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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법이 더 쎈데-127화 (127/203)

< 제64장 - 열망이라는 이름의 저주 (1) >

카모쉬 모르티엔 자작을 구속하고 후속처리까지 대강 마쳤을 무렵.

다음날.

아르민은 여행 준비를 마치고 미네르바 황녀 일행에게 서쪽으로 향하겠다는 말을 전했다.

“엇, 지금부터 포리네로 떠나시겠다는 말입니까?”

한 손에는 아침 식사로 제공되는 하얀 밀빵을 든 채 우물거리던 후티스가 난색을 표한 얼굴로 그리 물어왔다.

그로선 당연한 반응이었다.

현재 상황은 제법 복잡한 판국이다.

알로스린 대공의 끄나풀인 카모쉬 자작을 미네르바 황녀가 직접 구속했다.

무려 대공이 흡혈귀와 손을 잡은 증거를 손에 넣은 것이다.

‘물론 결국 끄나풀에 불과한 카모쉬만 가지고 알로스린 대공을 공격할 순 없다. 알로스린도 바보가 아닌 이상 이대로 가만히 있을 리가 없겠지.’

다만 모두가 입 밖에 내진 않더라도, 앞으로 상황이 어떤 식으로 돌아갈지는 어린아이라도 쉬이 예상할 수 있을 터였다.

‘이번 일을 계기로 칼센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구축한 미네르바와 알로스린이 본격적으로 부딪치게 되겠지.’

이제까지는 서로가 뒤에서 더러운 짓이나, 공작을 꾸민다고 해도 명확한 증거가 없어 사소한 마찰로만 끝났던 두 세력이다.

예의 복도에서 아르민이 알로스린 대공과 마주치면서 벌어졌던 자존심 싸움 따위가 그런 예다.

허나 상황이 바뀌었다.

‘미네르바가 움직인다. 거기에 알로스린 대공도 맞서겠지.’

일촉즉발의 상황.

그런 상황 속에서 검성이 그 재능을 탐을 내고, 미네르바 황녀조차도 진심으로 가치를 인정한 데다, 뭣보다 후티스 본인이 존경하고 있다 자기 입으로 직접 말한 아르민이 자리를 비우겠다니.

아무리 정치에서 거리를 두고 있는 기사직에 몸을 담고 있는 후티스라 할지라도, 그건 곤란하지 않느냐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괜찮네. 후티스 경. 아르민 경과는 이미 약조를 마친 참이네.”

“앗, 화, 황녀님! 기침하셨습니까!”

뒤늦게 저택 로비로 나타난 미네르바의 등장에 후티스는 허겁지겁 예를 갖추었다.

“하온데 약조라 하심은······?”

미네르바는 슬쩍 아르민을 돌아보았다.

아르민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걸 허락으로 받아들인 것이겠지.

“당장 아르민 경은 볼일이 있어 포리네로 향하지만, 본녀가 도움이 필요하다 말하면 망설이지 않고 달려오겠노라. 그는 약속했다네.”

입가에 은은히 떠오른 미소.

뭐, 간밤에 그런 이벤트도 있었겠다.

아르민을 바라보는 미네르바의 시선은 꽤나 온화했다.

“그렇습니까···?”

후티스가 아리송하단 얼굴로 그리 중얼거릴 때.

“다들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있었구먼.”

검성 지크프리트가 하품을 하며 로비에 나타났다. 그러고 보면 슬슬 아침을 먹을 시간이 다가온 셈이었다.

지크프리트에게도 적당히 떠나는 이유를 설명하자, “자네나 미네르바가 그리 말한다면 다 이유가 있는 거겠지.” 라며 흔쾌하게 납득해주었다.

이걸로 정말 이야기는 끝났다고 판단한 아르민은 몸을 돌렸다.

그렇게 문을 향해 걷는 아르민에게.

“잠깐.”

“응?”

미네르바가 잠시 아르민의 걸음을 멈춰 세웠다.

“뭔가 더 할 말이라도 있나?”

아직 남은 게 뭐 있나, 싶어 슬쩍 아르민이 몸을 돌린 순간.

“헉.”

“호오.”

후티스의 황망한 신음과 검성의 흥미롭다는 감탄이 어우러진다.

얼마나 놀랐는지, 툭 하고 후티스는 손에 들고 있던 빵을 놓칠 정도였다.

