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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옷이 보여-137화 (137/231)

137화 이사 2

숍으로 돌아와 사무실에 자리한 우진은 직원들을 모아놓고 지금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

"옆집 김 씨는 나보다 더 오래 있었는데……. 그 사람이 다른 사람한테 나쁜 말 할 사람이 아니거든. 얼마나 심했으면 그래?"

"그렇죠. 다들 표정이 별로 안 좋으시더라고요."

"그래도 우진이 넌 부모님이 시장에서 장사하셔서 그런지 이해해 주네. 다른 사람 같았으면 내 일 아니라고 신경도 안 썼을 텐데."

"우리 때문에 벌어진 일이잖아요."

"그냥 이참에 넓은 곳으로 이사를 하는 게 어떨까? 내 건물이지만, 그래도 너무 좁잖아. 네 작업실만 해도 창문도 없어서 답답한 데다가 한 명만 들어가도 꽉 차는데."

장 노인이 고개를 저으며 낮에 우진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얘기했다. 그러자 세운도 이해했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정 안 되면 여기 팔아서 가도 되고."

우진은 말도 안 되는 농담에 피식 웃었다. 그때, 듣고 싶지 않은 소리가 들렸다.

딸랑-

딸랑-

수시로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는 지켜보는 것뿐만이 아니라 문을 열고 들어오기까지 했다. 분명 'Closed'라고 달아놓기까지 했는데 계속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중이었다. 그러자 미자가 한숨을 쉬며 일어섰다.

"제가 잠그고 올게요."

"아니야, 유 실장. 괜히 가서 째려볼 생각 하지 말고 앉아 있어. 내가 다녀올게."

한국 사람은 물론이고 한국에 여행 온 중국인들까지 있었다. 다들 계속되는 상황에 도대체 볼 게 뭐 있다고 저러는지 짜증을 냈다. 확인하러 나갔다 온 성훈이 들어오자 세운이 얼굴을 찌푸린 채 물었다.

"또 그냥 열어본 거지?"

"네, 계단 쪽으로도 들어가려고 그래서 계단 쪽 문도 잠갔어요. 형님, 이따 가실 때는 옆문으로 가세요."

"매너하고는 진짜."

그 뒤로도 I.J 식구들과 의논해 봤지만, 당장 마땅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그때 또 문을 흔드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잠갔는데도 흔들기까지 하자 화가 난 세운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나갔다 올게."

"제가 다녀올게요."

"됐어. 있어 봐! 따끔하게 혼을 내줘야지!"

우진은 세운이 나가서 무슨 일을 벌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급하게 따라 일어섰다. 직원들도 걱정됐는지 다들 따라 일어섰다.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면서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다들 어디 가는 거야?"

할 일도 없는지 매일같이 방문하는 제프였다.

"표정이 왜 그래?"

"아니에요.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은 그냥 왔지. 왜 무슨 일 있어?"

다들 제프의 방문에 다행으로 여기는 한편 김이 빠졌는지 사무실로 들어갔고, 우진은 제프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난 이거 타 줘. 모카 골드!"

"여기도 있어요. 제가 타 드릴게요."

"내 건 내가 챙겨."

변함없는 모습에 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선 제프가 건네는 믹스 커피를 타왔다.

"숍 분위기가 왜 이렇게 우중충해?"

우진은 자신보다 한참이나 먼저 패션 일을 했고 존경하며 롤모델로 삼았던 사람이었기에, 제프라면 이 상황을 겪어봤을 것 같았다.

"특별한 건 아니에요. 그런데 선생님, 제프 우드 앞에도 저렇게 사람들이 구경을 많이 오나요?"

"응? 아! 밖에 저 사람들 때문에 그래?"

"네. 숍도 작아서 볼 것도 없는데 계속 오네요. 이러다가 다시 예약을 받아도 문제가 생길 거 같아요. 저 사람들 때문에 주변 가게들도 피해를 보고 있고요."

"주변 가게들 걱정은 뭐 하러 해. 그건 자기네가 경쟁력이 약해서지. 자본주의 시대에 그런 게 어디 있어. 각자 알아서 사는 거지."

