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대진그룹 주주 총회(2)
다윗과 골리 앗.
계란으로 바위 치기.
많은 사람이 이번 공개 매수를 그렇게 생각했다.
헌터를 응원하는 개미들이 야금야금 자 신들의 알토란 같은 주식을 끌어다 바치 는 것을 보며, 높은 곳에 앉은 고위 임원
들이 비웃으며 샴페인 잔을 채우는 그런 광경을 상상했다.
안 될 걸 알면서도 들이박는 사람들이 늘어난다고 해봤자.
개미는 개미.
거기서 거기라는 식의 인식이 팽배했다.
“사소한 반란으로 끝날 것.”
“아마 헌터의 처우를 더욱더 좋게 하기 위해 대주주의 권리를 행사하는 척하는 것.”
“해외 기관이 시세 차익을 노리고 시장 을 조작하는 일에 헌터의 유명세와 대중 의 동정 심리를 악용하는 것.”
“대진그룹은 차후 헌터에 대한 놀라운 개선안을 준비해야 할 것.”
“행동주의 펀드 중 동참을 선언한 펀드 는 아직 없어.”
온갖 뉴스들과 추측들이 범람하는 가운 데, 마침내 침묵하고 있던 국민연금 이사 장이 입을 열었다.
“우리는 국민의 연기금인 동시에 대진 의 대주주 중 하나로서, 적합하고도 책임 있는 권리를 행사할 것임을 밝힙니다.”
플래시가 터지고 많은 사람이 이사장의 다음 말을 추측하는 동안, 이사장은 폭탄 을 터트렸다.
“우리는 대진그룹의 분사, 특히 헌터가 주축이 되어 새로운 형태의 무기 회사를 수립하는 일에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번쩍-번쩍!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지면서 내일 1면 뉴스에 실릴 그림이 그려졌다.
“얘기 들었어요. 정말 사장님이 되는 건 가요? 저도 주식을 좀 갖고 있는데, 사주 실 거죠?”
예나도 진후를 찾아왔다.
이곳 대진그룹에 속해 있는 헌터들은 이 제 예나와 기준, 강진과 진후 총 네 명이 었는데, 이들 중 주식을 가진 이들의 주 식은 진후가 매수한 상태 였다.
더 나아가 다른 헌터들 중에서도 응원의 마음으로 시장에서 주식을 일부 매수한 후 진후에게 매도하는 경우도 잦아졌다.
“연기금이 지원한다고? 대체 어느 선에 서 그런 짓을 저지른 거야!”
“청와대의 의견이라는 중론이….”
“뭐어? 지금이 무슨 시대인데 대통령이 감히 사기업 주식에 끼어들어!”
“어디까지나추측입니다, 회장님.”
조서산 회장은 뒷짐을 지고 회장실 안을 어슬렁거렸다.
뒷짐은 자신감이 넘치는 자세여야 하는 데, 허리가 아파서 뒷짐을 져야만 하는 안타까운 상황에 헛웃음이 나왔다.
“어떻게 길러 온 회사인데, 하루아침에 잘라서 나가겠다고?”
“헛소리하지 말라고 해. 연기금이든 뭐 든 우리 회사 분할에 끼어들 권한 따위는 없어. 어디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해봤 자 강진이 녀석 하나랑 헌터 하나랑 개미
들 여럿이야. 절대로, 절대로 놈들은 안 돼.”
조서산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회장님!”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비서가 들어왔 다.
“지금 미국에서 헌터스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
지금은 한국 시각으로는 점심이지만, 미 국 시각으로는 밤이다. 그것도 깊은 새 벽.
이 시각에 미국에서 미국인을 상대로 헌 터스가 기자회견을 할 일은 없었다.
조서산 회장은 지금 이 기자회견이 자신 과 중대한 관련이 있을 거라는 예감이 등 줄기를 타고 내려가는 것을 느끼며 비서 가 가져온 태블릿을 확인했다.
“...헌터스… 대진그룹 주식을 무제한 매 입한다….”
조서산은 태블릿을 들고 노려보았다.
[다가올 미래를 위해, 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회사들을 세계 각지에 서 매입할 것입니다. 참여를 신청한 회사 들은 평화롭게 매수할 것이고, 일부 회사 들은 적대적 매수를 시도할 것입니다. 이 것은 어디까지나 더 적절한 무기 생산을 위해서입니다.]
화면 속에서 웬 기계가 말하고 있었다.
조서산은 눈을 부릅떴으나 입을 다물고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그도 최근의 IPO에 대해서 들어서 알고 있었다.
무려 한두 푼도 아니고, 5백조 원이라는 국가 예산 급 거대 기업이 탄생했다는 소 식이었다.
물론 그런 기업은 세계에 꽤 있었으나, 하루아침에, 그것도 신생 기업이 이 정도 의 거대 기업이 되는 것은 본 적이 없었 다.
