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너의 옷이 보여-152화 (152/231)

152화 홍보 작전 3

우진은 미국으로 돌아간 델핀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델핀은 오늘부터 뉴욕을 시작으로 무대 인사를 한다고 알렸다. 한국도 ‘Judge4’가 오늘부터 개봉이었고, 무대 인사는 다음 주로 잡혀 있었다.

우진도 영화가 궁금했다. 하지만 오픈이 얼마 남지 않았고, 그 전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더미 같아 영화를 볼 시간이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의 반응은 궁금했기에 리뷰 정도만 찾아보았다.

잠시 휴식을 위해 작업실에서 나와 사무실로 온 세운도 우진과 함께 기사를 보며 신기해했다.

“델핀 씨가 연기를 잘하시나 봐요.”

“그러게. 세상 나쁜 놈이라네. 그런데 이거 나쁜 얘기들만 있는데……. 이래서 인기를 얻을 수 있을까?”

델핀에 대한 얘기는 주인공 조엘보다 분명히 적었다. 악역이라고 짤막하게 언급만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우진의 눈에는 델핀이 언급된 부분만 보였다.

“지금까지 나왔던 악당들 중에서 가장 미친놈이래요.”

“그러지 말고, 우리 보러 갈까?”

“아니에요. 일해야죠.”

“궁금하잖아. 마지막이 어떻길래 그 순해 보이는 아저씨가 세상 미친놈이라고 그러지?”

“누가 스포 올려놨던데. 알려 드려요?”

“아니야! 아니야! 말하지 마!”

그때, 한쪽에서 작업 중이던 팟사라곤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오늘 퇴근하고 보러 가려고 했는데 포기했습니다?”

“어? 왜?”

“잔인하다고 합니다? 델핀, 그 사람만 나오면 19금도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팟! 그냥 영어로 말해. 우리끼리 있잖아.”

“아, 그러네요. 듣기로는 엄청 잔인하대요. 델핀 씨 겉으로 보기에는 착해 보였는데……. 심의를 어떻게 통과했는지 신기할 정도로 잔인하대요. 리뷰에 컷맨이라고 해서 뭔가 봤더니, 델핀 씨가 나오기만 하면 무조건 신체 한 군데는 자르고 시작한대요. 원래는 댕이랑 보러 가려고 했는데, 안 가려고요.”

“그래?”

팟사라곤의 이야기를 들은 우진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영화에서 인상이 강하면 강할수록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스크린 속의 악당이 스크린 밖에서는 순해 보이는 모습이라니.

반전 매력에 사람들이 끌리는 법이었다.

***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숍에 나온 우진은 뉴욕 무대 인사에 대한 기사를 찾아봤다. 아직 한국 기사로 나오진 않아서, 뉴욕 타임스부터 데일리 뉴욕까지 뉴욕 지역 신문을 하나씩 검색했다.

기대작이었던지라 이제 개봉 첫날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심을 불러 모았다. 당연히 배우들에게도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진이 주인공인 조엘 위주로 올라와 있었다.

델핀도 간혹 보이긴 했지만, 여러 사람들과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이 전부였다.

‘재킷을 입었구나. 포켓스퀘어도 잘 넣었고, 머리도 잘했고. 그래도 잘 입었네.’

기사에 잘 나오지 않아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사진만 봐도 델핀이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가 여실히 느껴졌다. 우진이 다른 기사도 찾아볼 때, 전화가 울렸다.

“네, 선생님.”

-하하하하, 너 뭐야!

우진은 제프가 왜 전화했는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야, 너 때문에 우리 기획팀 애들이 엄청 바쁜데? 제이슨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어, 하하.

얼마 전, 우진과 함께 회의에 참석한 매튜는 I.J도 홍보 마케팅의 일환으로 영화배우에게 협찬하겠다고 알렸다. 하지만 어떤 영화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다들 설마 조엘과 같은 영화에 출연한 배우에게 협찬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뭐라고 하려는 거 아니야. 잘했다고. 난 제이슨 하는 꼬라지가 마음에 안 들었거든. 하하, 속이 다 시원하네. 하려면 같이해야지!

제프는 마케팅에 관여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맞자 우진은 살며시 웃었다.

-지금 기획팀이 우리 거 홍보하는 데 I.J가 갑자기 끼어들었다고 그래서, 처음에는 뭔 소리인가 했어.

“미리 말씀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됐어, 뭘 네 회사 얘기까지 해. 우리는 그냥 옷 얘기만 해도 충분하지. 아무튼 그래서, 우리 회사 애들이 그 살인마 만나느라 엄청 바쁘다. 같이 홍보해야 하나, 아니면 우리 옷만 홍보해야 하나 고민하더라고. 같이 협력하는 사이인데, 잘못하면 사이 안 좋다고 소문날 수도 있잖아. 그렇다고 같이 홍보해 버리면 서로 비교될 수도 있고. 그래서 제이슨은 주가가 내려갈까 봐 벌벌 떨더라. 하하하.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어요?”