우진은 흠칫 놀랐다. 맞는 말 같긴 한데 너무 차갑게 느껴졌다. 제프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야 저러지도 않고, 저럴 필요도 없지."

제프 우드면 뉴욕 중심가에 있기에 사람이 많으면 많았지 적을 순 없었다. 그런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니 궁금해졌다.

"저 사람들, 왜 몰린지 몰라?"

"우리 숍이 유명해져서 아닐까요?"

"어쭈? 하긴 유명해지긴 했지. 그거 다 내 덕이야. 고마워해라."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

"그래, 당연히 고마워해야지. 그건 그렇고. 내가 보기에는 저 사람들, I.J가 궁금하긴 한데 마땅히 볼 데가 없는 게 가장 큰 이유 같은데?"

우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패션쇼장도 있고, 온라인으로 볼 수도 있잖아요."

"그렇지. 하지만 패션쇼장에서 봤다고 해도 실제로는 다를 수도 있으니까 궁금하겠지. 그리고 또 어떤 옷들이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원래 사람들이 그러잖아. 꽁꽁 싸매고 있으면 더 궁금하고 더 알고 싶고. 신비주의 알지? 네가 숨기려고 한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지만. 하하."

"그런 건가?"

"네가 매장 같은 걸 하나 내놓으면 확실히 줄어들겠지. 대신 그 매장이 한동안은 폭발하겠지. 네가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다 팔 것도 아니고. 뭐, 그렇게 바꿀 생각 아니라면 받아들여."

제프에게서도 이사라는 말을 듣게 되자 우진은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러자 제프가 피식 웃더니 말했다.

"그것도 싫으면 우리 제안을 받아들여야지, 뭐. 그럼 해결할 수도 있는데."

"무슨 제안이요?"

"무슨 제안요? 내가 뭘 말했겠어. 콜라보 말이야. 콜라보! 데이비드도 지가 무슨 신사라도 되는 줄 알고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엄청나게 기다리고 있어."

"아, 아제슬."

"아? 아제슬? 별거 아니라는 느낌인데? 아무튼 우린 기다릴 만큼 기다린 거 같은데?"

쇼 반응도 좋았기에, 우진으로서도 일단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곳에선 무리였다. 전에도 판매에 끼어들까 했었지만, 지금 이곳 상황과 맞지 않아 포기했다. 가뜩이나 오늘 주변 상인들에게 들었던 말도 내심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제안을 받아들이면 해결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궁금했다.

"빨리 답하라고. 싫다는 말은 하지 말고. 그래도 확답을 줘야 인테리어 공사도 할 거 아니야!"

"여기요?"

"이런 촌 동네에서 뭘 팔아. 그리고 여기서 한다고 해도 한 명씩 언제 맞춰. 넓은 곳으로 가야지! 사람도 뽑고!"

우진도 생각하던 부분이었지만 아무래도 거절하는 게 옳다고 판단했다. 그때 제프가 말을 이었다.

"매장 빌려준대."

"I.J 매장이요?"

"너희 매장? I.J 매장을 왜 내줘. 아제슬 매장 말이야. 그리고 너 계약하면 로열티도 받을 텐데, 매튜가 그런 말 안 했어?"

"아…… 그동안 바빠서. 로열티는 얼마나 해요?"

"야, 완전 웃긴 놈이야. 내가 어떻게 알아. 내가 그런 일까지 하는 줄 알아? 나 제프 우드야!"

제프는 가슴을 탕탕 두드리더니 말을 이었다.

"내가 듣기로는 우리가 들어올 때 쓰려고 했던 데에다가 먼저 아제슬 매장을 오픈하게 해준다고 했어. 로열티를 받고 나서 이사 가면 되잖아. 물론 이번에도 아제슬이 잘 팔려야겠지만. 아! 우리는 걱정 안 해. 너나 헤슬이 걱정이지. 하하하."

"거기가 어딘데요?"

"나도 잘 몰라. 청담 패션 거리라고 그랬나?"

***

청담 패션 거리. 일명 명품 거리로 불리는 곳이었다. 건물 하나하나가 세련되고 각자 브랜드의 색을 건물에 담아 화려했다.

