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화 귀걸이 4
다음 날.
채우리의 '눈물'이 공개되었다. 그동안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덕에 자연스럽게 대중의 관심을 불러 모았다. 게다가 빌보드까지 점령했던 후가 만든 곡이기에 언론들이 앞다퉈 '눈물'을 소개해 반응이 상당히 뜨거웠다.
하지만 음원 사이트들과 다르게 음반이 잘 팔리는 건 아니었다. 신인 걸 그룹 멤버이다 보니 마니아층 팬이 아니고선 음반까지 구매하지는 않았다.
음반은 라온에서 예상한 대로 천천히 나가고 있었다. 다만 김 대표는 윤후의 인터뷰로 채우리보다 더 조명을 받는 곳이 있어 배가 아팠다.
"종락아, 연락 좀 해봐. 거긴 왜 그렇게 연락이 안 돼!"
"지금 윤후 팬들 전부 거기 접속해서 난리도 아닐 거예요. 어제부터 우리도 그런데."
"걔네들은 진짜 I.J 홈페이지 느린 걸 왜 우리한테 물어보는 거야. 미치겠네. 앨범 산 애들 중에 귀걸이 뽑은 애도 없고. 이럴 줄 알았으면 한 천 개는 넣어두는 건데."
"아직 첫날이잖아요."
"그래도! 귀걸이 딱 뽑았다고 시끄럽게 떠들어야지 우리도 짠 하고 몰래 준비한 이벤트라고 밝히는데. 뭐 하러 이렇게 귀찮게 일을 해. 야, 김진주, 아직도야?"
그때, 라온의 직원 김진주가 벌떡 일어났다.
"뚫었다! 가만 보자. 백이십만 원! 열 개 한정이네!"
"너 뭐 하냐? 홈페이지 뚫으라고 했더니 지금 쇼핑하냐? 업무 중에? 당당한데?"
"I.J 홈페이지 앞에 있는 글이에요. 그거 확인 중인데. 그런데 진짜 노래 나오네요."
김 대표는 어슬렁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I.J 디자이너 임우진입니다.
먼저 I.J를 사랑해 주시는 고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고객님들의 관심에 보답하고자 I.J Tears(일명 채우리 귀걸이)를 판매합니다.
제품명: I.J Tears.
판매일: 2018년 8월 31일 금요일.
수량: 10set.
18K 골드이며 동일한 디자인 100% 수제품임을 알려 드립니다.
디자인 특허 번호: 00255156-0018]
"이게 끝이야? 구구절절 사과문 올릴 줄 알았더니 보이는 거하고 다르네. 그런데 이럴 거면 채우리 사진은 왜 쓴다고 그랬어? 기껏 공짜로 쓰게 해줬더니."
"안내문이잖아요. 기다려 봐요."
김진주는 제품 카테고리를 찾아 눌렀고, 또 페이지가 넘어가는 데 시간이 엄청 걸렸다.
"이러다 멈추겠는데…… 됐다! 성공! 봐요. 우리 있잖아요."
"하하, 있네. 예쁘단 말이야."
살짝 고개를 돌린 채우리가 화면에 보였다. 김 대표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선 마저 화면을 봤다.
-눈물 모양으로 된 고리처럼 보이도록 세공된 제품으로, 고리가 따로 분리되지 않습니다. 기존 채우리 씨가 처음 착용했던 니켈 도금과 다르게, 알레르기를 고려해 18K 골드로 제작되었습니다.
그다음 화면에서는 제품 보증서를 보여주었다.
미국에서 디자인의 우수성을 인정받은 제품입니다.
채우리에 대한 얘기가 있긴 했다. 니켈 도금을 한 귀걸이를 착용했다는 말뿐이지만.
"어휴, 진짜 좀 길게 좀 써주지. 그런데 노래는 왜 안 나와. 이거 이러다 여기 윤후 팬들한테 폭파당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그러게요. 보통 사나운 애들이 아닌데…….""생각만 해도 불쌍하네. 야, 그러지 말고 우리라도 하나 사둬. 잃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보관용으로.""120만 원인데요?""사! 이번에 옷값하고 귀걸이값도 안 받았잖아. 그냥 사. 의상비로 돌리고."김진주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또 느릿한 홈페이지와 씨름했다. 한참을 기다리던 김진주는 고개를 돌려 김 대표를 봤다.
"대표님, 벌써 품절인데요?""뭐? 벌써? 18K가 120만 원이라며.""몰라요. 10개 수량 품절이에요. 게다가 더 이상 주문은 안 받는대요.""뭐야! 왜 우리보다 잘나가?!"
***
급격히 늘어난 방문자 때문에, 과부하를 예방하기 위해서 간단한 기능으로만 홈페이지를 운영 중이었다.
처음 들어오면 보이는 I.J 로고까지 빼버린 상태이다 보니 후의 노래를 당장 넣을 수 없었다. 제품과 문의란 두 곳만 열어뒀음에도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었다.
