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4화 〉3학년. (94/99)



〈 94화 〉3학년.

일단 빌드업은 끝났다.

나는 어제, 일부러 아빠 지갑을 자동차에 넣어놓고 올라왔었다.
방 밖에는 아빠가 있었기에, 나는 우는 소리를 감추려는 것처럼 노래를 크게 틀고, 빠르게 풍선에 바람을 넣기 시작했다.

오늘은 아빠 생일이었기에.

나는 일부로 삐진 척을 하기 위해서, 평소에 듣던 아빠 노래는 전부 리스트에서 제외했다.
혼자서 입으로 풍선을 불려니 죽을 맛이지만, 내 폐는 일반인보다 튼튼하기에 이정도 분량은 충분히 소화가 가능하다.

아빠의 생일을 제대로 챙겨준 적이 없는  같아, 큰 맘 먹고 계획했지만 이거 생각보다빡세다.
아빠 이름에 맞는 이니셜 모양의 풍선에 기구를 이용해 바람을 넣으면서 동시에 입으로 다른 풍선을 불고 있으니, 호흡곤란이  것 같지만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

오늘 하루 동안 아침에 생일 축하한다고 말하고, 미역국을 끓여준 게 전부...
자신의 생일이기에 아무 것도 모르고 있는 아빠의 충격은 더욱 클지 모른다...
괜히 시간을 오래 끌었다가, 엄마방에서 울고 있을 아빠가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다.

"어우... 존나 힘드러..."


나는 '헉헉' 거리면서 방에다 현수막 같은 것을 걸고, 지금까지 아빠를 그렸던 그림들을 걸어 놨다.
그리고 선물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만들게  나와 아빠의 이니셜이 남긴 커플 팔찌.

이거 구할 수도 없는 존나 비싼 거다.
바닥에 하트 모양으로 촛불을 켜놓고, 장미로 장식하는 준비를 끝낸 뒤, 잠시 문을 열어 거실을 보니 아빠가 없다.


"아빠!"


방이 고요해서, 윗 층에 올라가보니, 그곳에도 아빠가 없다.
나는 심각성을 느끼고 아빠에게 전화를 걸며 집안 곳곳을 뒤지던 도중, 핸드폰 울리는 소리가 들렸고,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니, 아빠 방에서 핸드폰만울리고 있었다.

"조졌다."


나는 혹시나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아빠 때문에, 사방팔방 전화를 걸었지만, 다들 모른다는 소리.
급하게 이진석에게 전화했다.


"아저씨, 아빠 거기 있어요?!"
-"아니? 왜 그러니?"
"아빠안 보이는데... 김동훈 차장님 전화번호 알아요? 아빠 아파트 빠져나갔는지 궁금해서..."
-"전화 해보마, 조금만 기다려보렴."
"네!"

아빠는 아파트를 빠져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연기에 심취해서, 아빠에게 과하게 말한 것이 화근이었을까...

나는 밖으로 나가서, 엘리베이터가 멈춰있는 층을 확인했다.
40층 수영장에서 파티가 있는지, 40층에 걸려있는 엘리베이터.
나는 그곳으로 가서 빠르게 주변을 뒤졌지만 아빠가 보이지 않았고, 망했다는 생각에 한숨을 쉬며 집으로 올라가자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시윤아? 뭐해?"

아빠는 내가 좋아하는 먹을 것들을 잔뜩 봉투 안에 담아서 들고 있었다.

"....."
"시윤...아?"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내가 또... 잘못했구나... 미안..."
"하아... 아니야, 들어와."

아빠는  눈치를 보면서 방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그래도, 아빠 생일인데 웃어야지...
나는 피식 웃고는 뒤를 돌아 아빠의 옷을 잡아당겼다.


"...어?"

아빠에게 볼 뽀뽀를 해주고, 그대로 팔을 잡고 내 방으로 끌고 들어왔다.
다행히 아직 꺼지지 않은 초.

"생일 축하해."
"시윤아..."


아빠는 무언가 울컥 쏟아졌는지, 순식간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진짜... 엄청 빠르게 준비했는데... 아빠 없어져서."
"하하... 미안..."
"웃겨?!"
"아니!"


나는 주변에 있는 그림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내가 가장 처음 기억하는 아빠 모습이야."

인큐베이터 안에서  젊은 아빠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뒤집기 할 때, 아빠가 나 뒤집기 하라고 계속 뒤집는데 힘들어 죽는  알았어."


