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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EX급 헌터다-115화 (115/291)

# 115

#115화 홍콩 (1)

위력은 진짜였다.

눈앞에 그 증거가 남았다.

그때, 진백지가 입을 열었다.

“여기에서 경매가 열린다고요?”

“네, 일 년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열리는 경매라고 하더군요. 백지, 당신도 들어본 적이 있을 텐데요. 그렇지 않습니까?”

매년 아시아 최대 규모의 경매가 이곳, 홍콩에서 개최되었다. 그리고 이지아에게 들은 이야기가 맞다면 수리야도 거기에 출품되는 상품 중 하나로 등장할 예정이었다.

한태민의 말을 들은 진백지가 들은 적이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헌터들을 위한 경매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관심이 없어서 여기에서 열린다는 건 몰랐지만요.”

붉은 활과 흰 화살.

두 어빌리티가 있기에 진백지는 아이템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았다. 마력만 있다면 언제든지 활시위를 당길 수 있었던 것이다.

진백지와 가까이 붙은 한태민이 고갯짓했다.

“그러면 어서 나가죠. 친구분이 기다리고 있다면서요.”

입구에 다다르자 분위기가 일변했다. 오가는 사람들 모두 한곳을 힐끗힐끗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한 여성이 차에 기댄 채 비스듬한 자세로 서 있는 게 보였다.

한 갈래로 묶은 머리카락과 짙은 화장.

활동적인 복장을 한 탓인지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지만 사람들이 반응하는 건 다른 요소 때문이었다.

마력.

그녀는 마력을 가다듬을 생각도 하지 않고, 자신의 기세를 드러내고 있었다.

언뜻 보아도 헌터인 듯싶었다.

한태민이 옆으로 시선을 옮기기가 무섭게 진백지가 앞으로 달려갔다.

“려연!”

“백지야.”

곧바로 여성을 끌어안는다. 진백지의 말대로 제법 친근한 사이인 듯 서슴없이 밀착하는 게 눈에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니, 한참을 이야기하던 진백지가 밝게 웃으며 손을 잡았다.

“려연. 이쪽이 내 마스터야.”

“만나서 반가워요. 광려연이라고 해요. 보시다시피 백지의 친구죠.”

“반갑습니다. 오버로드 길드의 마스터, 한태민이라고 합니다.”

“말 낮추세요. 백지에게 마스터면 저에게도 그만한 분이니까요.”

“처음 만났는데 그럴 순 없죠.”

“그러면 편하게 불러주세요. 려연이든, 누나든 괜찮으니까요.”

의례적인 악수는 잠시뿐, 광려연은 야생 고양이처럼 이리저리 돌며 한태민을 위아래로 쳐다보았다. 품평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에 질세라 한태민도 광려연을 살펴보았다.

추정 등급은 SS. 홍콩을 대표하는 헌터가 누구인지는 모르나, 광려연을 빼놓고 이야기하진 않을 것 같았다.

유유상종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그녀의 실력은 예사롭지 않았다.

진백지가 고른 사람다웠다.

“어째서 둘만 불타오르는 거죠?”

“아니, 백지 네가 고른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서 말이야. 그래도 의외네. EX급 헌터가 될 수도 있는 사람이라길래 완전 괴물처럼 생겼을 줄 알았는데. 너무 평범해서 맥이 빠질 정도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하군요.”

“에이, 무슨 말을 또 그렇게 해요. 그냥 감상이 그렇다는 거지, 감상이.”

배시시.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웃는 모습이 자연스러웠다.

조용하고 정숙한 진백지와는 다르게 왈가닥인 게 티가 났다.

속마음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한태민이 차게 식은 눈으로 보고 있자니, 광려연이 허겁지겁 움직이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아, 이럴 게 아니라 어서 타세요.”

그 익살스러운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

“그나저나 엄청 놀랐어. 백지, 네가 길드에 들어갈 줄은 몰랐거든. 혼자서 다니는 걸 좋아했잖아.”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거든.”

“아, 달롱 말이지. 하긴 그런 일을 겪었는데 계속 거기에 남는 것도 우습지.”

