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언월도를 든 남자(3)
메두사가 큰 몸을 땅에 뉘었다.
진후는 메두사의 머리에서 나와 몸 안의 마석을 채취했다.
오크나 스켈레톤과 달리 이러한 마수들 은 몸 안에 두꺼운 마석이 있었다.
마석을 뽑아내자 즉시 메두사의 몸이 공 기 중으로 흩어지며 사라졌다.
그리고 조금 전 메두사가 있던 곳에 아 이템들이 우수수 쏟아져 내렸다.
[메두사의 조잡한 클로]
[메시지 스펠 북]
[던전이 11시간 58분 후에 재생성됩니 다.]
진후는 당황했다.
눈앞에 초록색 마법서가 떨어져 있었다. 가죽으로 된 마법서 표면에는 입이 그려 져 있었다.
[메시지 스펠북]
마법을 쓰는 몬스터는 자신이 사용하는 마법의 마법서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 확률은 굉장히 낮았기에, 단번에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언월도도 그렇고, 마법서도 그렇고. 이 상할 정도로 좋은 아이템이 쉽게 나오는 데.’
뭔가 이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행운을 거절 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진후는 메시지 스펠북을 선택하고 주문 을 배웠다.
[메시지 스펠]
텔레파시화 된 언어 사용 가능.
침묵 주문에 저항력을 제공
주문을 습득하고 나자, 마나를 사용해 말을 할수 있게 되었다.
“아. 드디어 말할수 있군.”
어색했다.
사람의 성대로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달랐 다.
메시지 주문으로 스켈레톤의 안에서 소 리를 만들어 꺼내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다.
게다가 레벨도 올랐다.
뱀굴 전체를 토벌하고 메두사를 잡았더 니 이제 레벨이 8이 되었다.
진후는 새롭게 얻은 스탯 4개를 힘, 민, 체에 한 개씩 투자하고 지혜에 2개를 투 자했다.
슬슬 먼 곳으로 나갈 필요가 있었다.
[메카리치]
레벨 8
형태:강철 개미
힘 8 민첩 8 체력 6 지혜 6 매력 2
사용 가능한 철분 800g
생존 시간 60시간
어느새 레벨이 8이 되었다.
며칠 사이에 장족의 발전을 이룬 셈이었 다.
진후는 던전 밖으로 나왔다.
12시간 안에 재생성이 될 테니, 다른 던 전을 돌아본 후에 다시 돌아올 생각이 었 다.
하지만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이 있었다.
5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 리고 있었다.
“저기 나온다.”
“설마 혼자 돈 건가?”
“한 명 인데?”
5명은 던전을 공략하는 평범한 인구수 였다.
근접에서 싸울 전사가 둘, 치료사, 궁수, 마법사, 그리고 추가로 서포터, 즉 던전 밖에서 대기할 짐꾼이 한 명 있는 조합이 었다.
그들은 우거진 수풀 사이에 가려진 [뱀 굴] 앞을 바라보았다.
그중에 인상 좋게 생겨 보이는 남자가 슬며시 다가왔다.
그는 공장에서 나온 철제 갑옷을 입고 있었고, 허 리춤에는 장검을 하나 차고 있 었다.
“아, 이거 곤란한데. 이보쇼. 누구 허락 받고 뱀굴 도는 거요? 우리가 이용료를 낸 곳인데.”
그리고 그의 [마나]는 오른손 주변에 넘 실거리며 집중되어 있었다.
여차하면 바로 검을 봅아 들 생각으로 보였다.
“선점?”
진후가 대답했다.
이곳은 무인지대이니 당연히 던전도 모 두 주인이 없다.
그런데 무슨 선점을 운운하지?
하물며 무인지대에 이렇게나 많은 헌터 가 떼를 지어 돌아다닌다니, 어불성설이 었다.
“메시지 주문?”
“마법으로 말을 하네?”
사람들은 말의 내용보다 마법적인 목소 리에 더 주목했다.
사람의 목소리처럼 들리지 않았다.
덕분에 치료사로 보이는 여자가 뒤에서 중얼거렸다.
전사가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
메시지 주문을 사용한다는 것은 어느 정 도 재산이 있다는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메시지 주문? 혹시 어디 길드 소속이신 지?”
“길드는 없습니다.”
침묵이 이어졌다.
진후는 일행의 눈초리가 진후가 들고 있 는 언월도로 향해 있는 것을 느꼈다.
