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8장 - 로스웰을 떠나며 (2) : 오해 >
후드 너머에서 찌르는 듯한 눈빛이 날아든다.
‘······거참, 뜨겁구만.’
그러거나 말거나 아르민의 시선은 여전히 정령의 흔적을 쫓았다.
놈의 주위를 떠도는 정령의 기척은 총 둘.
후드 속으로는 진한 토(土)속성의 기운을 품은 골렘 같이 생긴 정령이 빼꼼 고개를 내밀었고, 놈의 허리춤 부근에서는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을 한 바람의 정령이 꺄르륵 웃어대며 장난을 치듯 주변을 맴돈다.
‘착각이 아니야. 진짜 정령이다.’
정령(精靈).
동양에서 말하는 정령과 서양에서 언급되는 정령은 그 세부 개념이 조금 달랐다.
여기서 아르민의 눈에 비치는 정령들은 그 생김새나 품고 있는 마나의 속성으로 미루어보아.
‘서양 연금술학에서 언급되던 4대 정령에 가까운 존재로군.’
서양 연금술에서는 만물이 물, 불, 바람, 흙의 4가지의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 정의했고.
그 이론과 민간신앙이 결합되면서 정령이라는 개념이 태어났다.
이름하야 물의 운디네, 불의 샐러맨더, 바람의 실프, 땅의 노움이 바로 그것이다.
머리로는 그 사실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막상 여기서 아르민의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번뜩이는 이유는 단순했다.
‘정령은 처음 보는걸.’
앞서 말한 것처럼, 지구에서도 4대 정령에 대한 지식이 존재하긴 했지만.
인류가 발전하며 자연을 개간하는 사이, 지구에서 정령의 존재는 점차 희미해져버린 것이다.
때문에 아르민조차 제대로 정령을 만나본 적이 없거늘.
바로 이곳에서 눈앞에 떡하니 정령이 들이밀어졌으니.
이래서야 그 시선이 자연스레 정령을 쫓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다만.
‘정령을 알아보는 게 이쪽에선 무척 드문 일인 모양이군.’
상대가 저렇게 경계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직전의 반응은 조금 실수가 된 모양이었다.
“······정령이 보이나?”
후드남으로부터 굵직한 목소리가 전해진다.
목소리만 들어서는 한 성깔 할 거 같은 남자 같지만, 아르민은 놓치지 않았다.
놈이 말할 때마다, 바로 그 성대 근처에서 바람의 정령인 실프가 간지럽다는 듯이 꺄르륵 웃어대는 모습을.
‘공기의 진동을 통해 목소리를 변조하고 있군.’
그 말은 곧, 상대가 정체를 숨기고 있다는 소리다.
더욱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여기서 잠시 아르민은 고민했다.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까.
괜히 아는 척을 했다가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건 사양이었다.
‘적당히 얼버무리자.’
아르민이 그리 반응하려는 때였다.
“그렉, 자네, 여기서 무얼 하고 있나?”
이 거북한 분위기 속에서, 난입자가 나타났다.
****
말을 걸어온 이는 후덕한 인상을 가진 중년 남자였다.
고급스러운 옷을 걸치고 있는 데다, 얼굴에는 기름기가 번들거리고, 뱃살은 축 늘어진 것이, 딱 봐도 ‘나 상인이오’ 하고 주장하는 듯한 자였다.
“······별거 아닙니다.”
그렉이라 불린 후드남이 한 걸음 물러섰다.
남이 보는 앞에서는 따로 액션을 취할 생각은 없는 듯 했다.
“음, 그런데 그쪽은?”
이번에 남자의 화살이 향한 것은 아르민.
여기서는 적당히 말을 지어낼 필요가 있겠지.
“용병이 되려고 찾아왔습니다. 더블린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데, 그쪽으로 일거리가 없을까 해서 말이죠.”
“용병이 된다고······?”
