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옷이 보여-1화 (1/231)

001화 프롤로그

봉제 공장 안에서 여러 대의 재봉틀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그 소리가 들리는 공장 뒷방에는 조그만 아이가 엎드려 있었다. 아이는 불도 켜지 않고 문틈으로 들어오는 희미한 불빛을 전등 삼아 연습장에 그림을 그리는 중이었다. 어린아이임에도 어찌나 집중하고 있는지, 밖에서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하는 듯했다.

"우진아, 임우진!"

그때 방문이 열리자 엎드려 있던 어린아이는 얼굴을 한껏 찡그리더니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눈을 가려 버렸다.

"으이구. 자꾸 불 끄고 있으니까 눈부시다고 그러지. 엄마가 눈 나빠진다고 불 켜고 있으랬잖아."

"이쪽만 눈부시단 말이야."

"그런 게 어딨어. 또 그림 그리고 있었어?"

"응, 복실이하고 복실이 새끼들 그렸어!"

우진의 엄마는 연습장을 힐끔 보더니 우진을 무릎에 앉혔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데? 모자 쓴 거야?"

"응! 복실이 귀 한쪽 없으니까 모자에 귀 달아준 거야!"

"으이구, 착하네, 우리 아들. 그런데 애들은 옷이 다 똑같네? 그런데 뒤에 이건 뭐야?"

"다 복실이 새끼니까 똑같아야지. 전부 새 옷 입어서 반짝반짝 하는 거야."

"그래? 예쁘네! 호호, 우리 우진이도 강아지 키우고 싶어?"

"응! 귀여워!"

"똥이랑 오줌도 우진이가 다 치울 거야?"

"그건 싫은데…… 그건 엄마가 해주면 안 돼? 응?"

우진의 엄마는 그런 우진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연습장을 닫으려다가, 우진이 그려놓은 그림을 보고 씁쓸해졌다.

스케치북도 아닌, 가게에 직원이 가져다 둔 이면지였다. 그 이면지로 만들어준 연습장에는 한 장 한 장마다 그림이 빼곡했고, 대부분 옆집 강아지 아니면 공장에서 보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연습장에 칸을 쳐놓고 그 칸에 맞춰서 그림을 그려놓았다. 어린아이라면 종이 전체 이곳저곳에 자기 마음대로 그려도 모자랄 텐데.

"우진아, 왜 이렇게 칸을 그려서 그림을 그려?"

"이래야 많이 그릴 수 있잖아."

"이건 뭔데?"

"아, 이거? 나도 몰라. 여기 뒤에 있는 거 그린 거야. 예쁘지?"

이면지이다 보니 뒷면이 비추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이면지를 칸까지 나눠 아껴 쓰려는 것처럼 느껴져 마음이 아렸다.

자신과 남편이 봉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동대문이란 곳의 특성상 며칠이라도 쉬게 되면 거래처가 떨어져 나가 버린다. 그러다 보니 휴일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해가 뜨기 전에 공장에 나와서는 해가 져서야 집으로 돌아갔기에, 우진을 어린이집에 맡길 수도 없었다. 결국 공장에 딸린 작은 방이 우진의 놀이터였고, 그것이 항상 미안했다.

"우진아, 엄마랑 스케치북 사러 갈까?"

"그래! 아니…… 싫어."

"왜? 스케치북은 엄청 커. 두 개 사줄게. 크레파스랑 색연필도 사줄게."

우진의 엄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당장에라도 나설 것 같던 우진이 주춤거렸다.

"왜 그래? 스케치북 싫어?"

"아니! 나가면 눈부시단 말이야. 그리고 잘 안 보인단 말이야."

"금방 괜찮아져. 손 내려 봐. 지금도 눈부셔? 아니잖아."

"눈부시단 말이야!"

"어디 봐봐. 엄마가 눈 안 부시게 해줄게."

우진이 손을 내리자 엄마가 우진의 눈에 입김을 불어줄 생각으로 얼굴을 가까이 댔다.

"엄마가 호 해줄게…… 어? 우진아 이리 와봐."

"눈부시다니까!"

우진의 엄마는 반대쪽 눈도 급하게 살폈다. 눈으로 봐서 자세히 모르겠지만, 눈동자가 이상했다.

"아파?"

"아니, 아프진 않은데 눈부시다니까. 몇 번 말해! 그리고 이쪽 눈으로 보면 가려져 있는 거 같이 잘 안 보여. 이만큼만 보인단 말이야."

"그걸 지금 말하면 어떡해!"

***

몇 년 뒤.

우진의 엄마는 우진이가 한쪽 눈이 보이지 않게 된 후부터 공장에 나가지도 않았고, 오로지 우진의 곁만 지켰다.

녹내장.

선천성도 아니고 어린아이에게 생기기 힘들다는 정상 안압 녹내장이었다. 조금만 우진이의 말에 귀기울였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아주 조금만 빨리 알았었더라면.

