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는 EX급 헌터다-82화 (82/291)

# 82

#082화 제거 (3)

“항상 이런 식이야. 꼬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현장에 도착하면 흔적도 없어.”

“이 사람은 누구죠?”

“……정보원. 아마도 마지막에 들킨 모양이야.”

조직의 이름은 웨이롱. 인신매매를 생업으로 삼은 녀석들이었다. 물론 평범한 인신매매가 아니었다. 그들이 노리는 건 어빌리티만 있는 일반인이었다.

평범하게 생활하는 각성자들을 소리 소문도 없이 납치해 중국으로 넘기는 주범. 웨이롱의 활동 영역은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었다. 일본, 중동, 유럽. 그들은 국가와 국경을 가리지 않았다.

도시 괴담 같은 이야기였기에 정보기관이 아니면 다루지도 않았다. 그것도 인체 실험을 하는 것 같다, 라는 막연한 추론이 있을 뿐. 웨이롱의 실체를 아는 이는 없었다.

“꼭 무틀락 같네요.”

“음지에서 움직인다는 점만 보면 더 질 나쁜 녀석들이지.”

웨이롱을 다스리는 보스의 이름은 이영경. 추정 등급은 S. 인두겁을 쓴 야수였다. 실제로 그와 관련된 일화만 모아도 한 권은 우습게 나왔다.

“불행 중 다행이게도 이건 이영경의 솜씨야. 사선으로 그을 때 끄트머리를 올리는 버릇과 한 곳을 여러 번 찌르는 솜씨를 보면 알 수 있어. 분명히 이 자리에 있었던 건 그 녀석이야.”

“자세히 알고 있는 것 같네요.”

“예전에도 놓쳤던 녀석이니까.”

웨이롱을 끝까지 추적한 특수부대는 한국의 헌터 제압 부대가 유일했다. 조그마한 땅덩어리에 고도화된 통신망. 피하고 싶어도 피할 공간이 없으니 두 세력이 부딪치는 건 필연이었다.

“그래서 따라온 건가요?”

갑자기 동행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땐 무슨 일이 있나 싶었는데 들어보니 별거 아니었다. 케케묵은 인연이었다.

“그 싸움에서 아끼던 후임이 죽었어. 적어도 내 손으로 마무리를 짓고 싶은 건 당연하잖아.”

“중국 정부가 어지간히도 비협조적이었나 보네요.”

“그래, 한국 정부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뒷이야기가 더 있는 듯했으나 듣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이영경은 멀고 지고 있을 테니까. 주위를 빙 둘러본 이지아가 입술을 깨물었다.

“어디로 간 건지 알 수 있겠어?”

사건 현장을 둘러본 한태민은 금방이라도 흩어질 듯한 마력의 흐름을 찾을 수 있었다. 정보원이 죽기 전에 발악을 한 건지 제법 선명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30분 정도 지난 것 같지만 괜찮아요. 어차피 그리 멀리 가지 못했을 테니까요.”

밖으로 나온 한태민이 벨트에 달린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몸이 저절로 떠올랐다. 중력 역전을 통한 자유 활공. 공중에 뜬 한태민은 허공을 밟으며 빠르게 전진했다. 잡음 하나 나지 않는 신속한 기동. 모두 새로운 아이템 덕분이었다.

▼맥스비의 날개

평가 : A

효과 : 자유 활공이 가능해진다

설명 : 중력 역전을 활용한 일급품

술극의 주인이자 한국에서 제일가는 대장장이인 박칠만이 맥스비의 사체를 가지고 연구한 끝에 얻은 결과물이었다.

바깥에서 이만큼 좋은 이동 수단을 구하는 건 어려울 터.

한태민이 거침없이 허공을 내달리자 이지아도 그 뒤를 따라 정글처럼 어지러운 도심을 누볐다. 둘 모두 추격에 능한 이들이었기에 두 발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한 해안선에 도착한 둘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는 구명보트 하나를 볼 수 있었다.

“놈이에요.”

“그래.”

구명보트 위에 올라탄 이영경의 행색은 단출했다. 방금 전까지 살인을 저지른 이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서둘러야 해. 영해를 넘어가면 우리 관할이 아니게 돼.”

배타적 경제 수역까지 넘어가면 빼도 박도 못한다. 그 너머는 중국의 영해였다.

“그러면 빨리 처리해야겠네요.”

“해군이나 해경에 연락을…….”

“그럴 시간이 없다는 건 누나가 더 잘 알잖아요?”

