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옷이 보여-106화 (106/231)

106화 유니폼 7

다음 날, 최 대표가 아침부터 I.J로 찾아왔다. 우진도 걱정하던 부분이었기에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잘됐네요! 그럼 야구 중계에도 나오는 거예요?"

"하하, 아닙니다. 2군 선수들이니까 TV에 나오진 않지만, 저희 스파이크가 마음에 들어 계속 신다 보면 1군에 올라갔을 때도 TV에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렇구나.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하하. 그런데 저희가 유니폼을 제작하는 업체는 아니지만, 에이치에서 2군 유니폼을 제작해 주길 원하더군요. 그래서 선생님 의견을 여쭤보려고 왔습니다. 다른 건 디자인 자체가 크게 변형되지 않는데, 누빔 처리가 I.J 로고라서 저희가 사용해도 되는지 허락을 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 찾아왔습니다."

우진은 씨익 웃었다. 만들기만 하면 특허에 등록하는 매튜였다. 당연히 지금 누빔 처리 방식도 등록 중이었다. 그래서 약간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후원이라는 명목으로 수정고에 지원했는데, 1회전 탈락으로 어디에서도 I.J 로고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쓸모없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더 큰 이득을 보게 되었다.

최 대표 말로는 유니폼에 부착하는 광고 하나가 일 년에 몇억, 많게는 10억까지 간다고 했다. 즉 돈도 들이지 않고 I.J 광고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도 저절로 유명해지고 있는 덕에 광고가 절실히 필요하진 않았지만, 자신이 벌인 일 때문에 그동안 하지 않아도 될 고생을 한 직원들에게 미안했다.

그런데 유명 야구 구단 선수들이 유니폼을 입게 된다면, 다들 고생도 아니라고 생각할 게 분명했다. 우진은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며칠 뒤.

2군 정규 리그가 끝났음에도 에이치 이글스 2군 선수들이 서산 연습장에 모였다. 그리고 몇몇으로 나뉘어 스파이크를 보며 대화를 나눴다.

"스파이크를 만들면서 발을 본떠 가는 건 처음 봤어요."

"유명한 선수들은 그렇게 하잖아. 맞춤 신발. 그런데 우리한테까지 그럴 줄은 몰랐네."

"그러게요. 디자인도 마음에 들고."

전부 다 지급받은 건 아니었고, 필요한 선수들에 한해서 지급했다. 부상으로 잠시 2군에서 재활 중인 선수들은 자신이 쓰던 장비를 그대로 사용했고, 1군과 2군을 왔다 갔다 하는 선수도 마찬가지였다.

운동선수는 쓰던 장비를 함부로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2군 퓨처스 리그에 오래있었거나 신인 선수들은 자신들에게 들어온 후원이 감사했다.

2군 선수들은 스파이크를 착용했고, 이내 서로의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난 아니다. 뭐야, 길들일 필요도 없겠는데?"

"진짜요. 뭐 이렇게 편해. 신기하네."

"이름 없는 데라서 조금 걱정했는데 미안할 정도로 마음에 드네."

"저도요. 와, 장난 아닌데요? 점프해도 편한데요?"

"다른 장비는 없나? 보호대도 하나 사야 하는데. 한번 찾아봐야겠다."

"없더라고요. 그냥 오로지 스파이크만 만드나 봐요."

그때, 직원들과 함께 와 있던 최 대표가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선수들에게 다가갔다.

"어떠십니까?"

"일단 뛰어봐야 알겠지만, 느낌은 좋은데요?"

"하하, 저희 제품이어서가 아니라, 다른 업체 제품에 비해 편하면 편했지 결코 부족하지 않을 겁니다. 열심히 써보시고 판단해 주십쇼. 저희하고 계약하신 분에 한해서 무한 협찬해 드립니다."

스파이크 징만 교체해서 신는 선수도 있었기에, 최 대표의 말에 다들 얼굴이 밝아졌다.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1군과 달리 2군에서 이런 관심을 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내일부터 일주일간 훈련해 보시고 그 뒤에 간단히 계약하는 게 좋으시겠죠?"

"저희야 뭐 고마운데……."

"그리고 유니폼은 구단에 먼저 드렸습니다. 경기복하고 훈련복하고 따로 차이를 두지 않았습니다, 하하."

이곳에 있는 2군들은 시즌이 끝났지만, 에이치 이글스의 일정이 전부 끝난 건 아니었다. 만년 꼴찌였던 1군이 가을 야구를 하게 되었고, 다음 주부터 준플레이오프를 치렀다.

그래서 2군 선수들도 언제 불려갈 줄 모르는 대기 상태였다.

최 대표는 자신의 할 일이 끝나자 선수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했다. 아직 안면이 없어서 서먹했지만, 선수들도 최 대표에게 인사를 건넸다.

최 대표가 사라지자 곧바로 프런트 직원과 코치, 감독까지 모두 나와 선수들을 불러 모았다.

"치수는 말 안 해도 된다. 각자 박스에 이름 쓰여 있으니 그거 들고 가."