우진이 세상을 반쪽으로 보게 된 게 전부 자신 탓만 같았다.

어린나이에 충격을 받았는지, 그 밝았던 아이가 말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좋아하던 그림도 그리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학교를 다니고 친구가 생기면 괜찮아질 줄 알았건만,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우진은 스스로 놀림을 받았다고 먼저 말을 꺼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여행도 다녀보고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었다. 그러던 중 초등학교 3학년 올라가는 새 학기 때였다. 뛰어놀라는 마음을 담아 하얀색 체육복 가슴팍에 조그만 축구공을 자수로 새겨주었다. 그리고 그날 학교에서 돌아온 우진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었다.

"엄마. 친구들 체육복에도 축구공 달아주실 수 있어요?"

몸이 힘든 게 문제가 아니었다. 우진이가 자신에게 하는 부탁이었기에 팔이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해줄 생각이었다.

그 일이 있고나서 우진이 집에 친구를 데려오는 일도 있었고, 친구네 집에 놀러가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여전히 아이답진 않았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취향이 점점 변해가는 것이 보였다. 어느 날 학교에 다녀온 우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엄마, 우리 집은 잘사는 편이에요?"

"잘살지? 엄마랑 아빠랑 우진이랑 행복하니까 잘사는 거 아닐까?"

"아, 네."

갑자기 잘사냐는 질문에 궁금해졌고, 우진이 몰래 이유를 찾다가 노트에 유명 스포츠 브랜드의 마크가 가득 그려진 것을 발견했다. 티셔츠며 가방은 물론이고 신발까지 전부 같은 메이커였다.

직접 말을 해줬으면 더 좋았을 텐데 조르지도 않는 우진 때문에 속상한 마음도 있었다. 우진이가 원하는 건 전부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우진이 아빠와 함께 우진이를 데리고 매장에 갔다. 그런데 우진은 뒤적거리기만 할 뿐, 어느 것 하나 고르지 않았다.

엄마는 우진이 또 말을 안 한다고 생각하며 직접 나서서 이것저것 골라왔다. 우진의 웃는 얼굴을 기대하며 다 사주려고 했다. 그런데 우진이 아니라고 하더니 직원에게 말을 했다.

"저기, 아저씨. 혹시…… 이 마크만 살 수 있어요……?"

"네?"

"이 옷에 달고 싶어서 그런데…… 지금 입고 있는 옷이 마음에 들거든요. 여긴 찾아봐도 제 옷 같은 건 없어서……."

매장에서 일하던 사람은 어이없다는 듯 우진의 부모를 봤고, 부모님은 다음에 온다며 매장을 나섰다.

"그럼 우리 백화점으로 가볼까? 여긴 동네라서 우진이 찾는 게 없나 봐."

"아니에요. 아빠가 만들어주신 옷에 마크만…… 달고 싶은데."

"뭐? 하하."

아빠는 기가 막히면서도 기분이 좋은지 한참을 웃었다. 그러더니 우진의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러면 학교 친구들이 짭퉁이라고 놀려. 게다가 아빠도 잡혀간다? 하하."

친구들이 많이 사용하는 브랜드의 로고는 사용하고 싶은데 정작 마음에 드는 것은 없는 모양이었다. 아빠는 그런 우진을 보며 한참을 웃었다.

"나중에 커서 여기보다 더 유명한 메이커를 네가 직접 만들어. 그럼 아빠가 만들어줄게. 그래! 디자이너하면 되겠네. 디자이너. 하하."

"디자이너요……?"

***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우진은 부모님의 공장에 들렸다. 재봉틀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는 와중에도 문 여는 소리가 들렸는지, 어머니가 하던 일을 멈추고 일어섰다.

"그냥 집에서 쉬래도. 엄마는 우진이 여기 오는 거 별로 안 좋아."

"괜찮아요. 용돈도 벌고 좋잖아요."

"용돈 줄 테니까 그냥 집에서 쉬어. 친구들 만나든지."

우진이 너무 어렸을 때라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 왼쪽 눈이 보이지 않고부터는 공장에 오는 것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 익숙한 우진은 그저 도와드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우진은 빈자리에 앉아 재봉을 시작했다.

"우진아! 그거 다 한 건 대충 던져 놔. 줄 맞춰서 쌓아놓을 필요 없어. 어휴…… 그나저나 누가 사장님 아들 아니랄까 봐 나보다 재봉틀이 능숙하네. 나도 두 번에 나눠서 하는 걸 어떻게 한 번에 밀어!"

"그러게! 몇 번을 봐도 신기해. 어쩜 저렇게 잘 밀지? 끊기지가 않네."

"우진이 지금 또 빠졌네. 얘기해도 못 들어. 참 대단해. 뭘 해도 성공하겠어. 반에서도 1등이라며."

공장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의 말에도 우진은 듣지 못했는지 연신 손을 움직였다. 눈이 안 보인다는 이유 때문에 무엇을 하더라도 남들에게 격려 또는 위로를 받아야 했다.

