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대진 그룹에 접근하다(2)
하연에게 구매한 대진그룹에 대한 기초 적 인 정보는 쓸 만했다.
대진그룹 지배 계층의 인간관계나 혈족 등에 대한 정보는 몰라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헌터 조직에 대한 정보는 구하기 몹시 어 려운 것들이 었다.
“일개 대기업이 사병을 양성하고 있다 니. 정말 누가 들으면 음모론 추종자 아 니냐고 하겠군.”
진후는 자료를 보며 피식 웃었다.
문명화된 21세기 현대 국가, 그것도 선 진국의 말단쯤은 되는 대한민국에서 대 기업 재벌이 사병 그룹을 키운다?
교과서에서 본 국가 말년에나 일어날 법 한 일이 이렇게 떡하니 일어나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이다.
하지만 그게 또 대단하기도 했다.
‘조서산 회장이라….’
진후는 자료집 최상단에 나와 있는 대진 그룹의 총수, 조서산 회장의 기록을 읽었 다.
마치 선골(仙骨)이란 게 있단 이런 사람 이겠거니 할 정도로 백발과 흰색 수염이 멋들어졌고, 한복을 입고 다니는 모습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 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지금 한국에 공급되는 화약의 45%, 전 세계 분쟁 지역에 수출 되는 화약 및 무기의 원재료의 10%가량 을 판매하고 있는 무시무시한 무기상 그 자체였다.
‘확실히 이 정도는 되니까 분쟁 지대에 서 만든 금융을 융통해서 PMC를 유지할 수 있었겠지.’
PMC, 즉 민간군사기 업 (Private Military Comp any) 은 강대국과 분쟁 지역에 사업체를 두고 보급, 수송, 정보 체계 등의 유지분 아니라 심지어는 전투 까지 하는 민간 회사였다.
대학원생이 테러 단체에게 납치당하면 교수가 의뢰하는 등의 케이스도 가끔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조서산의 경우에는 한술 더 떴다.
해외 무력 분쟁 지역에 직접 PMC를 설 립하고 막대한 비자금을 풀어 군대를 양 성하고 있었다.
그것도 해당 국가의 거주민들로.
‘이런 식이면 현지에서 굴린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겠지. 하지만 실제로 이 PMC 가 파견된 것은 게이트 세계였다, 이건 가?’
진후는 그 서버 안에 있는 자료를 보며 혀를 찼다.
전투 영상이 그대로 올라와 있는 것이 다.
아리에타 그룹은 이런 정보를 대체 어떻 게 모았을까?
진후가 노트북 화면에서 영상을 켰다.
타타타 타 타타타타 -!
총소리 가 요란하다.
기관총 총열이 붉게 달아올라 있고, 탄 피가 끝도 없이 쏟아진다.
“아아아아악!”
비명과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가 들린 다.
총알이 마구 날아가는 지평선은 새까만 선이 하나 그어진 수평선이다.
숲도, 땅도, 동산도 아무것도 없는 펄만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검은 펄 위에 펼쳐져 있는 하늘은 붉다.
그런데 저 붉은 것이 안개인지 구름인지 혹은 벌레 떼일지 모를 가루들로 보였다.
번쩍-!
벼락이 내려치자 구름 속에 숨어 있는 길쭉한촉수들이 엿보였다.
사람들의 비명은 더 요란해지고, 보이지 도 않는 적을 향해 쏟아지는 기관총 탄환 소리는 더욱 커져만 갔다.
“와, 형. 무슨 영화 봐요. 크툴루 관련 시리즈에 이렇게 그래픽 쩌는 영화가 있 어요? 게임 시네마틱인가?”
어느새 옆에 다가온 기준이 바닥에 털썩 앉아서 진후의 화면을 보았다.
“어….”
하지만 몇 초 지나지 않아 기준의 얼굴 이 창백해졌다.
수도 없이 쏘아대는 기관총이 손처럼 보 이는 푸석푸석한 진흙 주먹에 의해 꺾였 다.
진흙 괴물이 펄 아래에서 치솟아 오른 다.
그것들은 총알과 미사일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주먹으로 후려쳐 용병과 진지 들을 터트렸다.
그런 괴물들이 저 멀리 펄에서 수도 없 이 일어나 올라오고 있었다.
“B … B급 감성 … 좋네… 왜, 그. 반지 제 왕 만든 피터 잭슨도… 저런 거 만들었다 고하잖아요….”
기준은 처음에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시간이 갈수록 줄 어들었다.
나중에는 카메라가 빙글빙글 떨어지는 탓에 어지럽게 돌아가는 화면을 보며 말 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적어도 수백 명이 되는 사람들이 괴물들 에게 학살당하고 있다.
