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EX급 헌터다-67화 (67/291)

# 67

#067화 파라노말 코어 (1)

카리나가 남자의 상의를 찢자 기괴한 문양이 드러났다.

목덜미에서 시작된 문신은 안쪽까지 이어져 있었다. 아마도 전신에 새겨져 있을 터.

모두가 아지즈를 추앙하는 내용이라 스티븐의 미간이 자연스럽게 일그러졌다.

“이 문신은…… 설마 무틀락인가?”

“눈치채는 게 늦잖아, 영감탱이.”

수많은 괴물이 이브에서 활개를 칠 수 있는 것도 무틀락에서 나온 녀석들이 손을 썼기에 가능한 일일 터.

“세계적인 석학들을 납치하기 위해 움직였다는 건가……. 하긴 이렇게 미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건 무틀락뿐이겠지.”

카리나와 스티븐의 대화가 들린 건지 일순 장내가 술렁였다.

“진정하세요. 여기는 던전 안이에요. 당황하면 상대편의 의도대로 놀아날 뿐이에요.”

크리스티나가 참석자들을 다독였지만 한번 일어난 불안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할 건가?”

“나는 처음부터 영감탱이를 경호하는 게 임무였는데?”

“하지만 여기에 있으면 일방적으로 얻어맞을 뿐이네. 어쩌면 우리가 지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게 똑똑한 녀석들이라면 내가 있는데도 덤벼들진 않았겠지.”

코웃음을 친 카리나가 팔짱을 꼈다.

물론, 스티븐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이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피해자가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마냥 기다리는 건 그녀의 취향이 아니었다.

“농성을 하는 것도 좋지만, 빨리 끝내고 싶다면 이쪽이 먼저 가서 처리할 수도 있어.”

“승산이 있겠나?”

“도대체 누구에게 묻고 있는 거야? 혹시 치매라도 걸린 거야?”

그제야 카리나가 미국을 대표하는 헌터 중 하나라는 걸 깨달은 스티븐이 탄성을 터뜨렸다.

그녀가 나선 이상 소탕은 정해진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면 내 안전보다도 무틀락을 먼저 소탕해 주게. 그래 줄 수 있겠나?”

“뭐, 영감탱이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다용도 군용 벨트를 뒤적인 카리나가 삼각대를 꺼내 지면에 박았다. 곧이어 M60을 그 위에 꽂았다.

똑같은 작업을 다섯 번 반복하자 참석자들을 중심으로 거대한 포망이 형성되었다.

총구는 모두 동굴의 입구를 겨냥하고 있었다.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일반인이라도 방아쇠만 당길 수 있다면 B급 헌터에 달하는 화력을 뿜어낼 수 있을 터.

만족스럽게 웃은 카리나가 입구를 향해 경보기를 던졌다. 단추럼 생긴 기기가 벽에 착 달라붙자 헤드기어의 HUD에 현재 상황이 표시되었다.

“그걸로 15초만 버텨. 어디에 있든 그 안에 달려올 테니까.”

손을 저으며 동굴 밖으로 나간 카리나는 다용도 군용 벨트를 뒤적였다.

“그러면 뭐가 좋을까나.”

소탕의 시작이었다.

***

괴물들과 함께 나타난 건 무틀락이었다.

최악의 테러리스트, 아지즈를 따르는 광신도 집단.

괴물들을 도륙하며 전진한 한태민은 주저하지 않고, 녀석들을 향해 검을 찔러 넣었다.

궁금한 건 없었다. 누가, 왜, 무엇 때문에 시킨 건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이런 일에 투입된 녀석들이 중책을 맡고 있을 리 없었다. 들어봐야 시간만 허비될 터.

그렇기에 무참하게 짓밟았다. 비명을 지르는 이의 목젖은 뽑았으며, 발광하는 이의 사지는 부러뜨렸다. 목숨을 구걸하는 이의 생명은 밑바닥까지 불살랐다.

[레벨업하였습니다.]

47이었던 레벨은 어느새 50에 다다른 상태였다.

[마력 : 281]

[마력 : 296↑ NEW]

“재미있단 말이지. 괴수를 쓰러뜨리는 것보다 너희들같이 구제할 수 없는 쓰레기들을 죽이는 게 더 효율적이라니.”

“괴, 괴물…….”

“그래, 너희들은 그 괴물에 시비를 건 모지리들이고.”