후덕한 남자는 아르민을 위 아래로 훑어보며 미심쩍다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이렇게 나오나.’
그야 아르민은 금발의 벽안을 가진 곱상한 도련님처럼 생겼고, 실제로도 그러했으니.
용병이 되고자 한다는 말에도 세상 물정 모르는 도련님의 치기 어린 말 정도로 받아들인 것이겠지.
물론 아르민에겐 이럴 때를 위한 변명이 있었다.
“마탑에서 출가한지 얼마 안 된 마법사라 말이죠.”
“오오······! 자네, 마탑 출신이었나···!”
단숨에 태도가 바뀐다.
남자는 눈을 빛내며 아르민에게 다가와 그 손을 잡아챘으니, 이건 아르민도 대강 예상한 반응이었다.
‘마법사는 꽤 귀중한 인력이니까.’
마법사라는 게 원래 되고 싶다고 해서 전부 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직종이 아니다.
재능이 필요한 것은 물론 마법사가 되기 위한 교육과정을 이수하는 데만 해도 천문학적인 액수가 소요되는 만큼.
마법사란 문자 그대로 고급 인력 취급이었다.
보통 마법사용이 가능하다면, 용병을 하기보다는 좀 더 편한 직장을 찾을 테니까.
지구나 여기나 그건 다를 게 없었다.
그런데 실력이 검증된 마탑 출신이라고 대뜸 나타났으니, 상인 남자가 반색하는 것도 당연했다.
“이거 미처 소개가 늦었네. 내 이름은 거츠라네. 거츠 상단의 대표를 맡고 있지. 우리도 때마침 더블린 근처로 상행을 나갈 생각이었는데, 어떤가? 우리와 함께하는 건?”
남자의 제안은 아르민의 귀가 솔깃해졌다.
원래부터 그러기 위한 일을 찾고 있었으니, 마침 딱 좋은 타이밍이었다.
‘저 후드 뒤집어 쓴 놈이 좀 걸리긴 하지만.’
어쩔까. 하는 고민은 10초도 채 가지 않았다.
“더블린까지 향하는데 들어가는 경비는 우리 상단에서 전부 부담하겠네!”
“에드윈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망설일 것도 없이 콜이었다.
****
거츠는 이번에 마도 축제에서 한몫을 잡기 위해 이곳 로스웰에 찾아왔다고 말했다.
“축제도 끝났고, 슬슬 새로운 장사거리를 찾고 있던 참에 더블린에서 새로이 던전이 나타났다고 하더군. 그래서 이번에는 그쪽으로 길을 짜볼까 했다네.”
드물게 발견된다고 하는 던전은, 그 자체만으로도 수많은 장사 가능성을 품고 있다면서.
바로 이럴 때가 장사를 해먹을 때라고 거츠는 그야말로 상인다운 말을 쏟아냈더랬다.
‘자색 마탑주가 더블린으로 향한 것도 그 때문인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계속 등 뒤로는 후드남의 찌르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적의가 느껴지진 않았기에 내버려두고는 있었지만.
‘정령을 알아본 게 그렇게 굉장한 일인가?’
그런 의문을 품은 채로 얼마나 거츠의 말에 맞장구를 쳐주었을까.
“그런데 용병으로 의뢰를 수주하려면 일단 용병 등록이 우선인데. 에드윈, 자네 등록은 마쳤나?”
“아직입니다.”
용병 길드에서 취급하는 용병의 등급은.
백금 - 금 - 은 - 동 - 철등급으로 총 다섯 단계가 존재했다.
보통 용병이 되면 대개 철등급부터 시작을 하며, 등급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의뢰의 난이도가 다르다거나.
의뢰자가 원하는 최소 용병 등급이 존재하기도 하는 등.
보다 원활한 의뢰 해결을 위해 이런 시스템이 존재하는 듯 했다.
“그러면 등록부터 하지.”
그렇게 거츠와 용병 길드의 카운터를 찾았지만, 여기서 아르민은 첫 번째 난관에 봉착했다.
