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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옷이 보여-84화 (84/231)

084화 라온 엔터 2

옥상에 자리하게 된 우진은 테이블에 앉아 주변을 살폈다.

옥상에 어울리지 않는 주황색 포장마차 천막도 이상했고, 그 천막 밑에 준비된 고급 뷔페가 분위기를 더 이상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분명 이상하다는 걸 알 텐데 옥상에 있는 사람들 중 누구 하나 지적하는 사람이 없었다.

"원래 옥상에 이런 게 있는 건가?"

"아닐걸요. 전부 정신 놓고 있는 사람들 같아요. 특히 저기 후라는 사람."

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유명한 가수인데도 방송엔 노출이 적었다. 그나마 나온 방송에서도 말수가 적은 편으로 봤는데, 지금은 갑자기 마이크까지 연결하더니 쉴 새 없이 말하는 중이었다.

"TV에서 보는 거랑 다르다고 하더니 완전 다른 사람 같네요."

미자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오면서 봤던 경비원까지 가장 좋은 자리에 떡하니 앉아 있었다.

"예전에 방송에서 가족이라고 그랬어요."

"아, 그래요?"

우진은 그제야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윤후를 봤다.

마이크를 잡고 있던 후가 한참을 얘기하더니 이번엔 갑자기 노래를 부르겠다고 했다. 함께 있던 사람들은 익숙한지 신경 쓰는 모습이 아니었다.

우진은 분위기가 어색했지만, 손님으로 온 이상 어색하게 박수를 보내고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옥상에 있던 사람들은 확실히 연예인이라서 그런지 왼쪽 눈으로 보이는 모습이 일반인과는 달랐다.

지금 입고 있는 옷과 조금 바뀐 사람도 있었고, 스타일을 완전히 탈바꿈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 사람들 중 오로지 후만 이상하게 보였다.

그때, 노래가 들려왔다.

"엄청 잘 부르네……. 완전 다른 사람 같아요. 선생님?"

우진은 노래를 부르는 후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여러 개의 옷이 겹쳐 보이던 것과 다르게 노래 부를 때는 하나의 옷만 보였다.

그것도 트레이닝복. 그렇다고 멋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직원이라는 사람들 옷보다 못했다. 우진이 보기에도 후와 어울리는 옷이 아니었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자 또다시 옷들이 겹쳐 보였다.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

보면 볼수록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때 아까 인사했던 사람이랑 쌍둥이라는 사람이 크게 소리 질렀다.

"그만허고 어여 먹어! 떠들고 싶어서 파티허자고 한 거여?"

그러자 후가 마이크를 내려놓더니 테이블로 갔다. 신기하게 쌍둥이 매니저 말은 잘 들었다.

아까 계단에서 봤던 사람과 똑같은 검정색 라운드 티를 입고 있지만, 왼쪽 눈으로 보이는 모습은 카라가 달린 하얀 반팔 티에 검은색 바지로 상당히 깔끔한 모습이었다. 특별한 것은 없었지만 상당히 잘 어울렸다.

그리고 그때, 쌍둥이와 함께 아까 계단에서 마주쳤던 F.I.F라는 그룹이 올라왔다. 쌍둥이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우진은 쌍둥이 매니저부터 살피고는 피식 웃었다.

쌍둥이라고 해도 보이는 게 완전 달랐다. 티셔츠를 입고 있던 매니저와 달리 걸 그룹과 함께 온 매니저는 마치 회사원처럼 보였다.

하얀색 와이셔츠에 남색 넥타이, 그리고 검정색 정장 바지. 재킷만 없는, 셔츠 소매를 접어 올린 모습이었다.

"선생님, 쌍둥이라고 해도 정말 똑같이 생기지 않았어요?"

"네. 저쪽이 대식, 저쪽이 두식 씨라고 했을 거예요."

"역시 눈썰미가…… 대단하세요."

우진은 멋쩍게 웃고는, 기왕 온 김에 사람 구경이라도 하고 가려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도 살폈다.

그때, 우진의 눈에 배고프다고 투정하는 F.I.F가 눈에 들어왔다. 투정하는 멤버들을 달래는 사람이었다.

"실장님, 실장님, 저 사람 이름이 뭐예요?"

"누구요?"

"저기 뒤에서 등을 토닥거리는 사람이요."

"채우리일걸요. 메인 보컬인데 가장 인기 없어요."

"왜요? 저렇게 예쁜데."

"예전에 후랑 스캔들이 났었거든요."

미자는 검색해 가며 채우리에 대해 설명해 주었고, 우진은 채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람이 저렇게 예쁠 수가 있구나……. 그런데 왜 저렇게 슬퍼 보이지?"

"네……?"

"아니에요. 실장님 저 스케치북 좀 주세요."

"별론 거 같은데……."

미자는 스케치북을 건네주고는 채우리를 뚫어져라 봤고, 우진은 눈에 보이는 대로 채우리를 그렸다.