한태민이 검을 긋는 것과 동시에 숨소리 하나가 줄어들었다. 놈이 마지막이었던 건지 주위에 살아남은 이는 한 명도 없었다.

무심하게 주위를 둘러보고 있자니, 무언가가 굴러와 발치에 닿았다.

▼대규모 이동 전송기

평가 : A

효과 : 물체를 보다 효율적으로 운반한다

설명 : 착용자의 마력에 따라 거리가 늘어난다

일개 헌터가 지니고 있기엔 과분한 아이템이었으나 그의 수장인 아지즈가 시리아의 왕이라는 걸 감안하면 그렇게 놀랍지도 않았다.

이브 안을 휘젓고 다니는 괴물들은 모두 이 안에서 나왔을 터.

전송기를 짓밟아 터뜨린 한태민은 다음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지도는 필요 없었다. 상대방이 먼저 부르고 있었으니까.

방금 전에 해치웠던 일당이 전부였던 듯 목적지로 가는 통로는 한산했다.

가끔씩 중형 괴물이 구석에서 나타났으나 준비운동조차 되지 못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저 멀리에서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방금 전부터 가슴을 두드리는 마력의 파동 또한 가까워졌다. 저 끝에 바라 마지않는 주범이 기다리고 있을 터.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환한 빛이 쏟아져 내렸다. 압도적인 크기의 공간이기 때문일까. 반대편이 보이지 않아 탁 트였다는 착각이 일어날 정도였다.

검부잿불을 꺼낸 한태민은 천천히 중심을 향해 걸어갔다.

중심에 선 남자 또한 손님이 왔다는 걸 깨달은 건지 느긋하게 걸어오면서 두 팔을 벌렸다.

“너라면 제때 찾아올 줄 알았다.”

남자는 케디아와 마찬가지로 탈을 쓰고 있었다.

풍성한 갈기털과 부리부리한 눈.

마치, 사자를 형상화한 것 같은 탈이었다.

하지만 정체를 감출 생각은 없는 듯했다.

사자탈로 얼굴을 가렸지만 복장은 MSS 심포지엄에서 입었던 것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답답해 보이는 가면은 좀 벗지그래? 보리스 박사.”

검부잿불로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미치광이, 뺀질이, 범생이.

애당초 답은 셋 중 하나였다. 놀라울 건 없었다. 나올 사람이 나왔을 뿐이었으니까.

“벗고 싶지만 그러면 흥이 살지 않는다. 어찌 됐든 아이덴티티 같은 거니까.”

아이덴티티.

뒤에서 음습하게 노는 녀석이 하는 말치곤 강단이 있어 보이는 표현이었다.

물론, 입에서 흘러나오는 건 실소뿐이었지만.

“그렇지 않아도 너희를 뭐라고 부를지 고민했는데 말이야. 그 말을 들으니 확실해지는군. 이제부터 너희들은 탈모임이다.”

“어떻게 부르든 상관하지 않겠다. 네 마음일 테니까. 하지만 하나 착각하고 있는 게 있군. 너는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그 말은 네가 오늘 이후로 입을 열 일은 없다는 거지.”

확신에 찬 어조로 단언한 보리스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황일찬을 이용한 건 극적인 상황에서 한태민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케디아, 그 녀석을 죽이고 기고만장한 건 실수다. 어차피 사이클의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한 녀석이었으니까.”

“마치 너는 알고 있다는 것처럼 말하는군.”

“알고말고. 내가 이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면 이 자리에 서 있지도 않았을 거다.”

한태민이 2사이클을 운용할 수 있는 헌터라는 건 알고 있었다. 맥스비가 쓰러지면서 모든 걸 증명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같은 동료들 사이에서도 차이가 나는군.”

가지고 있는 걸 공유하지 않으니 나오는 폐단.

목적과 목표가 같을지 모르나, 동기까지 순수한 건 아닌 듯싶었다. 아마도 협력 관계보다 경쟁 관계에 더 가까울 터.

그렇게 한태민이 생각을 정리하고 있자니, 한 걸음 앞으로 나온 보리스가 팔을 앞으로 뻗었다.

“우리들의 대업을 위해서라도 너 같은 변수는 사라져야만 한다.”

“그딴 건 내 알 바 아니다.”

“알아야 할걸?”

순간, 손바닥에 항거할 수 없는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레일건의 그것처럼 빠르고 무거운 일격.

허리를 비틀어 공격 범위에서 벗어난 한태민의 머리 위로 헤일로가 떠올랐다.

