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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EX급 헌터다-189화 (189/291)

# 189

#189화 차일드 (3)

세 쌍의 무구를 위시한 파티마가 휘몰아치는 별빛 사이로 여섯 개의 팔을 집어넣었다.

결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강대한 힘에 의해 억지로 상쇄되었다. 하지만 그 주체까지 멀쩡한 건 아니었다. 결을 막은 파티마의 팔뚝 또한 진득한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피가 나는군."

말이 끝나기 전에 떨어지던 핏물이 거슬러 올라갔다. 이내, 녀석의 상처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어째서 남 이야기처럼 말한 건지 알 수 있었다.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는 오버로드다웠다. 이 정도 피해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겠지.

한태민이 수리야를 들어 다시 한 번 별빛을 흩뿌리는 순간, 파티마가 움직였다.

그렇게 벼락이 내리치는 듯한 굉음과 함께 격렬한 투쟁이 시작되었다.

두 사람 모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위해 혈전에 나섰다.

대검 한 쌍을 내려찍은 파티마가 다른 두 손으로는 장창 한 쌍을 내질렀다.

선과 면을 단번에 지배한 공격 패턴이 두 개.

그 앞에 선 한태민은 지면이 무너져라 발을 굴렸다.

불의 화신×불의 화신.

온몸에 불을 휘감으며 거친 공격을 뚫고 나아갔다.

소리의 벽을 뚫고, 번개의 꼬리마저 추격하는 극초음속의 돌격.

순간, 금강저 한 쌍이 불쑥 튀어나오며 그 질주를 막아섰다.

고작 콤마 몇 초가 흐를 정도로 짧은 시간.

기다렸다는 듯, 지면을 박차며 허공에 떠오른 한태민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금강저와 금강저 사이로 몸을 욱여넣었다. 수리야를 앞으로 내민 채.

쑤욱, 검 끝이 깊게 들어가는 감촉에 한태민이 입꼬리를 올렸다.

파티마의 행동을 전부 읽었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불의의 일격이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뿐.

쿵, 하며 등을 강타하는 충격에 몸이 기우뚱 흔들렸다.

상황을 파악할 틈도 없이 두 번째 금강저가 사정없이 머리를 후려갈기고 지나갔다.

초재생, 대치유, 집념의 불꽃, 형태 보존, 재시작.

본능에 가까운 감각으로 어빌리티를 운용한 한태민이 장창을 징검다리 삼아 거리를 벌렸다.

예상외의 반격이었으나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어차피 살을 주지 않으면 뼈를 깎는 건 불가능했다. 이 정도야 감내할 수 있었다.

"벌레에게 물린 기분이 어때? 제법 톡 쏘지 않나?"

"시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군. 완벽하게 준비했다면 잘 알 텐데? 내가 그 정도로 쓰러지지 않는다는 걸."

얄미운 소리지만 틀린 건 아니었다.

"이다음도 있으니 마음껏 음미하라고!"

장창을 밟고 도약한 뒤, 수리야로 대검을 흘렸다.

복부를 노리고 들어온 금강저는 발을 휘둘러 타점을 흐트러뜨렸다.

힘 대 힘으로 싸움을 끌면 질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중요시해야 하는 건 극한의 기교. 외줄을 타고 뛰어다니는 줄꾼처럼 아슬아슬하게 공방을 이어가다 보면 승부를 가르는 기점이 나올 터다.

두 팔로 여섯 개의 팔을 농락한 한태민이 유사 세계에 화마를 일으켰다. 그에 대적하듯 용암처럼 질척거리는 대지에 선 파티마가 전력으로 대검을 휘둘렀다.

쿠궁.

지독한 열량과 굴강한 질량이 대치한다.

두 사람이 맞부딪치며 생긴 충격파에 대지가 박살나며 시커먼 밑바닥이 본모습을 드러냈다. 저 아래에 있는 건 허수 공간.

그 어디에도 속해 있지 않은 전인미답의 공간이었다.

서울은 이제 폐허. 어느새 인천으로 자리를 옮긴 두 사람은 빛살이 되어 서로를 견제했다.

쾅, 쾅, 쾅, 쾅.

천지가 개벽하는 굉음도 둘의 움직임을 쫓는 데 급급했다.

7사이클의 경지를 숨김없이 드러낸 파티마는 걸어 다니는 재앙 덩어리, 그 자체였다.

한태민도 옛 기억을 떠올리며 막는 게 고작이었다.

수리야가 별빛을 토해내면, 장창이 폭풍을 뿜어냈다. 한태민이 발을 휘두르면, 파티마가 팔을 내리쳤다.

