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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옷이 보여-96화 (96/231)

096화 대구로 3

창수도 훈련하는 걸 보고 싶어서인지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둘은 정문으로 걸음을 옮겼고, 우진은 창수를 물끄러미 봤다.

우진이 다니던 고등학교에는 운동부가 없어서 모르지만, 흔히 말하는 일진들이 운동부를 건드리는 경우는 없다고 들었다.

창수가 야구부에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진 모르지만, 야구부에 들어간다면 조금 편해지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학교로 들어간 우진은 정문에서 붙잡혔다.

"어디서 오셨어요?"

"네?"

"어디 가시냐고요. 여기는 아무나 못 들어가요."

"야구부 구경하려고 하는데 안 되나요?"

"야구부는 왜요?"

경비원은 모자를 눌러쓴 우진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봤다. 그때 학교 안에서 차가 한 대 나왔다. 우진이 한발 물러서자 지나가던 차가 멈추더니 창문을 내렸다.

"어? 창수야. 학교는 왜 또 왔냐?"

"안녕하세요."

"어, 그래. 왜 왔는데?"

나이로 봐서 선생님 같은 사람이 경비원과 마찬가지로 우진을 의심스럽게 보더니 차에서 내렸다.

"누구신데 창수랑 같이 계세요?"

"네?"

"왜 저희 학교 학생하고 학교에 들어오려고 하시냐고요."

그저 창수가 야구부하고 어울리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야구하고 아무 관련이 없기에 신분을 밝히기도 난감했다.

그때 옆에 있던 창수가 입을 열었다.

"서울에서 오신 디자이너세요. 야구복을 보고 싶다고 하셔서 제가 데려왔어요."

"디자이너?"

우진은 놀란 눈으로 창수를 봤다. 선생님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우진을 위아래로 훑었다. 우진은 모자를 벗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패션 디자이너 임우진입니다."

"어? 어디서 봤는데…… 어? 어? I.J? 맞으시죠? 맞네!"

갑자기 바뀐 태도에 우진은 피식 웃었다. 귀찮다고만 생각했던 유명세를 이렇게 사용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선생님은 차를 한쪽에 세워두더니 직접 야구부까지 안내했다. 멀리서 잠깐 보려고 했을 뿐인데, 어쩌다 보니 우진은 감독하고까지 인사를 나누게 됐다.

"하하, 감독님 이분이 서울에서 엄청 유명하신 분인데 우리 학교 야구복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안녕하세요. 임우진입니다."

"야구복은 뭐 때문에 보시려고 하시는지."

"아, 지나가던 김에…… 어떤가 한번 보고 싶어서 그러는데 괜찮을까요?"

"그러세요. 여기 앉아서 보시면 됩니다."

감독이라는 사람은 우진과 악수를 하고선 별다른 말 없이 의자로 안내고는 다시 선수들에게로 가버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창수가 잔뜩 들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와…… 이렇게 가까이선 처음 봐요."

"그동안은 어디서 봤는데?"

"저기 뒤에 건물에서나 아니면 저 뒤에 울타리 넘어서요……."

우진은 참 창수답다는 생각을 하며 창수를 봤다. 야구에 대해 잘 모르는 우진과 달리 창수는 잔뜩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그 전에 보았던 의기소침한 분위기와 180도 다른 모습에 피식 웃고선 우진도 선수들을 봤다.

그런데 의아했다. 창수에게 만들어준 야구복은 하얀색 바탕이었다. 겨드랑이부터 골반까지 옆 라인에 감색이 들어가긴 했지만 지금 선수들처럼 전체가 감색은 아니었다.

우진은 좀 더 확실히 보기 위해 창수를 힐끔 본 뒤 렌즈를 빼서 가방 속의 렌즈 통에 담았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보면 어지러울 수 있었기에 가까운 선수들부터 살폈다.

"창수 씨."

"저기 선생님…… 말씀 편하게 하세요……."

"그럴까? 그런데 등 번호가 없는 건 뭐야?"

"훈련복이라서 그래요."

"아니, 아예 없는 사람들."

"네?"

훈련 중인 선수들 모두 등 번호가 없었기에 창수는 우진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우진은 방법을 바꿔 자신에게 등 번호가 보이는 선수만 물었다.

"저기 지금 공 받고 빠지는 사람은 누구야?"

"와, 선생님이 보기에도 다르죠? 1학년이고 주일중 출신이에요. 순간 민첩성이 좋고 어깨도 좋거든요. 게다가 타격도 괜찮은 편이라 지금 1학년인데도 주전 3루수예요. 달리기하고 스텝만 보완되면 외야수까지 가능할 거예요."

"그럼 저기 저 사람은?"

"어디요? 아, 1학년인데 중학교 때는 변화구가 없어도 강한 어깨 때문에 공에 힘이 실리는 걸로 유명했어요. 아마 손가락도 남들보다 길 거예요. 공에 스핀이 어마어마하게 걸리는 거 같더라고요. 그런데 고교 야구는 마운드부터 홈플레이트 거리가 4m 정도 더 늘어나는데, 그거 때문에 심적으로 부담감을 느끼는 거 같아요. 그래서 지금 제구가 안 되긴 하는데, 이전보다 키도 크고 몸도 좋아졌으니까 아마 투구판을 중학교 야구 위치로 옮겨서 던지면 굉장할 거예요."