나는 또 다른 그림을 가리키며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가 처음 아빠 불렀을때.“

기대어린 표정의 아빠의 얼굴엔 나를 보며 전부 잊고 싶다는 웃음이 담겨있었다.
행복 외에 다른 감정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그렇게... 웃고 있는 아빠가 있었다.

아직 한참이나 남은 그림들의 안에는, 내 시선에서 보이는 아빠의 표정들이 다양하게 담겨있었다.

유치원에서 내가 피아노를 처음 만졌을 때의 표정...
아빠가 처음 나에게 엄마사진을 보여주며 지었던 표정...

내가 지훈이를 패고 나서 아빠에게 처음 혼난 뒤.
혼자 과자를 먹고 방에 누워있는 나를 보면서 울고 있는 표정.
단풍잎게임에 60만 원을 지른 걸 들켰을 때, 분노가 담긴 웃는 표정.
내 기억 속엔 아직도 생생한 아빠의 모습들을 그려넣었다.
아빠는 훌쩍거리더니 울기 시작했고, 눈물을 닦아가며 그림들을 하나씩 봤다.
그리고 마지막.

'749' 특별히 유화로 그려 넣었다.

-지금 아빠의 표정.

내 방 안의 모습과 아이처럼 울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아빠는 내가 예상하며 그린 그대로... 그렇게 똑같이 울고 있었다.
나는 아빠에게 케이크를 건넸다.
나와 아빠가 같이 찍은 사진을 프린팅한 케이크.

"아빤 눈물이 너무 많아..."
"하하하... 미안..."
"이건 선물."


나는 케이크를 잠시 내려놓은 아빠의 손목에 팔찌를 채웠다.
그리고 같은 팔찌가 채워져 있는 내 팔을 보여줬다.


"짠, 커플 팔찌야."


아빠는 한참이나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며,  팔찌를 만지더니 나를 꽉 안았다.
나는 강한성으로 살았던 시절 누군가에게 단 한 번도 꺼내본 적 없는 낯간지러운 말을 꺼냈다.


"사랑해..."
"응... 아빠가 더..."

잠시 부녀간의 애정을 확인한 뒤, 아빠랑 나는 사진을 남겼다.





아빠는 사온 재료들을 가지고, 퉁퉁 부운 눈으로 요리를 만들었다.
나는 그동안 방을 치우려고 했지만, 아빠가 계속 같이 치우자고 말해서, 그냥 식탁에 앉아 아빠를 기다렸다.

"와... 시윤아 그럼 아까 거짓말이었어?"
"어떤 거?"
"아까 아빠한테 실망한 거."
"진짠데?"
"아...? 미안..."
"아핳, 10% 정도만 진심이야. 실망하진 않았어. 돈을 보는 관점은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그럼 스포츠카 사지말까?"
"타보고 싶긴 해."
"그럼 나중에 시윤이 크면 사자~"

아빠의 차는 논란이 많았다.
거의 17년째 같은 차만 타고 있기에  이렇게 검소하냐, 혹은 컨셉 아니냐라는 갖가지 말들을 들어왔다.
누가 아빠처럼 엄청난 돈을 벌면서 같은 차만 17년 째 탈까 싶겠지만.

저 차는 엄마가 아빠한테 선물한 거다.
그니까... 저것을 논하는 사람들은 죄다 탈룰라를 시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슈퍼카를 산다면 나중에는 내 차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아빠는 저 차를 고치고 튜닝하며, 계속 타겠지.

요리를 끝낸 아빠는  방에서 초를 들고 오더니 식탁위에 올려놓고 불을 켰다.
집의 불을 끄자, 분위기 있는 식탁이 만들어졌고 아빠는 와인을 꺼냈다.


"나 못 마시는 거 알지?"
"걱정 마~ 무알콜이야. 시윤이 엄마랑 먹던."


나랑 주량이 비슷한 엄마가 먹었다니 다른 무엇보다도 안심이 됐다.
나는 스테이크를 썰며 아빠랑 분위기를 즐기면서 먹었고, 아빠는 내가 채워준 팔찌를 유심히 쳐다봤다.
무슨 브랜드인지 알게 된 아빠는 흠칫하며 나에게 말했다.


"...이거 어떻게 구했어?"
"다연이네 엄마한테 말해서 1년 전에 예약했어."
"와..."
"나 이거 학교 갈 때 못 차거든? 내 액세서리 수납장도 만들어 줘 2층에."
"그냥 엄마  쓰지...? 빈 공간 아직 좀 있는데..."
"엄마  너무 과해."
"하긴... 시윤이 엄마도 저 수납장 싫어했었어..."