조금씩 쌓이는 피로와 조금씩 누적되는 피해. 그 사이를 집념 하나로 뚫고 나간다.

[ 오의 - 분광연참 ]

[ 오의 - 태산횡단 ]

[ 오의 - 일도양단 ]

득달같이 달라붙어 기어코 대검을 부러뜨린 한태민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순간, 파티마의 눈빛이 돌변했다.

"하, 이거 내가 잘못 봤군. 벌레가 아니었어."

방금 전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반응.

다른 이라면 당황했겠지만 한태민은 도리어 자세를 바로잡았다.

이제 슬슬 두 번째 페이즈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러진 대검을 버린 파티마가 스프린터처럼 허리를 숙였다. 마치 금방에라도 돌진할 듯한 자세였다.

"그래, 들짐승 정도는 되는군."

뒤이어 나머지 무구마저 버리며 기세를 끌어올린다. 진심으로 상대하겠다는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 이 정도면 잘했다."

여섯 개의 팔을 내려찍으며 대지를 집어 든다.

대륙분리단절괴력마인.

익스트림.

순간, 온 대지가 들썩인다. 지진은 전조일 뿐이었다. 보다 더 큰 재앙을 불러오기 위한.

우드득. 고막을 먹먹하게 울리는 진동과 함께 눈앞에 거대한 벽이 일어섰다. 그것은 방금 전까지 이 일대를 지탱하던 대지, 였던 것.

몇 번이나 보았던 광경임에도 한태민은 다시 한 번 탄성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파티마의 본래 힘. 궁극이라는 능력을 부여받은 차일드의 진심이었다.

"받아라!"

밥상을 뒤엎는 것처럼 경박한 움직임도 이만한 크기가 되니 도저히 웃을 수 없었다. 대륙을 던지는 데 사용하니 그 누가 웃을 수 있겠는가.

대군이라도 전멸을 면치 못할 터.

다행히 이쪽은 한 명이었다. 비좁은 공간만 만들어내면 어떻게든 활로를 개척할 수 있었다.

[ 극진 오의 - 일점돌파 ]

검 끝을 세워 내달렸다.

날아오는 대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속도를 올린다. 한순간에 창기병이 된 한태민은 지면에 깊은 족적을 남기며 대륙의 한 점을 깨부쉈다.

쿠궁, 내리꽂힌 대륙이 다른 대륙과 부딪치며 드높은 먼지구름을 일으켰다.

화력은 낮지만 위력은 발군이었다. 미리 대비하지 않으면 기사들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지극히 물리적이고, 원초적인 타격이었다. 진백지가 쏘아 올리는 흰 화살처럼 마력 무효화로 해소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파티마는 거기에서 끝낼 생각이 없는 건지 연이어 대륙을 내던졌다.

한 번, 한 번이 무거웠다.

온갖 기교를 사용해 맞받아치고 있음에도 천년거석에 맨몸을 들이받는 것 같았다.

파티마는 예나 지금이나 거대한 벽이었다.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그렇기에 더더욱 갈망하게 되는.

하지만 한태민은 알고 있었다.

낙숫물이 되어 한 점을 두드린다면 천년거석 같은 파티마도 언젠가 길을 열어줄 수밖에 없다는 걸.

낙관론적인 상상도 아니고, 낙천적인 판단도 아니었다.

이미 증명한 사례였다.

[ 극진 오의 - 거검 낙하 ]

하늘에서 떨어진 거검들이 내쳐진 대륙을 요격했다. 쿠궁, 부서진 파편들이 비산하며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렸다.

한태민은 떨어지는 바윗덩어리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며 거침없이 내달렸다.

검 끝엔 이미 별빛이 새겨져 있었다.

저 끝에 보이는 건 대륙을 던지기 위해 온몸을 수그린 파티마.

눈 깜빡할 사이에 거리를 줄인 한태민이 수리야를 힘껏 휘둘렀다.

"얕은수는 안 통한다고 했을 텐데?"

어느새, 자세를 바로잡은 파티마가 수리야를 거칠 게 쳐내며 일갈했다.

"바라지도 않았다."

예의와 겉옷을 벗어 던져 야성을 드러낸 한태민과 파티마가 정중앙에서 격돌했다.

파티마가 동산만 한 대륙을 공깃돌 놀리듯 던지자, 한태민의 뒤를 따르던 거검들이 날아와 차례차례 요격했다.

흉맹을 떨치는 두 사람에게 이성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본능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며 격렬하게 서로를 두드릴 뿐이었다.