-아제슬 아니고 너네 옷이라서, 이번에는 우리 거만 홍보한대. 아제슬에서 출시하는 옷은 같이한다고 했어. 내일 호주로 무대 인사를 간다고 했으니까 그때는 같이하겠네. 참, 그리고 옷 좋더라. 크크, 그래서 제이슨이 더 고민이지. 제프란은 팔아야겠지, 홍보해 주기는 싫지. 하하하.

우진도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뜻밖의 홍보를 할 수 있게 된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우진은 제프의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아직까진 경쟁상대로 보지 않는구나.’

어느 정도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생각했는데, 제프는 자신을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 느낌이었다.

***

이틀 뒤, 제프가 말한 대로 호주에서 무대 인사를 하는 델핀의 사진이 기사로 떴다.

영화는 이미 예상한 대로 성공적인 흥행을 기록 중이었다. 그러자 자연스레 배우들에게도 관심이 쏠렸다. 그러다 보니 델핀도 인터뷰가 많아졌다.

인터뷰 질문 중엔 영화에 대한 내용도 있었지만, 제프 우드의 홍보 덕분인지 옷에 대한 내용도 은근히 많았다. 델핀의 사진과 함께, 아제슬 중 I.J의 옷을 입었다는 내용이 꼬리로 붙었다. 자세한 소개는 없지만, 대신 굉장히 만족한다는 짤막한 인터뷰가 나와 있었다.

그 외에도, 우진이 원하던 대로 델핀과 조엘이 나란히 찍힌 사진 덕분에 옷을 비교하는 사람도 생겼다. 물론 해외에서는 제프 우드가 워낙 유명하다 보니, 제프 우드의 압승이나 다름없었다. 비록 I.J가 떠오르고는 있다 해도, 제프 우드는 이미 오래전부터 명품이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영화의 주인공이 입었으니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전혀 달랐다. 한국은 세계 영화 시장에서도 5, 6위를 오르락내리락하는 큰 시장이었다. 그렇다 보니 영화가 흥행할수록 주인공인 조엘보다 조연인 델핀의 기사가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다. 반응을 보던 I.J 식구들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와, 이게 이렇게 풀리나?”

“그러게요.”

I.J가 한국 브랜드인 점도 있고, 영화 자체가 재밌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다른 이유가 컸다. 한국 영화 팬들이 델핀이라는 사람 자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가 흥행 가도를 달리자, 관심은 저절로 배우에게 쏠렸다. 배우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진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델핀의 SNS로 모여들었다. 그렇게 델핀의 SNS에 접속한 사람들은 익숙한 배경의 사진을 볼 수 있었다.

서울 곳곳의 풍경 사진. 그것도 한 장이 아니라 수십 장이었다. 서울 풍경을 배경 삼아 사진을 찍은 델핀의 모습이 잔뜩 있었다.

[안녕하세요? 한국 좋아요!]

게다가 간단한 한글까지 적어서 올려놨다. 그러다 보니 델핀은 자연스럽게 한국을 좋아하는 외국인이 되어버렸다.

그중에서도 I.J 방문기가 가장 인기가 많았다. 매장 밖에서 매장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과 함께 두근거린다는 글을 올리고, 가봉 중인 사진에는 ‘변신 중’이라는 장난스러운 말까지 덧붙였다.

“한국에 있는 동안 그렇게 돌아다니더니, 우리한테는 완전 행운이네.”

“조금 미안해지네요. 관광시켜 준 적도 없는데.”

“어이구, 다 퍼주겠어! 900만 원짜리 옷 3벌에 맞춤옷도 한 벌 줬는데 그거면 됐지. 그나저나 이젠 놀랍지도 않다. 진짜 넌 보는 눈 하나는 대단해. 이럴 줄 예상했어?”

델핀에게서 빛을 봤기에 멋있을 거라는 점은 예상했지만, 이런 반응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자신의 능력이 아니었기에 우진은 멋쩍게 웃어넘기고는, 마저 반응을 살폈다.

델핀이 악역임에도 한국 사람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한국을 좋아하고 한국 브랜드를 좋아하는데 사람들이 싫어할 리가 없었다.

델핀의 얘기가 퍼져 나갈수록 대중들의 인식도 변하기 시작했다. 무명 배우, 악역 배우에서 한국을 사랑하는 배우, 친근한 배우가 되어버렸다.

