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평화로운 하루(2)
논란은 내가 생각한 거보다 커졌고, 꼬리에서 꼬리를 물며 부풀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남을 씹기 좋아하는 대한민국 사람들 특성상, 옆집형님에 나온 모습들은 전부 평소랑 같은 거라느니...
그리고... 엄마 없이 커서 인성이 그런 거라는... 몇몇...
이번 일에 대해 아빠의 분노는 생각보다 컸고, JSM은 시간과 인력, 돈을 투자해서 악플러들에게 실전이 뭔지 보여주고 있었다.
"시윤아."
"응?"
"핸드폰 아빠 줘."
꽤나 단호한 아빠의 목소리에 나는 피식 웃었다.
"내가 상처 받을까봐?"
"....."
솔직히 김지호의 딸로 태어나서, 악플을 처음 받아본 것도 아니다.
부족한 것 없이 자라고, 부족한 점 하나 보이지 않는 외모와 재능들로 인해서, 악플은 수없이 많이 받아왔었다.
아마도 김지호의 딸로 태어난 시점부터,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생겼겠지...
그만큼 아빠의 사생팬들도 많았으니까.
주변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엄마도 악플을 꽤나 많이 받았다고 한다.
가진 것도 없이 외모로만 희대의 천재인 아빠를 홀렸다며.
근데 말로만 들어온 엄마의 성격은 독불장군 저리가라였다.
성격은 4차원의 끝을 달리며, 다혈질에 심각한 독설가... 말로만 들으면 거의 소시오패스다.
물론 개념이 없다던가 그런 말은 없었고, 옳은 말은 꼭 해야 하는 스타일의 독설가였다고 한다.
그런 나의 엄마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 외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도 관심 없어했다고 한다.
나도 그 성격을 물려받았다고 생각하는 아빠는 평소에 걱정을 하지 않았지만, 이번일은 다르다고 생각하나보다.
나를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보는 아빠에게 핸드폰을 줬다.
"컴퓨터도 하지 말까?"
"...아니."
"알거 다 아는데, 참... 걱정도 많으셔 우리아빤."
"하하... 미안."
아빠는 잠시 고민하더니 나에게 핸드폰을 돌려줬다.
"딸, 악플 신경 쓰지 마, 무시하면 돼."
"걱정 마, 신경 안 쓰니까."
"응..."
요즘 들어 다연이와 PC방에 자주 간다.
ROL.
5 : 5 총 10명에서 하는 게임으로 탑, 미드, 바텀, 정글로 라인을 구분하여, 게임을 하는 방식이다.
태오가 미드, 내가 바텀으로 가는 서폿, 지훈이 원딜 역할이었다.
그리고 ROL에서 가장 튼튼하고 딴딴한, 팀의 듬직한 중심이 되어 적들의 공격을 모두 맞아주며 게임을 이끌어가는 탑은...
다연이다.
보통 게임의 양상은 다연이가 태오를 도와주고 지훈이가 바텀을 혼자서 이끌어가는 편이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바로 지수 이모가 있기 때문에.
다연이 보다 조금 더 상위 티어에 머물고 있는 지수이모.
곤충 같은 눈깔을 하고 있는 '마스터 키' 캐릭터를 고른 지수 이모는 사방팔방 돌아다니며,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그렇게 다른 팀원들의 성장 환경을 만들어준 뒤, 천천히 크기 시작한 다연이가 마무리를 짓는 게임의 양상.
"아, 힐 하라고!!!"
"힐이고 뭐고 계속 그딴 식으로 말하면 사일런트 힐이 뭔지 보여줄게."
지수이모가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얘들아 싸우지 마..."
그 순간 잡아당기는 기술을 가진 고철덩어리가 나를 끌더니, 순식간에 사망표시가 떴다.
"와... 이걸... 와... 말 안함."
"....."
보통 박지훈을 빼고 3명에서 PC방을 가지만, 하필이면 따라온 박지훈.
