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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옷이 보여-230화 (230/231)

230화 아제슬로 2

오후가 되자 사람들이 더 몰려들기 시작했다. 명품 골목과 다른 골목에 위치한 할인 매장들이나 음식점에는 빈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명품 골목의 다른 브랜드들에도 매장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가득했다. 다만 일일 제한이 있는 I.J만은 평소와 다름없었다.

우진은 로데오 거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고 싶은 마음에, 숍에서 그나마 한가한 세운과 나가기 위해 준비 중이었다.

“정말 나가려고?”

“어떻게 되는지 봐야죠.”

“휴, 그렇긴 한데. 지금 밖에 사람 엄청 많아! 아까 점심 먹으려고 배달시켰더니 2시간 걸린대서 근처 분식집으로 갔거든? 거기도 꽉 찼더라.”

“그렇게 많아요?”

“어. 그러니까 공연에 인기 있는 가수 좀 부르지. 대낮부터 성악 같은 거 부르니까 사람들이 흩어지잖아.”

“하하, 이따가 유명한 가수 오잖아요. 그리고 여기저기 구경하는 게 더 좋죠. 아무튼 나가봐요.”

“사람들이 알아보고 몰리면 어쩌려고 그래.”

“알아봐야죠. 우리가 진행한 일인데 당연히 얼굴 보고 인사해야죠.”

“대표가 가만있겠어?”

“하하, 대표님 로젤리아에 있잖아요. 그리고 사람들한테 인사하는 일은 대표님보다 제가 더 어울리는 거 같은데, 설마 뭐라고 하겠어요?”

세운은 우진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마 전부터 이상하네. 아무튼 내가 데리고 나간 거 아니다?”

세운을 끌고 나온 우진은 매장에서 나오자마자 길거리에 사람이 어느 정도 차 있는지 느낌이 왔다. I.J 건물 앞의 커피숍에도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고, 건물을 배경을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상당했다.

사람들은 우진이 I.J 건물에서 나오자 그를 쉽게 알아보았다. 누군가를 시작으로 사진 요청이 쇄도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니까. 이래도 갈 거야?”

“가야죠. 금방 찍어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린 탓에 걸음이 더뎌졌다. 그럼에도 우진은 기분 좋은 미소로 사람들과 사진을 촬영하며 걸음을 옮겼다. 불과 몇 미터 거리로 나오자 사람들의 수가 I.J 앞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로젤리아, 제프 우드, 헤슬을 제외하고도 다른 명품 브랜드 매장까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게다가 아직 오픈하지도 않은 시계 매장 앞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매장 배경과 환한 조명 덕분에 사진을 찍기에 최적화된 장소였다.

“오늘 매장 보고 간 사람들 중에 백분의 일만 고객으로 와도 엄청나겠죠?”

“백분의 일이 뭐야. 더 많이 올걸? 영감님들이 만든 거 중에 보석 안 박는 건 저렴하잖아. 그래도 몇백 하겠지. 월요일부터 오픈인데 여기 직원들 정신없겠다.”

“담당자 봤어요?”

“아니, 못 봤지.”

같은 처지였기에 우진은 세운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그 와중에도 우진은 사람들과 촬영을 해주었다. 팔짱을 끼기도 하고, 같이 하트를 해달라는 요청도 있었다. 우진이 그런 요청들을 들어주며 촬영할 때, 누군가가 또 팔짱을 꼈다. 사진을 요청하기도 전에 팔짱부터 꼈지만, 우진은 웃으며 카메라를 찾았다. 그때, 옆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형!”

“어? 상진아! 너도 구경 온 거야?”

“그냥 구경도 하고 형도 보고 일도 하고요.”

무척이나 반가운 얼굴이었다. 병원에 있을 때 상진이 병문안을 온 이후 상당히 오랜만이었다.

“그런데 무슨 일을 해?”

상진이 씨익 웃었고, 우진은 그런 상진을 물끄러미 봤다. 자신이 알고 있는 상진이 저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는 것이 어색한 이유도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저 모습이 굉장히 익숙했다. 그때,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을 뚫고 나오는 얼굴이 보였다.

“아! 이 사람이!”

“대표님,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저기 위에서 다 보이잖아요! 회의하다가 내려왔네!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예요?”

“길거리 찾아준 분들한테 인사하고 있었어요.”

“후아!”

로젤리아 건물에서 우진을 발견하고 내려온 딜란은 몰려 있는 사람들을 보며 조그맣게 한숨을 뱉었다. 그러고는 옆에 있던 상진에게 손을 흔들었다. 우진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딜란이 주변 사람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 그러니까 촬영은 우리 직원이, 사진은 우리 SNS에서 찾아가요! 오케이? 그럼 여기 앞에서부터!”

