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옷이 보여-144화 (144/231)

144화 아제슬 디자인 2

"테일러 그 친구들이…… 이걸 할 수 있을까요?"

우진도 직접 해보니 난이도가 높다는 생각이 들어, 이미 방법을 생각해 둔 상태였다.

"아! 손 자수로 하면 하루에 하나 완성할까 말까 해요. 그렇게 하면 기간이 6개월인데 도저히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자동 자수가 되는 재봉틀을 구하려고요. 직접 하면 좋겠지만, 그러면 아예 맞출 수가 없을 거 같아요."

"아…… 그럼 다행이네요. 정말 대단하십니다."

우진은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 장 노인에게 건넸다.

"이 제품으로 여섯 대를 구매해야 해요."

"왜 여섯 대냐. 테일러가 여섯 명인데. 너까지 7대 아니냐."

"전 저게 편해서요."

장 노인은 피식 웃더니 직원들에게 옷을 갈아입으라고 지시했다. 옷을 전부 갈아입은 사람들은 다시 원상태로 옷을 행거에 걸어두었다. 그러고는 우진에게 한마디씩 했다.

"선생님, 이제 쉬셔야죠."

"맞아요! 쉬세요!"

"안 그래도 쉬려고 했어요. 이것만 작업실에 넣어두고 올라갈게요. 바쁘신데 일하세요."

다들 각자 할 일을 하러 돌아갔고, 아직 응접실에 남아 있던 준식이 입을 열었다.

"선생님, 작품 정리할까요?"

"아, 제가 할게요. 볼일 보세요."

"아닙니다! 다시 매장을 가기 전까지 쉬라고 하셨거든요. 제가 정리하겠습니다."

준식은 곧바로 옷을 정리해 행거에 걸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우진은 피식 웃었다. 문득,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 있는 준식은 어떤 평을 내놓을지 궁금해졌다.

"준식 씨."

"네! 선생님, 필요한 거 있으세요?"

"아니요. 조금 전에 제 옷들을 보시면서 어떠셨어요?"

"아…… 놀랐죠. 보통 마네킹에 작업하시거나, 아니면 모델을 부르시는데."

"그런 거 말고요. 그냥 옷 자체만으로."

"아! 너무 좋죠. 판매한다면 당장에라도 사고 싶을 정도예요. 저는 아까 한 실장님 입고 계셨던 차이나 칼라가 좋더라고요."

우진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역시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다웠다. 우진이 웃자 준식도 조금 편안해졌는지 입을 열었다.

"이 원단이 테일러들이 사고 쳤다는 그 원단입니까?"

"아, 들으셨어요? 하하, 근데 그 원단은 아니에요. 그리고 사고도 아니고. 오히려 도움을 받았는걸요."

"하하, 다행이네요. 전화 와서 엄청 비싼 원단에다가 실수했다고 그러더라고요."

"비싸긴 비싸죠. 이거 자수로만 들어간 실이 3타래 정도인데, 타래당 백만 원 정도 하더라고요. 그나마 다른 원단들이 그렇게 비싼 편이 아니라 다행이에요."

옷을 만져보려던 준식은 손을 슬쩍 뺐다. 우진은 그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괜찮아요. 만져도 안 뜯어져요. 앞으로 그 옷도 파시게 될 텐데."

"하하…… 제가 이 옷을 팔 생각을 하니 벌써 두근거리네요."

피식 웃은 우진은 입을 열었다.

"이걸 어떻게 파실 거예요?"

"맞춤옷이라고 들었는데…… 그게 아닙니까?"

"하하, 맞아요. 그냥 매니저님이 어떻게 파실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음…… 아직 제가 제품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래도 판매하게 되면 장점을 고객에게 어필해야 합니다!"

매튜와 함께 다니면서 들은 모양이다. 아직 정식 직원이 아니어서인지 질문을 받은 준식은 약간 긴장한 듯 보였다.

우진은 그런 준식을 보며 다시 가볍게 웃었다. 준식이 너무 굳어 있어서 편안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옷에 대한 판단도 들어보고 싶었던 우진은 질문을 이었다.

"장점이 뭔데요?"

"음…… 그건 선생님이 제품에 관해서 설명해 주셔야지…… 제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냥 준식 씨가 느낀 장점이 뭔지 말씀해 주세요."

"음…… 전 좋게 보였는데……. 남자가 입으면 남자 옷 같고, 여자가 입으면 여자 옷 같고……. 칼라를 선택할 수 있으니 디자인도 변하는 느낌이고……. 솔직히 나쁜 점이 하나도 안 보였습니다."

그 부분을 가장 신경 썼기에 그렇게 보이는 건 당연했다. 우진이 씨익 웃었고, 준식은 우진이 자신의 대답에 만족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직 채용이 확실한 게 아니었기에, 준식은 조심스럽게 자신을 어필했다.

"저 옷을 판매하면서 다른 것도 같이 판매하면 시너지 효과가 날 것 같습니다! 보통 매장에서 옷을 판매하면서 모자나 신발, 벨트도…… 아…… 죄송합니다."