밀반죽을 치대는 것처럼 수리야를 후려갈긴 파티마는 팔뚝에 깊은 상흔이 새겨진다는 것도 잊은 채, 전력을 다해 한태민을 들이받았다.

"큭."

피거품을 토해낸 한태민이 다른 손을 들어 파극세를 시전했으나 헛수고였다.

파티마는 거기에서 멈출 생각이 없다는 듯, 그대로 한태민을 어깨에 둘러멘 채 이브의 경계를 향해 내달렸다.

넘치는 건 힘밖에 없는 놈이라 그런지 압박하는 게 장난이 아니었다. 아예 두 팔은 수리야를 잡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쿵.

등에 싸늘한 감촉이 닿자 한태민은 입술을 깨물었다. 차원을 가르는 경계가 바로 뒤에 있었다.

"피 냄새가 나지 않아 시시하군. 조금 더 큰 무대로 나가지 않겠나?"

"너, 이 새끼……."

파티마의 의도는 뻔했다. 이브를 벗어나겠다는 뜻일 테니.

아차, 하는 사이에 섬뜩한 소리가 들려온다.

콰지직.

계란 껍질이 깨지는 것처럼 경계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나가면 걷잡을 수 없는 혼돈이 펼쳐질 터. 이긴다고 해도 복구 불가능한 피해를 입을 게 분명했다.

"멈춰. 멈추라고, 이 빌어먹을 새끼야!"

"그렇게 기뻐하지 않아도 된다. 네 고향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처럼 될 테니까."

온 힘을 다해 등을 두드려도 차원 통로로 몸을 던지는 파티마를 막는 건 불가능했다. 녀석의 어깨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기묘한 감각과 함께 전장이 뒤바뀐 건 그 순간이었다. 차원 통로가 열린 곳은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상공이었다.

파티마와 함께 추락하며 상태창으로 눈을 돌린다.

[ 영성 : 4,213 ]

안타깝지만 이 수치로는 극적인 효과를 바라는 건 어려웠다.

조금만 더, 더 닿으면 되는데. 그 조금이 모자랐다.

노력이나 열정으로는 모자란 그 무언가.

'이 구도를 바꿀 신의 장난이 있다면…….'

그렇게 생각한 순간, 기적이 일어났다.

▼여신의 축복

위력 : SSS+

설명 : 여신이 그대를 위해 기도한다

능력 : 행동 극한 보정, 행운 극한 보정, 행적 극한 보정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저절로 파티마의 손아귀에서 풀려났다.

놀란 녀석이 손을 휘젓지만 마치 윤활유라도 바른 것처럼 연신 헛손질을 했다.

행운 극한 보정.

그 의미를 깨달은 한태민이 다시 한 번 두 개의 헤일로를 일깨웠다.

상황이 역전되니 누군가에게 시원하게 맞은 것처럼 정신이 맑아졌다.

그때, 닳고 닳아 손잡이밖에 남지 않은 수리야가 보였다. 연신 잘게 떨리는 게 심통이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었다.

상태가 이러니 더 이상 결을 펼치는 건 불가능했다.

하지만 방도가 없는 건 아니었다. 여신의 축복이 함께했으니까.

행동 극한 보정.

지금이라면 최고의 상태로 최강의 일격을 퍼부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침 위치 또한 괜찮았다. 땅에 발을 디딘 건 아니었으니까.

저 밑에 펼쳐진 대지도 드넓지만, 그 위에 펼쳐진 하늘 또한 만만치 않았다.

충격을 저 위로 쏘아 보낼 수만 있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터.

둘 모두 허공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지금밖에 기회가 없었다.

"후우."

발을 휘저어 파티마의 밑에 자리 잡은 한태민이 그의 가슴에 손을 대었다.

그리고 파티마가 움직이기도 전에 머릿속에 있는 오의를 쏟아냈다.

대륙 아스란이, 8대 종족이 수많은 세월을 보내며 쌓은 문명의 정수.

천재가 천재에게 물려준 자산이 한태민의 손과 발을 빌어 이 세계에 나타났다.

'오버로드…….'

평화로웠던 대륙에 분쟁의 불씨를 퍼트린 장본인. 덕분에 수많은 이가 이유도 없이 죽어야 했고, 희생당해야 했다.

아이가 부모를 잃어야 했고,

연인이 애인을 보내야 했고,

자식이 어버이를 잊어야 했다.

이제 그 고통과 비탄을 녀석들에게도 느끼게 해줄 차례였다.

[ 무극 육검 - 타(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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