딜란은 우진의 옆에 사람들을 세우고는 상진에게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그러자 속도가 당연히 빨라졌고, 우진은 역시 딜란이라는 생각에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가 사진을 찍고 있는 상진이 보였다. 자신이 입원한 뒤부터 상진이 숍에 나오질 않았기에 딜란과 마주칠 기회가 없었을 텐데, 두 사람은 서로 익숙해 보였다. 게다가 조금 전에 딜란이 상진을 가리키며 직원이라고까지 했다.

궁금하긴 했지만, 촬영부터 끝내는 게 우선이었기에 우진은 카메라를 보며 미소 지었다. 점점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잠시 뒤,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촬영을 마치자 딜란은 확인까지 했다.

“안 찍은 사람 있어요? 이거 사진 뽑을 거면 한 장당 만 원이에요! 오케이?”

“…….”

“조크! 농담이에요. 하하하.”

딜란의 농담에 우진 역시 흠칫 놀랐다. 사람들에게 확인하며 농담까지 한 딜란이 우진에게 다가와 무언가를 말하려 할 때, 행사장 쪽으로 나가는 도로가 굉장히 시끄러워졌다. 이쪽에 몰려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도로 쪽으로 향했다.

“뭐지? 저 정도면 연예인 같은데?”

그때 딜란의 휴대폰이 울렸고, 휴대폰을 받은 딜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일단 먼저 와요!”

딜란은 전화를 끊더니 까치발까지 들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인파를 쳐다봤다.

“왜 그러세요?”

“아오, 하나같이 전부 일을 만들어요! 일을!”

딜란은 인상을 쓰더니 인파를 쳐다봤다. 우진 역시 몰려오는 사람들을 봤다. 사람들 가운데에 유명인이 있는지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기자들로 보이는 사람들까지 보였다. 그때, 다가오는 사람들 중 일부가 우진을 발견했다. 그러더니 곧바로 카메라를 들고 우진에게 향했다.

순식간에 두 개의 커다란 무리가 생겨 버렸다. 우진은 다짜고짜 마이크를 들이미는 기자들의 모습에 흠칫했다. 그런데 그들의 입에서 뜻밖의 이름이 들렸다.

“델핀 씨가 한국에 방문한 이유가 오로지 임우진 디자이너를 만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알고 계셨습니까?”

많은 사람을 몰고 다니는 사람이 델핀이라는 걸 알게 됐지만,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들린 탓에 우진은 기자들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사이 델핀과 함께 움직이는 사람들이 가까이 왔다. 그리고 그 무리를 힘들게 헤집고 나오는 사람이 보였다.

“델핀 씨!”

“아! 힘들다! 역시 이런 기분 때문에 한국에 오는 게 좋습니다! 슈퍼스타 된 기분!”

“어떻게 오신 거예요?”

그때 델핀과 마찬가지로 인파를 힘겹게 뚫고 나온 사람이 델핀을 대신해 대답했다.

“제가 한국 간다니까 따라왔어요. 아저씨! 혼자 가면 어떡해요! 저 매니저인 줄 알고 사람들이 붙잡잖아요.”

우진에게 상당히 익숙한 얼굴이었다. 혼혈인 탓에 이국적이면서도 친근한 외모의 바이에르였다.

* * *

우진의 일행은 로젤리아 매장에 양해를 구한 뒤 사무실에 자리했다.

“바이에르 씨, 스위스 매장은 어떻게 하고 오셨어요?”

“네?”

우진의 질문에 바이에르는 대답 대신 딜란을 봤다. 우진도 의아함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딜란을 봤다. 그러자 딜란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월요일부터 출근하라니까 왜 왔어요?”

“인사도 할 겸 행사한다고 그래서. 구경도 좀 하려고요.”

“그럼 혼자 오든가! 둘이 인사나 해요. 저쪽이 매니저. 상진 씨도 인사해요. 이쪽이 매장 책임자.”

딜란이 상진과 바이에르 두 사람에게 서로를 소개했다. 그 얘기를 듣던 우진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바이에르 씨하고 상진이가 시계 매장 맡는 거예요?”

“매장은 바이에르 씨가 맡는 거고. 상진 군은 매니저 중 한 명이죠. 상진 군이 액세서리 디자인에 특화되어 있으니까 공부할 겸 일해보라고 했습니다.”

“대표님이 상진이를 어떻게 알고요?”

“오너 일이 내 일인데 당연히 알아야죠. 내 일은 내 일! 오너 일도 내 일! 오케이?”

바이에르가 오게 된 것도 전부 딜란이 계획한 일이었다. 한국에서 시계 전문가를 부르려면 인건비가 상당했기에, 기왕 쓸 바에는 할아버지들이 만든 시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바이에르에게 제의한 것이었다. 스위스 매장은 시계의 나라답게 매장을 맡길 전문 인력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모든 설명을 들은 우진은 두 사람을 가만히 쳐다봤다. 왼쪽 눈이 보일 때 유니폼을 입었던 바이에르와 자신이 롤 모델이라던, 첫 제자나 다름없는 상진까지 함께하게 되었다. 딜란이라면 전부 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우진이 고마움을 표하려 할 때, 딜란이 먼저 입을 열었다.

