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
#113화 경매 (2)
“그걸 찾는다고?”
한태민이 무슨 아이템을 찾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검을 들고 다니는 헌터라면 모두가 한 번쯤 보고 싶어 하는 마테리얼 웨폰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악명과 흉명, 둘 모두 견줄 데가 없는 검이었다.
수리야(Sūrya)
인도 신화의 태양신에서 이름을 따온 수리야는 내력이 많은 마테리얼 웨폰이었다.
아지즈가 시리아를 점령할 당시, 정부군과 반란군을 한꺼번에 처리하면서 제련했다는 것만 봐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신의 편린을 불러들이기 위해 행해진 수십만 단위의 인신 공양.
제정신이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아지즈는 당연하다는 듯이 수많은 이를 제물로 삼았다.
내막은 알 수 없었다. 했다는 정황 증거만 있을 뿐, 자세한 정보는 밝혀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들려오는 소문 또한 중구난방이었다.
수리야가 완성되면서 시리아의 사막화가 급격하게 진행되었다는 일설이 있는가 하면, 태양이 하나 더 떠오른 줄 알았다는 목격자가 나오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그렇게 아지즈가 수리야를 사막에 묻어 두었다는 설이 팽배해질 즈음, 사건이 일어났다.
도굴꾼들이 수리야를 발견했다는 소식과 함께 전 세계에 균열 홍수가 터진 것이다.
한국에서 일어난 SS급 균열 홍수, 불지옥도 수리야의 영향을 받아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태반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균열 홍수는 모두 화염과 용암을 동반한 재앙이었다.
“소문의 반만 사실이더라도 엄청날 거야. 다른 무기들과는 궤를 달리한다는 거니까.”
인신 공양을 통해 만들어진 무기 때문인지 피를 갈구한다는 둥, 재앙이 불러온다는 둥 뜬구름 잡는 잡설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시원하게 알려진 사실은 하나도 없었다.
“……물론, 그런 마테리얼 웨폰이 있다면 말이지.”
“누나는 믿지 않는 건가요?”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만 무성하니까. 실제로 아지즈가 자신의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퍼트린 소문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인걸.”
“그래도 한 번 알아봐 주세요. 구체적인 소문이 퍼질 정도인걸요. 찾다 보면 비슷한 무기라도 잡히겠죠.”
“요행을 바라는 건 너답지 않은데. 차라리 거래하는 곳에서 따로 주문하지그래? 저번에 들고 다니던 검도 괜찮던데.”
“그곳도 나쁘진 않죠. 하지만 제가 바라는 수준까지 오려면 조금 더 기다려야 해요. 그리고 이번에 잡을 검은 조금 더 특별했으면 좋겠어요.”
박칠만은 여러모로 미래가 기대되는 인재였다.
길드에 납품하는 아이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모자랐다.
희미하게 웃은 이지아가 알겠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오버로드 때문이지?”
“역시 눈치가 빠르네요. 네, 맞아요. 그 녀석들을 상대하려면 더할 나위 없이 강한 검이 필요해요.”
쓸 만하다고 해서 아무 검이나 잡을 수 없었다.
한태민이 수리야에 입맛을 다시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수많은 이의 목숨을 먹고 태어난 마검.
내력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시 상황이 아니라면 만들 수 없는 검이었다.
어떻게 보면 퀸 슬레이어도 비슷한 원리로 만들어졌기에 더더욱 관심이 가는 걸지도 몰랐다.
“그런 거라면 미국에서 사는 건 어때? 공인된 경매장만 해도 수십 개는 되는데. 규모는 뭐…… 너도 알잖아? 헌터들의 총본산이라고 불릴 정도니까. 말만 하면 간이고 쓸개고 줄 사람들도 있을 것 같은데. 안 그래?”
아마도 카리나와 케인을 염두에 둔 제안이리라.
이지아의 말대로 미국에 가면 여러 가지 혜택을 볼 수 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미국도 나쁘지 않지만 그럴 거면 중국으로 가는 게 더 좋아요. 돈만 있으면 뭐든지 살 수 있는 곳이니까요.”
