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4
#233화 교육 (2)
“너는?”
“최성규라고 합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 할아버지가 제일 그룹의 회장이십니다.”
제일 그룹이라면 한태민도 잘 알고 있는 회사였다. 세계적인 대기업 중 하나였으니까. 달롱이 무너지면서 생긴 공백을 야금야금 삼키며 성장했다고 하던가.
엊그제 키리모토가 말했던 녀석일 가능성이 높았다.
태도가 오만한 게 자신이 선택받은 존재라고 확신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주변에 있는 학생들도 알게 모르게 그러한 생각을 드러냈다.
근묵자흑이리라, 미꾸라지처럼 분위기를 흐리는 이가 있으니 교육이 제대로 진행됐을 리 없었다. 키리모토 때처럼 당연하다는 듯이 오만한 의견을 제시했겠지.
“잘 가르치지 못한다니, 정확한 생각을 듣고 싶군요. 지금 제 설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은 없었을 텐데요?”
그 말에 최성규가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그렇다는 거죠. 저는 또 한태민 국왕님이라면 전혀 다른 해법을 제시해 주실 줄 알았거든요.”
“강해지는데 지름길은 없습니다.”
“역시 그런가요. 하지만 조금 실망스럽군요. 누구보다도 빠르게 강해진 한태민 국왕님이 그런 소리를 하니까요.”
불손한 발언이지만, 동조하는 학생들이 보였다. 무리도 아니었다.
최성규의 말대로 요 3년 동안 급격하게 강해진 건 한태민이 유일했으므로.
한태민은 쓰게 웃었다.
어린아이의 치기. 잃을 것 없는 본전.
사람이 모이면 그중에 과신하는 이가 있기 마련이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려는 원숭이가 나타나는 법이었다.
국왕 대 재벌 3세가 아닌 선생과 학생으로 만났기에 내비칠 수 있는 객기였다.
전생에서도 건방진 신병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사람의 성향이 환경에 따라 휙휙 바뀌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저라고 해서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보다 더 지독하게 달라붙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겁니다.”
“그래도 운 좋게 얻은 힘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킨 건 맞지 않을까요?”
“그 말은?”
“국왕님의 노력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선천적으로 결정된 마력의 양이 지대한 영향을 미친 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에는 마력이 적어 수련 성과가 적은 친구들도 있으니까요.”
교묘한 언사였다. 자기와 뜻을 함께하는 무리를 넘어 열등생들까지 건드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하고자 하는 뜻도 간단명료했다. 천재가 범재를 나무라지 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먹히는 문구였다.
“그렇군요. 마력이 높아서 강하다. 재미있는 접근법이군요.”
“이미 굳어진 정설입니다.”
마력은 아직까지도 강함의 척도가 되었다.
아스란 총체 요람에서 중요한 건 양이 아니라 질이라고 언급했음에도. 웃기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면 이건 어떨까요? 저는 딱 마력 1만 사용하겠습니다. 최성규 학생은 전력을 다해도 좋습니다. 어떻습니까? 이러면 마력의 양과 노력은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게 밝혀질 것 같은데요.”
“무슨…… 아무리 한태민 국왕님이라고 해도 마력 1로 저를 상대하는 건 무리일 텐데요?”
“그렇습니까? 저는 가능하다고 보는데요.”
마력 1로 할 수 있는 건 많았다.
일찍이 B급 던전의 주인인 레이마라까지 일격에 죽였으니까, 그 이상도 못 할 건 없었다.
한태민의 손끝에서 마력이 피어오른다. 당초에 확언했던 대로 실낱같은 불꽃이었다.
자리에 모인 학생들은 느낄 수 있었다.
그 불꽃이 금방에라도 꺼질 수 있을 정도로 희미하다는 걸. 마력을 관측하는 기기도 한 자릿수를 가리키고 있으니, 그 어디에도 속임수는 없다고 할 수 있었다.
한태민의 행동에 최성규는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하. 너무 자신만만한 거 아닌가요? 솔직히 제 말이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저는 사실만을 말했을 뿐입니다. 이런 식으로 도발하는 건…….”
“말이 많은 겁쟁이를 위해서 제가 한 번 더 양보하겠습니다.
한 손으로 눈을 가리고, 고개를 돌렸다.
아직까지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최성규를 위해 손을 잠시 내리고 힐끗 쳐다본 한태민은 보란 듯 히죽였다.
