에."
"히익!"
"대답?"
"아... 알겠어...! 안 할게..."

짧아진 머리 때문에 눈을 치켜뜨면 완전히 양아치처럼 보이는 나다.
평소에 능멸의 눈빛을 가지고 노려본다면, 자꾸만 포상이라는 더러운 소리를 했던 둘은, 더 이상  눈을 못 마주쳤다.



한참 동아리 부원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태오가 불렀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고, 김태오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누가 있는지 주변을 확인하는 김태오.

슬슬 불안해진다.

평소에 내가, 주변에 있으면 자기가 모델인 줄 알고 멋있는 척 자세를 잡던 김태오다.
내 눈을 뚫어지게 보던 김태오가 얼굴을 붉히며 입을 열었다.

"다연이를 지키기 위해 다연이만 봐야 하지만, 지금 네가 너무나도 신경 쓰인다."

아... 지금까지 애써 무시하고 있었건만...
나는 오랜만에 X됐음을 감지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주변에 아무도 없다.

"이제야 내 마음을 알았다."
"몰라도 될  같은데?"

내 말을 무시하며 말하는 김태오.

"널 좋아한다."
"아... 시발."

 한마디에 김태오가 경직되었다.

"제발 좀 꺼져."
"...사람이 진심을 다해서, 좋아한다는데... 그건 무슨 반응인가."

나는 이대로 갈까 하다가, 더욱더 트러블이 생길  같아 다시 돌아보며 말했다.

"예전에 말하지 않았어?  벌레같이 생겨서 싫다고."
"내 입으로 말하기도 뭐 하지만... 박지훈보다는 잘생겼다고 생각한다."
"하... 무슨 자신감이냐, 존나 역겹게 생겨선, 더 X 같아지네."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거라고 상상하지 못한 김태오가 더욱더 창백해졌다.

"...왜... 다른 사람이 고백하면... 웃어넘기면서... 너도 마음에 있는  아닌가..."

이런 개 미친 소리를 듣고 있으니 어이가 없었다.

물론 김태오는 조각같이 잘생기고, 경호원임에도 관리라도 하는지 피부엔 잡티 하나 없었다.
여자애들이 김태오를 따르고, 반년 만에 팬클럽까지 생긴 걸 본다면, 자신의 외모에 자부할만하다.

그러나... 처음에, 거절하며 미안했던 감정은 완전히 사라졌다.
 꼬맹이는 완전 자기 잘난 맛에살고 있지 않은가.

"야."
"....."
"후회 안 할 자신 있냐?"
"...받아주는 건가."

내가 한 말을 사귀면 후회 안  자신 있냐고 알아듣는 미친 새끼의 반응에 이마를 탁 치고 싶었다.

"뭐라는 거야, 멀쩡한 줄 알았더니 박지훈보다  병신이 여기에 있었네... 소름 돋는 말 작작하고, 왜 싫은지 이유를 듣고 후회 안 할 자신 있냐고."
"....."
"너 말투부터 시작해서, 혼자 무슨 상상을 X 같이 하는지, 포즈 잡고 있는 모습 보면 역겨워서 가끔씩 진심으로 위액 역류할 거 같아."

나는 김태오의 더욱더 창백해지는 표정을 보았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역겨웠기 때문에,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혼자 잘생긴 줄 알고 자뻑하는 거 진짜 개 역겨워 알아? 그래도  좋아하는 거 존나 티내는 거 역겨워도, 다연이 옆에 있다는 거 때문에 참고  참았어."

나는 쉬지 않고 김태오에게 팩트를 꽂기 시작했다.

"개 병신 같은 우리 집고양이보다 못한 대가리 수준부터,  주변 사람들보다 잘하는 거 아무것도 없으면서 늘 가득 차있는 자신감도 존나 역겹고."

내가 다가가면서 험한 말을 하자, 김태오가 점점 멀어졌다.

"내가 싫다는 거 티내면서 참고 또 참아도, 씨발새끼가 눈치도 없이 불러내서 고백을 해? 너라면 이 X 같은 상황에서 '아하하... 그렇구나 미안 난 관심 없어~'가 가능하냐?"

김태오는 아무 말 못 하고 떨리는 동공으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후회 안 할 자신 있냐고 물어봤지? 지금도 자신감 존나 충만하던 새끼가 내가  마디 했다고 이딴 반응 하는 거 보니까, 어이가 없네... 네가 만약 박지훈이었음 눈에 뭐라도 꽂아 넣었어."

나는 김태오의 어깨를 밀치며 지나갔다.
충격을 받았는지 김태오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할 말 존나 많은데 여기까지만 하자, 그리고 다연이 없을 때 아는 척 좀 하지 마, X 같으니까."
"....."