영화와는 다르다.
제아무리 연출에 공을 들여도 결국 인간 의 상상력으로 비슷한 장면을 ‘자아내는’ 것과는 다르다.
저 터지는 사람 몸 안에 담겨 있는물.
그리고 이해하기 어려운 각도로 꺾여 나 갈 때 깨어진 채 튀어나오는 뼈.
저런 실감나는 죽음은, 기준에게는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우읍!”
결국 다 보지 못하고 기준은 뒤로 돌아 서 도망갔다.
얼마 전 하피를 해체하느라 겪은 심리적 고통이 되살아난 까닭이 리라.
진후는 영상을 중지시켰다.
그리고 멀리 도망간 기준에게 외쳤다.
“좀 진정됐냐?”
“형. 대체 뭐에요, 그거?”
“대진 PMC의 게이트 속 전투 기록이 다. 대진그룹이 해외에서 양성한 병사들 을 블랙펄 게이트 안에 밀어 넣은 장면이 야.”
“브, 블랙펄요?”
“블랙펄은 루디아와 달라. 끝없이 펼쳐 진 펄 밭이 행성을 덮고 있지. 지구가 낮 밤이 바뀌는 것처럼 이 펄은 12시간마다 모든 걸 빨아들이는 늪이 돼.”
“그리고 그 펄 아래를 활보하는 거대 촉 수 괴물이 있지. 아까 전 하늘의 구름 속 에 보이던 산낙지가 땅 아래에도 있어서 한 몸을 이루고 있어. 진흙 괴물은 그 촉 수의 포자들이야.”
“하, 하하하….”
“아무튼, 왜 저런 끔찍한 곳에 병사들을 밀어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테스트 용 도라면 끔찍하게 잔인하군.”
“형… 우리도 저런 데 가요?”
기준이 진지하게 물어봤다.
창백한 표정을 보며 진후가 대답했다.
“우리‘? 아니. 저쪽이 이쪽에 올 거다.”
“ 예?”
“안 막으면 말이야. 저런 게 서울 한복 판에 열려 버려. 가고 안 가고의 문제가 아니다.”
진후의 냉정한 말에 기준이 침을 삼켰 다.
상상이 잘 가지 않았다.
서울역, 강남역, 압구정로 등의 거리에 갑자기 펄 밭이 펼쳐지고 저런 괴물들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
지하철이 달리는 지하통로에 저런 펄들 이 들어차면?
창백해진 기준에게 진후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아직 시간은 많이 있으 니까 어떻게든 하면 될 거야. 이 조서산 영감도 무슨 일이든 할 생각으로 이런 미 친 짓을 한거겠지.”
PMC를 A급 게이트 안에 그냥 던져 넣 는다.
확실히 진후가 살았던 시대에는 상식 밖 의 일이었다.
지금처럼 인건비, 혹은 생명 값이 싸고 헌터들도 얼마 없을 때에나 가능한 묘기 겠지.
“그러면 형... 어떻게 할거예요?”
“이 조서산 영감에게 접근한다.”
“너무 화가 나.”
진후의 손이 바르르 떨렸다.
“이 형편없는 무기들을 강화할 수 있어. 나라면. 내 기술이라면 이 괴물들에 맞서 싸우게 할수도 있지.”
기준은 고개를 슬쩍 돌려서 메카닉 스켈 레톤을 보았다.
저 스켈레톤들은 무기를 던져서 하피를 잡았다.
굳이 괴물과 싸우는 데 사람을 바로 쓰 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런 바보가 엄청난 돈을 가지고 사람 들을 사지에 밀어 넣는 걸 그냥 두고만 볼수는 없지.”
진후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말고 스킬이나 연마해. 저녁 사냥 나가서 버프 걸 준비나 하고.”
“알았어요.”
기준은 떨떠름하게 물러났다.
진후는 기준이 물러가 텅 빈 공장 공터 에서 스킬을 연마하는 것을 보고는,
미리 준비해 둔 영혼 데이터를 꺼내서 읽었다.
‘조강진아, 조강진… 대체 왜 또다시 20 년이 지나도 너는 그냥 팀장이냐?’
그런데 기준 때보다 조강진의 영혼 정보 를 읽는 것이 더 힘들었다.
아무래도 그냥 서포터였던 기준과 강력 한 전사로 성장해 있었던 조강진은 저항 력이 달랐다.
하지만 이미 죽고 데이터만 남은 상태.
저항은 오래가지 못하고 진후의 의지에 분쇄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런….’
진후가 조강진의 기억 속을 살펴보자,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안타까운 광 경이었다.
