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테일러들 2
입원을 결정하고 며칠 뒤, 병원에 가기 전 우진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낮에 이렇게 한가하게 있어본 적이 오랜만이라 굉장히 어색했다. 스케치라도 해볼까 했지만, 그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대구에서 올라온 어머니가 자신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고, 우진은 그 손을 빼낼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부모님 모르게 수술을 할 수 있을까 고민도 했다. 실명된 걸 본인들 탓으로 생각하시던 부모님이었기에, 아프다는 걸 밝혔을 때의 반응은 안 봐도 알 것 같았다. 하지만 큰 수술인 만큼 언제까지고 숨길 수가 없어서 얘기를 했고, 그날 밤 부모님 두 분이 서울로 올라오셨다. 그리고 예상한 대로 마치 죄라도 지은 것 같은 얼굴로 미안해하셨다.
“수술이 어렵지 않다고 그랬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그래야지.”
처음 얘기를 들으셨을 때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얼굴이었지만, 지금은 진정이 조금 됐는지 처음만큼은 아니었다.
“오늘 입원하고 검사 또 한다고? 검사 결과가 잘못 나왔을 수도 있는 거고?”
“네. 일단 입원해서 다시 검사하고 수술 날짜 잡는다고 그랬어요.”
“그래……. 괜찮을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오랜만에 뵙는 부모님인데 할 말이 걱정하지 말라는 말뿐이었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땀이 찰 정도로 우진의 손을 부여잡고 있었다. 대화 없이 그저 손만 부여잡고 있다 보니 어느덧 가야 할 시간이었다. 우진은 병원에 가기 전 숍 식구들에게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아 조심스럽게 손을 빼며 말했다.
“가기 전에 숍 식구들한테 얘기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 그래야지.”
이미 세운을 통해 들었을 테지만, 그래도 메시지보다는 전화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세운이 도통 숍 소식을 말해주지 않았기에 궁금하기도 했다.
“매튜 씨, 밖이세요?”
-네, 목동에 와 있습니다.
“아, 그렇구나. 제가 가봐야 하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 입원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병문안 가겠습니다.
우진은 숍 일에 궁금해하지 말라는 듯 딱 자르는 매튜의 말투에 멋쩍게 웃었다. 매튜와 통화를 마친 후엔 장 노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이번에 준비하는 옷의 원단을 준비하려고 서문시장에 내려와 있다는 말을 들었다. 자신이 없는데도 무척이나 바쁜 모습들이었다. 그 모습들을 보자 하루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장 노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사무실 식구들에게 인사할 생각이었지만, 장 노인이 밖에 나가 있었기에 우진은 사무실에 있을 만한 사람을 골라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병원이세요? 몇 호실이에요?
“아, 아직 안 갔어요. 가기 전에 전화드린 거예요. 유 실장님은 숍이시죠?”
-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수술 분명히 잘될 거예요.
“하하, 네. 다른 분들은 자리에 계세요? 인사하려고요.”
-잠시만요!
하루 종일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했는데 남을 통해 듣게 되자 뭔가 새롭게 느껴졌다. 우진은 피식 웃으며 기다렸고, 잠시 뒤 숍 대부분의 숍 식구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윤 매니저님하고 최 실장님 어디 가셨어요?”
-아! 오늘 최 실장님 유니폼 설명회 한다고 거기 가셨어요.
“그래요?”
우진은 기쁜 듯 웃었다. 그러고는 이런 좋은 소식이 있으면서 얘기도 안 해주는 세운이 떠올라 코를 찡그렸다. 그러다 병원에서 나오면서 스쳐 봤던 조이클럽을 떠올렸다.
“혹시 본사에서 설명회 해요?”
-그렇긴 한데…… 다들 알아서 잘하실 거예요. 밤새 연습하시고 가셨거든요.
범찬의 일이 무척이나 뿌듯했다. 아마 자식이 잘되면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함께하지 못하는 것에서 약간 서운함을 느꼈다. 그때, 옆에 있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그렇게 매장이 좋아?”
“아, 저희 테일러분 중에 한 분이 설명회에 가셨다고 해서요. 조이클럽하고 계약했거든요.”
“그래. 좋은 일 있으면 좋아해야지. 우진이 너도 빨리 나아서 같이하면 되니까, 지금 그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다고 서운해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는 아버지였다.
“그럼 이제 그만 일어나자.”