빌딩 자체가 높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의 브랜드들이 빌딩 한 채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진은 그중 4층으로 된 빌딩 앞에 서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월세가 3.3㎡당 100만 원이 넘는 선이라고 했으니까 이 정도면…… 월세만 몇천은 되겠네. 여기를 공짜로 쓰게 해준다고?"

"아제슬 매장으로 쓰는 6개월 동안만요."

"6개월이 어디야. 그 안에 준비해서 나가면 되지. 그런데 로열티를 받아도 여긴 못 사겠다. 하하, 가격이 좀 떨어졌다고는 하는데 그래도 평당 2억이 넘는다더라. 이 정도 사려면 한 100억도 부족하겠네. 그래도 이런 데 있으면 명품이라고 각인은 빡! 되겠는데?"

세운이 혀를 내두르며 두리번거렸다. 우진도 건물은 좋지만, I.J 특성상 어디에 있어도 상관이 없었기에 이런 건물을 구입할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네가 한다고 하면 매튜도 찬성할 거 같은데. 영감님이야 벌써 하라고 그러고. 그런데 할 수 있겠어? 1,000벌을 만들려면 죽어나갈 텐데. 다행히 신발은 제외라서 나는 괜찮지만……."

제프 우드와 헤슬은 각각 2,000벌씩이었지만, 한국 인구수와 I.J의 상황을 고려해 책정한 수치가 1,000벌이었다.

하나의 디자인으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만들려고 마음먹으면 할 수는 있겠지만, 다른 회사들에 비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은 분명했다.

게다가 각자만의 디자인으로 판매하기에, 싫든 좋든 경쟁하게 되어버렸다. 그래도 새로운 방식이면 모를까, 자신이 알려준 방식을 기본으로 제작하니 큰 걱정은 없었다.

우진은 그보다 이사가 문제였다.

"6개월 말고 1년 정도 빌려달라고 하면 빌려줄까요?"

"모르지. 왜, 아예 평생 빌려달라고 하지."

"그건 좀 염치없잖아요. 그리고 일 년 뒤면 'Position'에서 돈도 들어오니까, 다시 이사를 안 해도 되게 아예 건물을 사든, 집을 짓든 할 시간은 되잖아요."

"그거 좋겠는데?"

***

며칠 뒤. 매튜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오자마자 스위스에서 진행하고 있는 일에 대한 보고부터 이뤄졌다.

"서류상 절차는 전부 마쳤습니다. 이제 매장 공사를 해야 하는데, 건물 외관을 훼손할 수 없도록 시에서 제약을 걸더군요. 그래서 내부 공사만 진행할 예정입니다. 업체 선정은 이미 끝냈는데 공사 때문에 예상보다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픈은 내년 3월로 잡는 게 적당할 것 같습니다."

"어르신들은 뭐라고 하세요?"

"음…… 다들 시계를 만드시느라 정신없어서 찾아가도 자주 뵐 수는 없었습니다. 당분간은 바이에르 씨가 맡아서 할 예정이고, 저는 다음 달에 다시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매튜의 보고를 들은 우진은 수고했다는 말로 마음을 전했다. 그러고는 미안한 얼굴로 매튜를 봤다.

매튜가 힘들 거라는 걸 우진도 알지만, 혼자서 정하긴 힘들었다. 그래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꺼내놓았고, 모두 전해 들은 매튜는 고개만 끄덕였다.

"저번에도 느꼈지만, 한국은 유독 부동산이 이상합니다. 권리금? 아직도 이해할 수 없군요."

우진이 머쓱하게 웃는 사이 매튜가 말을 이었다.

"선생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저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보면 경쟁이다 보니까…… 만약에 잘 안 되면 I.J에 피해가 올 수도 있는 부분이잖아요."

"그럴 일은 없습니다. 현재 I.J에서 맞춤옷을 책정한 금액이 브랜딩에 비해 엄청 저렴한 가격이죠. 그런데 아제슬 옷은 몇 배나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게 될 겁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우리 맞춤옷도 자연스럽게 가격을 상승시킬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야 합니다. 아제슬 매장에서 맞춤옷도 병행한다면 자연스럽게 될 겁니다. 만약 망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금액을 유지하면 되니 손해는 아닙니다."