"그런 사람도 있구나. 아까운 선수네?"

"그렇죠. 그래도 고쳐지면 내년 이맘때쯤 되면 에이스가 돼 있을 거예요."

그때 갑자기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저걸 고치려면?"

"볼 놓는 위치를 좀 더 앞으로 나왔을 때 놔야겠죠. 저런 경우가 드물긴 한데, 그래도 미국에서는 리틀 야구부터 체계화된 훈련을 해서 그런지 저런 선수 관리하는 방법이 있나 보더라고요. 당장은 못 써도 포수 위치를 가깝게 시작해 아주 조금씩 거리를 늘리면서 훈련하는 방법이 있더라고요. 효과도 확실히 좋고, 던지는 게 보이니까 자신감도 생기게 만들어주고…… 아! 코치님."

언제 왔는지 코치라는 사람이 뒤에 서 있었다.

"날 알아?"

"네, 투수 코치 최노형 코치님……."

"신기하네. 학생들 대부분 나 모르는데. 아무튼 넌 어디서 그걸 들었냐?"

"네……?"

"은수 말이야."

"그냥 보다 보니까……."

"본다고 알아? 너 우리 학교 학생 맞아?"

창수는 당황했는지 대답을 못 하더니, 계속된 추궁에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매번…… 경기 보면서 제 나름대로 분석하고…… 그때그때 녹음해 놓거든요……."

"뭔데? 한번 틀어봐."

"저번 주말에 있었던 주말 리그…… 경기인데."

"그거 서울에서 한 건데?"

"네…… 할아버지가 서울에 계셔서……."

창수는 볼펜 모양 녹음기를 재생시켰다. 그 안에는 수정고에 대한 정보뿐만이 아니라 상대편에 대한 정보와 바뀐 점, 대응법 등 잠시도 멈추지 않고 창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코치라는 사람은 창수를 물끄러미 보더니 우진을 봤다. 우진이 감독 자리에 앉아 있어서인지 손님으로 생각한 듯, 그는 그저 인사만 까닥하고는 걸음을 옮겨 감독에게 향했다. 그러고는 이쪽을 보며 뭐라고 숙덕거렸다.

그 모습을 본 창수는 발을 심하게 떨었다.

"불안해하지 마."

"그래도요. 코치님은 전문가인데…… 전문가 앞에서……."

"잘못한 거 없잖아. 그런데 야구를 보려고 서울에 왔던 거구나."

"네……."

그때, 감독과 코치가 이쪽을 한참 보더니 1학년 투수를 불렀다. 그러고는 마운드에 세우더니 포수까지 불렀다. 줄자까지 가져와 창수가 말한 대로 중학교 야구의 거리에 포수를 앉혔다.

"던져봐."

은수라는 선수는 공을 받아 들더니 우진이 봐도 대충 공을 던졌다. 혼나는 건 당연했다. 감독이 있는 욕 없는 욕을 쏟아내더니 다시 공을 건넸다. 그러자 선수는 그때서야 TV에서 보던 선수처럼 공 던질 자세를 취했다.

펑!

포수 미트가 터진 것 같은 소리가 들리더니 공을 받은 포수가 인상을 쓰며 일어섰다.

"더 던질 거면 썸가드 착용해야겠는데요?"

"썸가드는 무슨, 그냥 받아."

"진짜 아파요. 공이 엄청 무거워요. 이거 엄지 나갈 거 같은데."

"몇 개만 받아봐."

그리고 또 투구가 이어졌다.

펑! 펑! 펑!

매번 던질 때마다 글러브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다른 선수들도 훈련을 멈춘 채 구경 중이었다.

"아…… 감독님, 너무 아픈데요. 이거 계속 받다가는 손바닥 부어요."

"알았어. 그만하고, 은수 넌 어깨 풀고 있어. 너흰 훈련 안 하고 뭐 하고 있어!"

감독은 선수들에게 다시 훈련을 지시하더니 투수 코치와 함께 우진에게로 왔다. 그러고는 창수를 물끄러미 보고선 일으켜 세웠다.

"몸은 전혀 야구할 몸은 아닌데? 우리 학교 학생인가?"

"네……."

"1학년?"

"아니요…… 2학년이에요."

"지금부터 몸을 만든다고 해도 늦었네."

창수의 몸을 이리저리 만져보던 감독은 그걸로 끝이었다. 그는 더 이상 아무런 말 없이 옆에 앉아서 무언가를 작성했다.

창수는 당연하다는 얼굴로 어색하게 웃었고, 우진은 그런 창수를 보고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고는 감독에게 질문을 했다.

"감독님, 창수 꿈이 전력 분석원이라는데 고등학교 야구에는 없다고 들었어요."

"전력 분석원? 음…… 그렇죠. 프로나 가면 모를까."

