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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옷이 보여-160화 (160/231)

160화 노부부 3

며칠 뒤.

완성한 스케치를 보여주자 노부부는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했다. 다만 좋은 원단을 사용해 금액을 상당히 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 부분이 마음에 걸린 우진이 먼저 금액에 대해 알렸지만, 노부부는 크게 개의치 않아 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는 듯, 그저 잘 만들어 달라고만 부탁했다.

가봉을 위해 노부부의 집 앞에 도착한 우진은 약간 긴장했다. 할아버지는 크게 걱정이 되지 않았지만, 할머니가 걱정이었다. 많이 신경 쓴 만큼 할머니도 스케치를 마음에 들어 했지만, 막상 입어보면 느낌이 다를 수 있었다.

아제슬 회의에서 디자인을 선보일 때보다 더 떨려, 우진은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선 벨을 눌렀다.

“오셨어요! 들어오세요.”

저번에 봤던 손자의 안내를 받아 집에 들어가자, 거실에 못 보던 사람이 보였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남성과 백인 여성. 한눈에 봐도 노부부의 아들 내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어서 와요. 동생 결혼식을 보겠다고 아들하고 며느리가 와 있네요.”

우진은 가족들과도 인사하고는 함께 온 일행과 함께 방바닥에 앉았다. 함께 온 매튜가 곧장 가격에 대해서 세세하게 얘기했고, 우진은 머쓱해하며 그대로 전해주었다. 그러자 뒤에서 지켜보던 노부부 아들이 상당히 놀란 듯 입을 열었다.

“엄청 유명한 분한테 옷을 맞추신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두 분 모두 해서 500만 원이면 엄청나게 싸네요!”

“아직 예상 금액이고 추가될 수도 있어요.”

“그래도 추가 금액이 더 많진 않을 거 아닙니까, 하하.”

우진에게는 가격 부분이 늘 조심스러웠지만, 아제슬에서 비싸게 가격을 책정했던 게 도움이 되었다.

다만 분명 빛이 보일 할아버지의 경우와 달리, 할머니가 걱정되었다. 디자인이 잘 뽑힌 것 같아 할머니에게도 빛이 보였으면 하는 마음이 커졌다. 그러다 보니 점점 욕심이 커져서, 피팅하며 부족한 부분을 계속 찾아볼 생각이었다.

설명이 끝난 우진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유 실장님, 할머님이 옷 입으시는 것 좀 도와주세요.”

미자가 할머니를 모시고 들어간 사이, 우진은 할아버지를 모시고 다른 방에 들어왔다. 3D 작업으로 치수를 확인해 핏이 몸에 붙듯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구두는 옷하고 같이 완성할 거 같아요. 그래서 일단 임시로 가져온 게 있는데, 한번 신어보세요.”

아직 마감하지 않아 시침질한 실이 보이는 걸 제외하면 제대로 만든 것 같았다.

“불편하진 않으시죠?”

“좋습니다. 좋아요. 보들보들하면서 가벼운 게 좋네요.”

“하하, 다행이에요. 그럼 나가서 거울 한번 보시겠어요?”

“그럽시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기고는 거실로 나갔다.

“우와, 아버지! 하하, 왜 이렇게 젊어지셨어요! 이거 곤란한데요? 사돈댁에서 저를 아버지로 알면 어떡하죠?”

“크흠, 실없는 소리는…….”

“하하, 진짜라니까요. 기다려 보세요. 제가 거울 좀 가져올게요.”

아들은 방으로 가더니 커다란 거울을 들고 나왔고, 할아버지는 아들이 한 말이 신경 쓰이는지 곧바로 거울을 들여다봤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는 할아버지의 얼굴에서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할머니가 생각났는지 할아버지가 우진을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 할멈도 예쁘게 해주셨겠지요?”

“그럼요. 최선을 다해서 만들었어요.”

그때, 문이 열리더니 미자의 부축을 받으며 할머니가 나왔다. 이번에도 반응은 아들이 가장 먼저였다.

“엄마! 와…… 엄청 화사하다. 영화배우 같네!”

우진도 상당히 만족했다. 노환 때문이라고 생각되는 검은 피부색 때문에 고른 원단 색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 어울렸다. 전체적으로 활기 있어 보이는 느낌이었다.

와인색 재킷에 와인색 치마, 그리고 할아버지와 똑같은 땡땡이 원단으로 만든 블라우스. 거기에 하얀색 실로 무늬를 만든 남색 머플러까지. 할아버지와 비슷해 보이면서 다른 느낌이 잘 살아 있었다.

처음에는 시계, 가방이나 장신구까지 생각했었지만, 모두 제외했다. 원단도 최대한 가벼운 것으로 골랐는데 다른 부분에서 과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우진이 생각하기에는 장신구들보다 더 좋은 것이 있었다.

우진이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을 때, 따라온 매튜가 우진의 팔을 살짝 흔들었다. 매튜가 할아버지를 보라는 듯 고갯짓을 했고, 할아버지를 본 우진은 씨익 웃었다.