내가 손을 놓고 멍하니 있자, 지수이모가 급격하게 내 눈치를 봤다.
"0킬 6뎃 1어시 오바지."
"....."
싸해지는 분위기속 박지훈만 투덜거리고 있었다.
"내가 8킬인데 1어시 오반데 진짜..."
"야."
"....네?"
"나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지수이모가 급하게 나를 뒤에서 안았다.
"시윤아 참아! 괜찮아,잘하고 있는 걸?"
"와... TV에서 보는 거랑 똑같이 착하시네요. 0킬 6뎃 보고 잘한다는..."
"야!!!"
물론 박지훈은 처음에장난으로 나를 긁어보기 위해서 말을 꺼냈을 것이다.
나도 장난으로 받아치다가, 스스로도 못해서 답답하고 짜증나는데, 옆에서 저렇게 긁어주니 분노게이지가 아우토반을 달리는 것처럼 끝도 모르고 상승했다.
내가 박지훈에게 달려들자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나는 흥분을 가라앉히며 주변을 봤다.
""......""
이미 5명이 나와 지훈이를 말리느라 게임을 놔둔 상황이었고, 당연히 패배가 떴다.
"...미안."
""괜찮아.""
전혀 괜찮지 않은 표정들...
현재 상황을 보니, 급격하게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미안, 태오야 나랑 자리 바꾸자, 지훈이 옆에서 했다가 쟤 이빨 다 뽑을 거 같아."
"".....""
박지훈은 내 표정을 읽고 자신의 입을 막았다.
다연이와 지수이모 사이에서 게임을 하고 있으니 힐링된다.
오히려 더 잘해진 기분.
물론, 어린아이를 다루는 듯한 다연이와 지수이모의 케어가 있기에 그런거겠지만.
태오도 나만큼 못하는데, 지훈이의 딜을 받고 참을 수 있을까? 싶지만, 저 개새끼는 나에게 들으라는 듯이 김태오를 칭찬했다.
하지만 어시스트 수치를 보면 확실히...
다른 건 몰라도 나보다 서폿을 잘한다.
어느 정도 ROL을 이어서 하다가, 나와 다연이는 단풍잎 게임으로 넘어갔다.
아... 역시 들어가자마자 나를 반기는 사람들을 보니, 힐링되는 단풍잎 게임...
지수이모가 내 캐릭터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와... 현질 얼마나 한 거야?"
내가 단풍잎 게임에 돈을 넣은 건 8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 뒤로는 착실히 불렸을 뿐..
"230만 원?"
"진짜? 그거밖에 안 넣었는데 그렇게 된다고?"
"사재기 했지, 그렇게 번 돈으로 큐브 작해서 뻥튀기시키고."
"우와... 대박이다. 유아도 이거 하는데."
"진짜로? 유아 이모도단풍잎 해?"
"응, 가끔씩? 예전에 게임에 6천 넣어가지고 우리가 엄청 잔소리했는데..."
6천만 원, 물론 많은 돈이다.
하지만 단풍잎 게임에서 1류가 되려면 6천만 원은 현저히 부족한 액수다.
그리고 시세를 잘 모를 거 같은 유아 이모면...맞췄다는 템도 엉망이겠지...
"유아 이모랑 언제 한 번 같이 해야겠네..."
전부 초록색으로 빛나는 내 인벤토리를 지켜보던 지수이모가 박수를 치며 감탄했다.
"이정도면 몇 위야?"
"레벨로는 내가 2,300위인데?"
"어? 그렇게 안 높네?"
"데미지량은 1위지."
"아...?"
나는 지수이모에게 가면아이템을 보여주며 속삭였다.
"이거 시세 3억 넘어가."
"뭐?!"
"내가 낀 아이템 전부, 하나당 최소 가격이 1억 정도야."
"와.... 단풍잎 생을 산다는 소리가 있다더니..."