복도 너머에서는 숨 죽인 채, 이곳을 들여다 보고 있는 메이드의 모습까지 보이는 것이.

뺨에 닿은 간질거리는 감촉.

잠시 후, 아르민에게서 한 걸음 물러난 미네르바 황녀는 만족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기다리고 있겠네.”

아르민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석별의 키스라니.

헤어지기 직전까지도 파격적인 황녀님이었다.

그렇게 저택을 빠져 나와, 포리네로 향하는 마차를 얻어 타기 위해 움직이는 도중.

- 이스텔.

아르민은 남부에 있을 자신의 종자를 호출했다.

어제 나태의 서를 통해 알아낸 정보, 수왕국에 있을 신물이 칠죄종 ‘질투’의 신물이라는 정보를 알릴 생각이었다.

****

장소는 콘클라베가 개최되고 있는 콜로세움.

- 우오오오!!

짐승들이 울부짖는 드높은 포효와 더불어, 뜨거운 열기, 코를 자극하는 짐승의 악취, 그리고 귀가 따가워질 정도의 함성이 콜로세움을 가득 메운다.

그 가운데에서도 만인을 향해 손을 흔드는 저 사자갈기의 수인이 바로.

“마탄의 사수, 블라디미르라는 건가요?”

“맞아, 이 재수 없는 기척, 틀림없어.”

헬레나의 악평이야 어찌되었건 민세희는 살짝 의아한 목소리를 내었다.

“하지만 기존의 신좌에 있는 이들은 지상에 쉽게 내려올 수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녀의 의문은 당연했다.

분명 선배에게 들었다.

신좌에서 밀려난 헬레나와 달리, 아르카디아를 포함해 신좌에 머무른 자들은 그 강대한 힘 때문에 지상에 쉽사리 간섭할 수 없다고.

허나 여기에 블라디미르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블라디미르는 예전부터 특히 음침하던 녀석이었어. 전방에 나서는 대신 총을 잡고, 뒤에서 저격만 하던 놈이라. 늘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단 말이지. 아마 놈 나름대로 뒷구멍으로 방법을 만들어 뒀을 거야.”

전형적인 방구석폐인과도 같은 놈이었다고 마구 악담을 퍼붓는 헬레나는.

“아, 그러고 보면 분명 수인족을 디자인했던 게 저 녀석이었지? 그때는 취향 참 독특하다 싶었는데.”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그리 중얼거렸다.

세계 창세의 비밀이나, 종족의 탄생 따위 같은 신화급의 이야기를 태연자약하게 떠드는 모습이 퍽이나 현실감이 없었지만.

민세희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신물을 가진 자가, 신성을 가진 이였다니.’

민세희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러면 경우가 완전히 달라진다.

현재까지 최대한 조심스럽게 움직여온 건, 국제 문제로 비화될 여지를 줄이고자.

목적을 완수하더라도 혹시 모를 후환을 남기지 않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신좌에 머무는 자라면.

단언할 수 있다.

그들은.

‘우리의 적이야.’

헬레나와 아르민, 더불어 150년의 시간을 지나 이 자리에 머무른 자신을 적시하는 자들.

상식적으로 판단하자면 아마도 3년 전.

교황이 바뀌었다는 시점에서, 블라디미르가 저 위치를 차지한 것이겠지.

‘적이라고 해도, 단순히 쓰러트리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야.’

이미 지난 3년 간, 블라디미르는 교황으로 군림해오면서 케뮬란의 중심이 되어버렸을 터였다.

이걸 단지 신물을 가지고 있고, 우리와 적대한다는 이유로 쓰러트린다면 케뮬란 자체에 혼란을 가져올 가능성이 컸다.

아니, 그 이전에.

‘우리만으로 쓰러트릴 수 있나?’

아무리 헬레나가 함께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선배가 없는 상황에서.

신좌에서 내려온 그녀와 자신만으로 블라디미르와 대적하는 것이 가능할까?

심지어 현재, 정황상 블라디미르가 모노리스의 파편을 가지고 있을 터였다.

‘이곳에 오기 전에 선배가 말했지. 케뮬란에 있는 신물의 정체는 칠죄종 질투에서 비롯된 물건이라고.’

떠올린다.

콜로세움에 입장하기 전, 이스텔을 통해 전해왔던 아르민의 연락을.

- 질투. 헬레나가 느꼈다던 파편의 기척은 분명 그 물건이 뿌린 거다.