밥을 전부 먹은 뒤, 아빠는  방을 치우기 위해서 들어갔다.
그리고 내가 그린 그림을 다시 유심히 봤다.


"책이나 그림집으로... 만들고 싶은데... 물어봐야겠다."


설거지를 하는 나를 발견한 아빠가 그림을 조심히 내려놓고 빠르게 달려왔다.

"아빠가 할게!"
"됐어, 내가 할 테니까 그림 엄마 보여줘."
"...응."


나는 설거지를 빠르게 끝낸 뒤, 내방을 치우러 들어갔지만, 이미 전부 정리되어 있었다.
2층에 올라가보니 역시나, 내 앞에서 멀쩡한 척해놓고, 울고 있던 아빠가 이제야 정리를 시작하는 것 같았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밑으로 내려갔다.





아빠의 생일파티 이후 한결같이 평범하고 정직한 나날들이 지나면서, 어느덧 15살에 맞이하는 겨울방학을 5일만 남겨두고 있었다.

나는 이젠 완전히 키가 멈춘 듯 160cm에서 아주 느리게 크기 시작했다.
다연이는 나보다 8cm가 더 컸다.
태오는 성장이 느린 건지, 이제서야 빠르게 크기 시작했다.
박지훈이야 뭐... 많이 처먹은 만큼 꾸준히 잘 커서 나랑 25cm가 차이난다.


그리고 지금, 나는 초등학교 때가 생각나는 일을 겪고 있었다.
모두가 앉아있는 강당 앞, 나는 천천히 강당위로 올라갔다.
주변에서 울리는 환호소리, 이번에 올라온 1학년들도 내 외모에 홀려서 박수를 쳤다.

"난 회장  한다고 말했습니다?"
"".....""
"앞에 환호하는 꼬맹이들아, 말하는데 조용히  하고,  뽑지 마라 경고했어."

나는 어느새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넘기고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아... 뽑지 마세요, 신청도 안했는데 내 이름 넣은 사람이 300명... 장난하나... 전교생이 1,000명도 안되는데, 난 늬들 친구 아니니까 뽑지 마."


나는 강당에서 내려왔고, 앞에서 비웃고 있는 박지훈에게 달려가서 발로 찼다.
그리고 엎어져있는 박지훈 옆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


투표는 핸드폰으로 하며, 거대한 스크린에 실시간으로 올라가게 된다.
'프라듀스 101도 아니고 오바야...'

후보가 7명이 있었지만... 압도적인 점수 차를 유지하고 있는 1위.
그래... 하아... 바로 나다.
'이럴거면 굳이 강당 위에서 그렇게 설명할 필요가 있었나?'

총 940명의 인원이 있는데, 왜 750표가 나인가...
앞에 서있던  회장이 얼떨떨해 하며, 나를 불렀다.
나는 한숨을 쉬면서 천천히 강당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강당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들이 환호할 준비를 하려는 모습이 보였지만, 어울려줄 마음은 없다.

"뭘 원하는지 모르겠는데... 뽑은 거 후회하지 마세요."

그렇게, 중학교에선 초등학교 때와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었다.






"시유나...?"
"응?"
"회장... 음... 축하해?"
"하아... 고마워."

아빠와 나는 다연이네 가족이랑 새해맞이를 위해, 울릉도에 와있었다.
갑자기 왜 울릉도냐고... 나한테 묻지 마라. 나도 오징어 물회나 먹자는 마인드로 왔으니...

이진석은 떠오르는 해를 보며, 김선화를 껴안았고, 아빠는 나를 껴안았다.
잠깐 동안의 일출을 즐긴 후, 자리를 잡고 먹기 시작한 회.
김선화, 가연, 다연이는 회를 별로  좋아하나보다.
그래서 정연이를 포함한 4명에서만 회를 먹고 있었다.

 위에 있는 도화새우를 보니, 참...왜 그 가격인지 모르겠으나 달긴 달았다.
비싼 새우를 튀김으로 먹고 있는 옆자리를 보니, 참된 새우의 맛을 모르는 것 같아 아쉽다.

하긴, 나도 술맛을  느끼는데... 뭐.

생각해보니 알고 있는 맛을 어쩔 없이  먹는 것보다, 모르는 맛을 평생 안 먹어보는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성인이 된다면, 내 주량이 더도 말고 맥주 한 캔 정도만 가능했으면 좋겠지만...
엄마가 맥주를 숟가락으로 떠먹고 기절했다니... 가능성은희박하다.
아마, 다시 태어나는  빠를지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