검정색 드레스. 마치 시상식장에 가는 사람 같았다. 원단 자체는 얼마 전에 만들었던 한가을의 옷과 비슷해 보였고, 전체적인 디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일부러 주름을 만들었던 한가을의 옷과 다르게 채우리는 허리 라인에 끈을 묶음으로써 자연스럽게 주름을 연출했다.

거의 명치까지 파여 V라인으로 된 넥홀 때문에 가슴골이 살짝 보였고, V라인을 따라 가슴까지 물결처럼 만든 천이 달려 있었다.

머리색도 옷과 마찬가지로 검은색이었고, 앞머리가 없는 지금과 달리 왼쪽 눈 쪽에 눈썹 밑까지 동글게 만 앞머리가 있었다.

뒷머리는 꾸민 듯 안 꾸민 듯 하나로 묶어 특이하진 않았지만, 얼굴과 정말 잘 어울렸다. 피부 자체가 하얀 편이었고, 거기에 빨간 립스틱을 칠하자 더욱 하얗게 보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귀걸이였다. 금인지 아닌지는 알진 못했지만, 금색으로 된 귀걸이였다.

잘 살펴보니 귓불에 살짝 찌그러진 원 형태였는데, 마치 만화에서 눈물을 표현할 때 같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밑으로 가는 줄이 두 가닥 있었다. 귀부터 목 중간까지 길게 늘어트려 마치 바람에 날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모든 비율을 아름답게 만드는 스틸레토 힐까지. 모든 것이 어울렸다.

지금까지 본 여자들 중에는 미자가 가장 예뻤다. 그런 미자와 비견할 만큼 채우리는 정말 아름다웠다.

스케치를 끝낸 우진은 얼마나 집중했는지 머리가 살짝 어지러웠다.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시고 스케치를 다시 확인하는데, 그제야 옆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대박……."

"이거 채우리 같은디?"

"말도 안 댜. 이게 우리라고? 눈깔 교체혀야겄네."

어느새 모여든 쌍둥이의 반응에 하나둘씩 다른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러고는 스케치를 보더니 자기들끼리 채우리가 맞냐 아니냐로 다투기 시작했다.

"채우리 씨 맞아요."

"거봐! 내 말이 맞잖여! 내가 쟈들 담당인디 모를 거 가터?"

"이상허네……."

어느새 윤후까지 테이블로 왔다. 그러고는 스케치를 한 번 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진은 정작 당사자인 윤후가 아니라 채우리를 그린 것에 약간 미안하던 참에 만나 약간 껄끄러웠다. 이상해진 상황에 우진이 머리를 긁적일 때 앞에 있던 윤후가 씨익 웃었다.

"저기요."

"네?"

"두 사람 중에 누가 옥상에 있던 사람이게요?"

"네……?"

"또 뭔 짓거리여."

윤후가 갑자기 쌍둥이 매니저를 가리키며 질문을 했다.

"이쪽분이 옥상에 계시던 대식 매니저님이시네요."

"허?"

"우와! 후 님 말고 찾는 사람 처음 봤다."

"옷도 똑같이 입고 있는데 어떻게 알았지?"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우진의 대답에 스케치를 볼 때보다 오히려 더 놀랐다. 그러다 자기들끼리 쑥덕거리며 분주하게 움직이더니 다시 질문을 했다.

"이쪽이…… 대식 매니저님……."

"와…… 어떻게 알았지?"

윤후는 몇 번이나 더 질문을 하고는 크게 웃더니 가버렸다. 아무리 봐도 보통 미친놈이 아닌 것 같았다.

***

우진은 스케치를 본 김 대표의 부탁에, 다시 3층에 자리했다.

"선생님, 하하, 우리 윤후 옷 대신 아까 보여주신 걸로 안 되겠습니까?"

다시 크게 웃는 김 대표의 모습에 우진은 생각할 것도 없이 승낙했다. 어차피 예약도 있는 데다, 채우리 옷을 만들면 매튜가 말했던 인연이란 것을 이어둘 수도 있었다.

"그럼 아까 그리신 그림대로 나오는 거 맞는 거죠? 하하, 물론 선생님을 믿지만 그림이 너무 아름답다 보니. 하하하."

"네, 스케치대로 나오는 건 맞는데요. 세부적으로 만들려면 채우리 씨하고 대화를 좀 나눠봐야 해요."

"물론이죠, 하하. 그런데 얼마 정도나 할까요? 하하, 물론 저 아름다운 옷에 가격을 매기는 짓이 불경스럽다는 걸 알지만 그냥 궁금해서, 하하."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얘기를 해보고 원단도 정하고 하다 보면 비싸질 수도 있고 싸질 수도 있고 그러거든요."

"하하, 그럼 싸게…… 아닙니다. 하하."