"유 실장님, 그냥 욕 캡처하지 마시고…… 지우기만 하세요……."느려 터진 홈페이지까지 찾아와 기필코 악담을 남겨놓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 이미 다 겪어봤던 말들이었다.
비싸다로 시작해 이걸 왜 사냐로 끝났다. 하지만 홈페이지 속도 때문인지 엄청나게 늘어나는 글 수에 비해 그런 글의 조회 수는 굉장히 낮은 편이었다.
한참이 지나고, 후의 곡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무슨 홈페이지에 자재 가격도 적어놔ㅋㅋㅋ
-진짜. 그런데 신기함. 자재 가격 빼고 공임료가 20%밖에 안 됨. 이렇게 숍 운영이 되나?
-검은 원피스 구매 가능한가요?
-가죽 재킷만 따로 사고 싶은데.
홈페이지가 느린 게 문제였지만, 음악을 기다리며 항의하던 사람들이 홈페이지를 구경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옷들을 보게 되었다.
그러다 옷 소개에 적힌 비용까지 보게 되었고, 그걸 보면서 투명한 운영을 한다는 걸 느꼈는지 글의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었다. 게다가 중간중간 올라오는 글들도 우진을 돕는 역할을 했다.
-230만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정장을 맞춘 사람인데, 그 돈이 절대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예약을 받지 않아서 또 주문하지 못해 다른 곳을 이용해 봤는데, 같은 재료임에도 가격은 배로 비싸고 품질은 훨씬 떨어지고……. 잘 모르는 어린 친구들이 I.J를 욕하는 게 안타까워 글을 남겨봅니다.
"부산 고객이시네."우진은 옷을 직접 입어본 고객이 남긴 글에 미소 지었다. 그 뒤로 얼마 전 만났던 한가을 부부의 글도 보였다. 두 사람은 I.J 식구들보다 더 억울해하며 글을 올렸다.
그때, 매튜가 손가락을 튕겼다.
"원. 'Tears' 주문이 하나 들어왔습니다…… 두 개…… 세 개? 음?"방문자가 그렇게 많아도 아무런 주문이 없었건만, 갑자기 주문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거기에다 첫 주문이 들어오고 1분 남짓한 사이, 순식간에 수량 10개를 채웠다.
"다 팔렸습니다. 제품 내리겠습니다.""……."두고두고 팔 생각까지 하던 우진은 어안이 벙벙했다. 매튜는 곧바로 고개를 돌려 일을 하기 시작했다.
우진도 고개를 돌려 사무실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봤다. 그러자 우진과 마찬가지로 놀란 장 노인이 우진을 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우리 숍 제품이 뭐 있는지도 몰랐던 사람들이 직접 보고 나서 생각이 바뀐 게 아닐까 싶네만.""그럴까요?""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거 말고는 설명이 안 되는 거 같고만."우진은 혹시 윤후가 또 이상한 인터뷰나 글을 올린 게 있는가 싶어 인터넷을 검색했다. 하지만 그런 내용들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옷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돌린 것 같아 가슴까지 두근거렸다.
***
며칠 뒤.
라온에서 홍보한 것과 다르게 귀걸이가 든 앨범을 구매한 사람들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정말 귀걸이가 있는 게 맞는지 의심을 가질 때쯤, 드디어 귀걸이를 인증하는 사람이 한두 명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채우리 앨범 귀걸이 인증함. I.J 품질 보증서도 들어 있음.
그리고 인증 글 밑에 수많은 댓글이 달렸다.
-I.J에서 얼마 전 120만 원에 팔았음. 10개 수량.
-그건 금 ㅂㅅ. 이건 니켈 도금. 그리고 그건 가죽 케이스. 이건 앨범 비닐 케이스. 오키?
-그래도 땡잡은 거 아님? 그거 앨범값보다 비쌀 거 같은데?
-어휴, 되팔렘이네.
-사실 아니냐? 채우리 덕후들한테 팔면 백만 원에도 살 듯.
-글쓴이가 채덕 아니면 앨범 샀겠음? 생각하고는.
귀걸이 가격에 대해 논쟁이 뜨겁게 벌어졌다. 그리고 그럴수록 김 대표의 얼굴은 일그러졌다.
