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9화 〉평화로운 하루(2)
내가 바꿔 신은 신발은 발목까지 감싸고 있는 운동화였는데.
아빠는 내가 다른 신발을 신은 것을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것도 국산 중형차 가격대의 신발이라, 엄청 조심스럽게 신어봤는데 아빠의 반응이 이해가 안 가서 고개를 갸웃했지만.
내 얼굴을 본 아빠가 웃었다.
"그건 매물 좀 있어서 돈만 있음 구할 수 있어, 막 신어도 돼."
"...허."
내가 이전에신었던 것은, 아빠가 태어나기도 전에 100켤레가 풀린 신발이었고, 현재 남은 물량이 세계에서 12개뿐이라고 했다.
보유하고 있는 사람의 이름이 등록되어있을 정도의 희귀템을, 바닥에 겁나게 비볐으니...
아빠의 표정과 마음이 이해가 갔다.
신발을 보던 아빠는 장난감을 본 것처럼 즐거워하더니, 나에게 이런저런 신발을 보여줬다.
"이거 옛날에 시윤이 엄마 사준 건데 한 번도 안 신었거든? 지금 가격 60배 뛰었다?!"
아빠는 가지고 있는 땅값이 120배가 뛰어도 저만큼 즐거운 표정을 짓지 않을 것이다.
돈에 관해선 그냥 그렇구나~ 이 수준이지.
밤새 떠들던 아빠를 소파에 앉아서 놀아주었고, 어느덧 아빠도 지쳤는지 내 옆에 앉았다.
"아빠가 신어도 된다고 한 것들만 신어줄 수 있지?"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3시간동안 설명하면서 신어도 된다고 한 거 뭐였는지 골라보라고 하면 10%이상 고를 사람이 있을까?"
"....."
나는 풀이 죽은 표정을 하는 아빠를 보고 웃었다.
"그치만~ 나는 기억했지."
"아핳"
아빠는 이제서야 내 옷차림이 눈에 띄었는지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와이셔츠 단추는 풀어헤쳐서 검은색 온더아머 밑으로 복근이 드러났다.
나는 한참 잔소리를 들은 뒤, 잠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거실로 나와 소파에 앉았다.
"딸, 결혼 할 거야?"
"음... 안 할 거 같은데 왜?"
"...아빠는 당연히 안하는 게 좋지,"
"근데?"
"딸 안하면 우리 김씨 씨가 끊겨..."
"아핰, 그럼 아들을 낳았어야지, 어차피 딸이라서 끊기거든?"
"그런가?"
"결혼은... 만약 모든 걸 전부 나보다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한 번 생각해 볼게."
"없겠네."
"맞아, 없어."
JSM본사.
이번에 본사를 이전해서 새로 지은 JSM, 더욱 거대하고 웅장해졌다.
국내 1위 소속사는 진즉에 갈아치웠고, 세계에서 손꼽는 소속사가 되었다.
나는 지금 새로 지은 JSM 본사, 드리밍 전용 연습실에 있었다.
나는 춤을 꽤나 잘 춘다.
아빠랑 놀아주기 위해서 시작한 춤이지만, 드리밍 이모들이랑 놀다보니 자연스럽게 춤 실력이 늘어났다.
키는 이모들에 비해 살짝 작지만 도도한 표정과 길쭉길쭉한 팔, 다리로 엽기 춤을 추니 깔깔거리는 이모들.
처음에 내 비율을 보고 감탄하며 부러워했던 이모들이다.
유아 이모는 어렸을 적부터 운동을 해서, 비율이 엄청 좋았지만 난 키가 작음에도 그거보다 더한 비율을 가지고 있었다.
"어때?"
과거 개다리 춤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다리를 한 쪽씩 들면서 털어내듯 추하게 추는 춤은, 이모들을 웃기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리제 이모와 유아 이모가 어떻게 하냐고 물어보면서 다가왔다.
"예능에서 해두 돼?!"
"그럼, 내 전매특허라는 것만 밝히면 돼."
""당연하지!""
춤을 추며 놀다가 아빠가 연습실에 들어왔다.
나를 발견한 아빠가 화를 냈다.
"김시윤!!!"
나는 그런 아빠의 모습을 보고 자연스레 뒤로 돌아서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내 옷차림은 몸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딱 달라붙는 옷이었기에.
나는 어차피 집에서 봐야하는 아빠에게잡혀줘야 했고, 이모들은 아빠에게 혼났다.
난 아직 15살이라며...
억울한 표정을 짓는 유아이모, 나보다 어릴 때 더한 옷을 입었었다.
"빨리 옷 갈아입어."
"칫."
"어어? 반응이그게 뭐야."