이상하게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매튜의 말을 듣고 나니 조금 더 용기가 생기긴 했다.

"일단 그러려면 직원이 상당히 많이 필요할 겁니다. 기본적으로 매장 전체를 관리할 직원과 선생님들 도울 테일러들까지. 이제는 있어야 할 때죠. 우리가 맞춤옷으로 얻는 이익보다 로열티로 얻는 수익이 많다 보니 관리할 직원도 필요하고요."

우진 역시 생각하던 부분이었다.

"하시게 되면 일단은 테일러들부터 뽑으시고 교육하는 게 우선입니다."

"그런데 아제슬을 하는 기간 동안만 채용하기도 좀 그래서."

"콜라보가 끝나도 끝까지 함께할 사람을 뽑는 게 중요합니다."

"네?"

"선생님이 언제까지 혼자 하실 순 없으니까요."

우진은 예전에 헤슬에서 왔던 장인들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과 함께 일하자 예약을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었다.

매튜의 말대로 테일러를 뽑으면 더 많은 고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진이 고개를 끄덕거리는 모습을 보던 매튜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려면 차후에 이전할 곳도 꽤 넓은 곳으로 알아봐야겠군요. 아제슬에서 지금 계약을 하시면 내년 봄이 될 테니, 얼추 스위스 시계 매장 오픈하고 비슷할 거 같습니다. 아, 그리고 매장 문제는 아마 문제없이 처리될 것 같습니다."

"어떻게요?"

"2020년에 한국 시장에 들어올 예정이라고 했죠? 그럼 기간이 꽤 남았는데, 그럼 제프 우드에서도 I.J가 사용해서 인지도가 올라간 장소를 사용하는 편이 좋을 거라고 생각할 겁니다. 제 예상으로는 선생님이 생각하신 1년 정도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6개월 뒤에는 사용료를 내야겠지만."

"그 정도는 괜찮죠!"

"그럼 이전할 곳을 알아보기까지, 약 1년 3개월 정도의 여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한번 알아보도록 하죠."

***

며칠 뒤.

결국 계약서에 사인을 한 우진은 깊은숨을 몰아쉬었다. 이미 가격과 수량까지 정해졌다.

상호 라이센싱 계약을 통해 I.J도 양쪽 회사에 지불해야 하는 금액이 있었지만, 그와 반대로 양쪽에서 받기로 되어 있는 금액도 있었다. 패턴으로 인한 로열티가 전보다 훨씬 늘었다.

그때는 제프 우드에서 디자인을, 제작은 헤슬의 장인들이 만들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모든 것을 각자 했다.

하지만 상당 부분이 변했음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다. I.J의 바지 패턴. 그러다 보니 I.J에 넘어오는 돈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양쪽 회사에서 보낸 돈을 합친 예상 금액이 40억을 넘었다. 다만 원단 같은 경우는 제프 우드의 골든사에서 구입해야 했기에 자재비로 상당히 많은 금액이 나갈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우진이 걱정하는 부분은 그게 아니라 옷 가격이었다. 기존과 동일한 8,000달러로 책정되었는데, 한국 돈으로는 거의 900만 원에 육박했다.

너무 비싼 가격이라는 생각에 곧 있을 아제슬 회의에서 한국만이라도 가격을 조율하고 싶다는 의견을 내놓을 생각이었다.

그때, 잠가 버린 숍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미자가 곧바로 튀어나갔다. 우진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따라 나갔다. 하지만 걱정과 달리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며칠 전 봤던 근처 피혁 가게 주인이었다.

"들어오세요."

상인 연합을 대표한다고 했던 사람은 난감해하는 얼굴을 한 채 숍 안으로 들어왔다. 우진이 소파로 안내하자, 상인은 우진은 물끄러미 바라봤다.

"흐음……."

우진은 I.J를 구경하러 왔던 사람들이 또 피해를 줬나 싶어 미안한 얼굴로 기다렸다. 그러자 상인이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입을 열었다.

"옷 가게 사장. 정말 미안한데. 밖에 사람들 좀 어떻게 해주면 안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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