중국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사건이었다.

진백지와 장화린 사이에 얽힌 비화를 아는 이는 적었지만, 달롱이 저지른 만행은 모두 알고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난데없이 한국에 갈 줄이야.”

“실망했어?”

“아니, 언젠가 나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실망까지야. 그냥 놀랐어. 연고도 없는 곳이잖아? 갑자기 고를만한 선택지는 아니라고 생각한 거지.”

“광충 길드에 들어가지 못한 건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알잖아? 내가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

“알아. 상황만 복잡해지겠지.”

두 여자의 수다는 계속되었다. 완전히 그녀들만의 홈그라운드였다.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마냥 완전히 소외된 한태민은 차창 밖으로 바라보았다.

홍콩의 거리는 혼잡했다. 이국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상과 아주 동떨어진 광경은 아니었다.

차를 타고 가는 동안, 광려연에 대한 정보를 훑어본다.

‘광충 길드의 마스터.’

헌터넷에 슬쩍 검색해 보니 홍콩에서도 유명한 길드라고.

12년 전에 일어난 SS급 균열 홍수를 처리한 건 물론이고, 길드원도 하나같이 정예화가 잘 되었다고 칭찬이 자자한 곳이었다.

부동산 경쟁이 치열하기로 소문난 홍콩의 시내에 길드 하우스가 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광충 길드는 홍콩을 뒷받침하는 길드 중 하나였다.

“자, 내리세요.”

커다란 담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오버로드 길드의 하우스도 작지 않다고 생각했건만, 대궐만 한 저택을 보니 그 생각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질릴 정도의 규모.

“홍콩을 떠날 때까지는 내 집이다, 하고 지내세요.”

광려연을 따라 들어가니, 헌터들이 수련하는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감출 게 없다는 듯 당당하게 울려 퍼지는 기합 소리에 절로 어깨가 떨렸다.

무술이 아직까지도 체계적으로 이어지는 나라답게 절도 있는 품새가 인상적이었다.

그때, 저 멀리에서 한 남성이 걸어왔다.

이제 막 청년이 된 듯, 앳된 티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 채로.

그의 소매를 잡아당긴 광려연이 고갯짓했다.

“제 동생인 광훈이에요. 저희 길드가 자랑하는 루키이기도 하죠.”

“안녕하세요. 광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오랜만이에요, 백지 누나.”

“못 보던 사이에 많이 컸네.”

“아, 네. 누나도 엄청 예뻐지셨네요.”

힐끗 진백지를 쳐다보는 눈길이 심상치 않았다.

재미있는 걸 보았다는 듯, 입꼬리를 올린 한태민이 광훈의 손을 잡았다.

진백지는 객관적으로 봐도 미인이었다.

백설처럼 고운 피부, 가지런한 치아, 앵두 같은 입술. 그리고 다소곳하면서도 부드러운 얼굴.

여린 마음을 강타하기엔 충분했으리라.

“보기만 하는 게 좋을 거다.”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잘 부탁드린다는 소리였습니다.”

인사는 짧았다.

광훈은 무언가 더 할 말이 있는 듯했으나 누나인 광려연의 재촉에 저 멀리 사라졌다.

“그러면 쉬고 있어요. 뭐, 단둘이 나가서 데이트하고 싶으면 그래도 되고요.”

짓궂은 말과 함께 광려연이 사라졌다.

배정된 방에 들어와 짐을 풀고 나니,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내밀어 보았다.

“손님이 오셨습니다. 지금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시는데 어떻게 할까요?”

소식을 들고 온 건 한 고용인이었다.

혹시 알까 싶어 고개를 돌리니 진백지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녀도 모르는 듯했다.

“적어도 좋은 일은 아닐 것 같은데요, 마스터.”

“저도 똑같은 생각입니다. 여기까지 반가운 손님이 올 리 없으니까요.”

찾아올 만한 손님이 리스트에 없는 건 아니었다.