“메이드 인 스위스. 판매와 마케팅은 I.J 본사가 있는 한국에서. 한국 매장에 힘을 실어야죠.”

“하하, 그래도 감사해요.”

“다 돈 벌려고 하는 건데.”

딜란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아들에게 인사를 받는 그런 느낌이었다. 딜란은 자신도 모르게 우진의 머리를 향해 손이 올라가는 걸 느끼고는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그러고는 혼자 머쓱해진 얼굴로 이쪽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그나저나 저건 어쩌지? DII 공연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딜란이 가리킨 창밖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우진만으로도 이동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델핀의 등장으로 이동이 더 어려워졌다. 델핀은 우진에게 미안하기도 했지만 자신의 인기를 실감하느라 미소가 가득했다.

우진은 그런 델핀을 보며 피식 웃었다. 대한 스위스 놈이라고 불리며 여전히 한국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주연은 아니지만 조연으로 영화도 촬영했다고 들었다.

델핀은 아제슬 때 만들어준 옷을 여전히 입고 있었다. 그는 우진의 시선을 느꼈는지 자신의 옷을 보면서 웃었다.

“그냥 옷이 편하기도 하고, 한국에서 못 알아볼 수도 있을 거 같아서! 하하, 안 그래도 이번에 온 김에 선생님한테 한 벌 맞추고 갈 생각이었어요!”

우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딜란이 반대를 하더라도 우진은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델핀은 I.J 덕분에 성공했지만, I.J 역시도 델핀의 도움을 받았다. 고객이 아닌 은인 같은 관계라고 생각한 우진은 딜란을 쳐다봤다.

“괜찮죠?”

딜란은 대답 대신 델핀을 쳐다보며 고개를 저으려 했다. 그때, 갑자기 좋은 생각이 났는지 실실 웃기 시작했다. 왜 또 저런 웃음을 짓는 건지 우진이 의중을 알아내려 딜란을 쳐다봤다.

“만들어 드려야죠, 하하. 지금 당장 준비하죠.”

“네?”

너무 뜻밖의 대답에 우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딜란이 실실 웃더니 옆에서 바이에르와 대화 중인 세운을 불렀다.

“마 실장님! 헤슬 가서 유니폼 원단 한 벌 분량만 좀 받아다 주세요! 델핀 씨, 축제에 어울리는 옷으로 선물해 드리죠. 티셔츠에 데님바지이긴 하지만, 아무에게나 판매하는 옷이 아닙니다. 하하, 어떠십니까?”

델핀은 환하게 웃으며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 * *

우진은 로젤리아 건물에서 바이에르와 상진과 함께 밖을 보며 어이가 없는 웃음을 뱉었다. 델핀은 로데오 거리의 유니폼을 입은 채 사람들 앞에 서 있었고, 그 옆에서 딜란이 마치 매니저라도 되는 양 기자들에게 무언가 열심히 떠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세운이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와, 대표 진짜. 어떻게 지금 이 순간에도 이용해 먹을 생각을 하냐. 델핀 저 사람도 좋다고 입는 거 봐라. 뭐라고 하고 있을까?”

“아마도 우리가 거리에서 가장 이슈가 되게 하려고 그러는 걸 거예요.”

“참 나, 그런데 너 만드는 속도가 더 늘었다?”

지금까지 중 가장 많이 만든 옷이었기에 속도가 빠른 것은 당연했다. 우진이 피식 웃으며 밖을 내다볼 때, 옆에 있던 바이에르가 불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 사람 어떤 분이에요……?”

“음, 열정적이고 능력 있는 분이죠. 왜 그러세요?”

“그게…… 좀 불안해서요. 할아버지들이 만드는 시계들이 엄청나게 유명해질 거라고 했는데, 저 모습 보니까 이용하려고 한 건가 싶어서요…….”

바이에르의 질문에 상진 역시 비슷한 감정이었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모습을 본 우진은 피식 웃었다.

“누구보다 믿을 수 있죠. 지내다 보면 잘 알 거예요. 그리고 할아버지들 시계는 제가 디자인을 잘 뽑아야죠.”

“지금은 그냥 돈만 보는 사람 같은데…….”

“하하.”

우진은 자신이 백번 말하는 것보다 직접 겪어보는 게 낫다는 판단에 입을 다물었다. 지금은 딜란이 돈만 좇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쁘게 보이진 않았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며 이루는 성공이 아닌, 여럿이 함께 성공을 이뤄 나가고 있었다. 바이에르와 상진도 시간이 지나면 자신들의 선택에 만족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우진은 그다지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때, 세운이 딜란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저! 저러고 공연하는 데까지 가려나 보네! 진짜, 미친 거 같아. 너희들도 조심해. 너희들한테도 뽑아먹을 거 생기면 아주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빨아먹을 거야.”

바이에르와 상진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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