“죄송합니다만, 현재 실력을 심사할 수 있는 등급 심사관이 자리를 비운 터라······.”
길드 접수원은 면목이 없다는 얼굴로 그리 말했다.
보통 용병 등급을 측정하기 위해선, 길드에 소속된 정식 용병들이 실력을 심사해야 하는데.
하필 축제와 관련해 인력이 차출된 상태라, 심사관이 돌아오려면 최소 하루는 더 있어야 할 것이라고, 접수원은 말했다.
“곤란하군, 상행에 늦지 않으려면 오늘이라도 당장 출발을 해야 하건만······.”
잠시 난색을 보이던 거츠는 때 마침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이 손뼉을 쳤다.
“그러고 보니 등급 심사는 은 등급 이상을 가진 용병의 공증만 있으면 되는 거 아니었나?”
“예, 그건 그렇습니다만.”
“다행이군. 우리 상단의 그렉이 바로 은 등급 용병이라네.”
거츠의 말에 후드남의 몸이 움찔거렸다.
여기서 갑자기 자기 이름이 나올 줄은 몰랐다는 듯이.
“어떤가? 이래봬도 그렉은 그 보기 드물다는 정령술사라네. 우리 그렉이 직접 임시 시험을 보는 것으로 등급패를 발급 받을 수는 없겠나?”
“음, 잠시 길드 상부에 문의해보겠습니다.”
길드 접수원은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 보다 높으신 분과 상담을 진행하는가 싶더니.
“거츠 상단의 대표께서 함께 공증인으로 참가하신다면, 그렇게 일을 처리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확인 받았습니다.”
“그거 잘됐군!”
거츠는 환히 웃으며 아르민과 그렉을 돌아보았다.
“이것으로 괜찮겠지? 에드윈, 그리고 그렉.”
“저야 뭐······.”
“······.”
아르민과 그렉의 눈이 한 번 더 허공에서 마주쳤다.
웬만하면 엮이는 일은 피하고 싶었지만, 여기까지 온다면야 어쩔 수 없었다.
****
그리하여 용병 길드의 외부에 마련된 연병장으로 네 명의 사람이 모여들었다.
길드 접수원과 거츠, 그리고 아르민과 그렉이었다.
“에드윈 씨는 용병패 직업 신청을 마법사로 신청하셨으니, 은 등급의 용병 그렉 씨가 펼치는 공격만 막아내시면, 심사는 그것으로 종료됩니다.”
접수원의 지시에 따라 연병장의 중심으로 향한 아르민과 그렉은 서로를 마주보고 섰다.
“그럼 시작해주세요!”
그 말을 들은 그렉은 마지못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정령들을 시켜 공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자, 여기서는 어쩐다.’
지난 며칠 간 자색 마탑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르민은 대강 이쪽 세계의 서클 개념에 대해 감을 잡았다.
1서클부터 2서클, 3서클까지 각기 그 수준이 마력을 어느 정도로 동원할 수 있는 수준이며.
나이 몇 살에 어떤 서클 실력을 갖추는 것이, 커다란 주목을 이끌지 않고 나 자신을 꾸미는 일이 될지 등등.
‘앞으로 혼자서 여행을 떠나려면, 최대한 스스로를 숨기는 건 중요할 테니까.’
아르민이 용병으로 등록하며 자처하려고 생각한 서클은 3서클.
용병 마법사들 중에서도 3서클이라면 꽤 우수한 마법사 취급을 받는 모양이었다.
‘트리플 액션까지는 자제하고, 최소한의 마력으로 더블 액션 정도로만 처리하면 될 것 같은데.’
적극적으로 공격하는 건 곤란하다.
정령술사라는 건 꽤 강한 전력으로 취급 받는 모양이고, 마탑을 갓 나왔다는 마법사가 대뜸 은등급의 정령술사를 쓰러트리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할 테니까.