진백지와 중국 정부 사이에 엉킨 실타래가 아직 풀리지 않았으니까. 그들이라면 얼마든지 불쑥 얼굴을 내밀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응접실에 가니 세상 풍파에 찌들어 고개를 숙인 중년 남성이 앉아 있었다.

오래된 정장과 밑창이 닳아 없어진 구두.

그가 어떠한 생활을 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더구나 미묘하게 불룩한 앞섶이 신경을 건드렸다.

저 안에 든 게 무엇인지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지아도 종종 비슷한 차림으로 다녔으니까.

“안녕하십니까. 이렇게 만나 뵙게 돼서 정말 영광입니다. 저는 국가 안전부 소속, 장허량이라고 합니다. 현재 진백지 헌터와 관련된 일은 모두 제가 처리하고 있죠.”

최고 책임자가 등장했지만 한태민은 당황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백지에게 볼 일이 있다는 겁니까?”

“네. 한태민 헌터도 잘 아시겠지만, 진백지 헌터는 중국의 보물이자 자랑입니다. 이렇게 갑작스러운 이탈은 저희 정부 측에서도 안타까움을 나타낼 수밖에 없습니다.”

“대충 이해했습니다. 백지의 일은 정부에서도 진중히 다루고 있을 테니까요. 그래도 빠르군요. 저희가 홍콩에 온 지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요.”

“노파심에 말하는 거지만 우연히 장소와 때가 맞은 것뿐입니다. 저도 여기엔 휴가 때문에 온 거라서요.”

그 말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 겁니까?”

“설마 왕현경 헌터에게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겁니까?”

그럴 리가. 나지막이 웃은 한태민이 올라가는 입꼬리를 가렸다.

중국 정부의 의견은 이미 왕현경을 통해서 들은 상태였다. 하지만 만났다고 말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모르는 것처럼 태연하게.

그게 중요했다.

“자세한 건 듣지 못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상황이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렇겠군요. 그러면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아직 진백지 헌터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 말은 백지가 오버로드 길드 소속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겠다는 겁니까?”

“그게 아닙니다. 그저…….”

손사래를 친 장허량이 말을 이었다.

“진백지 헌터가 중국 영내에 머물러 주셨으면 합니다.”

표현의 차이만 있을 뿐, 왕현경이 했던 말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렇기에 한태민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준비해 두었던 말을 입에 담았다.

“그건 안 될 말입니다. 백지는 이제 제 길드원이니까요. 그리고 오버로드 길드의 부마스터이기도 합니다. 그런 인재를 밖으로 돌리라니요.”

“원하는 게 있다면 말씀하십시오. 무엇이든지 수용하겠습니다.”

기가 찬다는 듯, 손을 저은 한태민이 진백지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모든 걸 맡기겠다는 듯, 손을 맞잡았다.

그런 교환을 아는지 모르는지 장허량은 공허한 메아리만 내뱉을 뿐이었다.

“이런 길드 하우스보다는 호텔로 가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생각할 것도 없었다. 그런 장소에 가지 않은 건 이런 녀석들을 피하기 위함이었으니까.

불현듯, 한 물건을 떠올린 한태민이 비릿하게 웃었다.

“……수리야.”

“네?”

“수리야, 그 검을 들고 온다면 생각해 볼 여지는 있겠군요.”

그 말을 들은 장허량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

“수리야, 그것 때문에 온 거라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뜬 광려연이 되묻자 한태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거리 딜러가 검을 찾는 게 이상한 일입니까?”

“그건 아니지만…….”

흐음. 짧게 탄성을 내뱉은 광려연이 팔짱을 끼었다.

“얻을 생각이라면 각오 단단히 해야 할 거예요.”

황씨 가문의 황순융이 제대로 터뜨렸다.

그가 구한 수리야가 진품으로 밝혀지면서 난리가 난 것이다. 등급을 평가할 수 없는 아이템이 나타났으니 무리도 아니었다.

경매가가 조 단위까지 치솟을 거라는 예측까지 나온 상황. 모두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홍콩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경쟁 대상은 더 이상 헌터만이 아니었다.

석유 부자, 주식 부자, 부동산 부자…….

너나 할 것 없이 수리야에 관심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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