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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화 〉평화로운 하루(2) (92/99)



〈 92화 〉평화로운 하루(2)

비는 어느새 그쳤는지, 이불속에서 눈을 뜨니 생각보다 상쾌했다.
이불을 만져보니 겉에만 눅눅해졌을 뿐, 안은 뽀송뽀송해서 촉감이 나쁘지 않았다.

옆에서 내 몸 위로 다리를 올리고 있는 민지만 없었다면...

조심스럽게 민지의 다리를 옆으로 밀친 뒤, 이불을 빠져나와 일어나니 남자애들이 멀리서 뛰고 있었다.
나는 런닝머신 위가 아니라면 딱히 달리기에 취미는 없어서, 방으로 들어가 낚싯대를 가지고 계곡으로 향했다.
대야에 바가지를 써서 물을 담고, 그늘로 질질 끌어온 뒤 낚시를 시작했다.
잠시 후 피래미 한 마리가 잡힘과 동시에 남자애들이 다가왔다.

"어우 씨, 땀 냄새 개 쩔어, 좀 씻어라."
"계곡에 들어가면 되지,  씻냐?"
"와, 그거 환경오염이다? 물고기 다 뒤지겠네. 외래종을 죽일 게 아니라 너부터 잡아야 돼."

내 모습을 보던 박지훈이 말했다.

"그거 너희 아버지 티냐?"
"어."

나는 엄청나게 헐렁한 하얀 박스 티를 입고, 쪼그려 앉아서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낚싯대는 어디서 났어.'
"아빠가 낚시 좋아해서 우리집에 많아, 민물용이야 이거."

때마침 잡히는 물고기, 이번에 꽤나 큰 놈이다...

"오..."

나는 접었던 다리를 펴며 자세를 잡고는 순간 힘을 주어 탁하고 끌어올렸다.
잡힌 물고기의 대가리를 잡고, 자연스럽게 바늘을 뽑은 뒤 대야에 넣자 눈을 반짝이는 준수.

"준수야 거기 있으면 바늘에 걸린다?"
"넵!"

준수가 반대편으로 왔고, 나는 바로 미끼를 꽂고는 다시 물속에 던졌다.

"하아암..."
"피곤하면  자지, 아침부터 웬 낚시야."

나는 하품으로 고인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재밌잖아."

주변에 맛있는 매미소리도 강하게 들려오는 것이 완벽한 힐링  자체였다.
박지훈은 대야에 있는 물고기를 확인하며 말했다.

"매운탕 끓여먹으면 기가 막히겠다.“
"응~ 니꺼는 없어"
"뭔 내가 말만하면..."

나는 물고기를 유심히 보는 준수를 봤다.

"준수야 해보고 싶어?"
"네!"

자리에서 일어나며, 박지훈에게 말했다.

"준수랑 같이해서 많이 잡아놔~ 아침으로 먹게"
"오케이."

나는 길게 연결되어있는 빨랫줄을 발견한 뒤, 모기장 안에 있던 이불들을 햇볕에 널기 시작했고, 언제 일어났는지 민지와 다연이가 도왔다.

"산책이나 갈까?"
"오... 완전 좋아."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서 챙이 넓은 모자를 쓴 뒤,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가끔씩 나타나는 벌레를 보고 기겁하는 다연이지만, 그래도 즐거워 보였다.

한참을 걷고 있을 때, 뱀을 보고 기겁한 민지가 다연이랑 같이  멀리 도망갔다.
별 생각 없이 뱀의 머리를 발로 걷어차자, 숲속으로 날아간 뱀.

"".....""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내 모습을 보고, 놀란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다가오는 둘이었다.







계곡으로 돌아오니 적당히를 모르는지 대야 안에 가득해진 물고기를 보며 혀를 찼다.

"미쳤냐..."

아까 잠깐 했을 때, 잡히는 속도를 보고 명당임을 예상은 했지만,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잡혀있었다.
나는 맛이 좋지 않아서 식용으로는 맞지 않는 물고기를 풀어주며, 빠르게 손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운탕을 위해 박지훈에게 부재료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나는 물론, 매운탕을 맛있게 끓일 자신은 없다.

그래서 손질만 해준 뒤, 다연이에게 넘겼고, 다연이가 만들기 시작했다.
박지훈은 부재료를 사면서 새총을 사오더니, 갑자기 잠자리 맞추기를 하고 있었다.

"어휴 좀... 초딩이냐..."

저 병신새끼가 나이 값을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정말 감탄스럽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나도 옆에서 새총을 쏘고 있었다.
솔직히... 존나 재밌었다.






배달음식도 시킬 수 있었기에, 우리는 점심에 치킨을 먹고 다시 물놀이를 즐겼다.
다연이는 내가 낚시하는 모습을 보더니 궁금했는지 다가왔고.
나는 다연이에게 낚시하는 법을 알려줬다.

"다연이네 아빠가 낚시 엄청 좋아해."
"응, 알고 있어."
"다연이도 같이하면 엄청 좋아하실걸?"
"그런가?"
"당근이지~"
"난 다연이지~"
"아핰? 좋은데? 내 스타일이야~"

저녁이 돼서 고기를 구워먹으며, 우리는 힐링 여행의 마지막을 즐겼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 빠르게 집으로 향했다.