사이클을 알고 이브를 사용한 보리스도 결국, 익시드를 알아보진 못했다.

그 말은 곧 진실을 알지 못하는 잔챙이에 불과하다는 뜻. 검부잿불을 집어 든 한태민은 보리스를 향해 빠르게 쇄도했다.

마력 단련법을 알고 있는 상대에게 방심은 금물.

처음부터 전력으로 몰아붙일 심산으로 불의 화신을 일으켰다.

순간, 동굴 안에 불길이 치솟았다. 지면이 지글지글 끓어오르며, 후덥지근한 공기가 장내를 달궜다.

“합!”

눈앞을 빠르게 스치고 지나가는 검부잿불을 맨손으로 잡은 보리스가 한태민을 걷어찼다.

똑같은 타이밍에 무릎을 앞으로 내밀어 충격을 완화했지만 발해진 힘까지 어찌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속절없이 밀려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은 한태민이 마력 포탄을 쏘았다.

하나, 그것조차도 보리스는 쉬이 밀어냈다.

처음 있는 일. 스탯의 보정이라는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현상이었다.

보리스의 힘은 이질적이었다. 보이는 건 한 사람이었지만 그 안에 있는 건 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게 네가 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헌터를 구성하는 시스템의 근간은 도대체 무엇일까? 해당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할 만한 주제였다.

보리스가 남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건 바로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것이었다.

스스럼없이 금기에 닿은 그는 헌터를 헌터로 보지 않고, 연구 대상으로 보았다.

어디까지가 헌터이고, 어디까지가 헌터가 아닌 걸까. 보리스가 품은 의문은 메아리가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러시아 정부도 듣게 되었다.

처음에는 사소한 생각이었지만, 많은 이의 손을 타며 보리스의 의문은 점점 크게 부풀어 올랐다.

종국엔 특수 능력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대상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다. 헌터의 기원을 밝히기 위한 연구가.

보리스가 헤집은 뇌만 해도 179개였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고, 어느 것 하나 귀중하지 않은 게 없었다.

헌터의 기원은 아직까지도 오리무중이었으나, 그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은 거대한 힘이 되었다.

“파라노말 코어, 기동.”

보리스의 어깨 위로 주먹만 한 구체가 떠올랐다.

수많은 기계 부속품이 얽히고설킨 예술품.

자아를 지닌 것처럼 주위를 떠도는 아이템은 걸작 중의 걸작이었다.

179개의 뇌를 조율하는 수신 장치이자 가지고 있는 마력의 흐름을 빠르게 계산해 주는 연산장치였다.

▼파라노말 코어

평가 : SS

효과 : 직렬 연결과 병렬 연결을 사용할 수 있다

설명 : 179개의 뇌를 연결한 결집체

‘……미친.’

파라노말 코어의 설명을 읽은 한태민이 침음을 흘렸다. 그가 본 게 맞다면 상대해야 하는 이는 보리스뿐만이 아니었다.

어쩌면 비정상적인 스탯의 일부분도 저기에서 나오는 걸지도 모른다.

“내가 요즘에 얻은 게 있지.”

보리스가 손을 올리자 파라노말 코어가 그 위에서 빙글빙글 회전하기 시작한다. 179개의 뇌를 빌어 연산하는 파라노말 코어의 성능은 절대적이었다.

마력의 흐름을 단번에 꿰뚫고 파훼하는 능력은 가히 일품.

캔슬러 또한 이 과정에서 나온 부산물에 불과했다.

직렬 연결.

고속 연산.

보리스의 선언과 동시에 두 어깨가 무거워졌다. 물을 먹은 솜처럼 뼈마디가 딱딱해지고, 허리에 묘한 이질감이 스며든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전능감이 사라지자 한태민은 탄성을 터뜨렸다. 이게 무슨 현상인지 알고 있었다.

‘3사이클.’

보리스는 분에 넘치는 힘을 손에 넣은 듯했다.

“이게 나와 너의 차이라는 거다. 있는 걸 사용할 줄밖에 모르는 원숭이.”

파라노말 코어는 세기의 발명이었다. 뇌를 연결시켜 활용한다는 점은 비윤리적일지언정, 그 안에서 나오는 효과는 절대적이었다. 지금 이 시대에서는 오파츠나 다름없는 아이템이리라.

하지만─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익시드의 출력을 올리자 머리 위의 헤일로도 그에 따라 맹렬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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