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옷이 보여-125화 (125/231)

125화 별점 주는 제프 2

이른 아침부터 숍에 들른 이장호는 판매 직원 및 매니저, 테일러 등 직원 전체를 이끌고 숍을 둘러봤다. 직원들은 혹시라도 지적당할까 봐 말 한마디 없이 조심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때 숍 문이 열리더니 또 다른 직원이 들어왔다.

"넌 뭔데 이제 오는 거야?"

"죄, 죄송합니다. 사진을 빨리 찾아와야 할 것 같아서요."

"무슨 사진?"

"그게……."

직원이 말을 제대로 못 하자, 그나마 이장호와 오래 일했던 매니저가 나섰다.

"제프 우드하고 찍으신 사진을 로비에 걸어두려고 액자 주문했습니다."

"그거 말인가? 이리 가져와 봐."

이장호는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액자를 받아 들었다. 그리고 포장지를 뜯자 미술 전시품이라도 되는 듯 은박 포장지로 감싸여 있었다.

포장지에서 액자를 빼 들자 은색 테두리의 액자가 보였고, 액자 안에 자신과 제프가 찍은 사진이 보였다.

이장호는 옆에 있던 직원들에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얼굴을 찡그렸다. 제프 때문에 자신이 했던 말을 바꿔야 했다.

일반 디자이너라면 모를까, 제프 우드나 헤슬이 홀로그램 쇼를 하게 되면 자신이 예전에 했던 말을 대중들이 지적할 수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말을 바꾸기 위한 행동을 먼저 해야 했고, 보여주기 형식으로 I.J의 쇼까지 다녀왔다. 분명 파격적이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기존의 입장에서 크게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다만 대동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선 보통의 홀로그램을 사용한다고 착각해서 일어난 실수라고까지 말해야 했다.

본의 아니게 I.J를 칭찬해야 해서 속은 쓰렸지만, 그래도 제프 우드나 헤슬에서 쇼를 내기 전에 말을 바꿔 그나마 다행이었다.

지금이야 속이 쓰리지만, 두 곳에서 쇼를 선보이게 되면 어제 쇼를 보고 한 칭찬으로 자신의 안목이 조명받을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어제 제프와의 인터뷰 이후부터 계속 I.J를 칭찬하며 다녀야 했고, 그게 전부 제프 때문이라는 생각에 그다지 반가운 사진은 아니었다.

"로비 카운터 뒤에 걸어둘 예정입니다. 괜찮을까요?"

"알아서 해."

"SNS에는 이미 올렸습니다. 사진에 달린 댓글을 추첨해서 5% 할인권을 선물로 드리려고 합니다."

"그래, 이벤트 같은 건 알아서 하고. 예약은 어떤가?"

"오늘 40명 정도 있습니다. 대부분 신혼부부들입니다."

정장 전문에서 예복까지 겸한 지 오래된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이장호의 이름이 있다 보니 결혼을 앞둔 신혼부부들의 예약이 평일에도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그래, 반수제는 추천하지 말고, 수제로 추천해. 새로 들어온 호정 원단 추천하고."

"아무래도 예복이다 보니 해외 원단으로 하려고 합니다."

"차이 없으니까 호정 추천하라고. 그리고 대여 턱시도 전부 호정 원단으로 제작해. 남아돌잖아."

재료비가 거의 반값 정도 차이가 나는데 받는 가격은 비슷하게 받았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은 숍에서 일하면서도 절대 지인이나 가족에게 이곳을 추천하지 않았다. 그 뒤로도 이장호의 지시는 계속 이어졌다.

그때 로비 전화기가 울렸다. 카운터 담당 직원은 입을 가린 채 조용히 전화를 받았다.

자주 있는 일이기에 이장호는 신경 쓰지 않고 계속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전화를 받은 직원이 다시 자리로 돌아올 때였다.

따르릉-

따르릉-

띠리리리-

카운터에 있던 3대의 전화가 동시에 울렸다. 이장호는 시끄럽다는 듯 직원들에게 고갯짓을 했고, 직원들은 급하게 카운터로 들어갔다. 그러자 매니저가 웃으며 말했다.

"SNS에 올린 사진 때문에 선생님 명성이 더 올라갔나 봅니다."

"명성이 올라가기는. 만나보니까 별거 없던데. 아무튼 저 액자는 카운터 뒤에 걸어둬."

"네, 알겠습니다."

"난 협회에 나가볼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고."

이장호는 계속해서 울려대는 전화에 기분이 좋은지 미소가 생겼다. 그러고는 숍을 나가려 할 때, 카운터에 있던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객님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5시 예약 임동건 씨요. 확인되셨네요. 어떤 일 때문에…… 취소요?"