선수들은 새로운 유니폼을 궁금해하며 상자를 뜯었지만, 디자인 자체가 변한 게 아니어서 이내 상자를 닫았다.

"그리고 투수 차우승, 정시원, 유격수 최찬민 1군 엔트리 등록했으니까 오늘 훈련할 때 안 다치도록 조심하고. 10분 뒤에 훈련 시작할 테니 각자 모이도록."

감독의 말이 끝나자 선수들은 곧바로 박스를 들고 로커로 향했다. 다들 연습에 늦을세라 부랴부랴 이동했다. 그리고 잠시 뒤, 선수들은 각자 포지션에 맞게 훈련 장소에 모였다.

"찬민아, 너답지 않게 왜 그렇게 얼어 있어. 하하, 너 그러다 경기하기도 전에 다친다."

"1군 오랜만이라 긴장되잖아요. 게다가 준플레이오프인데 실수하면 어떡해요."

"넌 실수할 생각부터 하냐. 아마 용주 선배 컨디션이 안 좋아 보여서 여차하면 너 쓰려고 그러는 거니까 걱정 마라. 네가 콘택트도 좋고 달리기도 엄청 빠르잖아."

1군에 등록된 최찬민은 가볍게 1루 베이스 러닝을 하고 돌아와 다시 순서를 기다렸다.

"그런데 너, 새 유니폼 입고 나왔냐?"

"네. 이거 무상 지원이라면서요."

"이 바보야. 하하하, 그건 스파이크만이랬잖아."

"뭐야! 속았네."

"속기는……. 네가 잘못 들었지. 그런데 새 유니폼을 입어서 그런가. 어찌 너 좀 날렵해 보인다?"

"형도 입어봐요. 생각보다 편해요. 치수도 재더니 잰 이유가 있어요. 스파이크도 그렇고, 유니폼도 그렇고. 여기서 장비 나오면 한번 사볼 만할 거 같아요."

그때, 주루 코치가 최찬민을 불렀다.

"최찬민부터 들어가. 1차 리드 벌리고 바로 스탠스 취해."

"네!"

"고! 야! 숏피치잖아. 지금! 다리도 긴 놈이! 다음!"

최찬민은 고작 1루에서 2루로 뛰었을 뿐이지만, 그만큼 전력 질주를 했기에 숨을 헐떡였다. 슬라이딩까지 마치고 돌아온 최찬민은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며 입을 열었다.

"아, 개 힘들어."

"야, 너 다리 왜 그렇게 좁아?"

"아! 이거 신발 때문에! 형은 안 그랬어요? 아, 형은 스파이크 안 받았지."

"왜?"

"이거 장난 없어요. 그냥 맨발로 뛰는 거 같아요. 원래 쓰던 스파이크 생각하고 밀릴 줄 알았다가 순간 넘어질 뻔했다니까요. 봐요. 중호 형도 저러네. 이거 진짜 좋아요. 형도 써봐요."

"됐어. 그런데 뭐냐? 엉덩이에."

"뭐가요?"

"네 엉덩이에 이상한 거 생겼는데? 뭐야?"

최찬민은 허리를 꺾다시피 돌려서 허벅지 부분을 살폈다. 흙이 묻은 곳에는 전에 보이지 않던 무늬가 생겨나 있었다.

"어? 뭐야, 이게? 좀 간지 나는데요?"

"미친놈."

최찬민은 자신의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씨익 웃었다.

***

며칠 뒤.

팟사라곤이 첫 출근을 했지만, 1층 사무실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덩치가 덩치인 만큼 1층이 좁을 거라고 생각한 매튜는 팟사라곤을 아예 2층에 배치했다. 무엇보다 팟사라곤이 그러길 원했다.

팟사라곤은 첫 출근을 하고 하루 종일 2층에 있다가, 퇴근할 때가 되어서야 서류를 들고 내려왔다. 기존에 있던 것들을 전부 갈아엎겠다는 내용이었고, 새로 필요한 계약에 대한 내용들이었다.

우진은 전혀 모르는 내용이라, 매튜에게 넘긴 상태였다.

"원래 홈페이지에 홈페이지 이전을 걸어두고 아예 옮긴다는 말씀이시죠?"

"여기보단 제가 알아본 곳이 훨씬 낫습니다. 서버를 직접 관리하는 게 좋겠지만, 그러려면 저 혼자는 불가능하고 호스팅해야죠. 거기 적혀 있는 것들 다 해서 글로벌 호스팅, 디도스 방어 호스팅까지 한국 돈으로 월 450만 원 정도 들어갑니다."

그 대화를 들은 우진은 속으로 열심히 계산을 했다.

제프 우드와 헤슬 덕분에 여유가 생기긴 했지만, 아직까지 우진이 만드는 옷은 여전히 기본 100만 원이었다. 게다가 거의 한 달 넘는 기간 동안 돈이 되는 일을 하지 않았다.

나중을 보고 하는 일이지만, 지금 당장이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루에 한 벌씩 만든다고 해도 5일…….'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숍을 운영할수록 배보다 배꼽이 더 커졌다.