I.J에선 따로 판매하는 액세서리가 없었기에 준식은 급히 입을 다물었다. 다른 숍이라면 모자나 구두, 벨트 같은 액세서리를 진열해 놓고 판매하는데 I.J는 그런 것이 없었다. 벨트나 구두도 전부 수작업이었다.

준식이 괜한 말을 한 것은 아닐까 걱정하며 우진을 살폈다. 그런데 우진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 맞다! 바보였어! 어휴……."

웃는 얼굴로 갑자기 자책하는 우진 때문에, 준식은 당황해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아! 아니에요. 하하, 저한테 한 말이에요. 볼일 보세요."

우진은 당황해하는 준식을 뒤로한 채 행거를 끌고 작업실로 향했다. 디자인만 생각하다 보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장 어울리는 옷을 입었을 때 빛이 난다는 걸 잊고 있었다.

준식 덕분에 보완점을 깨달은 우진은 조금 전까지 자책하던 얼굴 대신 환한 얼굴로 걸음을 옮겼다.

***

며칠 뒤, 우진은 사무실 책상에 신발을 올려놓고 이리저리 살폈다. 바쁜 와중에도 자신의 부탁으로 세운이 제작한 신발이었다.

신발은 옷과 최대한 어울리도록 디자인되었다. 가볍고 시원한 느낌을 주는 가죽 샌들과, 색으로 조합을 맞춘 보트슈즈였다.

둘 다 생각한 대로 잘 나와서 만족스러운 얼굴로 이리저리 살피고 있는데, 매튜가 소포를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선생님, 스위스에서 소포가 왔습니다."

"벌써요? 잘됐네요. 매튜 씨, 지금 바쁘세요?"

"네, 청담동 매장에 가야 해서 바쁩니다."

"할아버지랑 세운 삼촌 계시잖아요?"

"어제 신발 만드시고 곧바로 가셔서 쉬지도 못하셨을 겁니다."

"아……."

"인테리어부터 빨리 마무리 지어야 합니다. 미스터 윤, 일어나시죠. 택시 도착했습니다."

우진은 바쁘게 움직이는 매튜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밖까지 나가 배웅했다. 여전히 숍 밖에는 구경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매튜는 그런 사람들은 개의치 않고 택시에 올라탔다.

차라고는 하얀 트럭이 전부였는데, 그것조차 세운의 차였다. 우진은 차도 구매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인사를 하고 나서 숍으로 들어왔다.

매튜뿐만이 아니라, 한꺼번에 일을 많이 벌인 탓에 숍의 모든 식구들이 무리하는 중이었다. 그중 시계 매장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아제슬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오픈하다 보니 두 곳 모두 신경 쓰기가 너무 버거웠다. 아제슬이야 함께하는 브랜드들이 대단하다 보니 디자인만 잘 뽑으면 문제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시계는 I.J의 이름으로만 판매하는 제품이었다.

그래도 이번 일이 잘된다면 한시름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 확신이 없어서 모두에게 말을 하진 못했지만, 생각대로 된다면 시계 판매에 관한 일은 해결될 것 같았다.

우진은 신발과 소포를 들고 작업실로 향했다. 소포 상자를 내려놓은 우진은 곧바로 옷을 갈아입은 뒤 거울 앞에 섰다.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우진은 그제야 소포 안에 든 내용물을 꺼내놓았다.

스위스에서 보내온 시계였다. 우진의 디자인으로 만든 시계들이 홍단아가 디자인한 박스에 담겨 있었다. 우진은 그중 자신의 이름이 붙은 박스를 꺼냈다.

아벨이 만든 시계였다.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릴 것 같은 시계였다. 우진은 시계를 착용한 뒤 샌들까지 신고 거울 앞에 섰다.

그 뒤로도 옷을 계속 갈아입으면서, 올린 머리카락을 내려 보기도 하고 넘기기도 하며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확실히 그냥 옷만 입었을 때보다 느낌이 좋았다. 다만 자신의 모습에선 빛을 확인할 수 없었기에, 우진은 다시 사무실로 향했다.

"유 실장님!"

"네?"

"잠시만 도와주세요."

I.J 식구들 대부분이 청담동 매장에 가 있는 중이어서 숍 안에는 성훈과 미자만 남아 있었다. 우진은 미자를 끌고 작업실로 향했다. 그러고는 미자의 이름이 붙은 시계 박스를 건넸다.

"이거 착용하시고, 이 옷 좀 입어보시겠어요?"

"……며칠 전에 손목 치수를 재신 게 이것 때문이에요?"

시계까지 착용해야 빛이 보일 거라는 생각에, 각자 어울리는 시계 디자인을 골라 손목 치수까지 측정한 뒤 스위스로 보냈었다. 따로 할 말이 마땅치 않았던 우진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미자가 착용한 시계는 어머니께 드리려고 하던 시계와 같은 디자인이었다. 미자는 시계를 착용하고선 옷을 들고 사무실로 갔다.