"따알!!!"

아빠는 게임을 하다가 내가 문을 여는 소리를 듣자마자 달려왔다.

"나 왔어~"
"재밌었어?"

나는 아빠에게 핸드폰을 줬다.
우리의 민박집부터, 먹었던 음식들, 비오는 날 밤에 놀았던 텐트 안까지.
아빠는 동그란 눈으로 사진들을 쳐다봤다.

"여기 어디야?"
"왜?"
"다음에 아빠랑 같이 갈까?"
"다연이랑도. 진짜 좋긴 하더라 재밌었어."
"오오오...."

아빠는 내 핸드폰을 들고,  짐을 전부 받았다.
핸드폰을 보고 있는 아빠에게 손을 내밀자, 아빠가 핸드폰을 다시 돌려줬다.

"살 많이 탔네?"
"티나?"
"응."

내 피부는 너무 하얀 톤이라, 빨갛게 올라왔을 뿐, 어지간해서는 갈색으로 타지는 않았다.
나는  캐리어를 열어보는 아빠에게 말했다.

"왼쪽에 팩 안에 들어 있는 게 입은 것들이고, 오른쪽은 안 입은 거야."
"웬일이래? 깔끔하게 정리해놨네...?"
"남들 앞에서 대충하면 아빠 이미지 깎일수도 있잖아."
"우와앙~~ 시윤아아~"
"살 타서 따가워 만지지마."
"응..."

나는 고민 없이 샤워실로 들어갔다.
씻고나오자 아빠가 내 짐정리를 끝내 놓은 상태였다.

"오늘은 운동 안 하게?"
"응, 피곤해."
"아직 아침인데? 지금자면 밤에 잠 안와."
"그래도 피곤해, 1시간만  테니까 깨워줘~"
"알겠엉~ 아빠 핸드폰 줘 사진 구경하게."
"자, 여기"

나는 아빠에게 핸드폰을 주자마자 방으로 자러 들어갔다.








나는 한참이나 딸의 핸드폰을 봤다.

보통 15살 여자아이라면, 비밀이 많아야하지만, 시윤이는 나에게 숨기는 것이 없었다.
시윤이가 어렸을 때, 숙제로 써가던 비밀 일기를 훔쳐봤을 때도,  훔쳐보냐며 던져주더니 자러가지 않았던가...
그런 모습들을 보면, 아내와 너무나도닮았다.

이번 여행을 허락하기까지 2주간의 고민이 필요했지만, 역시 보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사진 속에서 시윤이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내가 너무... 가둬놓는 건가..."

지금과 달리 매우 평범했던 내 15살 시절은 어땠는지 생각해보면...
지금 시윤이는 한참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나누고, 웃고, 떠들며, 친구들과 뛰어놀아야 할 나이에...
한국 안에서 너무 유명한 나 때문에, 갇혀 살아야 하는 그 모습은 너무안쓰러웠다.

그건 다연이도 마찬가지인지, 새장 밖으로 나온 새처럼 자유를 찾은 것 같은 밝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이는 시윤이의 귀걸이.
수영복을 입지 않을 때는 항상 차고 다니는 것이... 자신의 엄마를 생각하는  같아 너무 미안하다.
나는 이런 저런 생각에 문득 하늘을 보며 웃었다.

"자기야 내일 시윤이 데리고 보러갈게~"




나는  청소를 한 뒤, 저녁밥을 만들고 시윤이를 깨웠다.

"시윤아,  먹어."

한참을 흔들어야만 잠에서 깨어나는 모습도 너무 닮았다.

"으응?"
"밥 먹어야지, 오늘 영화 볼까?"
"으응... 그...래..."

이제 알파와 베타만 침대에 올려두면, 고양이들이 시윤이를 계속 건드려서 알아서 일어날 것이다.

"잠깨면 나와~ 아빠 심심해."
"...으응."





"하아압..."

나는 눈앞에 보이는 하얀 털 뭉치와 점박이 털 뭉치를 툭툭 건들다가, 몸을 일으켰다.

"내 핸드폰... 아..."

기지개를 펴며 거실로 나오니,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나왔어?"
"응.  핸드폰."
"소파 위에 있어."

나는 핸드폰을 들고, 잠옷 주머니에 넣으며 식탁에 앉았다.

"내일 엄마 보러 갈까?"
"그러자, 아 맞다. 할아버지네 언제 갈 꺼야?"
"왜?"
"이번에 놀러갔던 애들이랑 같이 가기로 했어."
"시윤이 방학이기도 하니까, 음... 다음주나 다다음주에 갈까?"
"날짜 정해지면 말해줘,  친구들 데리고 간다고."
"알겠어~"

밥을 먹은 뒤, 아빠가 만든 간식을 들고 우리는 이번에 개봉한 히어로 영화를 봤다.
과거 내가 캐스팅에 응했다면,  영화의 아역으로 시리즈마다 나왔을 것이다.
역시 한성과 현대의 기술력을 눈으로 확인하며, 영화를 감상하는 도중 화면에 햄스터가 나왔다.