웨이롱이 인신매매까지 주선한 곳이 아니던가.
그곳에서 구할 수 없다면 그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중국은 미국과 달리 제한선이 없었다. 그야말로 인간 막장들이 우글우글한 마경.
진흙 속에 진주가 숨겨져 있듯, 차라리 그런 곳이기에 보물이 파묻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뭐, 그렇게 의지가 확고하니 나가서 알아볼게. 네 생각대로 잘 풀릴지 모르겠지만……. 혹여나 실망하지 마. 소문으로 끝나는 경우도 많으니까.”
“부디 월척이 낚였으면 좋겠네요.”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은 이지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미리 말했어.”
점점 멀어지는 그녀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는다. 이지아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수리야가 있다는 건 기정사실이었다.
카리나가 아지즈를 혐오하는 것도 모두 수리야 때문이었으니까.
“시간 문제겠지.”
아니나 다를까, 연락이 온 건 그로부터 보름 뒤였다.
***
바벨탑에서 수많은 헌터를 잃은 베인 길드는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아차, 하는 사이에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철옹성이 무너졌으니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올라가긴 어려워도 내려오는 것은 기가 막힐 정도로 쉬운 게 바로 헌터계였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1위는 이제 어디에도 없었다.
아슬아슬하게 외줄 타기를 하는 어릿광대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유소라를 앞에 둔 김정태가 나지막이 읊조린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깨달을 수밖에 없더구나. 베인 길드는 네 명성에 기대어 몸집만 불린 길드라는 걸…….”
“아저씨가 아니었다면 저는 이 자리에 있지도 못했는걸요. 그러니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쓰게 웃은 유소라가 응수했지만 한 번 경직된 분위기는 풀릴 줄 몰랐다.
그녀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베인 길드는 이제 지는 해였다.
최강이라는 명예가 부메랑이 되어 그대로 베인 길드의 목을 친 것이다.
‘결국 내수용…….’
세계로 나가 맥없이 무너진 베인 길드를 보며 모두 그렇게 비난했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지금 이 모습이 그 증거였다.
탑건 길드는 물론이고, 창설된 지 반년도 되지 않은 오버로드 길드에게도 밀렸는데 무얼 더 말하겠는가.
고개를 숙인 유소라가 힐끗 김정태를 바라보았다.
벌써 불혹을 넘어선 나이.
살며시 삐져나온 새치가 그가 지나온 길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무언가를 시도하기엔 너무 늦었다.
“……세대가 교체되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구나. 그것도 빠르게.”
균열 홍수가 터지는 건 예사였다.
어느 순간, 괴수가 나타나더니, 작금에 이르러선 오버로드라는 새로운 개체까지 발견되었다.
요 몇 달 사이에 벌어진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른 격류였다.
“소라, 너를 한태민 헌터에게 맡긴 게 헛된 일이 아니라 다행이구나. 그라면 너를 아껴줄 테니까. 내가 없어도 잘 헤쳐나갈 수 있을 테지.”
마치 마지막을 고하는 듯한 발언에 유소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저씨.”
“그런 표정 짓지 말거라. 그냥 그렇다는 말이란다. 선택지가 많다는 건 좋은 일이지 않더냐.”
호흡을 가다듬은 김정태가 말을 이었다.
“마음이 있다면 오버로드 길드로 넘어가도 괜찮단다. 너까지 여기에서 뼈를 묻을 필요는 없어. 어디에 있더라도 제 몫은 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소라 너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싶구나.”
“저는 베인 길드에 남을 거예요. 남아서…….”
“……너를 시기하는 헌터들과 입씨름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단다. 마음은 고맙지만 그런 걸로 네 발목을 붙잡고 싶진 않아.”
“…….”
대화는 거기에서 끝이었다. 심란한 심정으로 집무실을 나온 유소라가 향한 곳은 수련장이었다. 머리가 어지러울 땐 땀을 빼는 게 제격이었다.
하지만 한 번 가라앉은 기분은 좀처럼 떠오를 줄 몰랐다.