그리고 그 기업은 지금 대진의 경영권을 노리고 있었다.
“외국계 금융사가 혼자 움직인 게 아닙 니다. 이 정도면 처음부터 얘기가 되었다 는 수준입니다.”
“회장님. 지금 외환시장이 요동치고 있 습니다. 환율이….”
“환율이 왜?”
“환율이 급락 중입니다. 이게 속도가 엄 청납니다.”
한두 푼 들어오는 것이라면 환율이 요동 칠 일이 없다.
하지만 지금 헌터스가 이곳에 쏟아붓고 있는 금액은 그야말로 수조에 달하는 금 액.
이 정도의 외화가 쏟아져 들어오고 있으 니 당연히 환율이 급락하고 있었다.
“환율이….”
대한민국 정부는 IMF의 교훈을 바탕으 로 엄청난 양의 외화,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나라였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 더 많은 달러는 언 제나 도움이 되는 법.
막대한 달러가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보 며 외환 딜러들이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 이 카메라에 잡힐 정도였다.
“그야말로 씨가 말랐습니다. 지금 증권 시장에서 거래가 되는 대부분의 주식은 전혀 남지 않았습니다.”
“가격은 계속 올라가고 있지만, 거래가 성사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원금이 회복된 것도 모자라서, 게이트 열리기 전으로 돌아가서 두 배 이상 상승
하고 있습니다.
기업 가치 상승.
말로만 들어서는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게이트가 열리기 전 시가 총액은 무려 15조를 훌쩍 넘었던 대진그룹은 지금 그 가격의 1/3 토막 수준인 대략 6조 정도 의 시가 총액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해외에서 쏟아져 들어 오는 매수세 때문에 지금 시가 총액은 30 조에 가까운 금액으로 변해 있었다.
“...이건 정말 말도 안돼.”
하지만 조서산은 의자에 앉아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돈을 쏟아붓고 있는 조직이 나 스닥에 상장한 500조짜리 거대 기업이라 면, 돈대 돈으로 저 조직을 이기는 방법 은 없었다.
“지금이야 충성파가 버티고 있다곤 하 지만... 솔직히 며칠 전에 피해 4배나 오 른 상태입니다.”
팔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팔아버릴 수 있는 가격.
물론 더 버티다가 오르면 팔겠다고 생각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건 눈치 게임이 다.
“경영권을 확보하는 데 충분한 주식 수 량을 언제 확보할지 모르지. 그 전에 팔 아버리는 놈들만 돈을 벌 수 있을 테고.”
게다가 저들은 그냥 시가 총액만 500조 인 것이 아니라, 주식 외에도 비트코인으
로 상상도 못 할 만큼의 금액을 쌓아뒀다 는 소문도 들고 있었다.
“정부도 그렇고, 저놈들도 그렇고. 하루 아침에 우리 그룹을 잘라 버릴 의지가 있 단 말인가? 대체 왜? 누가 그런 의지를 갖고 있지? 누가!”
조서산은 책상을 내 리쳤다.
분노를 숨길 수가 없었다.
* 왜:*
“누구긴 누구겠어.”
진후는 먼 곳에서 조서산 회장실을 살펴 보고 있었다.
개미 71313호는 가스 배관을 타고 침입 하여 환기구 안쪽을 가로질러 조서산 회 장실 위에 자리를 잡은 지 오래였다.
“당신이 풀어놓은 조강진 때문에 꽤 고 생한 값이기도 하고, 당신이 가지고 있어 봤자 제대로 굴리지도 못할 산업체 때문 이기도 하고.”
주식 매수는 순조로웠다.
안 그래도 경제 위기에 급전이 필요했던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주식을 가져 다 팔고 있었다.
외화를 가지고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물 론이고, 숨겨진 부자들도 몰래몰래 금융 대리 인을 찾아가 주식을 팔았다.
그 전에 대폭락 당시에 사들인 주식과 지금의 공개 매수, 더 나아가 헌터스가 사들이기 시작한 주식을 모두 합치면,
“...38%다.”
이 터무니 없는 금액의 주식을 보유하고, 심지어 연기금과 일반 대중들의 지지까 지 받는 상황을 만들었다.
“고생 많았어, 지아야.”
“별말씀을요, 주인님. 고작 저런 작은 회사 따위랑 싸우기에는 우리가 너무 강 했던 거예요.”
코끝이 삐쭉 솟아 있다.
진후는 피식 웃었다.
하루아침에 격세지감을 느끼는 경우가 이런 경우구나 싶었다.
동굴에 숨어서 살던 내가 돈 싸움으로 대진그룹을 반으로 잘라 버릴 수 있게 된 다니.
“형, 주주총회에는 직접 가실 건가요?”
“뭐, 분할안이 내가 사장이고 조강진이 부사장이니까, 가봐야겠지.”