잠시 뒤 미자가 옷을 갈아입고 왔고, 우진은 미자를 가만히 살폈다. 그러고는 미자에게 다가갔다.

"잠깐만요. 소매를 접어서 올릴게요. 아, 제가 잡고 있을게요. 만세 한 번만 해주세요."

준식이 했던 방법대로 우진은 미자의 옆구리를 잡았다. 그러자 미자가 붉어진 얼굴로 만세를 했다. 옷매무새를 모두 살핀 우진은 작업대 위에 놔둔 샌들을 들고선 미자의 앞에 가만히 내려놨다.

예전에 하이힐을 신겨주다 머리를 맞았던 기억이 문득 떠올라, 우진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나 조용히 기다렸다.

미자가 샌들까지 신는 것까지 본 뒤, 천천히 단안경 렌즈를 올렸다. 하지만 빛이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진은 전과 다르게 당황하거나 실망하지 않았다. 그저 미자를 물끄러미 볼 뿐이었다.

'이 정도로 했는데 안 보이면 할 수 없는 거지.'

최선을 다했는데도 빛이 보이지 않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미자의 모습만 봐도 이보다 좋은 옷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저 선생님, 다 됐나요?"

"아, 네! 바쁘실 텐데 도와줘서 고마워요."

미자는 우진의 인사를 받자마자 급하게 작업실을 나섰다.

"저기! 옷은 갈아입고 가셔야……."

우진의 말에도 미자는 사무실이 아닌 화장실로 곧장 향했다. 그러고는 문을 잠근 뒤 거울 앞에 섰다.

"아! 왜 하필 오늘! 목욕도 안 했는데! 냄새나는 거 아닐까? 아니야! 안 날 거야! 아니지! 그럼 왜 물러섰지? 만세 할 때 물러섰던가? 아니야……. 신발을 신을 때였으니까…… 혹시 발 냄새가 나나……?"

미자는 그동안 기른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냄새를 맡았다. 그러고는 몸 곳곳의 냄새를 맡아가며 확인했다. 샌들을 벗어놓고 발까지 올려가며 냄새를 확인하고 나서야 미자는 거울을 봤다.

"이 더러운 년! 아…… 슬프다……."

거울에 보이는 스스로에게 욕을 한 미자는 물을 틀어놓고 세수를 시작했다. 그나마 세수라도 해야 마음의 안정이 올 것 같았다.

미자는 세수하는 김에 머리카락도 조금 적셔 약간의 기름기만 뺀 뒤, 되도록 티가 안 나게 마구 털었다. 그러자 아까보단 깔끔해 보였다.

미자는 한숨을 내쉬고는 조심스럽게 화장실을 나왔다. 그러고는 발소리라도 들릴까 봐 뒤꿈치까지 들고 작업실을 지나쳐 사무실 문을 열었다.

사무실에 들어선 미자는 울상을 지었다.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우진이 바로 자신을 맞이했다.

"이제 오세…… 요?"

우진은 머리를 뒤로 넘긴 미자를 보며 단안경을 만지작거렸다.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자 상당히 정돈되어 보였다.

같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아까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우진은 혹시 빛이 보이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단안경으로 손을 올렸다.

"아…… 하하, 유 실장님! 최고예요! 정말 최고예요! 역시 헤어 디자이너세요!"

우진은 미자를 보며 엄지를 내밀었다.

***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마친 미자는 밝은 얼굴로 거실에 털썩 앉았다.

"리모컨."

"아, 왜! 나 이거 보고 있잖아! 씻었으면 들어가라!"

"리모컨."

"아, 짜증 나."

미숙이 리모컨을 던지고 부엌으로 가자 미자는 슬그머니 휴대폰을 꺼냈다. 그러고는 I.J 식구들이 있는 단체 톡방에 들어갔다.

그러고는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계속해서 스크롤을 올렸다. 사진 하나를 찾고서야 미자의 움직임이 멈췄다.

우진이 찍어준 미자의 사진이었다. 다른 직원들의 반응을 본다며 휴대폰으로 찍어서 단체 톡방에 올린 것이었다.

-유 실장은 머리 모양에 따라 사람이 확확 변해.

-정말요, 와! 실장님 너무 예뻐요! 머리만 넘겼는데 분위기가 확 달라 보여요!

"언니 너 미쳤어? 뭐 보는데 그렇게 실실 쪼개냐?"

"들어가라."

미자는 미숙이 방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확인하고선 대화창을 내렸다. 그러고는 아까보다 더 활짝 웃었다.

-매장에서 옷을 주문한 고객들에 한해서, 머리까지 만져주는 건 어떨까요? 유 실장님처럼 예쁘게 나오면 그것도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다들 어떠세요?

"유 실장님처럼 예쁘게……."

미자는 혼자 중얼거리며 계속 실실거렸다. 방문 틈으로 그 모습을 훔쳐보던 미숙은 소름이 돋았다.

"뭐야……? 무섭게 왜 저래……. 언니 저년 진짜 미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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