길드원들이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나자 유소라의 한숨은 더욱더 깊어졌다.
장내를 감도는 기류는 진득했다.
시기, 질투, 조소, 통쾌.
쌓이고 쌓였던 음습한 감정이 한 번에 터져 나온 것이리라.
사람들은 악인의 처벌만큼이나 위인의 추락을 기대했다. 그런 의미에서 유소라의 몰락은 모두의 본능을 자극하는 주제였다.
유소라는 고개를 돌렸다.
이제 한국에는 SSS급 헌터가 둘이나 있었다.
1등도 아니요, 그렇다고 2등도 아닌 3등이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눈앞에 둔 유소라가 낄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애석하거나, 안타까운 건 아니었다.
이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SSS급 헌터가 되지 못하고 도태되면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역설적이었지만, 마음은 홀가분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답답했다.
1등이라는 자리가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질 걸 알면서도 자신은 어째서 그렇게 아등바등 지켰던 것일까?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도 그럴듯한 답변은 들려오지 않았다.
‘아니, 네가 정한 게 아니니까 무거운 거야. 1위라는 이름표 또한 족쇄에 불과하니까.’
불현듯 한태민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어쩌면 그의 말대로 언제 풀릴지 모르는 족쇄를 스스로 달았기에 지금까지 무거웠던 걸지도 몰랐다.
그때, 한 길드원이 다가왔다.
“부마스터,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밖으로 나가니, 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한태민 헌터.”
“어지간히 반가웠나 보군. 그런 얼굴은 또 처음인데.”
“여기는 무슨 일입니까?”
한태민이 길드 하우스에 온 건 처음이었다. 궁금증이 솟아오르는 건 당연지사.
유소라를 쳐다본 한태민이 가까이 오라는 듯 손짓했다.
“주고 싶은 게 있어서 들린 것뿐이다.”
순간, 공간 주머니에서 마테리얼 웨폰이 튀어나왔다.
창두에 걸린 뿔과 창대를 이루는 골격. 그리고 번개를 형상화한 것처럼 예리하게 솟은 창준까지. 모든 게 아름다웠다.
“이건…….”
유소라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짜릿할 정도로 압도적인 위용.
헤비 랜스를 보자마자 알 수 있었다. 여기에 사용된 소재가 무엇인지.
오버로드 라이트닝.
▼아스트라페
평가 : SSS
효과 :착용 시 근력 +250
착용 시 마력 +250
착용 시 내성 +150
초강화 항시 적용
속성 심화 항시 적용
마력 극벽 항시 적용
천둥 번개 항시 적용
착용자의 경험을 먹고 성장한다
설명 : 천재지변의 대표적인 상징, 번개를 부르는 헤비 랜스. 있을 수 없는 소재와 극에 다다른 장인의 손길이 어우러져 신벌을 형상화한 무기가 되었다
평가 등급 SSS. 효과에 붙은 보너스 포인트만 해도 수백은 되었다. 헤비 랜스를 살펴본 이라면 모두가 기겁하리라. 이건 마테리얼 웨폰의 수준을 뛰어넘었다.
“과분한 선물입니다. 애당초 이런 걸 왜 저에게…….”
“네가 적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지고 온 거다.”
유소라의 눈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아스트라페는 돈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보물이었다. 받기 전에 먼저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다.
“길드원도 있을 텐데요.”
“신경 쓰지 마라. 사용하고 남은 거다. 그리고 번개와 너만큼 더 잘 어울리는 헌터도 없을 텐데?”
거짓은 없었다. 한태민에겐 유소라는 지켜보고 싶은 인재였다.
그녀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기대하는 마음도 있었다.
순간, 유소라가 웃음을 터뜨렸다. 길드원은 가망성이 없다고 단언했건만, 길드원도 아닌 사람은 가망성이 넘친다고 하는데 웃음이 나오지 않을 리 없었다.
아스트라페를 집어 들며 말을 잇는다.
“제게 잘해주는 이유가 뭐죠?”
“글쎄, 생각한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