"고등학교에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요?"

"우리나라에서는 무리입니다. 그건 우리 코치진에서 충분히 잘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창수는 그만하라는 듯 우진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당사자가 말리는데 더 얘기하는 것도 우스웠다.

우진은 아쉬운 얼굴을 하고선 창수를 봤다. 분명 등 번호는 없지만, 같은 야구복을 입고 있었다.

"야구부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그렇긴 한데, 아까 감독님이 말씀하신 대로 학생이 전력 분석원으로 있진 않거든요."

우진도 이해는 됐지만, 남들이 없다고 자신들도 없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옷만 하더라도 남들에게 없는 걸 찾아 특별함을 추구해야 하는데, 너무 정형화된 틀에 박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진은 감독을 힐끔 보고선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저 선수는 어때?"

"네?"

창수는 눈치가 보여서인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진은 등 번호가 보이는 선수만 골라 계속 물었다.

그렇게 한참을 묻던 와중, 창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선생님, 우리 학교 야구부 아세요?"

"아니? 왜?"

"신기해서요. 어떻게 주전 선수만 딱딱 꼽으셔서요. 보는 눈이 좋으신 건가? 대단하신데요?"

옆에서 듣던 감독도 신기한 눈으로 우진을 봤다. 그러고는 마지막에 우진이 물었던 선수를 가리키며 질문을 했다.

"동진이를 물어본 이유가 뭡니까?"

"잘해 보여서요."

"흠…… 그냥 런닝만 하고 있는데 그게 보입니까?"

"제 눈에는 잘해 보이는데요……. 창수 네가 보기엔 어때?"

대답할 수도 없었거니와 창수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기에 우진은 질문을 넘겨 버렸다. 그렇지만 창수는 여전히 머뭇거렸다. 보다 못한 감독이 말을 하라고 판을 깔아준 뒤에야 입을 열었다.

"동진이랑 같은 반이라서 하는 얘기는 아니고요……. 멘탈이 굉장히 강한 친구 같아요. 훈련할 때도 인상 한 번 안 쓰고, 경기 중에 점수를 내줘도 흔들리지 않거든요. 그런데 체력이 조금 약한 게 문제예요."

"보는 눈은 정확하네. 그래서 런닝을 시키는 거지."

"감사합니다……."

"그래서 네가 보기엔 어때?"

"지금까지 동진이가 선발로 나온 경기를 보면 1회에 안타를 맞은 경우가 1학년일 때, 작년 주말 리그 한 번밖에 없어요. 전부 2회나 3회부터 안타를 맞거든요. 그래서 제 생각에는 프로처럼 마무리 전문으로……. 그래도 당분간은 동진이를 대체할 2선발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선발로 나와야 할 거 같아요."

보통 투수 싸움인 고교 야구는 투수 2, 3명이 많은 경기를 소화했기에 한 명이라도 없어서는 안 되었다.

"마무리를 한다고 해도, 체력도 좀 쌓고 페이스 분배를 잘하면 다시 선발로 나와도 될 실력이라서 프로에서도 좋아할 친구예요."

우진은 약간 놀란 듯한 감독의 얼굴을 보고선 창수에게 엄지를 내밀었다. 그러고는 어떠냐는 얼굴로 감독에게 미소를 보냈다.

"전력 분석원이 우리 팀만 보는 건 아닙니다. 혹시 다른 팀들도 알고 있냐?"

"네…… 대부분……."

"그럼 1차전인 포항고에 대해서 말해봐."

"어! 일정 나왔어요? 포항고면 저희 전적이 상당히 우세해요. 그러다 보니까 토너먼트에서 살아남으려고 총력전을 펼칠 거예요. 아마 투수는 2학년 김재우가 나올 확률이 높아요. 저번 주말 리그만 해도 재우 선수가 나왔을 때 우리 학교 득점이 높지 않았거든요. 전부 120㎞ 후반 대 커브와 140㎞ 직구 섞는 거에 당해 버렸어요. 근데 볼 배합률을 보면 6회가 지나고 나서는 직구 수가 굉장히 줄어들어요. 대신 밋밋한 슬라이드를 섞는데, 그 각도가 왜 던지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안 좋아요. 그런데 언제 또 직구를 던질 줄 모르니까 거기에 신경을 쓰는 거 같더라고요. 아마 그 슬라이더를 노리면 다득점도 노릴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첫 경기는 투수전을 할 필요가 없다 보니 저희한테 여유도 생길 거고요."

감독은 감탄한 얼굴로 창수를 한참이나 보더니 헛웃음을 뱉었다. 그러고는 기가 막힌지 등을 의자에 기댄 채 창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때, 계단을 내려와 운동장으로 걸어오는 무리가 보였다. 그 무리에는 이곳으로 안내했던 선생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최 감독!"

"최 감독님!"

"교장 선생님, 동문회장님, 오셨습니까."

"하하, 그래요. 그런데 유명하신 디자이너분이 오셨다고 들었는데 왜 말씀을 안 하셨습니까. 저희 학교 야구복을 보러 오셨다고 들었는데.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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