“알겠습니다. 준비할게요.”
“준비라니?”
기준의 말에 진후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 영화에서 보니까 이런 주주 총회 갈 때는 어깨들 불러서 막아버리는 경우 도 있다던데요.”
“푸후훗.”
진후는 웃었다.
설마 조서산이 헌터 상대로 무력시위를 할수있을까?
H서서<
조서산은 하지 못했다.
어깨들이 진후를 노려보았지만, 감히 들 어오는 걸 막지는 못했다.
합법적으로도, 힘으로도 그들은 진후를 막지 못했다.
주주총회는 회사의 홀에서 평범하게 열 렸다.
사실상 대진그룹 본사의 꼭대기에 헌터 본부가 있고, 그 아래층에 회장실, 그 아 래층에 대형 홀이 있었으니 이들은 모두 한 지붕 식구나 마찬가지 였다.
하지만 그 식구들이 모여서 처음 한 얘 기는 적대감으로 가득 찬 토론이 었다.
“저… 저….”
“배신자 놈들.”
“회장님이 얼마나 고생해서 키운 회사 인데, 어디서 굴러먹다 온 새끼들이….”
조롱과 비웃음, 적대감과 분노가 가득 찬 주주총회 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중 대부분은 진후에 게 주식을 팔아넘기지 않은 충성파 인사
들이었다.
시장에서 떠돌아다니는 대부분의 주식 을 싹 쓸어버린지라, 평범한 사람들은 주 주 총회에 오지 않았다.
연기금에서 온 사람과 헌터스의 대리인 으로 온 금융 회사 사람, 그리고 헌터와 함께 온 진후를 뺀 나머지는 모두 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용납할 수 없습니다!”
“초기 투자금을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어디 무기를 만들어보지도, 그리고 무기
를 세일즈해 보지도 못한 자들이 분사해 서 회사를 제대로 굴리겠습니까!?”
진후는 그들의 주장을 들으며 귀를 긁었 다.
“뭐,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는 없겠지.”
마침내 자신의 차례가 되자, 진후는 단 상 위에 올라서서 말했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무장이 필요 합니다. 그것 외에 드릴 말씀은 없습니 다. 바로 표결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저…!”
“이런….”
진후의 제안을 들은 사람들이 혀를 찼 다.
온갖 방법으로 막고 늘어서려고 했지만, 저쪽에서는 받아 줄 생각도 전혀 없는 모 양이었다.
게다가 주주총회라는 건 언제나 표를 많 이 가진 사람이 갑인 총회.
결국 사회자는 진후의 의견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전자 총회의 안건이 올라간 것과 동시 에, 이곳 총회에 있는 사람도 세계 곳곳 에 있는 주주들이 본인을 인증하고 보유 주식 수에 따라 표결을 시작했다.
그리고 커다란 전광판에 떠오른 글자를 본 총무이사는 이마의 땀을 닦으며 말했 다.
“전자총회의 결과… 분사가 결정되었습 니다.”
헌터스의 무지막지한 자본 투입, 우리사주를 무제한 매입한 진후. 그리고 연기금의 지지까지.
조서산 회장 혼자서는 도무지 어쩔 수 없는 규모의 충돌이 었다.
결국 총무의 침통하기 짝이 없는 표정과 함께, 분사 결정이 확정되었다.
“대진그룹에서… 헌터 분야 및 무기 분 야 및 상사를 비롯한 그룹을 분할하여… 새로운 형태의 독립된 회사 형태로 분할 하게 되었음을 알립니다.”
주주총회가 끝났다.
조서산 회장은 그냥 물러서지 않았다.
사람들이 인사하고 흩어지는 와중에, 회 장은 무리를 이끌고 진후의 앞에 나타났 다.
그리고 진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게.”
그는 가까이 다가왔으나,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긴장해서 말릴 정도였다.
눈앞의 남자는 혼자서 괴물을 터트려 죽 이는 헌터 였으니까.
“다음 기회에는 자네가 상당히 후회하 게 될 거야. 나는. 포기하지 않거든. 잊지 도 않고.”
진후는 어깨를 으쓱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걸 보 면 그쪽도 결국 우리한테 팔아서 다행이 라고 생각할 겁니다. 아무튼, 제가 주식
을 사서 경영권을 행사하는 거니. 제가 주인입니다.”
억울하면 주식회사 형태가 아니라 유한 회사를 가지셨어야죠.
진후의 빈정거 리는 듯한 표정을 본 조서 산은 고개를 돌려 총회를 떠났다.
결국, 회사는 분사되었다.
대진그룹의 본사는 현 사옥을 계속 유지 하는 것으로 하고, 새롭게 분사한 대진무
기그룹은 헌터스 한국지부로 이름을 바 꾸게 되었다.
[지아야.]
[예, 주인님.]
[무기 공장 돌리자.]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