우진은 김 대표와 조금만 더 있으면 공짜로 만들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럼 말 나온 김에 채우리 씨를 뵙고 갈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하하, 잠시만요."

대표는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잠시 얼굴을 씰룩거렸다. 그러고는 금세 표정이 바뀌더니 우진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 2층에 있는 모양이네요. 제가 내려갔다 오겠습니다. 아니다, 회사 구경하실 겸 같이 가실까요?"

김 대표는 곧바로 일어나더니 우진을 안내했다. 도어록을 열고 2층에 들어가니 3층과는 또 달랐다. 노래방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러 개의 방이 보였다. 김 대표는 그중 가장 큰 연습실로 우진을 안내했다.

"우리가 이번에 솔로 앨범을 준비 중입니다, 하하."

그러더니 들어가지는 않고 작은 창을 통해 안을 살폈다. 우진도 힐끔 창을 보니 안에는 어느새 내려왔는지 채우리와 함께, 별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윤후가 있었다.

똑똑.

"조금 쉬다 해."

"지금까지 쉬다 왔는데요?"

"너 말고, 우리한테 하는 말이다."

"알았어요. 여기 앉으세요."

"넌 경비실 가서 어르신하고 놀고 있어."

"할아버지 피곤해하세요. 그냥 여기 있을게요. 괜찮죠?"

윤후가 우진에게 물어봤는데 대답은 채우리에게서 나왔다. 고개를 빠르게 끄덕이며 괜찮다고 하는 통에 우진은 어쩔 수 없이 연습실에 자리했다.

"저를 왜 보자고 하셨는지."

채우리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질문을 했다. 그런데 우진은 그 질문이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막상 마주하고 있으니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했다.

"스케치부터 한번 보세요."

채우리는 이미 스케치를 봤음에도 여전히 마음에 드는지 조그맣게 감탄사를 뱉었다. 우진이 이제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할 때, 같이 스케치를 보던 윤후가 입을 열었다.

"앞머리 있는 게 훨씬 예쁜데요?"

"안 그래도…… 자르려고 했어요."

"웃기고들 있네. 너 내가 앞머리 자르는 게 어떠냐고 물어봤을 때 뭐라고 그랬어. 죽어도 싫다고 그랬잖아."

"아니에요. 생각해 보니 대표님 말씀이 맞는 거 같아서 자르려고 했어요."

옆에서 툭 던진 윤후의 한마디에 앞머리가 해결되었다. 스캔들이 사실이 아닐까, 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럼 앞머리는 자르시는 걸로 하고요. 혹시 땀이 많거나…… 그러시진 않나요?"

"아니요. 무대가 덥긴 한데, 이번에 부를 노래가 발라드라서 괜찮아요."

지금 우진은 홍단아가 그렇게 아쉬울 수 없었다. 아쉬움에 미자를 한 번 봤지만, 별생각이 없는 얼굴이었다. 우진은 질문을 해야 한다는 마음에 머리를 굴리느라 진땀을 뺐다.

그러다가 전에 만들었던 옷을 떠올리게 되었고, 이번에 채우리의 옷이 보인 이유 역시 그녀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무대일 것이었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옥상에서 윤후가 노래 부르던 모습이 떠올랐다. 윤후라는 사람은 특이하게도 겹쳐 보이는 여러 옷 중에 트레이닝복이 있었다.

노래 가사가 이상하게 누워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기에 그런 옷이 보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노래를 들어볼 수 있나요?"

"노래요? 아직 녹음도 안 하고 연습 중인데."

그러자 옆에 있던 미자가 우진의 귀에 속삭였다.

"가수들은 자기 노래에 민감할 거예요. 아마도 선생님이 준비 중인 스케치를 보여달라는 말하고 같지 않을까요?"

"난 별로 상관없는데."

"역시 자신감. 선생님 멋있으세요."

미자까지 이상한 것에 물든 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그때, 윤후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기타를 들고 왔다.

"야야, 너 뭐 하려고!"

"괜찮아요. 어차피 저작권 등록도 다 해놨는데요."

"아…… 참, 난감하네."

"우리 씨, 준비해요. 참, 제목은 '눈물'이에요."

우진은 갑자기 노래를 들려주려는 모습에 잘됐다 생각하며 의자를 당겨 앉았다.

기타 연주가 시작되었다.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게 단숨에 날아갈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고작 연주만 들었을 뿐인데 굉장히 가슴이 아파왔다.

그리고 그 연주 위에 채우리의 목소리가 얹혀 들리기 시작했다.

몰랐었네. 너와 함께한 추억이 이렇게 많은 곳에 스며 있을 줄은.

"잠깐만요. '줄은'에서 바이브레이션 넣지 말고 끊으라고 했잖아요. 담담하게 다시 해봐요."

후의 딴지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들을 만하면 '다시! 다시!'를 계속 외치는 통에 노래를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우진은 별로 상관없다는 듯 윤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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