"귀엽다~"
"응."
"햄스터 키울까?"
"몇 마리 키우려고 하는지 모르겠는데, 알파랑 베타 생식 주려고? 생태계 피라미드 형성하고 싶은 거면 꽤 많이 필요할 듯."
"....."
"둘은 행복하겠네."

나는 아빠에게 현실을 알게 해주며, 한참 영화를 보다 오랜만에 아빠와 소파에서 잠에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납골당에 다녀왔다.

쌓여있는 편지들을 아빠가 확인하며 정리하는 모습을 보면, 엄마의 지인도 꽤나 많다는  알 수 있었다.
장성만과 드리밍 이모들, 지은 이모도 최근에 다녀갔나 보다.
엄마를 너무나도 사랑한 아빠지만, 기일은 유독 티 나게 챙기지 않았다.
기일에 여기에 오지도 않았고.

이유는 뭐...
엄마의 기일이 내 생일이기 때문이다.
 때마다 한참을 우는 아빠도, 내 생일날 나와 같이 여기에 와서, 울지 않을 자신은 없었던 거겠지.
다만, 최근에는 내가 잠을  때, 새벽에 혼자 다녀오는 아빠였다.

"아빠."
"...응."
"내 생일날도 같이 오자."
"...알겠어."





아침부터 화창한 것이, 내 기분을 업 되게만들었다.
아빠랑 운동을 하다가, 씻은 뒤, 아빠 차에 탔다.

"끝나면 전화해."
"알겠어."

요즘 노랑빛 미술학원에 잘 가지 않은 거 같아서, 나는 오랜만에 고민수 선생의 얼굴을 보러왔다.
들어가니, 안준태 교수와 대화를 하고 있는 고민수 선생.
나를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언제 이렇게 컸냐는 듯이 쳐다보는 안준태 교수.

"안녕하세요~"
"시윤이 왔어?"
"안 교수님 계셨네요?"
"그래... 그림만 주고받았지 이야... 몰라보게 컸구나."
"알아는 보잖아요?"
"아하핳, 말투를 보니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야."

안준태 교수는 어느새 다시 대화에 집중하며 고민수 선생을 쳐다봤다.
 멀리 꼼지락 거리는 것을 보고, 단 번에 누군지 알아챘다.

"서현 쌤!"
"어머! 시윤이니?!"

고민수 선생의 아내 오서현 선생님을 반갑게 불렀다.

"진수는요?"
"학원 갔지~"
"뭐 하고 있었어요?"
"재료 부족한 거 찾고~ 주문하려구~"

내가 오서현 선생과 대화를 하고 있자, 안준태 교수가 다가왔다.

"그림을 그리는 걸 부탁해도 되겠니?"
나는 안준태 교수를 쳐다보고는 웃으면서 끄덕였다.
"어렵지 않죠."
나는 연필을 들고 기준선만 잡아주기 위해서 연하게 그려갔다.
고민 없이 쭉쭉 뻗어 내리는 선에, 다들  그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밝은 느낌을 줄 것처럼 연한 노란색을 사용하다가, 곧바로 검은 계열의 색을 사용했다.
캔버스 안에, 어느새 축축한 물기가 묻어나오는 듯한 느낌을 가진, 어두운 그림이 완성되어 있었다.
눅눅하고 축축해 보이는 어둠속에서, 빛이 감싸는 곳은 보는 이에게 안락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이 그림은 동아리 부원들과 놀러갔을  보았던 비오는 밤이었다.


그림에 집중하다보면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가고 있는지 모른다.
어느새 저녁이 다가왔고, 아빠에게 데리러 와달라고 전화했다.

"먼저 가볼게요~"
"잘 가~"
"조심히 들어가렴~"

나는 이들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집으로 향했다.










동아리끼리 여행을 간 뒤로, 아빠는 더욱더 나를 풀어주기 시작했다.
처음엔 극도로 불안해하더니, 큰길로 다니면서 마스크와 안경을 잘 쓴다면, 그렇게 터치하지 않았다.

물론 아빠를 두고 내가 어디 돌아다닐 성격은 아니었지만.
PC방 같은 경우는 이제 아예 말리지 않았다.

방학이 끝나고, 내가 싸움을 잘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학교에서만 퍼진 게 아니라, 그냥 언론에 올라왔다.
완전 날라리에 양아치라고...

아빠의 직업상 작은 구설수에도 쉽게 입방아에 오르기 마련이라서 꽤나 화제가 되었다.
나는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내 주변 인물들은 신경이 많이 쓰이는 듯 했다.

"시유나! 해명해야 되는  아니야?"
"내가 구체적으로 누구 괴롭혔다는 소리는 없잖아."
"...응."
"그럼 뭐,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없는 얘긴 아니니까."
"하지만..."

 단호한 말에 나를 걱정하던 다연이가 풀이 죽었다.
나는 피식 웃으면서 다연이에게 말했다.

"학교 끝나면, 같이 PC방 갈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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