그럼 어떤 마법을 보여주는 게 좋을까.
아르민이 고민하는 그때였다.
“바람이여.”
조용히 입술을 달싹여 바람의 정령을 향해 지시를 시작하는 그렉의 모습에.
아르민의 눈동자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정령술사가 어떻게 싸우는지는 또 궁금했단 말이지.’
그리고.
“가라.”
그렉이 아르민을 가리키며 명하자.
- 꺄하핫!
바람의 정령이 빠른 속도로 아르민에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날카로운 예기가 섞이지 않을 걸 보니, 정말로 딱 실력만을 확인하기 위해 돌풍을 일으키려는 모양이었다.
“오오! 아무런 주문 없이 갑자기 바람이 일어나다니! 볼 때마다 신기하군!”
“이게 정령술이군요.”
거츠나 접수원이 떠드는 소리를 듣자하니.
역시 평범한 이들에겐 정령의 존재 자체가 아예 보이질 않는 모양이었다.
‘그럼 적당히 그럴듯하게 주문을 뽑아 와서······.’
“내 앞을 가로막아라! 실드!”
일부러 반투명한 색을 섞어낸 얇은 막이 아르민 앞에 나타났다.
자색 마탑에서 읽었던 공용 3서클 마법서에 적혀 있던 마법 실드를 흉내 낸 것이다.
말 그대로 방패로 적의 공격을 막는 수법에.
휘이이잉!
돌풍은 아르민에게 닿지 못한 채로, 흩어져버렸다.
“3서클 마법인가!”
감탄하는 거츠의 말처럼, 이 정도 실력만 보여준다면, 무난하게 동 등급 용병패를 받을 수 있을 터.
대충 아르민이 태평한 생각을 한 찰나였다.
쿠구구궁!
‘······땅?’
그렉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실력 심사를 위해 날려 보낸 실프와 달리.
이번에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라.
순전히 아르민의 허를 찌르듯 흙의 정령 노움을 시켜, 소리 소문 없이 아르민에게 달려들도록 지시한 것이다.
‘요놈 봐라?’
그렇게 나온다면 좋다.
귀찮은 연기를 펼치는 대신, 아르민은 본신의 실력으로 마법을 펼쳐보였다.
길드 접수원과 거츠에게 들키지 않도록, 앙큼한 장난을 쳐온 녀석을 상대로.
‘마력을 응집시킨 뒤, 진동의 형태로 구현한다.’
손가락을 튕기는 등의 눈에 띄는 행동을 하기보다, 전신의 스텝을 밟아 펼치는 더블 액션.
슬쩍 오른발을 내밀며, 아르민은 땅을 발로 찼다.
두웅!
- 어?
- 후잉?
그러자 정령들의 움직임이 딱 멈추었다.
자유롭게 움직이던 몸이, 아르민의 마력 포박에 꼼짝도 못한 채 막혀버린 것이다.
정령들의 영체 또한 마력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가능한 묘기였다.
자, 어떠냐. 하고 아르민이 상대를 바라보자.
“······아.”
그렉이 탄성을 터트리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떨리는 눈동자로 아르민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또 왜 저러는 거야?’
아르민이 그런 의문을 떠올렸을 무렵.
“이걸로 심사는 끝난 것 같군!”
“예. 실력은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실력 심사는 싱겁게 끝이 났다.
아르민이 동 등급 용병패를 발급 받은 뒤로, 상행 준비는 척척 진행되었다.
30명 정도로 이루어진 상단은 지금부터 보름간 더블린을 향해 갈 것이라 거츠는 말했다.
“다른 용병들과는 가면서 차차 인사를 나누면 되겠지.”
그야 이 정도 규모의 상단이라면, 그렉 뿐만 아니라 다른 용병들 또한 함께 움직일 터였다.
“자, 출발하세나!”
그렇게 마차는 본격적으로 비발트의 북쪽을 향해, 매서운 겨울 길을 나아가기 시작했고.