게임 내에서 가장 가격이 높은 아이템을 논할 때, 항상 '시유왕자'라는 내 닉네임과 함께 내가 쉰 삼촌의 방송에서 공개한 아이템들이올라온다.
그리고 2등이 쉰, 12등이 다연이다.
다연이랑 나는 매일같이 단풍잎 게임을 하지만, 박지훈은 요즘 잘 안 들어와서 아마 1,500 몇 위일 것이다.
그럼에도 최상위에 위치하지만.
"유아 내일 쉬는 날일 텐데, 한번 물어볼까?"
"내가 연락해보면 되지~"
"그럴래~? 유아도 좋아할 거야."
"응."
다연이와 나의 통금시간이 8시까지 늘어났기에, 우리는 한참 게임을 즐기다 집으로 향했다.
백만장자.
과거 보유하고 있는 재산이 100만 달러를 넘어서면 일컫는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100만 달러를 넘긴 자산가들이 넘쳐나기에, 명칭의 의미가 조금 바뀌었다.
지갑에 100만 달러가 들어있냐를 논하게 된 백만장자...
아빠의 아르메스 지갑을 펼쳐보면 어이가 없는 수준이다.
깔끔하고 빼곡하게 차있는 하얀 종이들.
아니,하얀 수표들.
종이는 100장이었고, 요즘 말하는 백만장자가 뭔지 보여준다.
누가이 지갑만 훔쳐서 해외로 떠도 몇 년간 잘 먹고잘 살 것이다.
H의 로고가 있는 초록색 지갑은 '이게 왜?'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엄청난 가격대를 자랑한다.
갑자기 내가 이 말을 왜 하냐고?
아빠가 지갑을 잃어버렸다.
"시윤아 찾았어?"
"아니, 안 보여."
"흠... 옷에 넣어둔 거 같은데... 안 보이네"
아빠는 약 10억을 잃어버려놓고도, 천 원을 잃어버린 초등학생보다 태평해보인다.
나만 심각해서 집안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지만, 아빠는 답답할 정도로 평온해보였다.
"흠... 회사에 두고 왔나?"
"미쳤네... 그 말이...나와?"
내 표정을 보고 움찔한 아빠.
"찾아! 빨리!!!"
"아...알겠어."
내가 땀을 흘리며 찾고 있자, 아빠는 그런 내 모습에 미안해서 어쩔 수 없이 찾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와... 어이가 없어서... 저게 어떻게 10억을 잃어버린 사람의 모습인가...
나만 심장이 뛰는 게 애가타서 미치겠다.
"여긴 내가 할 테니까, 나가서 찾아. 못 찾으면 돌아올 생각하지 마."
"시윤아...?"
"나가!!!"
"알겠어... 빨리 찾아볼게..."
아빠는 밖으로 나갔고 나는 한참이나 집을 돌아다니며 지갑을 찾았다.
왜 하필 집은 이렇게 넓은 걸까... 처음으로 넓은 집을 원망했다.
나는 엄마의 방부터, 창고까지 싹 다 뒤졌다.
결국 나오지 않는 지갑.
그때 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찾았어?!"
-"응, 차에 있었어."
"하아... 올라와."
-"금방 갈께"
아빠는 지갑을 들고 들어오더니 땀을 흘리는 내 모습에 조심스레 눈치를 봤다.
"...용돈... 줄까?"
"얼마."
지갑에서 종이 1장을 꺼내주는 아빠.
"....."
나는 말없이 무언가에 홀린 듯이 들고, 곧장 내 방으로 가서 지갑에 넣었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나서, 종이를 다시 꺼내고는 아빠에게 다시 가져갔다.
"아빠."
"...응?"
"나 같은 꼬맹이가 1,000만 원을 어디다 써, 100만 원짜리 10장 줘."
"....."
"아니다, 위에 있는 거 5만 원 권 200장 가져갈게. 이거 아빠 가져."
나는 아빠 지갑에 원래대로 돌려놓고 2층으로 향했다.