나는 시유니가 김태오에게 불려서 나가자마자 뒤를 밟았다.

'왜... 또... 시유니...'

표정이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지만, 업무 때문에 시유니를 불렀을 거라 생각하며 뒤를 밟았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 시유니를 데려가더니...

또렷하게 들려오는 태오의 말...

태오가 아직 고백하진 않았지만... 왠지 너무나도 속상해서, 눈물이 차오르려했다.
태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결국  시유니다.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좋아한다는 소리...

차마 시유니의 대답을 들을 수가 없어서 듣다 말고 자리를 떴다.
시유니라면 금방 다시 돌아올 거라는 생각에, 휴지를 들고 아직 흐르지 않은 고여 있는 눈물을 닦아내며 자리에 앉았다.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얼굴을 식히고 있는데, 시유니는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돌아오지 않았고... 다시 눈물이 차오르려고 했다.

왜...  돌아올까...

설마... 시유니가 받아준 걸까...
사귀더라도, 시유니라면. 나 몰래 사귀자고 계획을 하는 걸까...
그때 문이 덜컹 열리고, 당황해서 나는 눈앞에 있는 만화책을 얼굴 높이까지 들었다.




내가 동아리실에 들어가자 다연이가 화들짝 놀라며 책을 거꾸로 들었다.
자신의 책을 읽지도 않는 것인지, 너무 심하게 손을 떨고 있는 다연.

다연이의 반응을 보면, 상황을 들킨  확실했다.

그래도 다연이가  상황을 계속 봤을 테니, 내가 거절한 것을 확실하게 보여줘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냉장고에서 음료수를 꺼내 마셨다.
설마  과하고 심한 욕설에 놀라진 않았을까 걱정하며...






다연이는 자신의 책이 거꾸로 들려있음을 확인했다.

'이 바보야!! 이게 뭐야... 봤을까...? 시유니라면 봤겠지... 바보 같아...'

평소의 시유니라면, 나에게 '무슨  있어?'라고 말하면서 바로 다가왔을 텐데, 시유니가 말없이 앉아있다.
그리고 태오 또한 동아리실로 들어오지 않았다.

마치, 나랑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처럼...

시유니랑 태오는 나에게 비밀로 하고 사귀자는 결정을 한 것 같았다...
나는... 나는 시유니 밖에 없는...데...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주체할  없어서, 휴지를 들면 티가 날까 봐 옷으로 닦았다.
하얀 옷깃에 화장이 묻어 나오는 게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시유니는 화장이라곤 선크림을 바르는 게 전부였기에...
시유니가 있기 때문에 울 수 없었고, 말없이 흐르는 눈물이 입을 지나 턱을 타고 내려왔다.

'완전히... 망했어...'

그리고 뒤에서 시유니가 피식 웃었다.
평소의 시유니라면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진즉에 알고 있을 텐데...

왜 웃는 거지...? 설마... 설마... 비웃는 걸까...?

망상을 하면 할수록 비참해지는 감정에, 흘러나오는 울음소리를 참기 위해 입을 앙다물고  참았지만,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방금 있었던 기분 나쁜 상황으로 인해, 감정을 추스르기 위해서 핸드폰을 봤다.
'뛰는 사람'에서 아빠가 나왔고, 숨바꼭질이라도 하는지 책장 뒤에 숨어 있다가 들킨다.
떨리는 동공으로 유연석을 바라보는 아빠.

-"살려주세요."
-"찾았다!!!!"

아빠는 유연석 아저씨를 밀치더니 도망치기 시작했고, 김정국 아저씨에게 붙잡히더니 비명을 질렀다.

-"집에 토끼 같은 딸이 있어요!"
-"알아!"

찌이이익!

-"안돼에에에! 시윤이가 집에서 기다리는 데에!"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 누가 보면 내가 범죄 저지르는 줄 알겠다!"

나는 그 애처로운 아빠의 모습에 피식 웃었다.
그러다 갑자기 뒤에서 '흑' 소리가 짧게 들렸고,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떨리고 있는 다연이의 등.

100% 울고 있는 것이었다.

'왜?!'라는 생각을 하기 전 나는 빠르게 다연이에게 달려갔다.
"다연아! 왜 그...."

다연이가 나를 밀치더니, 문을 콰앙! 닫고 밖으로 나갔다.

"......아...?"

나는 다연이의 모습에 사고가 정지됐으며, 멍한 눈으로 철문을 바라봤다.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문을 열고 나갔지만 다연이는 없었다.
나는 주변에 있는 3학년 여자 화장실을 전부 뒤졌다.

보이지 않는 다연.

나는 주변의 시선을 무시하며, 또 다른 화장실로 들어갔더니, 담배연기와 함께 꼬맹이들이 나를 아니꼽게 쳐다봤다.
그리고, 나에게 다가오는 꼬맹이.