* * *
조이클럽에서 공모전 결과를 발표했다. 보통이라면 회사 내에서 촬영하고 그 사진으로 보도 자료를 만들어 신문사들에게 돌렸을 테지만,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기자들까지 초청했다. 물론 수상자도 아닌 범찬도 이 자리에 함께였다. 범찬이 긴장했는지 계속 물만 들이켜자 함께 온 준식이 웃으며 말했다.
“다리 좀 그만 떨어요.”
“어우, 너무 떨려요. 선생님이 왜 기자들 피해 다니시는지 알 거 같아요.”
“이래서 올라가서 설명할 수 있겠어요?”
“다 외우긴 했는데. 엄청 떨리네요.”
“하하, 저번에는 잘만 웃고 있었잖아요. 그때처럼만 해요.”
“그때는 말을 안 했으니까…….”
범찬은 가슴을 쓰다듬으며 마이크를 잡고 있는 사람을 봤다. 오늘은 공모전 시상과 더불어 조이클럽의 새 유니폼을 공개하는 자리였고, 지금만 하더라도 공모전에서 뽑힌 사람이 자신의 디자인에 대해서 설명 중이었다. 설명만 하면 이렇게 안 떨었을 텐데, 기자들이 질문을 했다.
수상자가 말을 잘했더라면 그나마 긴장이 덜 됐을 텐데,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이었기에 목소리까지 떨면서 힘들게 답변하고 있었다. 자신도 조금 있으면 저럴 거라 생각하니 저 모습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겨우 수상자의 소감 및 질문 시간이 끝났고, 수상자는 땀까지 닦아내며 단상을 내려왔다. 그리고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 공모전을 통해 소비자에게 한발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유니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종식 씨의 디자인은 바로 다음 주부터 전국 조이클럽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 공모전과 더불어 조이클럽이 준비한 유니폼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일단 유니폼부터 만나보시죠.”
그러자 뒤에서부터 열댓 명의 사람들이 조끼를 입은 채 단상 위로 올라왔다. 그 모습을 보자 더욱더 떨리기 시작했다.
“이번 유니폼은 하절기 유니폼으로써, 기존 조이클럽의 유니폼에서 많은 변화를 준 작품입니다.”
아주 짧긴 했지만, 모델들은 패션쇼라도 되는 듯 밑으로 내려와 기자들과 관계자들 사이를 누볐다. 아까 공모전 때도 똑같이 쇼를 진행했었지만, 범찬은 그 모습을 보자 더욱 긴장됐다. 이윽고 모델들이 다시 단상으로 올라가자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
“그럼 하절기 디자인을 책임지신 최범찬 디자이너님을 소개합니다.”
범찬은 떨리는 다리를 한 번 세게 꼬집은 뒤 일어났다. 그러고는 단상 위로 올라가 마이크 앞에 섰다. 모두 자신만 바라보고 있어 더욱 떨렸다.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안녕하세요…….”
조이클럽과 설명회를 사전에 준비했는데 시작부터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은 더욱 집중됐고, 범찬은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기 힘들어 가장 뒤에 있는 문에 시선을 고정했다. 떨리는 와중에도 속으로는 할 말을 생각할 때, 애써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뒷문이 열렸다. 총 세 사람이었고, 그중 한 명은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과 눈이 마주친 그 사람이 엄지를 내밀자 긴장이 순식간에 풀리기 시작했다.
“후우, 안녕하세요. I.J 소속 디자이너 겸 테일러 최범찬입니다.”
밑에서 긴장하며 보고 있던 준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뱉었다. 그리고 장내가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I.J? 임우진 디자이너 있는 I.J 말하는 거지?”
“대박. 조이클럽 대박이네. 명품 브랜드에서 받은 유니폼이라고?”
기자들은 자기들끼리 질문할 거리를 생각하고 있었고, 관계자들은 흐뭇하게 바라봤다. 설명회에 참석한 점주들은 자신들끼리 떠들어댔다. 사회자가 나서서 진정시키고 나서야 다시 범찬이 입을 열 수 있었다. 지금도 약간 떨리긴 했지만, 말을 할수록 긴장을 풀리는지 준비했던 대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제가 편의점을 돌아다녀 본 결과 점주분들이 직접 운영하시는 곳도 있지만, 학생들이 아르바이트하는 곳도 굉장히 많더라고요.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편의점 알바라는 직업이 가장 밑바닥으로 인식된다는 걸 아실 겁니다. 그래서 조이클럽은 젊은이들이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들이 소중한 사람임을 느낄 수 있는 멋진 유니폼을 원했고, 저 역시 그 생각이 옳다고 생각해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범찬은 조이클럽에서 원한 내용대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이미 관계자들은 기자들 사이에서 들리는 말에 굉장히 만족해하는 얼굴이었다.
