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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EX급 헌터다-222화 (222/291)

# 222

#222화 순응 (1)

물론, 이지아를 다그칠 문제가 아니었다.

본인인 유소라 또한 기억하지 못했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했다.

고민석 아니, 아티슈는 여색을 탐하는 머저리처럼 그녀에게 접근했으니까. 그렇게 의미 없는 만남을 조성하는 것도 잔꾀라면 잔꾀이리라.

“이 여자를 그렇게나 아낀다던데 정말인가 보군. 손도 대지 못하는 걸 보면 말이야.”

“너는 꼭 쳐 죽여주지.”

“마음대로.”

의기양양하게 지껄이는 녀석의 가슴을 강타했다. 아니, 강타하려고 했으나 그보다 먼저 나타난 유소라가 아티슈를 보호하듯 아스트라페를 휘둘렀다.

반사적으로 그 일격을 받아내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를 가르친 건 한태민, 본인이었다.

어떤 점이 부족하고 어떤 점이 넘치는지는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순간적인 가속력은 유소라가 앞서는 면이 없잖아 있었다. 궤적을 쫓을 수 있다고 해도 따라서 달리는 건 무리였다.

인류 최속이라는 이명에 어울리는 위용.

떨어뜨리려면 과격한 수를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빈틈이 생겼다 싶으면 아티슈가 달라붙어 접촉하려고 하니 유소라를 견제할 시간이 부족했다.

수리야에 깃든 리야가 제 몫을 해주고 있기에 평행선을 이루고 있는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 꼭두각시 인형이 되었을 게 틀림없었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뇌성벽력을 뚫고, 아티슈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위해 치달렸다.

전생에서도 비슷한 상황을 몇 번이나 겪었다.

유소라의 견제가 아무리 위협적이라고 해도, 노려야 할 이는 정해져 있었다.

그때, 거친 몸싸움 속에서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유소라의 모습이 보였다.

냉엄하게 아스트라페를 내지르는 그녀의 얼굴엔 죄책감과 좌절감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죽여주세요. 마스터에게 짐이 될 바에야 차라리 목숨을 버리겠습니다.”

한태민이 무어라 대꾸할 틈도 없이, 갑자기 끼어든 아티슈가 히죽였다.

“이게 바로 동료의 정인가. 감격에 겨워 눈물이 핑, 돌 정도인걸. 나도 끼워주지 그래?”

“넌, 닥쳐라.”

수리야가 몸을 던져 아티슈의 시야를 가리기가 무섭게 한태민이 움직였다.

[ 무극 육검 - 타(打) ]

내지른 권격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수백, 수천 번의 일격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리며, 하나의 물줄기를 이루었다.

이내, 거스를 수 없는 힘의 흐름이 역류했다.

“ㅤㅋㅡㅅ.”

쾅!

두 팔을 X자로 교차한 아티슈가 아래로 떨어졌다. 녀석이 떨어진 지면이 블록처럼 와르르 무너졌으며 동산이 비산하고, 산이 뭉개지고, 산맥이 꿰뚫렸다.

전장의 일부분이 날아갈 정도로 거대한 여파.

물론, 아티슈라고 당하고만 있던 건 아니었다. 용케도 접촉한 건지 오른팔이 저릿거리기 시작했다.

“전부터 잔재주를 부리는 건 인간 못지않았지.”

팔을 버려야 했으나 한태민은 개의치 않았다.

위협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콰지직.

피부를 따갑게 짓누르는 정전기를 재빠르게 낚아챘다. 눈을 현혹시키는 빛줄기는 보지 않았다. 오로지 감각만으로 유소라를 잡은 한태민은 그대로 그녀를 땅에 내리꽂았다.

그리고 그 뒤를 무섭게 추격해 무릎을 내려찍었다.

“마, 마스터. 저는, 틀린 것 같아요.”

애절한 목소리였으나 그런 말과는 다르게 몸은 미쳐 날뛰고 있었다. 무릎이 등을 짓누르지만 않았어도 반격했을 게 틀림없었다.

“정신 바짝 차려라, 소라. 이런 곳에서 널 잃기 위해 여태까지 힘을 키운 게 아니니까.”

“저도 이런 곳에서 마스터를 노리기 위해 힘을 기른 게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며 오열한다.

“포기하지 마라.”

“방법이 있, 는 건가요?”

“그래, 벗어나는 게 어려운 거지 불가능한 건 아니니까.”

한태민 역시, 아티슈에게 지배당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스승인 레이븐의 희생 덕분에 벗어날 수 있었으니까.

어긋난 마력을 바로잡을 수 있는 건 그 이상의 마력이었다.

마력 수급이 무한에 가까운 아티슈라고 해도 그 능력엔 상한선이 있었다.

가령, 출력.

지배는 범용성이 높은 능력이었으나 그만큼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았다.