언월도는 누가 보더라도 [기초 전설]이 었다.
이 지역을 순회하면서 저 아이템도 모르 고 오지는 않았다.
저들과 진후의 시선이 교차했다.
이게 게임도 아니고 지구에서 [획득 귀 속] 같은 경우는 없으니 죽이고 빼앗으면 그만인 물건이 었다.
헌터들의 생리라는 것을, 진후는 잘 알 고 있었다.
이미 코앞에서도 보았으니 까.
진후는 태연하게 섰다.
이런 무인지대에서 조금이라도 위축된 모습을 보인다면 공격해와도 이상할 게 없었으니까.
“지나가겠습니다.”
뒤에 서 있는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하 지만 남자는 뒤를 향해 손짓해서 그들의 웅성거림을 조용하게 했다.
“이보쇼. 우리가 이용료를 낸 던전을 그 냥 사냥하고 가면 곤란하지요. 우리 차례 란말이요.”
“이곳은 무인지 대입니다.”
“무인지대? 언제적 얘기요? 최근에 이 지역에 드랍률이 좋아져서 대진 길드 지 부가 관리하고 있는데.”
대진(大振) 길드.
진후가 가만히 생각해보았다.
아마 폭탄이나 무기를 생산하고 유통하 는 기업인 대진이 기르는 헌터 집단이었 던 것같다.
‘무인 지대에 대형 길드가 들어오다니, 아무래도 뭔가가 있군.’
가만히 서 있는 진후를 보고 남자가 말 을이었다.
“이미 사냥까지 다 끝내신 마당이니 더 따지진 않겠습니다만, 어디의 누구신지 신분이나 밝혀 보시죠.”
남자가 거들먹거리며 어깨를 폈다.
치안 활동. 말이 좋아서 치안이지, 통제 와 독점이나 다를 바가 없는 얘기다.
그런 든든한 뒷배가 있기 때문일까, 주 변에 서 있던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 며 입술을 핥았다.
그때 무거운 가방을 메고 있던 어떤 젊 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저어, 길드원님. 그냥 다른 던전을 살 펴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혼자서 뱀굴 을 클리어 한사람…”
“아, 싸울 줄 모르는 서포터는 닥치고 있어요. 짜증나니까.”
남자가 한 마디를 내지르자 젊은 남자가 조심스럽게 뒤로 물러났다.
“말해줄 의무는 없습니다. 지나가겠습 니다.”
그러자 남자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거동이 수상한 사람이네. 잡아!”
“그래야지!”
“예!”
남자의 선동에 무리들이 진후를 향해 달 려들었다.
먼저 무리 가운데 서 있던 궁수가 화살 을 쐈다.
‘ 뭐?’
진후는 당황했다.
잡으라고 했더니 바로 가슴을 향해 화살 을 쏴?
터
화살이 스켈레톤의 가슴 갑옷을 때리고 는 미끄러져 날아가 돌벽에 부딪혔다.
진후는 즉시 몸을 돌려 뱀굴로 뛰어들었 다.
머리 좌우로 화살이 스치고 지나갔다.
“도망친다!”
“잡아!”
전사 둘이 진후를 따라 쫓아 들어왔다.
일직선의 뱀굴 길은 좁았고 끈적거렸다.
전사들도 좁은 문을 통과해 구불구불한 길을 달려 들어왔다.
사방에는 이미 죽어버린 독사들의 사체 가 널려 있었다.
곧 철 퍽 거리며 진흙 위를 달리는 소리 가 동굴 안을 요란스럽 게 울렸다.
“촤악-”
‘이쯤이면...’
진후는 주변을 살펴보고는 몸을 강하게 틀었다.
스켈레톤이 신고 있는 철 부츠가 진흙을 사방으로 튀겨냈다.
그것도 모자라 진후는 땅에 언월도를 박 아 넣고, 펄을 채로 떠올려 앞으로 뿌렸 다.
“챠르르르륵!”
뒤따라 달려오던 전사가 쏟아지는 진흙 펄을 방패를 들어서 막아냈다.
방패에 닿은 펄에서 검은 독이 줄줄 흘 러 내렸다.
남자는 싱글벙글 웃으며 진후를 보았다.
“걱정하지 말라고, 해독제는 많이 들고 왔으니…?”
하지만 그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바가 하 나있었다.
진후는 아예 펄에 몸을 던져서 굴렀다.