“하긴 I.J 얼마 전에 기부도 했잖아.”
“그렇지. 무슨 국회의원이라도 나가려고 그러나? 옷가게가 아니라 사회 사업하는 기업 같아.”
“조이클럽도 이미지 팍 올라가겠네.”
다들 자신들끼리 숙덕거리는 와중에도 범찬은 디자인에 대한 설명을 준비한 대로 끝냈다. 그러자 사회자가 곧바로 마이크를 받아넘겼다.
“그럼 질문 시간 갖겠습니다.”
사회자가 기자를 선택하면 대답은 범찬이 하는 형식이었다. 처음 뽑힌 기자는 곧 바로 질문을 던졌다.
“임우진 디자이너도 참여한 겁니까?”
“이번에는 개인적으로 참여한 겁니다. 하지만, 제가 선생님께 배웠으니 참여하신 거나 다름없지 않을까요?”
범찬은 준비한 대로 질문을 잘 받아 넘겼다. 그러고는 가장 뒤에 앉아 있는 사람을 보며 미소 지었다.
“임우진 디자이너가 현재 요양 중이라고 알고 있는데 어디가 얼마나 아픈 겁니까?”
“현재 치료 중이시고, 다시 건강해지실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병명은 말씀해 주실 수 없나요?”
“그건 나중에 선생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게 좋겠군요.”
계속해서 우진의 얘기가 나오자 사회자가 나섰다.
“이 자리가 유니폼을 발표하는 자리인 만큼 I.J에 관한 질문은 자제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럼 다음 질문 이어가겠습니다.”
그 뒤로도 질문이 한참이나 계속됐다. 대부분이 조이클럽과 매튜, 준식이 준비해 준 답변으로 해결이 가능했다. 기자들의 질문이 끝나자 한쪽에 무리를 짓고 앉아 있던 점주들 중에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취지도 좋고, 유니폼도 마음에 듭니다. 그런데 이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네?”
“그렇지 않습니까. 본사야 유니폼 정하면 끝이지만, 우리는 그걸 안 살 수가 없잖아요. 안 사면 미스터리 쇼퍼 보내서 감점 먹이고. 진짜 너무 점주들 생각은 안 해주는 거 아닙니까?”
점주 한 명의 말이 끝나자 함께 있던 점주들이 동조했다. 장내가 약간 소란스러워졌고, 범찬은 자신이 대답할 부분이 아니었기에 사회자에게 대답을 넘겼다. 그러자 사회자가 이해한다는 듯 점주들을 진정시켰다.
“이게 진정할 게 아니잖아요. 유니폼을 소모품으로 분류해 놔서 가격도 만만치 않은데.”
“진정들 하세요. 점주님들께는 따로 설명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아니, 얼마나 비싸게 팔려고 따로 설명을 합니까! 이 자리에서 하지!”
기자들은 오히려 지금 같은 상황이 더 흥미로운지 점주들까지 찍기 시작했고, 사회자는 약간 당황해했다. 그러자 단상 위로 마케팅팀의 정 과장이 급하게 올라와 마이크를 잡았다.
“안녕하세요. 하하, 이게 기업 내 기밀이란 거 아시죠? 그래도 이렇게 말 나온 김에 이번 유니폼 가격을 속 시원하게 밝혀 드리겠습니다. 이미 공지를 받으셔서 아시겠지만, 공모전에 당선된 유니폼은 기존하고 차이가 없어요. 그런데 지금 유니폼은 조금 차이가 있어요.”
“아니! 당연하지! 누가 편의점 일하면서 명품 입고 싶답디까?”
“아! 오해를 하시는데 기존의 가격은 공개된 석상이라서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이건 말씀드려야겠네요. I.J 소속의 최범찬 디자이너도 그 부분까지 염두에 두고 만드셨거든요. 그래서 가격은 본부매가가 8,000원! 점포매가도 8,000원! 입니다!”
“뭐요? 팔처…… 어?”
점주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자신들이 들은 게 맞는지 확인했다. 그 모습을 본 정 과장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저희만 살자고 하겠습니까. 점주님들이 모이고 모여서 조이클럽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언제나 점주님들과 함께하는 그런 조이클럽이 되려고 노력 중이니 부디 지켜봐 주시길 바랍니다.”
불과 몇천 원 차이임에도 점주들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