이장호는 인상을 찡그렸다. 숍을 운영하다 보면 취소가 있는 건 다반사였기에 그대로 고개를 저으며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런데 그 옆에서도 비슷한 말이 들려왔다.

"상담을 취소하신다고요? 네, 알겠습니다. 혹시 다른 곳으로 상담을 받으러 가시는 건가요? 아, 네."

"예약 취소하신다고요?"

전화를 받은 직원들이 모두 같은 말을 했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이미 계약서까지 작성하고 작업이 진행 중인 실장들의 휴대폰에도 고객들의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네, 신랑님. 네? 아니에요. 이미 어느 정도 완성하셔서, 취소한다고 해도 계약서에 적힌 대로 계약금은 돌려받을 수 없으세요. 그건 계약서를 보실 때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이장호는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분명 어제 인터뷰도 잘했고, 만약에 무슨 일이 있다고 해도 다음 주나 돼야 방송이 나갈 터였다.

게다가 어제 I.J 쇼를 보고 한 인터뷰에서도 좋은 말만 했기에 문제 될 게 아무것도 없는데,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때, 옆에 있던 매니저의 휴대폰이 울렸다. 이장호가 먼저 받으라고 재촉했다.

"아, 이사님. 어쩐 일이세요. 네? 설마요. 제가 알아보고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이장호가 급하게 나섰다.

"뭔가?"

"거래처 K웨딩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말을 하네요. 제프 우드가 무슨 평가를 했다고 하는데, 그 얘기가 계속 퍼지는 중이랍니다. 웨딩 카페나 웨딩 업체는 이미 계속 올라오는 중이고요."

"무슨 평가? 누가 나를 평가해?"

"그게…… 일단 제가 확인부터 해보겠습니다."

매니저는 곧바로 컴퓨터 앞으로 가서 가입되어 있는 웨딩 준비 카페에 들어갔다. 제목만으로도 쉽게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그 글을 클릭해 들어가니 후기 같은 글이 작성되어 있었다.

ㅇㅈㅎ디자인.

초성으로 적어놨지만, 누가 봐도 '이장호 디자인'이었다. 작성자는 이미 이곳에서 옷을 맞췄던 사람이었다. 글 마지막에는 인증 샷이라며 결혼식 사진을 올려놨고, 그 밑으로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어머, 정말 우리 부모님 결혼사진인 줄…….

-합성한 거 같은데.

-합성 절대 아니에요. 올해 1월이에요.

-대박. 제프 우드 평가 짱이다……. 그런데 I.J는 예복 안 하죠?

-우리 예랑이 가뜩이나 못생겨서 옷이라도 좋은 거 입히려고 여기 예약했는데, 그렇게 안 좋나요?

-취소하세요! 사진 보고도 예약하면 호구 인증하는 꼴!

그 외에도 '이장호 디자인'에 관련된 글들이 꽤 많았다. 매니저가 그중 누군가가 링크해 놓은 걸 따라 들어갔고, 그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제프 우드의 SNS였다. 한국의 숍에 대해 평가해 놓은 글이 있었고, 그 밑으로 엄청난 팔로워 수에 맞게 수많은 나라의 댓글이 보였다. 매니저가 급하게 글을 클릭해 들어가니 영어로 된 글이 보였다.

젊은 디자이너가 있는 숍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모든 것이 완벽하다. 디자이너의 감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 이곳에서는 자신이 평소 원하는 스타일보다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디자이너에게 맡기는 걸 추천한다.

다만, 디자이너가 모든 작업을 하다 보니 예약하기가 쉽지 않은 점이 아쉽다. 그래도 예약을 할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하는 걸 추천한다. 분명 새롭게 변신한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총점 ★★★★★ S+

I.J에 대해 극찬을 쏟아냈다. 그 밑으로도 수많은 숍이 있었고, 대부분 B에서 C를 받았다. 특이한 점은 동대문의 상가들 역시 B를 받은 것이었다.

수많은 옷가게들이 밀집되어 있어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넓혀준다는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중간 정도 왔을 때, '이장호 디자인'이 보였다. 매니저는 급하게 스크롤부터 내려 별점부터 확인했다.

총점 ★☆☆☆☆ E

매니저가 얼굴을 찌푸리며 스크롤을 올릴 때, 옆에서 콧김이 느껴졌다. 이장호가 얼굴이 빨개지다 못해 터질 것 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는 거칠게 매니저의 손에서 마우스를 뺏어갔다. 그러고는 천천히 글을 읽었다.

기본을 중요시한다는 디자이너의 말처럼 디자인만은 기본에 충실했다. 다만 그 디자인이 80년대에나 유행하는 디자인이라는 것. 기본을 지키더라도 시대에 맞춰 기본을 지켜야 하는데, 이곳은 마치 세월이 멈춘 듯한 느낌이다.