그때, 밖에 나갔던 홍단아와 미자가 쇼핑백을 들고 들어왔다.

"카우 실장님, 지금 퇴근하세요? 그럼 너무 많이 사왔네. 야구 보면서 먹으려고 치킨하고 맥주 사왔는데!"

우진은 두 사람이 누구한테 하는 소리인지 몰라 상황을 파악했다. 그때, 팟사라곤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야구 보고 퇴근할 겁니다?"

그 모습을 보던 우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팟사라곤 씨가 카우예요? 소? 왜요?"

그러자 홍단아가 웃으며 말했다.

"이름이 어려워서 태국에선 예명처럼 부른다던데요. 팟사라곤 실장님 얼굴이 하얘서 카우로 불렸대요. 태국말로, 흰색이라고 그랬던 거 같아요."

"아, 그래요?"

우진은 팟사라곤의 이름이 어려우니 잘됐다고 생각했다. 카우도 이상하긴 했지만, 팟사라곤보다는 백 배 나았다.

"이제 시작할 때 됐어요! 먼저 올라가서 준비할게요. 실장님, 저희 먼저 올라가요!"

"선생님, 천천히 올라오세요."

미자와 홍단아가 올라가자 우진도 사무실을 정리했다. 우진은 매번 그렇듯 칼 같은 정리를 하고 나서야 매튜와 팟사라곤을 돌아봤다.

매튜는 의사 표현이 확실하기에 걱정이 없었지만, 팟사라곤은 오늘이 첫 출근인데 억지로 야구를 보는 건 아닌가 싶어 질문을 던졌다.

"올라가시죠. 참, 카우 씨는 야구 안 좋아하는데 억지로 계시는 거 아니시죠?"

"팟사라곤입니다?"

"네……?"

"제 이름, 카우 아니고 팟사라곤입니다?"

팟사라곤이 갑자기 정색하는 통에 우진은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다행히 야구 시청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함께 3층으로 올라가자 다들 벌써 상까지 펴놓고 한창 준비 중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집주인인 세운은 소파에 앉아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이 준비하고 있었다.

"저러니까 저 나이까지 장가를 못 가는 게야, 쯧쯧."

"아나! 못 간 게 아니라 안 간 거거든요. 우진아, 아 영감님 좀 어떻게 해줘라. 하루 종일 잔소리네."

우진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다들 상에 둘러앉아 회식 아닌 회식이 시작되었다.

"아니, 이 양반은 자리도 넓은데, 왜 이렇게 끼어들어. 이봐, 카우! 넓게, 넓게 앉자고!"

"팟사라곤입니다?"

"아, 안다고! 어이가 없네. 참."

우진은 세운과 팟사라곤의 모습을 보고 팟사라곤이 카우라는 호칭을 싫어하나 보다 생각했다. 그때, 야구가 시작되었다.

-준플레이오프, 에이치 이글스 대 SiA 타이거즈의 경기가 있는 SiA 챔피언스 필드에 관객이 모두 들어섰습니다. 과연 오늘 경기로 에이치 이글스가 승리를 따내느냐, 아니면 SiA 타이거즈가 플레이오프로 올라가느냐. 그 행방이 결정되는 중요한 경기인데요.

에이치 이글시는 5전 3승전제로 이뤄지는 준PO에서 벌써 2패를 했다. 우진은 야구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최 대표가 밝은 목소리로 전한 소식을 떠올리고 다시 집중했다.

"그런데 오늘도 안 나오는 거 아니야? 최 대표가 분명히 1군에 올라갔다고 말했어?"

"네, 지원받은 선수 두 명이 올라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왜 그렇게 안 나와."

그때였다.

-에이치 이글스 한재영 감독이 아주 큰 모험을 하고 있네요. 최찬민 선수가 퓨처스 리그에서 괜찮았다고 해도 아직 신인인데, 이런 큰 무대에서는 분명 부담감을 느낄 거거든요? 지금 타석에 들어서는 얼굴도 굳어 보입니다. 긴장감을 좀 풀어줄 필요가 있어요.

전부 신발만 보고 있는 통에, 다들 단번에 최찬민이 스파이크를 지원받은 선수임을 알아챘다.

"뭐야! 좀 좋게 말해주지!"

우진은 수정고처럼 설레발치지 않기 위해 내색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그때, 최민한이라는 선수가 1루에 나갔다.

-초구 기습 번트라니요! 완전 상상도 못 했습니다. 타구가 잘 멈춘 것도 있지만, 그것보다 엄청난 속도네요. 포구가 되기 전에 이미 1루에 도착했어요. 하하, 정말 빠르네요. 이러면 시작부터 에이치 이글스의 분위기가 좋은데요? 어? 주자 뛰었습니다! 하…… 지금 제가 본 게 맞습니까? 포수 송구가 늦은 것도 아닌데 여유 있게 세이프입니다.

우진은 조용히 박수를 보냈지만, 마음만은 TV 속에 보이는 관중들처럼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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