조서산의 본처로 보이는 여인이 조강진 어머니의 뺨을 때리고 쫓아내고 있었다.
춥디추운 한 겨울날, 눈이 내리고 있는 데 따뜻한 옷도 입지 못한 여인이 아이를 안고 눈길에 나동그라진다.
계단 밑으로 몇 바퀴나 굴러서 떨어졌
‘허어...’
그 여인을 대신해서 한 아이가 정면으로 달려든다.
그러고는 중년 여인의 주변을 지키고 서 있는 경호원에게 손등으로 눈두덩이를 얻어맞고 만다.
애를 쫓아내려고 손등으로 파리 쫓듯이 때린 것이, 단련된 주먹뼈 부위가 어린아 이의 눈가 옆을 길게 찢어놓는다.
바닥에 쓰러진 어머니가 재발리 달려와 피 흘리는 아이를 붙잡고 달린다.
‘...허… 그러고 보니 서자라고 했던가?’
배다른 자식이라는 게 그 집안에는 참 부끄러운 일이나 마찬가지 일 터.
하지만 화면은 다시 바뀌고, 어린아이였 던 조강진은 출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양복을 갖춰 입고 거실에 있는 어머니의 영정 사진에 인사하고 문을 나선다.
‘죽었나? 언제?’
지금 그가 가는 길은 대진그룹이다.
까마득하게 높은 본사 건물 일 층을 지 나, 비서팀. 그것도 제3비서팀의 문을 열 고들어선다.
같은 층을 쓰는 전략기획팀, 혹은 1, 2 비서팀과 이 3비서팀의 분위기는 다르다.
앞의 팀들이 총기와 생명력이 넘치는 표 정을 하고 있다면, 불과 문 하나 차이인 이 3비서팀의 직원들의 눈은 퀭하기 짝이 없었다 .
‘대체 무슨 뒤치다꺼리를 한다고 인상이 죽어 있어?’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 비서직이 아 니라, 그야말로 모멸과 고통으로 가득 한 시간이 펼쳐진다.
‘저건…?’
흘러가는 영상 속에서 진후는 화면을 집 중해 보았다.
술에 취한 남자가 조강진의 부축을 받아 본가로 돌아가고 있었다.
조강진의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있는 것 과 달리, 술 취한 남자는 온갖 추태를 다 부리고 있었다.
다시 보니까, 저건 배다른 형제다.
심지어 자기 집에 도착하자 나온 본처의 얼굴에는 따스한 빛이 감돈다.
심지어 본처는 조강진에 대해서는 아예 모르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누구에게도 자기 정체를 말하지 못한 채 자기 형제들을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사 는 삶이라 이건가.
진후는 영상을 살피다가 잠시 한숨을 돌 렸다.
그 안에 담겨 있는 증오감이 퍼져 나와 진후의 머릿속까지 파고들 것 같기 때문 이었다.
‘무슨 자기 엄마를 형제들이 죽인 것도 아니고 이렇게까지 죽여 버리고 싶어 한 단 말이야?’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오싹한 느 낌이 들었다.
‘ 진짜인가?’
첩을 죽이는 것.
어쩌면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게 아니라면 불과 집에 데려다주는 몇 분 동안 찔러 죽이거나 미끄러뜨려 죽 일 생각만 하지는 않을지도 모르니까.
“흐...
진후는 그 장면을 되새겨보면서 생각했 다.
“아무래도 조강진 녀석을 꾀어내거나 조종하려면……
본가 녀석들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정도의 자리를 준다고 약속해야만 하는 걸까?
그리고 마침내 녀석이 각성하는 날이 왔 다.
처음으로, 그리고 정말 처음으로 제 아 비인 서산 회장의 모습을 보았다.
어쩌면 인정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가슴 안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나타나는 것은…
‘시험에 실패했군.’
간단한 시험이 아니었다.
이계를 탐험하는 시험이었다.
동료들은 모두 죽고, 그 혼자 간신히 살 아 나온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그 이후로 서산 회장의 얼굴을 본 적은 없었다.
팀장인 채로, 지방으로, 또 지방 헌터들 을 관리하는 한직으로 미끄러져 분노에 가득 차 돈이나 받는 상태로 떨어진다.
..흠.”
진후는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조강진을지배할수 있다면.”
아직은 네크로맨시 스킬이 부족하지만, 그의 품에는 과거 조강진의 영혼이 있다.
그리고 시간이 더 흐르고 레벨이 훨씬 더 강력해지면 네크로맨시의 지배 능력 은 몇 배로 강해질 것이다.
“그러면 조강진을 통해 대진을 장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그림을 그리려면 크게.
진후는 대진의 속으로 파고들 생각을 품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