"종락아, 요즘 애들은 돈에 환장한 거 같지 않냐? 뭐든지 돈. 돈.""우리도 마찬가지죠. 돈 벌려고 하는 짓인데.""야! 돈도 중요하지만, 그 뭐야. 뮤지션들의 음악! 힐링! 치유! 애환! 그런 걸 느끼게 해주고 싶지! 돈독 올랐으면 진즉에 회사 상장하고 그랬지. 넌 날 뭐로 보고!""그래도 앨범은 잘 팔리겠는데요?""그게 더 기분 나빠. 다음부터는 아예 포토 카드 같은 것도 넣지 말아야겠어. 볼수록 짜증만 나네."김 대표가 사무실을 나가자 직원들의 한숨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앨범이 잘나가 좋아할 줄 알았건만 저렇게 감정을 드러내 보이는 모습에 김 대표가 새롭게 보였다.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인 김진주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 실장님, 대표님이 화가 많이 나신 거 같아요……. 이거 귀걸이에 대한 보도 자료 보내지 말까요?""왜? 보내야지. 바로 보내.""대표님이 싫어하시는 거 같아서요.""싫어하긴. 어제 있는 돈, 없는 돈 털어서 우리 앨범 30장 사더라. 딱 봐도 그중에 귀걸이 없어서 저러는 거지. 배 아파서. 너희들도 알잖아. 저런 사람인 거.""아……."직원들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할 일을 마저 했다.
***
I.J 식구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응접실에 자리했다. 그들의 손에는 곱게 포장된 옷이 들려 있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홍단아 씨까지. 한번 입어보세요. 반팔인 거 말고는 기존하고 차이가 없을 거예요.""아…… 감사해요. 저도 드디어…… 유니폼을 입게 됐네요! 와! 진짜 정품처럼 라벨도 있어요!""아직 새 건데 뭐 하러 또 만들었어. 그동안 예약 안 받는다더니 이거 만들었어?"다들 포장지를 뜯고선 각자 옷을 확인했다. 홍단아는 곧바로 옷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갔고, 나머지 사람들은 의자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저번에 쿨맥스 잔뜩 구매하더니 이거 만들려고 했고만?""네. 만들어야지 생각은 했는데 그동안 너무 바빠서요. 할아버지도 입어보세요.""됐어. 난 이거 늦게 받아서 아직 멀쩡하니까 해지면 입을 게다.""좀 있으면 겨울이잖아요."그러자 미자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다들 일하시다가 더우면 사무실로 오시니까 시원하게 해주려고 하루 종일 에어컨을 켜고 있어서 그러실 거예요.""아, 그렇구나. 꺼두셔도 되는데.""안 춥다. 아까워서 그런다니까?"우진은 씨익 웃고선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사무실로 들어갔던 홍단아가 나왔다.
"와! 진짜 편하다. 저 정말 궁금했거든요. 이게 아제슬에서 800만 원에 파는 바지랑 똑같이 만든 거 맞죠?""홍 인턴, 하하. 완전 입이 귀에 걸리겠다.""저 이 옷도 입었는데 아직도 인턴인가요……?""아, 그러네. 그럼 홍 대리 해. 하하."홍단아는 옷이 마음에 드는지 옷을 처음 입어봤던 사람들이 하던 행동을 그대로 했다.
"앉았다 일어났다 해도 핏이 안 무너져요. 어떻게 이러지? 허리춤을 올릴 필요도 없네.""하하, 빨리 좀 만들어주지 그랬어."홍단아 덕분에 응접실엔 웃음이 넘쳤고, 알아듣지 못하는 매튜는 옷을 만지작거리고만 있었다. 우진이 설명해 주려 할 때, 며칠 전 통화했던 라온의 김 대표에게 전화가 왔다.
"네, 대표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어요?"-그럼요. 하하. 덕분에 우리 음원 1위도 찍어보고 감사합니다."아, 봤어요. 축하드려요."-축하는 하하. 그런데 선생님 혹시 귀걸이를 좀 더 만드실 생각 없으시죠?"귀걸이요? 왜 그러시는데요? 혹시 채우리 씨 귀걸이에 문제 생겼어요?"-아닙니다. 하하, 그런 건 아니고요. 이번에 앨범을 추가 제작하는데 이번에도 귀걸이를 넣는 게 가능한지 싶어서. 하하."칠만 장이 벌써 다 팔렸어요?"-아직은 아니고 곧 그럴 거 같습니다. 하하, 정말 선생님 귀걸이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우진은 예의상 하는 인사라고 생각하며 웃어넘겼다.
-지금 그 귀걸이가 중고로 33만 원까지 올라갔더라고요. 하하, 다들 사고 싶어 하는데 물건이 없다 보니 가격이 계속 오릅니다."그렇게 비싸게요……?"-팬들의 힘을 우습게 볼 게 아닙니다, 하하. 아무튼 한번 얘기해 보시고 말씀해 주시죠."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우진은 모여 있던 사람들에게 설명했다. 그러자 다들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는지 성훈을 제외하고는 쉽게 수락하진 않았다.
"그런데 그 니켈 귀걸이가 33만 원이라고? 엄청 비싸네. 왠지 손해 보는 느낌인데? 유 실장, 매일 우진이 검색하잖아. 그런데 모르고 있었어?""지금 찾아볼게요……."미자는 우진을 힐끔 보더니 곧바로 휴대폰을 만졌다. 그리고 잠시 뒤 미자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우진은 고개를 갸웃거리고선 물었다.
"왜 그러세요?""이거…… 한번 보세요.""허…… 550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