게다가 기본을 중요시한다는 디자이너의 말과 달리, 원단 관리는 허술했다. 원단들을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에 배치해 보기에는 좋지만, 변색될 것이 분명하다. 원단 관리조차 못 하는 숍의 모습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다만, 올드한 느낌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추천한다. 그리고 이 의견들은 전부 개인적인 의견임을 밝힌다.

그 밑으로 처음으로 달린 댓글이 헤슬의 공식 계정이었다.

-'오래간만에 맞는 말을 하는군'이라고 전해 달라십니다.

"이런 개호로 새끼!"

이장호는 마우스를 집어 던졌다. 자신이 우진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사용했다.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라는 말. 별거 아닌 것 같은 말에 이렇게 화가 날 줄은 몰랐다. 게다가 헤슬에서까지 댓글을 다니 화가 더욱더 치솟았다.

이장호는 심호흡하더니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들어 어제 촬영한 방송 작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이장호입니다. 디자이너 협회장이라고! 제프 우드 연락처 좀 알려주십쇼. 뭐요? 안 된다고? 알려달라면, 알려달라고!"매니저는 다급하게 이장호를 말렸지만, 이미 폭주 상태나 다름없었다.

"이거 놔!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저런 말이 나와! 이거 놔라.""선생님, 진정하세요."매니저는 거의 전화를 뺏다시피 해 사과한 뒤 전화를 끊었다.

짜악-

"이런 건방진 자식이……. 그래, 말 나온 김에 다 죽어보자. 테일러들 다시 모여."이장호는 슈트까지 벗고는, 볼을 감싸고 있는 매니저에게 테일러들을 불러 모을 것을 지시했다.

"옷을 어떻게 만들었길래 저딴 말을 해! 동묘 길거리에서 파는 쓰레기보다 평가가 낮은 게 말이 돼? 너, 가서 지금 작업 중인 거 가져와."숍에 소속된 테일러 중 한 명이 급하게 올라가더니 작업 중인 슈트를 가져왔다. 이장호는 대충대충 살펴보더니 땅에 처박았다.

"이러니까 그딴 소리를 듣는 거잖아! 이거 누구한테 배웠어!""……."테일러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이장호 숍에 몸담고 있지만, 누구도 이장호에게 배운 적이 없었다. 대부분 숍에 있다 나간 선배들이나 지금 몸담고 있는 선배들에게 실무를 배웠다.

"하, 쓰레기 같은 놈들……. 너희들 때문에 내가 그런 평가를 받아야 해? 야, 김 실장, 넌 애들 데리고 가서 2층부터 정리해. 누가 원단을 창가에 내놔!""그건 선생님께서…… 아닙니다. 알겠습니다."직원들은 폭풍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지만, 지금도 계속 걸려오는 전화를 보면 쉽게 진정할 것 같지 않았다.

***

숍에 있던 팟사라곤은 미칠 지경이었다. 갑자기 숍에 전화가 미친 듯이 걸려왔다.

전화야 받지 않아도 되지만, 패션쇼가 열리는 소극장은 문제가 생기면 큰일이었다. 첫 공연 시간부터 줄이 끝도 없고, 대기하는 사람도 엄청나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그 원인이 지금 옆에서 커피를 홀짝거리는 사람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게 뭐라고 했더라? 맞다? 진상? 개진상이네?""뭐야, 왜 갑자기 이상한 말을 해요. 영어로 해!""개진상?""뭐야, 어감이 이상한데. 욕이지! 아닌가? 웃으면서 하니까 모르겠네. 그나저나 우진이는 언제 와요?"우진이 휴가를 간 동안 숍에서 팟사라곤과 함께 있던 댕은 혼자 미친 듯이 웃었다. 그때 제프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제프 우드? 나 이장호요!"이장호?"-한국 디자인 협회장이오!"아하! 어쩐 일이십니까?"-어쩐 일은! 지금 당신이 이래도 되는 거요? 우리가 당신 때문에 입은 피해가 얼마나 되는지나 아시오? 지금 당장 글을 지우지 않으면 고소하겠소!"고소? 하하, 고소? 해. 난 또 글 써야지."제프는 실실 웃는 얼굴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러자 댕이 약간 걱정스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저씨가 걱정돼서 그러는 건 아닌데, 그렇게 막 해도 괜찮아요?""괜찮아. 나 제프 우드야. 말했지? 나 엄청 유명하다니까?""유명하니까 문제 될 수 있잖아요.""네가 좋아하는 우진이처럼 어중간하게 유명하면 그렇지. 나 정도 되면 걱정 안 해도 돼. 나 돈 많거든. 하하, 그리고 디자이너가 자기 주관이 뚜렷해야지. 누가 뭐라 한다고 바뀌면 돼? 그럼 안 돼."댕은 얼굴을 씰룩이면서도 제프가 싫지 않은지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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