“아버지! 엄마가 그렇게 예뻐요? 아…… 이거 큰일이네. 손주 볼 나이에 동생이 생기는 게 아닌가 몰라. 하하.”

“저…… 저 녀석이! 너 자꾸 헛소리할 거면 들어가서 잠이나 자라.”

“하하, 농담이에요. 오랜만에 보는 아들한테 너무하시네, 하하.”

우진은 굉장히 부끄러워하는 할아버지를 보며 살며시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할머니를 거울로 안내했다. 거울을 보던 할머니가 미소를 지으며 우진을 바라봤다.

“……예쁘네요. 이렇게 곱게 만들어줘서 정말 고마워요.”

“아니에요. 어르신이 너무 고우셔서 옷이 잘 나왔어요. 어디 불편한 곳은 없으시죠?”

“너무 편해요. 가볍고. 이렇게 좋은 옷은 평생 처음 입어보네요. 정말 고마워요.”

우진은 할머니의 인사에 가볍게 웃고는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어르신, 할머니 옆에 같이 서보시겠어요? 두 분이 같이 계셔야지 옷이 더 살아요.”

할아버지가 아들의 농담 때문인지 뻣뻣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자,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손을 내밀었다. 할아버지는 약간 부끄러운지 헛기침을 하더니 할머니 옆에 섰다. 그리고 손을 꼭 잡고선 거울을 바라봤다.

“정말 잘 어울리세요. 할아버님 머플러 색하고, 할머님 재킷이랑 치마 색을 같게 했고요. 할머님 머플러는 할아버님 재킷 색이에요. 어떠세요?”

우진이 옷에 관해 설명하자 서로의 모습을 살피던 노부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영감님, 멋있어요.”

“할멈도 고와. 딱 시집올 때, 그 모습 같아…….”

할아버지는 갑자기 드는 옛 생각에 눈물이 나는지 눈가를 훔쳤다. 그러고는 괜히 멋쩍은 듯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어휴…… 늙으니까 내가 주책이네.”

뒤에서는 손자와 아들 내외가 노부부를 연신 찍어댔다. 그럼에도 노부부는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거울을 보며 서로를 살폈다. 할머니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던 할아버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우리만을 위한 옷 같네. 서로 적절하게 섞여서 혼자보단 둘이 있을 때가 더 빛나는 게 꼭 할멈하고 나 같아.”

우진은 할아버지의 말을 듣고 가슴이 뭉클했다. 옷을 만들 때 했던 생각을 그대로 느끼고 계셨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알아준 할아버지 덕분에 오히려 우진이 고마웠다.

한편으로는 짠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이 예정되어 있음을 안다는 게 어떤 느낌일지, 우진은 쉽게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이나 서로를 보던 중 할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가 바쁜 사람들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는 거 같아요.”

“아, 그렇지.”

우진은 아니라고 말하며 가볍게 웃었지만, 할아버지는 재킷을 혼자 벗으려 했다.

“제가 벗겨 드릴게요. 아직 완성된 게 아니라서요.”

“그럼 언제쯤 완성되는 겁니까?”

“이틀 뒤에 완성될 거예요. 그때 최종 확인할게요.”

“옷 만드는 것도 굉장히 번거롭네요. 마지막까지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아니에요. 이게 제 일인걸요. 그런데 최종 피팅은 숍에서 해야 하거든요. 혹시 문제가 있으면 바로 수정해야 해서 어쩔 수가 없는데. 어르신, 괜찮으시겠어요?”

그러자 뒤에 있던 아들이 입을 열었다.

“제가 모시고 가면 돼요. 몇 시까지 가면 될까요?”

“2시까지 오시면 될 거 같아요. 아! 오시면 머리도 만져 드릴게요. 염색은 안 하시는 편이 더 멋있을 거예요. 자연스럽기도 하고. 그냥 간단히 컷만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옆에 계신 분이 저희 I.J 헤어실장님이시거든요.”

미자 역시 노부부의 모습이 보기 좋은지 환하게 웃고 있었다.

***

노부부의 집 근처에서 식사한 우진은 밖을 보며 입을 열었다.

“직접 보니까 어떠세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따로 조사를 해봤습니다. 그런데 막상 직접 보니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베벌리힐스의 로데오하고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같은 이름을 쓰고 있더라도 두 거리는 큰 차이가 있었다. 베벌리힐스는 미국에서 가장 부자들이 산다는 동네다 보니 명품들이 주욱 들어선 반면, 이곳은 중저가 브랜드 및 스포츠 브랜드가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장점도 있었습니다. 상권이 시들어가는 동네여서 가격이 싸다는 점. 우리가 들어간다면 상권이 살아나는 건 확실합니다. 지역을 보니까 양천구에 속해 있더군요. 거기서도 이곳을 활성화하고 싶은데 마음대로 안 되는 모양입니다. 아마 저희가 들어가면 I.J를 중심으로 상권 살리기를 하려고 할 겁니다.”