횟수 제한.

반복 제한.

범위 제한.

열거한 내용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여왕은 지배가 지닌 가능성을 경계했고, 만약의 사태를 막고자 했다.

자신이 하사한 능력에 도리어 당하면 그만한 광대짓도 없었으니까.

아티슈가 받은 능력에 제한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소라, 솔직히 확률은 반반이다. 성공할 확률이 높은 만큼 실패할 확률도 높아.”

“괜찮습니다, 마스터.”

한 줄기 희망을 품은 건지 유소라는 벌써부터 아티슈를 씹어 먹을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 자리에 있는 건 여자도 아니고, 헌터도 아닌 어엿한 기사 한 명이었다.

“그래, 그 기세다. 일찍이 나도 극복했으니 너도 할 수 있다.”

기껍다는 듯,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 상황에선 이능력 양도가 답이었다, 아니 해답이길 바랄 뿐.

사전에 진충에게 실험했기에 사용 방법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 지정된 능력을 양도합니다 ]

[ 지정된 능력이 하락합니다 ]

[ 영구 기관(B) ]

[ 영구 기관(E)↓ NEW ]

불완전한 양도지만 현 상황을 타개하기엔 차고 넘쳤다. 여기서부터는 온전히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순간, 성난 황소처럼 거친 발소리가 장내를 잠식했다.

쿵, 쿵, 쿵.

아티슈가 달려오는 게 느껴졌다.

한태민은 유소라에게 달려드는 녀석을 걷어차며 거리를 벌렸다.

“아프잖아, 개자식아.”

“곤충이 고통을 느끼다니 별일이군.”

먼지구름 속을 헤치며 나온 아티슈는 엇나간 턱을 끼워 맞추며 낮게 으르렁거리다, 별안간 고개를 돌렸다. 녀석의 눈은 유소라에게 고정되어서 움직일 줄 몰랐다.

마력에 민감한 녀석이니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모를 리 없었다.

“이런 식으로 벗어나겠다고? 발칙하다 못해 멍청한 계책인걸. 혹시 자살이 취미인가?”

“그렇다면 손대지 마라. 애당초 제삼자가 끼어들어 난장판이 되는 것도 우습지 않나. 이건 우리끼리 해결해야 하는 문제일 테…….”

‘…니까.’

마지막 말을 다 뱉기도 전에 가속했다.

지면을 박차고 나아간 한태민이 손을 들자 하늘에서 거검이 떨어졌다.

혜성처럼 추락하는 거검을 정면에서 깨부순 아티슈는 양손을 힘껏 휘저었다.

마른 나뭇가지처럼 얇은 팔이 명검이 된 건 그때였다.

마력과 대기를 지배한 아티슈의 참격은 격렬한 전장을 둘로 가를 정도로 날카로운 예기를 뿜고 있었다.

잘 벼려진 참격을 막은 한태민은 불의 화신이 되었다. 그 주변은 이미 초열지옥이 재현된 상태였다.

발갛게 달아오른 용암이 지면을 녹이자 일대는 개미지옥이 되어 두 사람을 저 깊은 전장으로 끌어들였다.

한태민과 아티슈는 지면이 가라앉는 것도 잊은 채 서로를 물고 뜯는 데 여념이 없었다.

둘이 부딪치자, 그 여파에 구름이 개고 지축이 뒤흔들렸다.

생태계가 무너질 정도로 거대한 힘의 격돌.

“네가 강하다는 건 인정하지. 어째서 어머니가 경계한 건지 알았다. 하지만 그래도 이기는 건 나다. 세상에 저항할 수 있는 이는 없으니까.”

자신의 옆구리를 내어주며 한태민의 팔을 벤 아티슈는 뒤이어 따라온 수리야의 검면을 밟고 높이 도약했다. 피막이 얇은 날개가 부르르 진동하며 기이한 소리를 내었다.

천하약탈찬양지배마인.

콘퀘스트.

지면, 나무, 눈, 대기, 중력, 마력.

셀 수 없이 많은 요소가 맥동했다.

순간, 아티슈가 딛고 선 세상이 반전했다. 그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된 것처럼 거침없이 손을 휘저었다.

콘퀘스트는 세계 변혁 수준의 지배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

이 안에서 아티슈가 조율하지 못하는 건 없었다.

예를 들면 대기.

켜켜이 쌓인 대기층에 무게가 없는 게 아니었다.

모든 방향에서 작용하는 기압이 안정되었기에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끼는 것뿐이었다.

말하자면 무게 중심 분배의 승리.

하지만, 한쪽이라도 균형을 잃게 된다면 인간은 그 즉시 수십, 수백여 톤에 달하는 무게에 짓눌릴 게 뻔했다.

죽는 건 고사하고, 형체조차 간직할 수 없는 과대한 부하를 겪으며.