거기에 더해.

- 조심해라. 민세희. 신물은 각기 칠죄종이 상징하고 나타내는 기호를 힘으로 가지고 있어.

탐욕의 핵은 마력을 먹어치우는 괴물을.

나태의 서는 결말에 도달하지 못하는 정보를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질투도 마찬가지.

- 도와준다던 꼬맹이가 3년 전을 기점으로 ‘세계가 이상해졌다.’ 고 말했다고 했지? 그렇다면 거기엔 신물이 관계되었을 확률이 높다.

그리하여 아르민은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콘클라베 당일. 그때 신물이 모습을 드러낼 거다. 그걸 주의해라.

회상이 끝나고, 생각이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질투라······.’

민세희의 시선이 조심스럽게 좌중을 향해 연설 중인 교황의 모습을 쫓는다.

[이번 콘클라베에 잘 찾아주었다. 케뮬란의 국민들이여.]

당당하고 의연한 목소리로 연설을 이어나가는 교황.

[3년 만에 치러지는 오늘의 콘클라베에선 또 다시 만력교를 이끌어나갈 차기 인재, 새로운 정식 사제를 뽑고자 한다.]

그러나 아무리 주시하더라도, 교황에게서 특별힌 신물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물건이 보이지는 않았다.

[이번 위대한 행사를 위해 참가 신청을 해준 자는 무려 그 수만 50여명. 자, 지금부터 그 기념비적인 경기를 시작하노라!]

- 우와아아아!!!

천지가 요동치는 함성을 뒤로한 채, 교황은 만족스럽다는 듯이 몸을 돌려 천천히 무대 저편으로 사라졌다.

“······신물은 보이지 않네요.”

이대로 교황의 퇴장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잠시나마 민세희가 망설일 때였다.

“내가 감시할게.”

“네? 헬레나 씨. 하지만.”

민세희의 걱정 담긴 목소리에 헬레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나도 당장 접촉하진 않고 지켜만 볼 거야. 지금 상황에서 내 자신이 블라디미르와 싸울 수 있다고 생각되지도 않고.”

헬레나가 담담히 꺼낸 말처럼, 현 상황에서 아무리 아바타에 불과할지라도 신좌에 오른 자와 싸움이 가능한 건.

“미스터 강 정도겠지.”

상식 외의 힘을 가진 현대 마법사 정도일 터.

“주변을 감시하다보면 운 좋게 신물의 행방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말이지.”

위험하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선배가 없는 이상, 정면에서 싸우는 건 힘든 이야기다.

어쩔 수 없었다.,

“······그럼 죄송하지만 부탁드릴게요.”

“맡겨만 줘. 여차할 땐 나 혼자서라도 도망도 칠 수 있을 테니까. 백업으로는 이스텔을 데려갈 테니, 큰 걱정할 필요 없어.”

헬레나는 피식 웃으며 자리를 비웠다.

그녀가 사라진 자리를 잠시 지켜보던 민세희의 귓가로.

[그럼 제1경기 참가 선수들은 모두 앞으로!]

본격적으로 콘클라베의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우오오오오!!!!

****

“하아. 하아.”

경기 대기실에 놓인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베오는 긴장된 자신을 다독였다.

괜찮다. 할 수 있다.

겨우 일주일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자신은 확실히 가르침을 받았다.

카스팔도 브리타도, 그리고 민세희도 누구 할 것 없이.

자신이 이길 수 있다고 말해주었다.

“다음 참가자, 입장.”

베오는 무겁게만 느껴지는 다리를 이끌고 무대로 올라섰다.

출구를 나선 순간.

눈을 찌르는 햇살과 함께.

- 아우우우우!!!

그야말로 전신을 압도하는 짐승들의 포효가 귓전을 때렸다.

귀가 멀어버릴 것 같은 함성 속에서 간신히.

[이번 참가자는 놀랍게도 수드라 출신의 늑대 소년! 과연 3년 전의 전설이 재현될 것인가!]

사회자의 외침을 따라, 관중의 열기가 더욱더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 상대는 무려 크샤트리아 출신의 표범남! 누가 이길지 뻔히 보이는 경기지만! 언제나 반전이 존재하는 것이 또 우리들의 콘클라베인 법! 양 선수 모두 위치로!]

주어진 철검과 방패를 들고 상대와 마주선다.

“크르릉.”