별 다른 마찰 없이 시간이 지나가, 밤이 찾아왔다.
****
로스웰을 떠나 한나절만에 도착한 장소에서 거츠 상단은 야영지를 마련했다.
야영지의 밤은 추웠다.
하늘을 가득 매운 채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아르민은 잠시 야영지 주변을 돌아보았다.
한숨 돌릴 겸 산책을 하기 위해서였다.
저벅저벅.
아르민이 잠시 달밤을 즐기던 도중.
“이제 그만 슬슬 나오지?”
야영지에서 적당히 멀어졌다고 생각한 아르민은 몸을 돌렸다.
아까부터 마력신경의 감각 속으로, 계속 걸리던 기척이 있었으니까.
거기엔.
“······역시 눈치 채고 있었습니까?”
낮과 달리, 공손해진 말투.
어째선지 모르지만 아르민을 쫓아온 건, 낮에도 부딪혔던 그렉이란 자였다.
“이런 밤중에 무슨 볼일이길래, 그래?”
“······당신은, 정체가 무엇입니까?”
그렇게 나오기냐.
아르민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야 정령을 알아본 순간부터, 상대가 자신을 주의깊게 바라보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래도.
“보다시피 평범한 마법사인데.”
“아뇨.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렉은 고개를 들었다.
“정령을 두 눈으로 인지하고, 제 정령술을 근본부터 파훼하는 그 마법실력까지, 마치 이 전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만.”
귀찮아졌다.
아르민으로선 내버려두면 여행 내내 계속 거슬릴 것 같아, 이곳으로 불러내 담판을 지으려고 했던 것 뿐인데.
어째 상대가 당치도 않는 착각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그렉의 주변을 돌던 정령들이, 난리를 피우며 아르민의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 신기해~
- 그때 어떻게 한 거야~?
아르민이 낮에 보여주었던 한수가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었던 건지.
정령 특유의 친화성 덕택인지, 변덕스럽게 달라붙기 시작한 것이다.
이대로 내버려두기엔 정신이 사나워진 아르민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만.]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토스로서 내뱉은 언령(言令)에 정령들이 움직임을 멈춘다.
- 우와앗~
- 꺄아~
거역할 수 없다는 듯이, 정령들이 저마다 소란 법석을 떨어댄다.
그저 귀찮은 날파리를 걷어내듯, 아르민은 목소리를 낸 것에 지나지 않지만.
바로 그 순간.
“역시나······!”
그렉은 그대로 후드를 벗었다.
그 안에서 드러난 건, 아르민의 추측대로 걸걸한 남자의 얼굴 같은 게 아니었다.
새하얀 피부와 달빛 아래에서 반짝이는 아름다운 금발.
‘······엘프잖아?’
게다가 상대는 단순한 엘프가 아니었다.
아르민이 알고 있는 엘프보다도 더욱 기다란 귀와 에메랄드처럼 반짝이는 저 눈동자는, 다름이 아니라.
“하이엘프?”
엘프 중에서도 가장 고귀하다는 하이엘프 일족의 증거.
아르민이 정체를 꿰뚫어본 것에, 그녀는 감탄 어린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이렇게 입을 열었다.
“자연의 정령조차 절로 따르게 하는 그 위엄. 감히 낮에 저지른 저의 무례를 용서하시길! 미처 알아보지 못해 죄송합니다!”
‘응? 난데없이 무슨 소리래?’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엘프를 본 아르민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지켜보는 사이.
하이엘프는 이런 말을 꺼내들었다.
“동쪽 고요한 바람 정령 숲의 인도자. 은색떡갈나무 부족의 그레이시아가 위대한 존재를 뵙습니다······!”
그러니까.
‘위대한······, 뭐···?’
아무래도 단단히 오해를 산 모양이다.
< 제18장 - 로스웰을 떠나며 (2) : 오해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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