아티슈가 변주하는 세상은 그러한 파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크학.”

갑작스럽게 시작된 변화에 한태민은 덜덜 떨리는 무릎을 다잡았다.

보이지 않는 산이 두 어깨를 짜부라트릴 기세로 짓누르는 듯했다. 근처에 있는 수리야도 힘을 잃고 추락했다.

마치, 수압이 높은 심해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듯한 감각. 거기에 중력까지 배가 되니 지옥이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는 세상이 펼쳐졌다.

아득한 악조건에 정신과 육신이 괴리를 일으키는 건 당연지사.

머리 위에 떠오른 네 개의 헤일로가 오래된 전등처럼 명멸했다.

“어떤가, 인간. 너는 날뛴다고 날뛰지만 이 넓은 세상 속에서 너란 존재는 먼지보다도 못하다. 한 번 거대한 흐름을 느껴봐라.”

지배의 능력을 부여받은 차일드, 아티슈.

녀석은 항상 이랬다. 상대방이 있는 위치까지 올라가는 게 아니라 자신의 눈높이까지 끌어내리는 게 주특기였다.

손가락 하나 꼼지락거리는 것도 고단했다. 적어도 두 박자는 더 느리게 움직이는 듯했다. 목숨을 건 혈투에서 이만한 페널티는 사형 선고와 다를 게 없었다.

“약탈하고 쟁취해 자신의 것으로 치장하는 건가. 최약체다운 발상이군.”

“뭐?”

순간, 아티슈의 몸이 길어졌다.

“이 빌어먹을 새끼가!”

첫 공격의 충격이 고스란히 배를 꿰뚫고 지나갔다.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온다.

“그러는 너는 뭐지? 이렇게 당하고 있는 너는 뭐냔 말이다! 주둥아리만 살아서, 뭘 어쩌겠다는 거지?”

한태민의 눈은 그윽하게 가라앉았다.

치명상을 입었음에도 마음은 조금도 조급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차분하게 가라앉아 아티슈를 미흡하게나마 뒤따랐다.

머리 위로 수많은 기보가 날아다녔다.

아티슈와 싸웠던 기록은 흘러내릴 정도로 많았다.

그가 무엇을 원하고, 어떤 걸 중시하고, 왜 그리 행동하는지 잘 알았다.

순간, 수많은 전장을 돌아다니며 쌓은 경험과 직시가 미래 예지에 가까운 전투 본능으로 깨어난다.

두 박자 느리면 어떻단 말인가.

두 박자 빠르게 녀석의 의도를 파악하고 행동에 반영하면 되는걸.

정신과 육신의 괴리는 여전했으나 극에 달한 기예가 그 간극을 한 치도 빠짐없이 메웠다.

조금씩, 조금씩 아티슈의 궤적을 따라 주먹이 올라간다. 이윽고 전환점은 찾아왔다.

탁-

손목 하나가 들어와 예정된 궤적을 후려치고 지나가자 아티슈가 두 눈을 부릅떴다.

“……어떻게?”

“따라왔냐는 소리는 하지 마라. 그런 물음밖에 하지 못하니까 항상 제자리인 거다.”

달칵.

수리야의 검면이 소리굽쇠처럼 갈라졌다.

어빌리티, 신검합일.

리야의 스탯을 온몸에 받아들인 한태민은 한 걸음 내디뎠다. 그리고 다섯 손가락을 편 채 정권을 내질렀다.

[ 무극 이검 - 충(衝) ]

극강의 찌르기이자 굴강의 찌르기.

다른 무극이 화력에 치중되었다면 충의 요체는 거리였다. 닿을 때까지 찔러 넣는 그 일념이야말로 충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할 수 있었다.

손가락 끝에서 뻗어 나온 빛줄기에 별빛이 서리자 아티슈는 재빨리 고개를 뒤로 젖혔다.

하지만 한태민이 노린 건 녀석이 아니었다. 그가 노린 건 미친 듯 싸우느라 시야 바깥에서 떨어진 대상, 검은 달이었다.

“이 새끼가 끝까지!”

반 박자 늦게 이를 눈치챈 아티슈가 서둘러 몸을 비틀었다. 가일층 가속한 녀석은 손을 뻗어 충의 궤적을 후려쳤다.

하나, 수백 킬로미터를 초월한 충이 검은 달에 닿는 것까지 막는 건 불가능했다.

콰직. 검은 달의 외곽이 부서지며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확연히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극적인 체질 변화.

차원 통로 역할을 하는 검은 달이 무너지면 오버로드의 군세는 진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한태민은 피와 땀에 젖은 이마를 뒤로 쓸어 넘기며 비릿하게 웃었다.

“자꾸, 내게만 지킬 게 있다는 듯이 지껄이는데 너도 지켜야 할 게 있지 않나?”

“너, 정말 가만히 두면 안 될 새끼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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