"아빠, 솔직하게 이게 뭐가 야해? 긴 바지에 체크무늬 티에 가릴 거 다 가렸는데? 맨살 내놓는 것도 아니고."
"...사방이 거울인데 그 말이 나와?"
내 스키니진은 거의 엉덩이가 먹으려고 하고 있었고, 상의도 마찬가지였다.
"하핳. 죄송"
"빨리 갈아입어."
"넵."
평소에 입던 옷으로 갈아입은 내가 아빠에게 다가가면서 방금 유아이모와 리제이모에게 알려줬던 춤을 추자, 다들 빵 터졌고.
아빠가 또다시 달려오기에 그대로 돌아서 도망쳤다.
김지호는 시윤이를 잡지 못했고, 사라진 시윤이를 찾다가 복도에서 장성만과 마주쳤다.
"허억...허억..."
"지호야 왜 그래?"
"형, 시윤이 봤어요?"
"시윤이? 아까 12층에서 화장실 가는 거 같던데."
"아, 거기 갔었구나, 고마워요."
"애 좀 그만 잡아라. 다 컸더만."
"걘 좀 더 혼나야 돼요... 혹시 오늘시간 비어요?"
"소주나 한 잔 할까?"
"전화 할게요~"
결국 12층 여자화장실 앞에 선 아빠.
"김시윤! 거기 있는 거 알아! 나와!"
"아빠가 들어와 보시지?!"
"야!!"
내가 여자화장실의 문을 열자마자, 아무도 없음에도 고개를 돌리는 아빠.
아빠가 나를 잡으려하기에 뒤로 훌쩍 물러났다.
"후후후훗. 잡아봐라~"
"너... 내가 들어가면 오늘 후회 할 줄 알아. 빨리나와."
그때 여자 연습생들이 아빠를 보고 당황했다.
"앗?! 안녕하세요!!!!"
거의 90도 이상으로 머리를 숙이는 사람들.
얼핏 봐도 나랑 동갑내기거나 아니면 조금 많아 보인다.
나에게도 인사를 하길래 나도 같이 고개를 숙였다.
"훗, 들어와 보시지?"
방심했다.
아빠의 미소를 보고 눈치 챘어야 했다.
8명 정도의 연습생들이 화장실에 볼일이 있어서 들어온 줄 알았는데,
갑자기, 내 뒤로 오더니 팔과 허리를 잡고 밀기 시작했다.
"앗! 뭐해요!!!"
손을 풀려면 충분히 할 수는 있지만, 여려 보이는 이들에게 힘을 쓰기도 애매했고,
풀라고 차마 쌍욕을 박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고... 여자에게는 힘을 안 쓰는 그런 내 성격을... 아빠도 알고 있었다.
"하지마!!!"
아빠는 내 팔을 잡더니 씨익 웃었다.
"따라와."
나는 아빠에게 질질 끌려가는 모양새가 됐고, 지나치는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며 살려 달라 말했지만 웃을 뿐이었다.
사람이 말하면 믿어줄 줄 알아야지...
물론 믿었어도 아빠에게 뭐라고 할 사람은 없었겠지만...
아빠는 작업실에 나를 집어넣더니 문을 쿵 닫았다.
"아...아빠?"
"뭐."
"말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솔직히 밖에서 혼내는 건 오반데?"
"그러엄... 당연히 말로 해야지."
"....."
아빠의 끝없는 잔소리가 시작됐다.
기억력이 좋은 것이 얼마나 고통이냐면... 몇 번째 하는 말인지, 정확하게 기억한다.
"그만! 잘못 했어! 아, 알았어! 16살 되면 다시 생각해볼게 됐지? 아빠 그거 정확하게 21번째 말하는 거야."
"후후... 우리 딸 기억력은 아빠가 더 잘 알지..."
나는 아빠에게 매달렸다.
"알겠어, 그만해... 몸매 들어나는 옷은 17살 그때 다시 얘기합시다."
"후우... 2년 뒤다?"
"오케이."
"그전에 또 그러기만 해봐. 사람들 지나다니는 데서 손들게 할 거야."
"15살인데...?"
"응."
나는 결국 다시 드리밍 이모들 품에 맡겨졌다.
"뭐하다 왔어?"
"아빠한테 잔소리 들었어."
"...지금까지?"
"응."
평상복을 입고 까불다 땀 흘리면 찝찝해서,
나는 그냥 탈의실에 들어가서 트레이닝 복을 입었다.
멀리서 유아이모가 방송을 하고 있었나 보다.
나는 마스크를 쓰고, 계획했던 일을 했다.
드리밍 멤버는 5명이지만 6명의 사람이 춤을 추고 있었다.