“그래서 하겠다는 겁니까, 안 하겠다는 겁니까?”
이쯤 되면 진실의 시비가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였다.
“하겠습니다. 하면 되지 않습니까!”
딴에는 방비를 한다고 손에 쥔 마테리얼 웨폰을 방패삼아 자세를 잡았지만, 어설퍼 보일 뿐이었다.
“나중에 다른 소리나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이건 모두 국왕님의 실책이니까요.”
마지막까지 자존심을 챙기는 모습에 헛웃음이 나올 지경.
“저도 동감입니다.”
태민은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애당초 이 싸움은 시작될 때부터 승패가 정해져 있었다.
쿵.
쏜살같이 날아간 불꽃이 마테리얼 웨폰에 닿는 순간, 묵직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순간, 최성규의 얼굴엔 당혹과 긴장이 돌았고, 한 박자 늦게 돌아가는 상황까지 깨달은 듯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크흑.”
저 멀리 날아가 바다에 처박힌다.
최성규의 몸이 수면 위로 둥둥 떠오른 걸 확인한 한태민은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
설왕설래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공방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었다.
어떻게 감상할 틈도 없이 끝난 싸움에 학생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는 건 덤이었다.
“여러분들이 자국에서 기대를 받는 건 알고 있습니다. 또래답지 않게 강하다는 것도요. 하지만 이런 실력을 갖추고 전선에 나가고 싶다면 차라리 자살 명소나 돌아다니라고 충고를 드리고 싶군요.”
충격이 가시지 않는 듯, 앓는 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졌다.
“사전에 고지했던 대로 이곳은 헌터 육성 기관이 아니라 기사 육성 기관입니다. 그때는 몰랐을 테지만, 지금은 그 뜻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기사란 오버로드를 상대하는 전문 헌터.
인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언제나 사선에서 싸워야 하는 직종이었다.
그 명예와 신분만큼이나 위험도가 남달랐다.
“여러분 자신이 특별하다는 생각은 버리시길. 저를 비롯해 수많은 강사가 여러분에게 이렇게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건 하잘것없는 여러분을 조금이라도 더 특별하게 가공하기 위해서니까요. 아시겠습니까?”
지금까지 우물 안에 있었다는 걸 깨달은 학생들은 고장 난 라디오처럼 반복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만족스럽게 웃은 한태민이 등을 돌렸다.
“그러면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
“그러면 저분들이, 그 아스란의…….”
“두 분이서 여기까지 오다니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걸까.”
“아, 저게 진짜 뿔이라고?”
“그런 어빌리티도 있구나.”
기시우와 함께 길을 걷던 차예리는 못 참겠다는 듯 귓구멍을 후벼팠다.
속닥거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그중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안건은 기시우의 ‘뿔과 꼬리’였다. 여기까지 오면서 지겹도록 들은 터라 귓가에 딱지가 않을 지경이었다.
“너, 그 뿔 잘라. 그게 아니면 꼬리라도 가려.”
“뭐? 난데없이 무슨 소리야.”
“너무 눈에 띄잖아. 이래서야 조용히 수색이나 할 수 있겠어?”
그래도 주택가라 망정이지 번화가였다면 단번에 시선 강탈의 주범이 됐을 게 틀림없었다.
그때, 불쑥 튀어나온 레티나가 차예리 앞을 가로막았다.
“안 돼. 매력 포인트.”
“아니, 인간에게 뿔이랑 꼬리가 매력 포인트라고 해도 말이지.”
“그러면 개성.”
“응, 22세기가 와도 받아들일 수 없는 개성이야.”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한숨을 쉰 기시우가 그러지 말고, 어서 오라는 듯 몇 번 손짓했다.
“이런 일이 하루 이틀인가.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고, 전봇대나 찾자고. 기둥 뒤편에 있다니까 자세히 보지 않으면 놓칠 거 아니야.”
한태민이 믿고 맡긴 일이었다.
단순히 잡담이나 나누며 허투루 시간을 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생각보다 냉정한 기시우의 답변에 차예리는 못마땅하다는 듯 콧김을 내뿜었다. 안타깝지만 그녀도 그 의견에는 이견이 없었다.
“여기 하나…!”
두리번두리번, 전봇대를 더듬거리던 와중 무언가를 발견한 기시우가 눈을 동그랗게─
“……있었던 것 같은데.”
