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내 딸은 어디 있어.”
집안으로 굳이 발을 들이지 않은 카엘은 다시 고개를 돌려 지엘에게 물었다.
평소라면 헤프게 날뛰고 까불었을 지엘마저 넋이 나가 있었다. 오랜 시간 함께 살아왔지만, 지엘의 이런 얼굴은 본 적이 없었다.
그중, 제정신을 차릴 수 있는 이는 한 명도 없었다.
“어디 있어…….”
폭풍전야와도 같은 카엘의 태도에도 지엘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리헨은 바닥에 엎드려 잔디를 움켜쥐고 있었다.
“어디 있어……. 어디 있냐고!”
고막이 터질 듯한 외침과 함께 카엘은 지엘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만일 다쳤다고 해도, 그 사실을 깨달은 즉시 두 사람이라면 히아젤키를 히엘에게 데려갔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곳에서 이렇게 넋을 놓고 있는가.
가라앉았던 카엘의 표정에 금이 갔다. 그것이 쩌적, 갈라지며 감정을 드러냈다.
“어디 있냐고 묻잖아! 내 딸은 어디 있어!”
이빨을 드러낸 맹수 같은 그에게 지엘은 어떤 대답도 해줄 수 없었다.
불안함과 불길함. 카엘은 그 어찌할 도리도 없는 감정에 휩싸여가는데, 그곳에 히엘이 나타났다.
“카엘, 그만두세요!”
저항할 힘도, 그럴 생각도 없던 지엘은 카엘이 손을 놓자 그대로 다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때까지도 잔디를 움켜쥔 채로 땅에 머리를 박고 있던 리헨이 돌연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러더니 살기로 가득 찬 눈으로 그 부부를 향해 달려갔다.
줄곧 아무런 말도, 행동도 보이지 않던 지엘은 그제야 움직였다.
“리헨!”
뒤에서 지엘이 달려들어 붙들지 않았다면, 아마도 리헨은 그 자리에서 그들을 죽였으리라.
“살려내……. 살려내! 히아를 돌려줘!”
끝내 오열하고야 마는 리헨을 보며 지엘은 입술을 짓씹었다.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보는 건 정말이지 못 할 짓이었다.
목놓아 울면서도 현실을 부정하듯 고개를 흔들던 리헨은 지엘의 옷자락을 움켜잡았다.
“시엘 님……. 시엘 님께 데려다주세요. 거기, 에……. 히아가 있을…….”
말을 잇던 리헨은 한순간에 축 늘어졌다.
“리헨!”
지엘이 다급하게 소리쳐 부르자, 히엘이 서둘러 안으로 들어섰다.
“지엘, 일단 그곳에서 데리고 나오세요.”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그 안은, 히엘도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그래서 짧은 한마디만을 남기고 미간을 찌푸린 히엘은 곧장 집 밖으로 다시 나갔다.
지엘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을 잃은 리헨을 들쳐메고 밖으로 나섰다. 집을 나서기 전에 그 시선이 짧게 히아젤키의 친부모를 훑었다.
시간이 지나며 입가에 말라붙은 핏자국이 더 흉측해 보였다.
주먹을 움켜쥔 지엘은 뱃속부터 분노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곧 그들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걸음을 뗐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죠. 신전으로…….”
가자는 말을 하려던 히엘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카엘이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순식간에 하늘을 가로지르는 검은 용을 올려다보며 히엘은 한숨을 삼켰다. 그리고는 제 뒤에 선 지엘에게 말했다.
“따라가죠.”
“……응.”
하늘을 빠르게 가로지른 카엘은 성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히엘은 물론, 지엘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히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마치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온 것처럼.
성에 도착한 카엘은 성큼성큼 안으로 걸어갔다.
“주인님……?”
그의 상태가 예사롭지 않음에 알버트는 조심스레 눈치를 살폈다. 카엘의 뒤를 이어 성에 도착한 히엘이 카엘을 뒤따르려다 혼란스러워하는 알버트를 보고는 난감함에 미간을 좁혔다.