모자와 마스크, 안경까지 쓰고 있는 1명.
새로운 연습생인지, 드리밍에 비해 춤을 더럽게 못 췄다.
그럼에도 시선을 끄는 건 아마 비율과 몸매 때문일 것이다.
팔을 올릴 때 보이는 선명한 복근.
촌스러워 보이는 연보라색 아디오스 츄리닝이 매력적이게 보였다.
잠시 쉬는 타이밍에 트레이닝 복을 입은 여성이 멤버들에게 음료수를 가져다주는 모습을 보면, 역시나 연습생인 것 같았다.
- 누구임?
- 연습생?
- 드리밍 신입 받음?"
- 그것도 질문임? 정상을 찍었던 드리밍이 신입을 받겠냐?
- 솔직히 지금 노래내도 팬 층 엄청 두꺼워서 1위는 기정사실화임. 다들 스케줄 때문에 안하는 거지.
"오 반응 봐, 다들 연습생이냐고 묻는데?"
나는 약속대로 말을 하지 않고 바디랭귀지를 했다.
화면 속에선 내 안경테만 살짝 보이거나 가끔씩 눈이 살짝 보이는 정도였기에, 아무도 내가 누군지 예측하지 못했다.
다들 예상하지 못하는 이유는, 심각하게 좋은 내 비율이 화면에 정확하게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옆집 형님에 나올 때도, 전신 샷은 본방에서야 잠깐잠깐 나왔지 너튜브엔 상반신만 자주 나왔다.
그리고 드리밍 팬들은 나를 아직 어린아이로 보고 있는사람들이 많았다.
아무튼, 나는 자연스럽게 빠져서 다른 멤버 이모들이랑 놀고 있었고.
방송을 하고 있는 유아 이모는 새로운 연습생이라며 둘러댔다.
내가 모습을 밝히지 않는 이유는, 옆집형님과의계약 때문이었다.
어디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고, 옆집형님에 나온다면, 내 출연료를 5배로 해준다는.
이번에 보라색 아디오스 트레이닝 복을 입은 연습생이 나라는 것은 옆집형님에서 공개할 영상이다.
아빠는 나를 집 안까지 데려다주고 나서야 장성만과 술자리를 하러 나갔다.
"많이 먹고, 잘 놀다 오고, 취해서 나 괴롭히지 마."
"알겠어, 조금만 마실게"
"갔다 와."
"알겠어~ 집 잘보고 있어."
"응."
아빠는 30대 후반이 되자, 전처럼 나에게 맨 정신으로는 애교를 부리지 않았다.
애교를 부린다고 해도 이미지 상 전혀 어색하지는 않지만....
아빠의 동안은 전 세계에서 유명한 수준이었다.
동양인은 나이를 안 먹는다는 인식이 생길 정도로.
하긴 이번에 콜라보한 아빠의 극성팬인 외국인 남성이 24살이었는데, 아빠보다 삭았다.
그것 때문에 더욱 유명해진 것도 있었다.
외모를 떠나서 작곡가이자 래퍼인 아빠는 크래미 어워드 1위를 할 때부터 레전드 반열에 올랐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빈번하게 이루어지던 동양인 비하가, 아빠 하나 때문에 사라질 정도였으니...
'Fuck, Black and White'
얼핏 보면 자극적인 제목이지만, 노래 하나만으로 레전드의자리를 지키는 아빠의 랩이, 한동안 빌보드 순위권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런 아빠가, 집에만 박혀있는걸 보면 가정사는 아무도 모르는 게 맞다.
댓글을 보다보면 사람들은 아빠가 돈을 펑펑 쓰고 다니는 것처럼 말하지만, 무슨 원기옥을 모으려는지 아빠의 통장에 살벌한 금액이 찍혀있다.
사람들이 예측하는 금액 이상으로.
이 속도로 계속 벌어들인다면, 아마 평생을 억 단위로 매일 써도... 다 못 쓸 것이다.
내가 사람들 돈벌이에 아빠 미만 잡이라고 하는 것과 내가 가진 돈도 아빠에 비하면 푼돈이라고 하는 게 괜히 그러는 게 아니다.
그냥 팩트니까...
장성만도 돈벌이로 아빠에게 명함도 못 내민다.
한성의 후계자 이진석도 이젠, 아빠한테 현금 박치기로는 못 덤빈다.
그런 엄청난 돈을 벌어들임에도 쓸 생각은 안 하고 작업실에 박혀서 비트를 찍어내고 있으니...
아빠는 거의, 이슬을 먹으며 황금알을 낳는, 아니 황금알을 양산해내는 '공장 거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