엄마방에서 5만 원 권 200장을 가지고 내려온 나는 그대로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황금빛의 현금을 보며 해맑게 웃었고, 순간 살짝 현자타임이 왔다.
".....생각해보니까 어이가 없네."
내 통장 안에도 쉽게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의 돈이 들어있는데 왜...?
솔직히 아빠의 통장이나 내 통장에 찍혀있는 게 그냥 숫자로 보이고, 손에 들린 현금은 내방 서랍을 제외하고 지갑 안에 있는 20만 원을 포함한 이게 전부다.
가만 생각해보면, 막상 편의점에 가더라도 나도 모르게 1+1부터 쳐다보고, 행사 상품만 봐왔다.
무언가 비싼 물건을 살 때는, 카드로 긁으니까... 뭔가 내 돈이 아닌 기분이라서, 크게 와 닿지도 않았다.
나는 침대 위에 현금다발을 펼쳐놓고 밖으로 나갔다.
"아빠."
"...응?"
잘못한 게 있는지 내 눈치를 보고 있는 아빠다.
"차 바꾸자."
"왜?"
"슈퍼카 타보고 싶어."
"그래, 그러자."
"....."
숨 쉬듯 평온한 목소리로, 내가 어릴 때 사탕을 사달라고 했던 것과 비슷한 반응을 하는 아빠.
아니, 오히려 사탕을 달라고 할 때는 이빨이 썩는다며 거절했었다.
나는 아빠의 반응에 어이가 없어서, 괜히 기분이 나빴다.
표정이 굳자 조심스레 말을 꺼내는 아빠.
"...시윤아?"
"뭐."
"...아빠가 뭐 잘못했어...?"
"아니."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안절부절하지 못하는 아빠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시윤아... 아빠가 뭔지 모르겠어.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아...그... 그... 지갑 잃어버려서 시윤이 고생시킨...거?"
"뭔지도 모르면서 미안하대, 됐어."
"시윤아?"
내가 방으로 돌아가자 아빠가 내 팔을 잡더니 공주님 안기로 나를 들었다.
"내려놓지?"
"아빠가 진짜 모르겠어, 우리 딸이... 알려주면 안 될까?"
"내가 왜."
"잠깐만... 아빠한테 기회를..."
아빠는 나를 소파에 조심스럽게 내려놨다.
나는 팔짱을 끼며 핸드폰을 보았고, 아빠가 우물쭈물하며 내 눈치를 봤다.
"그..."
"생각났어?"
"....."
"됐어, 들어갈래."
"시윤아! 잠깐만! 생각날 거 같아."
아빠는 잠시오늘 있었던 일을 빠르게 돌이키며 말했다.
"아빠가 지갑 잃어버려서, 시윤이는 아빠 꺼 급하게 찾았는데 아빠는... 별 걱정 안한...거?"
"말해놓고 자신 없지?"
"응..."
"아니니까 간다?"
"잠깐만!!!"
아빠는 더 고민하다가 끄덕이며 말했다.
"...어제 술 마시고 들어... 아니구나. 그럼 설마 혹시...아빠가 돈을 귀하게 생각 안하는 거?"
"혹시는 무슨 혹시야."
".....미안."
"나한텐 돈이 중요하다고, 어렸을 때부터 말해놓고. 단풍잎게임에 60만 원 넣었다고 그렇게 혼내더니, 10억을 잃어버리고 그렇게 태평해?"
"......"
"아빠 내가 차 바꾸자고 할 때 뭐라 그랬어? 어이가 없더라 100원짜리 사탕사줄 때도 그거보다 쉽게 대답 안 했어."
아빠가 떨리는 동공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내가 돈에 약한 거 알고, 미안하니까 지폐 한 장 던져준다 이거지? 됐어, 난 기회를 줬고, 아빠랑 말 할 기분 아니야. 방문 몰래 열지 마, 더 실망할거 같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갔다.
아빠는 심각한 표정으로 내 방을 쳐다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