“히엘.”
그리고 무어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지엘이 먼저 불러 세웠다.
“리헨 좀 봐줘.”
“맙소사, 지엘 님……! 도대체 무슨 일이……!”
지엘과 리헨은 피로 얼룩져 있었다. 손이며, 옷에 핏자국이 선명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알버트에게 뭐라도 설명하는 것이 좋았겠지만, 지엘은 그럴 힘도 없었다.
히엘에게 리헨을 맡긴 지엘은 가만히 고개를 들어 성안을 훑었다. 평소의 푸근한 분위기를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표정에 알버트는 지엘이 낯설게 느껴졌다.
정신을 잃은 채 지엘의 등에 업힌 리헨을 살핀 히엘은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혼절한 모양이군요.”
“……괜찮은 거야?”
“신체적인 문제는 없겠지만, 정신적인 문제가 크겠어요.”
“…….”
지엘은 무언가를 눌러 참듯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런데 안쪽에서 곧, 얼굴을 일그러뜨릴 수밖에 없는 카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렴풋이 들리는 카엘의 목소리에 알버트는 이제 잘게 몸을 떨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함께 나섰던 것이 분명한 히아젤키가 보이지 않았다.
성안을 샅샅이 뒤지며 카엘은 계속해서 그녀의 이름을 불러대고 있었다.
히엘과 지엘은 참담한 심정으로 결국 고개를 떨어뜨렸다.
“알버트 님, 이게 도대체…….”
뭐가 어찌 된 일이냐고 물으려고 달려오던 리사는 피 칠갑인 지엘과 리헨을 발견하고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갓 태어난 사슴처럼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로 겨우 다가온 리사는 정신을 다잡으며 물었다.
“리헨 님은 괜찮은 건가요?”
“……괜찮습니다.”
외상은 없었지만 정말 괜찮다고 해도 되는 상태인지 망설여져, 히엘이 조금 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대답에 가슴을 쓸어내린 리사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저, 기……. 아가씨는 어디에……?”
“…….”
두 번째 질문은 아무리 기다려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길게 이어지는 그 침묵이야말로, 엄청난 공포였다.
정신을 잃은 리헨, 평소와 다른 분위기의 지엘, 게다가 두 사람은 옷과 손에 피가 잔뜩 말아 붙어 있었다.
함께 나갔지만 돌아오지 않은 히아젤키. 그리고 성안을 헤집으며 그녀를 찾는 카엘.
누구라도 좋으니 이 상황을 설명해주었으면 싶었지만, 지엘과 히엘의 표정을 보면 캐물을 수도 없었다.
한참을 성안을 헤집던 카엘은 이내 가쁜 숨을 내쉬며 다시 그들에게 돌아왔다.
그는 반쯤 정신이 나간 얼굴로 알버트의 어깨를 움켜쥐고 물었다.
“히아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건가?”
“카엘.”
“아, 산책 중인 건가?”
상황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알버트마저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아니지, 훈련장에 있을 수도 있겠군. 그리로 가 봐야겠다.”
“카엘!”
히엘이 목소리를 높이고 나서야 카엘은 걸음을 멈췄다.
“일단 진정해요.”
카엘은 히엘이 하는 말을 똑바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이성을 잃은 눈은 정처 없이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
“진정? 어떻게 진정하라는 말이지?”
히아젤키가 없어졌다. 그에게 지금 상황은 도저히 진정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땅에 내려온 이래 카엘에게 이렇게까지 중요한 인간은 없었다. 죄인만을 보아 와서 인간에게 질릴 대로 질렸던 그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인간.
“……내 딸이야. 내 딸이라고! 도대체 누가 멋대로 데려갈 수 있단 말이냐!”
이렇게 절절하게 그녀를 가족으로 소중히 하는 이는 카엘이 유일할 것이었다. 히아젤키가 지금의 그의 모습을 보았다면 분명 미안한 한편, 기뻐했을 것이다.