흥분한 모양인지, 베오 앞에 선 표범 남자의 눈에선 불꽃이 튀듯 기이한 열기가 일렁이는 게 보였다.

첫 실전.

잔뜩 긴장된 분위기가 베오의 심장을 옥죄었다.

그리고.

[경기 시작!]

“크아아앙!!”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표범 남자는 철검 따윈 내던진 채, 양손의 발톱을 세우곤 베오를 공격해들어왔다.

그야말로 짐승과도 같은, 야생 본연의 모습을 간직한 포식자의 몸놀림이었다.

“크윽!”

순간 베오는 당황했다.

생각보다 빠르다. 그리고 위압적이었다.

정말로 자신이 이런 사람과 싸울 수 있는 것일까?

정말로 저 표범의 발톱을 피해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일까?

그때였다.

문득.

- 애당초 몸을 움직이는 방법에 대중이란 건 없어.

카스팔의 목소리가 닿았다.

스승이라 여기고, 일주일 간의 검술과 체술의 시범을 보이고 자신을 단련시켜주었던 남자는.

- 상대의 공격은 피하고, 이쪽의 공격은 찔러넣는다. 그것 뿐이다.

“읏!!”

베오의 몸이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아무리 수드라의 계급, 짐승의 특성이 희미한 자라고 할지라도 베오 또한 수인족.

짐승의 본능을 품은 소년이었다.

“으아아앗!”

표범 남자가 휘두른 공격을 종잇장 차이로 고개를 숙여 피해낸다.

설마 작은 꼬맹이가 피할 줄은 몰랐는지, 아주 약간의 시간 동안 당황한 표범 남자의 몸에 빈틈이 드러난다.

남이 보았다면 정말로 실낱같고, 빈틈이라고 예상조차 하지 못했을 틈이지만.

베오의 눈엔 똑똑히 보였다.

- 기회가 보였다 싶으면 망설이지 말고 공격해라. 그럼 이길 수 있다.

“하아압!!”

휘이이익!

전력을 다해 휘두른 철검이 표범 남자의 허리를 지나쳐, 그대로 남자의 목을 가격했다.

퍼어어억!!

요란한 소리와 함께 표범 남자가 뒹굴었다.

바닥을 구르고 굴러 멈춘 남자는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찰나의 순간 찾아온 침묵.

콘클라베의 회장이 잠시 정적으로 가라앉는가 싶더니.

[오오오! 이게 무슨 이변이란 말인가! 수드라 출신의 참가자! 늑대 소년 베오가 표범 남자 페르돈을 일격에 넉다운 시켰다!!!]

- 우오오오오!!!

사위를 압도하는 포효.

하찮은 수드라 계급의 소년이 보여준 분투는 단박에 그들의 본능에 불을 지폈다.

우레와 같은 포효가 좌중을 감싼다.

포효로 이끌어낸 본능의 흥분이 더욱더 박차를 가한다.

“이, 이겼어?”

얼떨떨해하는 베오와 달리, 점차 열광과 광기로 가득해지는 풍경을 본 민세희는 처음으로 그곳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한데···?”

먼저 의문을 제시한 건 카스팔이었다.

언뜻 보기에 주변의 풍경은, 승자가 갈린 순간 흥분된 함성을 내지르는 일반적인 관객들이 보이는 반응과 비슷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 느낌이 달랐다.

“모두 죽일 듯이 베오를 노려보고 있는데요?”

브리타가 지적한 것처럼, 민세희 일행 주변에 앉아있는 수인족들의 반응이 심상치가 않았던 것이다.

그 모습이 마치.

“·····먹잇감을 발견하고 흥분한 짐승들 같구먼.”

레프너겐은 이해가 안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랬다. 그 풍경 전체가 일반적으로 그들이 알고 있는 투기장의 풍경과 달랐으니.

무언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

민세희는 이해가 되지 않는 현실에 입술을 깨물었다.

****

그리고 무대의 뒤편.

지금의 광경을 흡족하게 바라보는 자가 있었다.

신 유토피아를 모시는 교황으로서, 케뮬란의 정상에 군림하는 남자는 한없이 자애로운 시선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으니.

교황은 자랑하듯 이 자리에 없는 ‘그’를 향해 중얼거렸다.

“보아라. 이것이······. 바로 내가 3년에 걸쳐 만들어낸 작품이다. 아르카디아.”

< 제64장 - 열망이라는 이름의 저주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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