동시에 한태민이 이지아를 번쩍 들어 올렸다.

“뭐, 뭐 하는 거야?!”

“신속한 사건 처리를 위한 자그마한 희생이죠. 불편하겠지만 조금만 참아요.”

이지아를 옆구리 사이에 끼운 한태민은 그대로 바다를 횡단했다. 낮이라면 그 기이한 광경이 고스란히 보였겠지만, 지금은 밤이었다. 그림자는커녕, 소리도 구분할 수 없는 상황.

구명보트와의 거리가 줄어들자 이지아가 입을 열었다.

“더 빠르게 갈 순 없어?”

“저는 잔당까지 소탕하고 싶은데요? 어차피 저런 걸로는 중국까지 가지 못할 테니까요. 중간에서 합류할 게 뻔해요.”

그제야 이지아는 한태민이 무엇을 노리는지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구명보트는 다른 배 앞에서 멈췄다. 투박한 어선이었다. 잠시 조류에 밀려 수역을 넘었다고 변명하고 싶었던 걸까. 겉만 보면 영락없이 영세한 어부가 고심 끝에 구매한 배처럼 보였다.

어선에 바싹 붙은 한태민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저는 밖을 맡을 테니, 누나는 안을 맡으세요.”

“알았어.”

“그러면 진입할게요.”

이지아를 어선 위로 던지며 빠르게 뛰어오른다. 검부잿불은 꺼내지 않았다. SSS급 헌터 승급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 면책 특권이 있다고 해도 이런 일로 거론되는 건 피하고 싶었다.

헌터 한태민이 아니라 정체불명의 괴한이 되어야 했다.

순간, 배가 크게 요동친다. 근원지는 뻔했다. 이지아가 들어간 곳에서 거대한 충격파가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녀 또한 S급 헌터. 더욱이 국내에서도 보기 드문 실력자였다. 굳이 도와주지 않아도 알아서 해결할 터.

애당초 한태민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어선의 반대편. 모두가 벌 떼처럼 이지아를 노렸으나 한 사람은 다르게 행동했다.

소란스러운 상황을 이용하겠다는 의도가 뻔했다. 꼬리를 놓칠세라 빠르게 쇄도한 한태민은 구명보트에 올라탄 이를 볼 수 있었다. 물어볼 것도 없었다. 이영경이었다. 이지아가 그를 알아봤듯이, 그 또한 이지아를 알아봤던 게 틀림없었다.

“진짜 눈치 하나는 기가 막힌다니까.”

“……너는 누구지?”

화려하게 터지는 어선을 뒤로한 채 이영경이 입을 열었다.

“알 거 없잖아.”

쏜살같이 쇄도하며 목덜미를 노린다. 낫처럼 다섯 손가락을 구부리자 날카로운 기운이 손 위에 가라앉았다.

처음부터 한태민이 원하는 건 그의 목숨이었다. 양보와 타협의 여지는 조금도 없었다. 어차피 마스크를 썼기에 정체가 들통날 일도 없었다.

스윽─. 손가락이 경동맥을 긁고 지나가기 직전, 마력이 흩어진다. 생소한 느낌에 한태민이 반보 물러나자, 이영경은 뱀처럼 매끄럽게 거리를 벌렸다.

“후우. 무섭군, 무서워. 자그마한 땅덩어리에서 무슨 인재가 이렇게 나오는 건지.”

이영경이 너스레를 떨든 말든 한태민은 조용히 방금 전의 공방을 복기했다.

‘……저건.’

다른 헌터들처럼 본능에 의존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더구나 마력의 흐름 또한 체계적이었다.

마력 단련법을 익힌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은 게 틀림없었다. 한태민도 저렇게 유소라를 가르쳤던 것이다.

‘마력 단련법을 익힌 자가 웨이롱의 배후에 있다.’

탈모임의 한 명일 수도 있고, 전생의 인연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흐름을 보면 탈모임일 가능성이 높았다.

‘공산당과도 이어졌다고 봐야 하나.’

중국에서도 지위가 높은 자일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다면 중국 정부가 웨이롱을 싸고돌 리 없었다.

“웨이롱이 하는 수작들, 전부 중국 정부가 공인한 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우리 같은 백정들이 그네들 말을 들을 필요가 있던가?”

“뭐, 그게 정답이겠지.”

깊이 파고들 생각도 없었다. 눈에 보이는 족족 뽑다 보면 실체가 나올 테니까. 이쪽이 먼저 달아오를 필요가 없었다.