"너  만났다."
"상대할시간 없어, 비켜"
"와... 말하는 뽄새 봐, 소문대로 싸가지 존나게 없네."

나에게 다가오기에 밀치며 말했다.

"다연아!!!"
"쳤냐? 이 시발년아?"

갑자기 내 머리를 잡으려는 꼬맹이.
가볍게 피하며, 발로 배를 강하게 밀자, 엎어지더니 화장실 끝으로 주르륵 밀려나갔다.

"바쁘다니까... 귀찮게 하네..."

나를 보고 흠칫하는 여학생을 보며, 정색하면서 말했다.

"야, 나랑 같이 다니는 여자애 봤냐?"

고개를 빠르게 저으며 답하는 둘.

""아뇨.""

나는 곧바로 밖으로 나가서 빠르게 다연이를 찾았다.
중간에 만난 김태오를 지나치려다 어쩔  없이 말했다.
공과 사는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다연이 봤냐?"

내 눈을  마주치는 김태오.

"모른다."
"자랑이다? 존나 당당하게 말하네."

내가 김태오를 스쳐 지나가려고 하자.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김태오가 내 팔을 강하게 잡았다.

"놔라. 지금 말 섞을 시간 없어."
"싫다. 너는 나를 어디까지 무시하려고 하는가."
"내가 너 이러는 거, 역겹다고 안 했냐? 네가 보호해야  다연이가 사라졌다고, 놔라 빨리."

나는 김태오에게 잡힌 팔을 빠르게 빼며, 박지훈에게 전화했다.

"어디냐."
-"매점."
"이 개새끼 얼마나 더 처먹으려고, 그만 처먹고 다연이 찾아 안보..."

나는 하늘을 보다 다연이를 발견했다.
울고 있던 다연이는 나를 보자 뒤를 돌았다.
나는 전화를 끊고 다연이에게 달려갔다.









시유니한테 미안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차마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나는 시윤이를 밀치고 동아리실을 나와, 머리를 식히고자 옥상으로 올라갔다.
잠시 내 스스로의 망상일 뿐이라며 마음을 추스르고 있을 때, 시유니가 나를 급하게 찾는지 정원을 뛰어다녔다.
시유니는 나를 비웃는 그런행동을 할 친구가 아니다.

역시나 내 스스로의 오해일 뿐이라며 마음을 진정시켰고,
나를 급하게 찾는 거 같아 빨리 내려가야겠다는 생각을  때, 시유니가 태오랑 마주쳤다.

시유니를 붙잡는 태오...

나를 급하게 찾다가도, 태오랑 대화를 나눈다.
뒤를 돌고 있는 시유니의 표정은 알  없었지만, 태오의 표정은 복잡해 보인다.

나를 보았을 때는 한 번도 짓지 않았던 표정...

"하아... 거짓말... 이었구나."

차마 더 이상 보지 못하고 뒤를 돌았다.
시유니를 처음 만났을 때의 강렬한 기억이 떠올랐다.

너무 이쁘고 아름다웠던 작은 여자아이가.
자신에게 날아온 장난감을 잡더니, 사물함에 내리치며 부수는 모습은  마음을 사로잡았다.

어차피... 처음부터 시유니에 비하면, 모든 것이 부족했던 과거를 떠올리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더는... 웃으면서 시유니를 못 볼 것 같은 마음에, 더욱더 눈물이 흘러내려 옷을 적셨다.

"난... 난, 진짜로... '시윤이'밖에 없었는데에...흐극... 너무해...너무...해..."

다시   '시윤이'가 나를 비웃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도 강렬하게 올라오는 충격에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쾅!쾅!쾅!

"다연아!!!"
"....."
"다연아!!! 왜 그래!!"

정말 몰라서 말하는 걸까... 아니면 나를 놀리기 위해 그런 걸까...

"다연아아아!!!"
까앙!!!까앙!!!

갑자기 들리는 이상한 소리에 나는 경악했다.

까아아앙!!!! 까아아앙!!!!

굉음이라 생각해도될 정도의 소리가 울리더니 격하게 흔들리던 문고리가 튕겨져 나왔고, '콰앙!' 소리가 나도록 문을 벌컥 열고는 시윤이가 나왔다.

양손에 소화기를 들고 있는 채로 땀에 젖은 채로 헐떡이는 시윤이...
옆으로 소화기를대충 던지더니 나에게 달려왔다.
지친 시윤이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흔들렸다.

"시유나..."
"다연아!"

나를 끌어안는 시윤이의 품은...
떨쳐내고 싶지만, 너무나도 익숙한 시유니의 품은...

설움이 잠깐이나마 사라질 만큼 지나치게 포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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