실력이 좋으면 '눈도 안 보이는데 잘하네', 부족하다 싶으면 '눈이 안 보여서 그런 거니까' 너무 듣기 싫은 말이었다. 그러다 보니 남들에게 부족해 보이지 않으려고 마음먹은 일은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무조건 완벽하게 해냈다. 운동같이 신체적으로 제약을 받는 것이 아니라면 정말 죽을힘을 다했다. 학생의 신분이다 보니 일반 과목은 물론이고 미술이나 음악 같은 과목들도 완벽해지려 했다.

초등학교 방학 숙제에 방학 중에 간 여행지를 그려오라는 숙제가 있었다. 며칠 동안 그림에만 매달리더니, 방학 숙제를 냈을 때 부모님이 그려준 거 가져왔다고 혼나기도 했다. 그리고 중학교 음악 시간 리코더 실기 시험 때는 리코더를 얼마나 불었는지 한동안 입을 벌리지 못한 적도 있었다.

운동만은 늘지 않았다. 점심시간에 친구들이 축구하는 것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친구들은 친구 사이에 미안한 게 뭐가 있냐며 권하기도 했지만, 우진은 자신 때문에 같은 팀이 피해보는 게 싫었다.

하지만 옷을 만들 때만은 달랐다. 물론 처음 재봉틀을 배웠을 땐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 걸렸다. 한 뼘 정도 박고 줄이 틀어지진 않았을까 확인하고, 성격이 재봉에서도 드러났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재봉틀과 가까이할 수 있는 환경과 노력이 더해지자 실력이 말도 못하게 늘었다. 지금은 오히려 오래 일한 아주머니들도 놀라는 실력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예쁜 거나 멋진 것만 신경 쓰지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비록 어머니가 싫어하시지만, 재봉을 할 때만은 기분마저 좋아졌다. 게다가 공장에 계신 분들도 전부 인정한 실력이다 보니 자신도 있었다.

티셔츠 100벌이 담긴 한 봉지를 모두 재봉한 우진은 기쁜 마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벌써 다했어? 어떻게 매일 하는 이 아줌마보다 잘해! 아줌마 밥줄 끊기게."

"이야…… 기계네, 기계야. 참나."

"사장님은 좋겠어요! 저렇게 잘생기고 착한 아들 둬서."

"맞아. 우리 아들놈은 매일 돈만 달라고 그러고. 그런데 우진아! 잘생긴 얼굴 좀 내놓고 다니지, 왜 그렇게 머리로 얼굴을 가리고 다녀."

공장에 오신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분들이었기에 왼쪽 눈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외관상으로는 티가 나지 않아서 모르고 하는 말이었기에 우진은 가벼운 미소로 넘겼다. 그렇지만 어머니의 반응이 신경 쓰인 우진은 분위기를 돌리려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요?"

"응, 패턴실에서 계속 찾아서. 공장 그만하든지 해야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어머니는 한숨을 쉴 뿐 답하지 않으셨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대신 입을 열었다.

"개똥같은 디자이너하고 패턴사하고 같이 오더니 지네가 이렇게 보냈니, 안 보냈니 지랄을 하고 있어서. 꼭 쥐똥만큼 주문하는 것들이 저래. 옷도 팔리지도 않을 거 같더만. 봐. 이게 그 옷이거든. 포켓이 너무 작대. 티셔츠 주머니에 뭐 책이라도 넣고 다니려고 그러나. 우진이 넌 디자이너 돼서 이러면 안 된다?"

우진은 피식 웃었다.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미국으로 가는 자신을 공장 직원 분들은 기특하게 여겼다.

디자이너.

막연하게 생각하던 것이었지만, 집이 봉제 공장을 하다 보니 자라면서 가장 많이 봐온 게 옷이었다. 비록 브랜드를 만드시는 건 아니었지만, 어마무시한 양을 봐왔다. 그 때문인지 디자인에 대해서 배운 적도 없건만, 대충 그린 그림만으로도 공장 직원들은 당장 만들어서 팔자는 말을 종종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고, 무엇보다 한쪽 눈만으로도 충분했다.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고, 남들에게 싫은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는 일.

고등학교 입학 후 디자이너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버지께 물어봤다. 그 질문에 아버지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생겼고, 아직 걸음도 떼지 않았는데 아버지는 이미 아들이 디자인한 옷을 자신이 만드는 걸 상상하셨다. 그리고 그동안 많은 디자이너를 겪어보셨던 아버지가 추천하신 건 해외였다. 필요한 추천서는 직접 준비를 해줄 테니 비용은 걱정 말고 준비만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남들이 수능을 공부할 때 우진은 유학 준비에 매진했다.

영어는 물론이고 입학 서류에 필요한 포트폴리오까지. 성격상 대충할 리가 없었다. 그 덕분에 합격 통지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 남지 않았다.

미국으로 가는 날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