뱀의 독, 분비물이 뒤섞여 끈적이는 진 흙이 갑옷을 뒤덮었다.
그 광경을 본 모두의 입술이 벌어졌다.
‘후후...’
진후는 독이 무섭지 않았다.
그의 몸은 철로 되어 있으니, 온갖 종류 의 독이라 해도 은 통할 수가 없었다.
이어서 진후는 언월도를 잡지 않은 손에 진흙을 한움큼 쥔 채 벌떡 일어나 섰다.
이 좁디좁은 통로. 일직선으로 늘어진 일행을 뒤로 한 채 헌터 전사가 소리를 질렀다.
“이 미친 새끼! 그랬다간 너도 숨을 못 쉴 거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기세는 등등했 다.
진후의 해골이 쓴 철 투구 위로도 진흙 이 가득 발라져 있었으며, 살아 있는 생 명체라면 숨을 쉴 때마다 독기를 빨아들 일 수 없는 꼴이 되어 있었다.
그 뒤를 뒤따라온 무리들도 하나씩 합류 했지만, 그 광경을 보고 숨을 죽였다.
궁수가 중얼 거 렸다.
“미친 새끼인가? 독 면역이라도 돼?”
“붙지 말고 쏴!”
“예!”
궁수가 다시 한번 활을 겨눴다.
그 앞을 가로막고 있던 전사 둘이 좌우 벽으로 들러붙었다.
진후는 궁수의 활에 집중했다.
궁수가 활시위를 당기는 순간, 진후는 왼손에 들고 있던 펄을 궁수에게 던졌다.
“텅-! 착!”
두 소리가 거의 동시에 났다.
하나는 날아온 화살이 진후의 스켈레톤 오른쪽 골반 위쪽을 직격해, 갑옷을 반쯤 뚫고 들어온 소리 였다.
다른 하나는 진후가 던진 진흙 뭉치가 궁수의 안면을 가격한 소리였다.
“아아악!”
궁수는 산성 독, 신경 독, 그 외의 다양 한 독과 분비물로 가득한 뱀굴 펄을 맞고 는 뒤로 굴렀다.
얼굴이 끓는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그 것도 모자라 바닥에 몸이 닿자 비명을 지 르며 구르기 시작했다.
“꺄악!”
“이런 미친! 그냥 독이 아니야, 죄다 섞 여 있어!”
“왜 이렇게 독성이 심해졌지?”
그들은 예상보다 훨씬 강한 독성에 당황 했다.
본래라면 뱀굴의 독이 위험하긴 하지만, 이렇게까지 극도로 위험하진 않았다.
그건 진후가 이 던전 전체의 철분을 발 아내기 위해 뱀들의 사체에서 피를 다 봅 아내다시피 했던 까닭이 었다.
결국, 이 던전의 바닥에는 던전 속 모든 뱀의 모든 독이 꽉 깔린 채 범벅이 된 상 태였다.
“아, 안돼!”
치유사로 보이는 여자가 포션을 꺼내 남 자의 얼굴에 부었다.
그 뒤를 따라온 젊은 짐꾼이 말했다.
“조심스럽게 뒤로 빼내야 합니다. 여기 선 치료 못 해요.”
“끄아악! 꼬아아아아!”
궁수의 비명이 좁디좁은 통로를 타고 절 절 울린다. 전사가 외쳤다.
“젠장, 어쨌든 놈의 허리는 뚫었어. 뭐 든 마법을 써 봐!”
“알았다구! 짜증 내지 마!”
방패 뒤에 숨어 있는 남자 마법사가 지 팡이를 꺼내 들고 불덩이를 쐈다.
산악 등반용 재킷을 입고 있지만, 그의 지팡이 끝에 맺히는 것은 영롱한 불덩이 였다.
‘ 아름답군
언제 봐도 허공에서 불덩이가 맺히는 것 은 신비로웠다.
“파이어볼!”
진후는 날아오는 화염구를 피해 옆으로 몸을 던졌다.
철퍼억!
진흙더미 속으로 몸을 던졌지만, 폭발은 장렬했다. 콰앙! 하는 폭발과 함께 스켈
레톤이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불과 연기가 던전 안을 휩쓸었고 자욱한 독무가 공중으로 치솟았다.
“이, 이런 미친 새끼! 독을 더 풀어버리 면 어떻게 해!”
“뭐라도 하라며 !”
그들은 해독제를 연신 마셔가며 입을 가 렸다.
“죽었을까?”