애초에 한 번도 제대로 된 부모를 만난 적이 없는 그녀였다. 너무나도 예쁜 아긴데, 사랑해 마지않는 딸인데,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증오가 끓어오른다.
시기, 질투, 애정, 증오, 그것들이 뒤섞인 애증. 히아젤키의 부모들은 전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이번 생의 히아젤키가 태어났던 그 마을에서 있었던 일도 그래서였다. 너무나도 예쁘지만,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녀에게서 기묘한 감정을 느꼈다. 그러니 아주 순수하고 아름다운 아기이니 신께서 좋아하실 거라는 핑계를 대며 그녀를 제물로 지목했었다.
“찾아야겠다.”
정말 반쯤 정신이 나간 듯이 밖으로 향하려는 카엘을 히엘이 붙잡았다.
“일단 제 말 좀 들으세요.”
“무슨 말을! 히아를 데려와. 당장 눈앞에 데려다 놓으라고!”
카엘은 흡사 광기에 사로잡힌 듯이 보였다. 줄곧 입을 다물고 있던 지엘은 그런 카엘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시엘이 데려갔어.”
카엘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곧장 걸음을 떼려던 카엘은 그 집에서 목격했던 피 웅덩이를 떠올리고는 히엘을 붙잡았다.
“히엘, 너도 와라.”
곧장 시엘에게 가리라는 것이 빤해서 함께 걸음을 떼려던 지엘은 몇 걸음 가지 못하고 멈춰 섰다. 그리고는 다급히 성을 나서는 카엘과 히엘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들이 떠나고 난 뒤 지엘은 다시 뒤돌아 알버트에게 말했다.
“리헨의 방으로 가지.”
“예, 지엘 님.”
정신을 잃은 리헨을 홀로 둘 수는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그런 광경을 본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났을 때 자신마저 없으면 안 될 것 같아서.
* * *
성을 나선 카엘과 히엘은 곧장 시엘이 머무는 콘피니움으로 향했다.
하늘 위의 작은 집. 카엘은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거칠게 열어젖혔다. 평소였다면 히엘이 지적했겠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상황인지라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들이닥쳤지만, 마치 예상하였던 듯 시엘은 침착한 얼굴로 그들을 맞이했다. 잔뜩 신경이 날카로워진 카엘은 시엘을 매섭게 노려보며 물었다.
“히아는.”
그 나지막한 물음에 시엘은 슬쩍 옆으로 비켜서며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을 무심코 따라가니 단조로운 받침대 위에 관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그 안은 폭신해 보이고 주변이 꽃과 함께 있었지만, 관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에 히아젤키가 누워 있다는 사실만으로 카엘은 미칠 것 같았다.
성큼성큼 그리로 다가서던 카엘은 조금 거리를 두고 차마 더 다가서지 못했다.
복부에 몇 차례, 허벅지에 두어 개, 그리고 왼팔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이. 찔린 흉터로 가득했다. 옷가지는 이미 피로 흥건히 물들어 있었고, 히아젤키는 눈을 굳게 닫고 있었다.
하얀 팔을 뒤덮었던 피는 닦아 낸 것인지 상처가 한층 더 선명히 보였다. 카엘은 그 상처들을 눈에 담으니 더는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온몸이, 차게 식는 기분이었다.
“히아젤키……!”
카엘보다 조금 늦게 그녀를 발견한 히엘은 멈춰 서지 않고 관에 달려들었다.
카엘은 손끝을 잘게 떨며 눈을 질끈 감았다. 크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겨우 눌러 참는 듯한 그 떨림에서 그녀의 친부모를 향한 분노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도 히아젤키의 치료가 우선이었다. 자신의 분노보다도, 그녀가 우선이었다.
금방이라도 울 듯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손을 뻗는 히엘을 보며 카엘이 낮게 가라앉은 얼굴로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