타닥. 경쾌하게 스텝을 밟으며 전진한 한태민은 볼 것도 없다는 듯 손을 휘둘렀다. 순간, 다시 한 번 기분 나쁜 파동이 흘러나오며 마력을 흐트러뜨린다.

한태민이 거칠게 손을 젓자 실밥 터지는 소리와 함께 정체불명의 어빌리티가 무위로 돌아갔다.

이영경이 역공을 취했지만 허사였다. 검술 다음으로 자신 있는 게 바로 체술이었다. 상대방이 대비할 틈도 없이 간격을 줄인 한태민이 오금을 짓밟으며 팔에 힘을 주었다.

순간, 이영경의 몸이 허공에 떠오르는가 싶더니 예고도 없이 바닥에 내리꽂혔다.

한태민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주먹을 꽂아 넣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었다. 그 뒤에 이어지는 건 끝없는 난타. 강철같이 묵직한 두 주먹은 갈비뼈가 부서지고, 배에서 걸쭉한 액체가 튀어나온 후에야 멈췄다.

“너, 너…… 이, 자…….”

피가 가래처럼 끓어오르는 건지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한다.

한태민은 그런 이영경을 한심하다는 듯이 내려다보았다. 이번 싸움에서 사용한 어빌리티는 한 개도 없었다. 그저 마력으로 육신을 강화한 것뿐이었다.

“그래, 그래. 이게 끝이 아니겠지. 누군가 네 복수를 하기 위해 내게 올지도 모르고. 하지만 이거 어쩌지. 그 녀석도 너처럼 될 텐데?”

“개…….”

“좋은 말, 고운 말.”

우지끈. 사정없이 목을 짓밟아 부러뜨리자 알람이 울려 퍼졌다.

[레벨업하였습니다.]

[레벨업하였습니다.]

[레벨업하였습니다.]

[새로운 어빌리티가 추가되었습니다.]

괴물을 무더기로 잡아도 얻을 수 없는 대규모 경험치가 몸 안으로 들어온다. 마력에 남은 포인트를 전부 투자한 한태민이 상태창을 열었다.

▼ 상태창

레벨 : 73

근력 : 20

체력 : 21

민첩 : 22

마력 : 429

내구 : 22

내성 : 16

영성 : 466

보너스 포인트 : 0

상태 : 양호

고유 명칭 : 징벌자

상태창을 쓱 훑어본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고유 명칭이 단두대에서 징벌자로 변했다는 것. 일련의 행동이 영향을 미친 게 틀림없었다. 성장은 순조로웠다. 이대로만 가면 예전의 기량을 되찾는 것도 꿈은 아닐 터.

문제는─

▶부동심(B)

▶부귀의 눈(B)

▶혈기 왕성(C)

어빌리티였다.

차례대로 군인, 대부업자, 사이비 교주의 것이었다. 정신적인 충격을 덜어주는 부동심, 돈의 흐름을 보는 부귀의 눈. 그리고 정력과 활력이 증가하는 혈기 왕성.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게 없었다.

한태민은 한숨을 내쉬며 이영경이 가진 어빌리티를 훑어보았다.

‘……위험 감지.’

이영경의 비정상적인 생존력도 여기에서 나온 걸 테지. 두말할 것도 없이 유용한 어빌리티였지만 한태민의 눈길을 끈 건 따로 있었다.

[마력 포식(A) NEW]

방금 전에 마력이 흩어진 건 모두 이 어빌리티에서 파생된 효과일 터. 일개 범죄자가 가지고 있기엔 과분한 능력이었다.

“이걸 여기에서 얻을 줄은 몰랐는걸.”

어선 위로 올라가자 이지아가 손을 털고 있었다. 잔챙이는 모두 체포한 건지 방금 전까지 소란스러웠던 광경은 보이지도 않았다.

“수고하셨어요, 누나.”

“고생은 네가 다 했잖아.”

어깨를 으쓱인 이지아가 고갯짓했다.

“이 녀석들은 필요 없어?”

“남은 녀석들은 누나가 챙겨가세요.”

어중이떠중이의 어빌리티를 가져 봐야 상태창만 어지러워질 뿐이었다. 이지아가 데리고 가는 편이 여러모로 이득이었다. 실적을 올려야 활동 반경이 더 넓어질 테니까.

끈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가지고 있는 게 한태민의 방식이었다.

“그러면 슬슬 돌아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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