“화살이 대충 옆구리를 쑤셨고 화염구 가 주변을 제대로 때렸어. 최소한 장기는 다 익었을 거야!”
마법사가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철갑옷 안에 있는 것이 해골만 아니 었다면.
그리고 독 안개 속에서 그 해골이 움직 였다.
진후는 해골의 머릿속에서 다시금 메카 닉 네크로맨시 주문을 사용했다.
[메카닉 네크로맨시]
좀비 소환
기존 소환체 작동 중지
마나 10을 사용해서 죽은 뱀의 머리만 을되살려낸다.
진후가 자신의 마나를 사용한 순간, 마 법사 하나가 펄쩍 뛰며 엉덩이를 잡았다.
“으악! 뱀이다! 뱀이 남아 있었어!”
그는 화들짝놀라며 펄쩍 뛰었다.
하지만 순식간에 온몸의 혈관이 도드라 졌다. 머리만 남은 뱀이 독니를 엉덩이에 박아 넣고 있었다.
“밖으로 끌어내요! 이 안에서는 안 돼!”
젊은 서포터가 크게 외쳤다.
“제길! 쓸모없는 새끼 같으니 !”
전사가 욕설을 퍼붓는 동안 서포터와 치 유사는 바닥에 쓰러진 궁수와 마법사를
질질 끌어냈다.
“이게 웬, 지랄 맞은일이야.”
“그래도 대장, 보쇼. 저게 얼마짜리요?”
그들은 운무 속에서 움직임을 멈춘 채 서 있는 진후를 보았다.
재수 없게 독뱀에 물려 마법사가 나갔으 나, 저 독 기운 안에서 불덩이에 내장까 지 익었을 전사가 어떻게 두 사람에게 상 대가 되겠는가.
“흐흐, 이쪽에 온 게 다행이었어. 저것 만 팔면 한자리할수 있겠어.”
“대장. 나눠야지요. 그렇죠?”
“일단 챙기고 얘기하자고. 챙기고.”
전사가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왔다.
진후의 철갑옷에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 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움직임이 전혀 없는 진후를 보며 두 전 사가 구시렁댔다.
“어우, 안에서 다 익었겠는데. 껍데기 열지 말고 그냥 무기만 뺏읍시다.”
“등 뒤에 가방 있어. 뒤집어서 확인해야 지.”
“대장이 하실 거요?”
“그래, 내가 열……
그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죽은 것처럼 서 있던 진후가 언월도를 휘둘러 후려쳤기 때문이다.
터엉
“이 새끼 안 뒤졌어!”
방패를 후려친 언월도에서는 힘이 넘쳤 다. 타격이 아예 없는 수준이었다.
헌터는 방패를 앞으로 내세우며 달렸다.
방패로 밀어붙여 그대로 벽에 처박을 생 각이었다.
“이대로 밀어붙인다! 뒤로 돌아가!”
“예!”
언월도에 닿은 방패가 찌찌직 소리를 내 며 긁혔다.
“무, 무슨 힘이 이따위로 세!”
비록 스켈레톤화 되었지만, 보스다운 강 한 힘이 있었다.
게다가 무게도 꽤나 나가는 철을 짊어지 고 있으니, 인간과의 힘 싸움에서 중량으 로 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부하가 뒤로 돌아갔으니 이제 이 것도 끝, 등 뒤에는 눈도 방패도 없으니
목덜미나 관절 틈새에 검이 박히면 싸움 도 끝이다.
그러나 기대했던 부하는 비명을 질렀다.
“꾸에 엑!”
그가 언월도와 마찰하여 불똥이 튀기는 방패 사이로 스켈레톤의 너머를 바라보 았다.
그러나 거기서 그가 본 것은, 무언가가 동료의 머리를 뚫고 나오는 광경이 었다.
그것은 거무튀튀한 색감의 개미를 닮아 있었다. 지나치게 큰.
“뭐… 라고?”
“왜, 놀랍나?”
본체 진후가 말했다.
남자가 방패를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 다.
“마, 말을 하다니! 이런 몬스터가 나온 다는 말은 못 들었어! 형씨! 뒤를 봐! 뒤
를 보라고! 우리끼리 싸울 때가 아니야!”
그는 스켈레톤을 인간으로 여기고 있었 다.
쾅
대화는 더 이어지지 않았다.
진후의 스켈레톤이 남자의 방패를 후려 쳤다.
헌터 대장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