“언제 그렇게 조사하셨어요?”

“제가 한 건 아닙니다.”

“그럼요?”

“돈만 있으면 다 됩니다. 제가 좀 더 추가해서 알아본 뒤, 보여 드리려고 했습니다.”

매튜는 직접 의뢰했던 빌딩전문중개소에서 보낸 자료를 휴대폰 화면에 띄운 뒤 우진에게 보여줬다.

“다만 매물이 없더군요. 월세가 그렇게 비싸지 않은 동네라 상점들이 잘 들어오나 봅니다.”

“어? 오늘 어르신들 집 뒤에 건물이 비어 있던데.”

“네, 지금은 그래도 아마 금방 들어올 겁니다. 여기 보시면 나와 있는 매물은 딱 한 곳이 있었습니다. 국회대로 쪽 방향으로 끝 건물, 그러니까 아까 저희가 갔던 골목의 가장 끝 건물이 매물로 나와 있더군요. 98년 승인된 3층 건물인데 매매가 33억입니다. 매장보다는 사무실이나 한 실장님 작업실로 사용하는 것이 적당해 보였습니다. 매장으로서는 상당히 좁은 편입니다. 늘어난 직원을 생각하면 그런 건물이 두 곳은 있어야 할 겁니다.”

어떤 건물인지 떠오른 우진도 매튜의 말에 동의했다. 지금 신설동에 있는 사람들까지 들어가기에는 상당히 좁은 곳이었다.

“일단 이 지역도 후보지에 넣어놓겠습니다.”

“휴, 진짜 이사 다니기 힘드네요. 이래서 다들 자기 집 갖는 게 꿈이라고 하나 봐요.”

***

이틀 뒤, 오전 내내 예약 손님을 만나고 다닌 우진은 숍에 오자마자 또다시 차에 올라탔다. 예약되어 있던 노부부가 오지 못한다고 알려왔다. 그냥 이상하면 이상한 대로 입어도 되니 와줄 수 있겠냐고 부탁했다.

할머니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걸 아는 우진은 이동하는 내내 말이 없었다.

잠시 뒤, 노부부의 건물 앞에 도착했다. 우진은 옷을 챙긴 뒤 일행을 이끌고 노부부의 집으로 올라갔다.

띵동-

곧바로 문이 열렸고, 할아버지가 나왔다.

“아, 어서 와요. 이렇게 오게 해서 미안합니다.”

정중한 할아버지의 인사에 우진은 괜찮다고 말하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할머니가 계실까 거실부터 살폈지만, 예상했던 대로 몸이 좋지 않은지 보이지 않았다. 저번에 봤던 아들 역시 심각한 얼굴로 우진에게 고개만 끄덕여 인사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우리 할멈이 아들 녀석 먹이겠다고 손수 음식을 준비하더니 무리가 간 모양이에요. 몸이 좋지 않아요.”

“편찮으세요?”

“할멈이 가겠다고 그러는 걸 제가 억지로 말렸습니다. 정말 미안하게 됐습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괜찮으시다니 다행이네요.”

우진이 거실 바닥에 앉아 기다리는 사이, 자신이 온다는 소리에 씻고 계셨는지 화장실에서 할머니가 나왔다. 확실히 전보다 안색이 더 좋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런 얼굴로 우진을 보자마자 사과부터 했다.

“미안해요. 미안해.”

우진은 노부부의 거듭된 사과가 불편했다. 차라리 서둘러 확인하고 쉴 수 있게 자리를 비워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유 실장님, 할머님 좀 도와 드리세요.”

“가위 챙겨왔는데 컷부터 할까요?”

“네, 그러세요.”

우진이 정신없는 사이, 간단한 미용 도구를 챙겨온 미자는 식탁 의자에 할머니를 앉히고 머리를 간단하게 다듬기 시작했다. 우진이 할머니의 쪽 찐 머리를 바탕으로 옷을 만들었기에 크게 만질 필요도 없었다.

이후 미자는 할아버지까지 우진의 스케치대로 머리를 잘랐다. 그러고는 할머니의 옷을 갈아입혀 주려 방으로 들어갔다.

우진도 할아버지의 옷을 갈아입힌 뒤 거실로 나왔다. 우진은 단안경을 올려 할아버지부터 살폈다. 세운이 만든 신발까지 신은 할아버지는 걱정이 많은 얼굴이었다. 그럼에도 옷은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빛이 보였다. 우진은 그저 고개만 가볍게 끄덕이고는 할머니를 기다렸다.

잠시 뒤, 미자가 할머니를 모시고 나왔다. 하얀색 바탕에 와인색이 섞인 할아버지의 구두와 반대인, 와인색 바탕에 굽이 낮은 구두를 신은 채로.

가벼운 화장까지 했지만, 안색이 숨겨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던 우진은 지금까지 옷을 만든 그 어느 순간보다 빛이 보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단안경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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