델핀의 SNS를 캡처해 장난스럽게 꾸민 글이 지금 이 순간에도 인터넷에 계속 퍼지는 중이었다.

-대한 스위스 놈ㅋㅋㅋㅋㅋ 델핀 루이즈ㅋㅋ 미친다. 이제부터 대필이라고 부르자ㅋㅋㅋ

-우대필ㅋㅋㅋ 삼중인격자임. 영화랑 실제랑 I.J 다녀왔을 때랑 완전 다름zzzz

-연기가 개쩔어서 그러는 듯. 그런데 얼마나 마음에 들어야 맨날 저 옷만 입음ㅋㅋ

-ㅇㅈㅋㅋㅋ 사진이 전부 다 저 옷임. 그런데 영화랑은 완전 달라 보임.

-영화에서 경찰 팔 잘라서 그 팔로 싸다구 때릴 땐 진심 무서웠는데. 줄무늬 셔츠 사진만 보면 세상 누구보다 부드러워 보여.

-스포 금지 X발

-그거보다 뉴욕에서 찍은 사진 봤음? 진짜 개작살남. ㄹㅇ개깜놀.

-진짜 개멋있다던데. 그 옷 I.J 옷이라던데 장난 아님.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자 홍보할 필요도 없어졌다. 열렬한 팬들은 인터넷 초강국이라는 불리는 나라답게, 전 세계 인터넷에 델핀을 지지하는 글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각국의 사람들도 점점 델핀에게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내일모레 우대필 한국 온다ㅋㅋㅋ 진심 기대된다.

***

늦은 밤까지 영상 편집을 마치고 Y튜브에 업로드까지 한 벤자민은 아침부터 울리는 휴대폰 알람에 눈도 뜨지 않은 채 베개 밑을 뒤적거렸다. 뒤적거려 찾은 휴대폰의 알람을 끄려던 차에, 휴대폰 잠김 화면에 떠 있는 알림에 눈을 비비며 휴대폰을 살폈다.

댓글 +999

“뭐야? 뭐…… 잘못했나……?”

벤자민은 침대에 누운 채 휴대폰으로 Y튜브 채널에 들어갔다. 그리고 영상을 확인하려던 중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분명 구독자 수는 얼마 전에 겨우 백만을 넘어섰다. 그런데 앞에 보이는 숫자가 이상했다. 앞자리는 아직 1이 맞는데, 뒷자리가 자신이 알던 숫자가 아니었다. 분명 어젯밤까지만 해도 겨우 백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백구십만……? 뭐야……?”

믿을 수 없어 연신 눈을 껌뻑이며 확인했지만,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 백만 구독자를 모은 기간이 3년이었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3년치 구독자가 늘어났다.

짜악!

꿈인지 확인하기 위해 스스로 뺨을 때리는 일은 영화에서만 볼 줄 알았는데, 지금 자신이 그 짓을 하고 있었다.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볼이 빨개졌지만 아픈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가 들릴 정도였기에 벤자민은 가슴을 한 번 두드리고는 채널 정보를 확인했다. 그리고 바탕화면에 있던 댓글 +999의 영상이 바로 어젯밤 올린 I.J 시계 영상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뭐야……. 반나절 만에 조회 수가 150만이야……?”

분명 어젯밤에 올린 영상이었기에 쉽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자신이 며칠간 기절한 게 아닌지 현재 날짜까지 확인한 뒤, 벤자민은 댓글로 눈을 돌렸다.

스페인어로 된 댓글도 있었지만, 생전 처음 보는 언어가 훨씬 많았다.

“내가 해외에서 먹히나……?”

벤자민은 댓글들을 복사해 검색 사이트에서 번역까지 돌렸지만, 제대로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다 일부 구독자가 스페인어로 올려놓은 글을 확인하고서야 어디 언어인지 알 수 있었다.

“한국어구나. 도대체 한국에서 왜? 그리고 대필? 대필은 또 누구야? 대필이 시계? 한국에서 유명한 사람인가 보네.”

벤자민은 대필이 누군지도 몰랐지만, 어쨌든 대필이라는 사람 덕분에 자신의 구독자 수가 올라갔다고 생각했다. 몇 번을 보고, 또 보고 나서야 차차 실감이 났다. 그러자 한번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았다.

“사랑해, 대필! 나도 이제 대필 팬!”

벤자민은 기쁜 마음에, 천장에 머리가 닿도록 방방 뛰며 방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갑자기 행동을 멈추더니, 휴대폰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아…… 이참에 제목도 바꿔야겠다. 확실히 늘 거야!”

생각을 마친 그는 곧바로 제목부터 수정했다.

[Reloj del DaeFeel! 대필의 시계! 그 모든 것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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