뜨다 말았다.
“어디 봐봐.”
급하게 뜯은 건지 테두리에 자국이 선명했다. 흔적이 새하얀 걸 보니 그리 오랜 시간은 지나지 않았을 터.
한 번 더 흔적을 살펴본 차예리가 진중하게 입을 열었다.
“설마 눈치챈 걸까?”
“어쩌면 우리보다 먼저 발견한 사람이 장난친 걸 수도 있지. 정체불명의 종교라잖아. 그런데 그런 종교의 모집 포스터가 떡 하니 붙어 있다면 뜯고 싶은 사람도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대외적으로 민재민은 휴가를 얻어 잠시 출타 중인 걸로 되어 있었다. 마침 부인의 기일이 그 시작점이기도 했다. 내부인이 아니라면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없을 테니 시간을 버는데 이만한 계책은 없다는 게 진백지의 설명이었다.
“저기 봐.”
그때, 레티나가 두 사람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니 저 멀리에서 어린아이가 폴짝 뛰어오르는 게 보였다.
폴짝 뛰어오른 아이는 전봇대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거칠 게 뜯었다.
한창 천방지축일 때이니 그거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다음 전봇대로 향한 아이는 일련의 행동을 반복했다. 시행착오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아이가 찍은 전봇대엔 여지없이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마치 어디에 포스터가 붙어 있는지 전부 다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러면 저 아이가!”
“쉿.”
차예리의 입을 막은 기시우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모처럼 잡은 단서였다.
경거망동해서 놓치는 일은 없어야 했다.
하지만 그 바람이 무색하게 시선이 마주친 아이는 뒤도 보지 않고 내달렸다.
이쪽이 저쪽에 대해 알듯, 저쪽도 이쪽에 대해 아는 눈치였다.
“잡아야 해!”
동시에 세 사람이 튀어 나갔다.
순간, 아이는 방향을 틀어 골목길 안으로 몸을 던졌다. 도주로 정도는 이미 꿰차고 있는 듯했다.
늦을세라 지면을 박차고, 담장을 밟은 기시우는 급하게 방향을 바꿔 아이의 뒤를 쫓아갔다.
하지만, 선회한 길목에서 나타난 건 아이가 아니라 중년 남성이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놀라 황급히 뒷걸음질했지만, 자그마한 접촉이 일어나는 것까지 막는 건 불가능했다.
툭─
화들짝 놀란 기시우가 고개를 숙였다.
“죄, 죄송합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조심히 다니게.”
중년 남성은 불쾌하다는 듯, 어깨를 털며 멀어졌다.
“아이는?”
“어디?”
뒤따라 들어온 차예리와 레티나가 동시에 물어보았지만,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지금까지도 어안이 벙벙했으니까.
분명히 아이가 들어간 걸 보았는데 나온 건 중년 남성뿐이었다.
이 골목길은 외길이라 따로 도망칠 곳도 없건만, 아이는 당연하다는 듯 사라진 뒤였다.
귀신에 홀린 듯 멍한 표정을 지은 세 사람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아이가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
“차이가 날 줄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날 줄은 몰랐는걸.”
“기계가 고장 난 건 아니지?”
“고작 마력 1로 그런 위력을 낼 수 있다고?”
“성규만 잘못 걸렸네.”
“깝죽댄 벌이지, 뭐.”
교실 안은 아침에 일어난 사건 때문에 아직까지도 시끄러웠다.
곳곳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나현은 꼭 자신이 칭찬을 받은 것처럼 어깨를 들썩였다.
그러잖아도 학생들은 매너리즘에 빠진 상태였다.
한 달마다 강사가 바뀐다고 해도 그들이 하는 얘기는 항상 비슷했기 때문이다. 강의 내용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내비치는 기대와 관심이 항상 똑같다는 소리였다.
주제도 모르고 눈이 높아지는 건 당연지사.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나타난 게 바로 한태민이었다. 어찌 기쁘지 아니할 수 있을까.
그때, 뒷문이 열리며 한 학생이 들어왔다. 동급생이자 친구인 요스케였다.
“아침부터 보이지 않더니, 이제 들어온 거야?”
“몸이 좀 안 좋아서.”
“괜찮아?”
“응, 아침에 쉬었더니 좀 나아졌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