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화. 하늘구(3)
“작전대로 공중 급유 후 돌아오겠습니 다.”
콜 소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F22A는 공중에 멈춰 선 채 호버링을 하 고 있었다.
잠시 후, 무장창의 닫힌 틈새가 서서히 벌어지면서 햇빛과 바람이 스며들어 왔 다.
얼음장 같은 바람 속에서, 거대한 흰 구 체가 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콜이 말한 대로 그 길이는 최소 1km 이 상은 되어 보였다.
하지만 물리적인 실체는 아닌 것 같았 다.
단단한 금속이나 기체로 이루어졌다기 보다는, 오히려 신기루 같은 느낌의 구체 였다.
“가자.”
하연이 발 아래에 원반을 소환하는 동 안, 진후는 다시 등 뒤에 에테르의 날개 를 소환했다.
그 둘이 허공에서 뛰어내리자, 다른 전 투기의 무장창도 열렸다.
지아가 서버의 주문을 사용하자 그곳에 타고 있던 다른 이들의 등 뒤에도 에테르 의 날개가 만들어졌다.
[주문 보조는 문제없이 이뤄지고 있습 니다.]
“구체 안으로 진입해도 괜찮을까?”
“익숙한 주문인걸. 그대로 돌파해도 괜 찮겠어.”
하연이 말했다.
곧 에테르 날개에 의해 헌터들이 모여 들자, 그들을 내려준 F22A 편대가 뒤로 돌아 쏜살같이 사라졌다.
아직 이곳까지 오지 못한 공중 급유기 와 중간 지점에서 만나 재보급 후, 이 일
대를 다시 감시하러 올 터였다.
“가자.”
곧 모여든 헌터들이 다 함께 구체를 향 해 하강했다.
일단 구체 안으로 들어서자, 바깥세상 과 완전히 단절된 공간이 하나 나타났다.
“으엑 J”
기준이 질겁을 할 만한 공간이 었다.
그 공간의 정중앙에는 에어포스 원이 떠 있었다.
에어포스 원을 중심으로 무수히 많은 마법진이 열려 있었고, 그 마법진에서 솟 아나온 검은 촉수에 의해 비행기는 칭칭 묶여 있었다.
“흐응, 여전히 못 써먹을 수준의 잡술에 의지하고 있네.”
하연이 기분 나브다는 듯 팔짱을 끼며 말했다.
검은 촉수에는 검은 눈동자들이 돋아나 있었다. 그런데 동물의 눈과는 전혀 다 른, 그저 새까맣기만 한 눈동자들이었다.
하지만 그 눈동자들이 일제히 움직여 일행을 바라보았지만 공격해 오는 일은 없었다.
진후가 말했다.
“초대라고 하더니 싸울 마음은 없는 걸 까.”
“리드웬의 목적을 듣기만 하는 거라면 큰 문제는 없을 거야.”
“리드웬?”
“내가 아직 얘기하지 않았나? 북미 지부 장의 이름이야.”
“그러고 보니 왜 그자 얘기보다 다른 얘 기만 실컷 한거야?”
“그다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자거든.”
하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먼저 비행기를 향해 날아갔다.
진후는 그녀의 뒤를 따라 비행기의 오 른쪽 날개 위에 내려앉았다.
곧 다른 헌터들이 그 뒤에 착지하자, 비 행기의 창문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검 은 불길에 휩싸였다.
비행기의 금속 골격과 창문이 그대로 녹아내린 채 아래로 흘러내렸다.
곧 네모난 문이 만들어졌으며, 검은색 의 아지랑이로 일렁이는 뜨거운 증기가 공중으로 퍼져 올랐다.
그 증기 뒤에서 한 사람의 모습이 나타 났다.
“어서 와라, 네크로맨서여. 그리고 한국 의 지부장도 같이 왔군.”
그 안에는 온통 검은색 양복을 갖춰 입 은사람이 서 있었다.
얼굴은 얼핏 봐도 평범하게 생긴 것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은 인상의 사람이 아니었다.
다만 특이한 것이 있다면, 눈을 다 가리 는 검은 천으로 된 안대를 차고 있다는 점이었다.
지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상 스캔 중. 마나 레벨 및 신체 강화 수준은 스캔 상 제사장급 몬스터보다 아 래입니다. 평소 만났던 적들에 비해서는 수준이 낮습니다.]
지아가 말했다.
드림 타워 방어전 당시 제사장급 몬스 터를 여럿 사냥했고, 아예 떼로 달려들던 트라우마 고블린은 하나하나가 제사장급 괴물이었다.
이제 와서 제사장급도 되지 못하는 인 간 지부장 하나가 위협이 되지 못한다는
선언이었다.
그래서 일까, 하연도 리드웬을 바라보며 팔짱을 낄 분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그 경멸하는 시선을 받은 리드웬은 얼 굴을 잔뜩 찌푸렸다.
“밤의 여군주여. 지금은 네 무지를 보고 오만을 용서해 주마.”
“휴, 네 용서는 필요 없어. 그나저나 순 방단에서 대통령을 지키는 게 ‘네’ 역할 이었을 텐데.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벌인 거야? 새로운 세계라니.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래?”
하연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는 백악관 마법 방어에 관한 고문 역 할을 맡아서 순방에 참석한 모양이 었다.
그런 자가 내부에서 배신을 했으니, 에 어포스 원이 이렇게 쉽게 공중에서 묶여 버리고 만 것이다.
“이런 짓에 뒷배가 있을 리도 없으니, 인형에게 곧 소각당하겠지.”
“푸흐흐……
리드웬이 웃었다.
그때 지아가 말했다.
[원하신다면 준비해 둔 정보 폭탄이나 물리적 저격으로 깔끔하게 정리하겠습니 다.]
[잠시만.]
이야기가 더 길어지기 전에 진후가 앞 으로 나서며 말했다.
“우리는 핵가방을 챙기러 왔다. 겸사겸 사 미국 대통령도 데려갈 수 있으면 좋고 말이야. 핵가방을 넘겨주지 않으면 대화 보단 바로 전투를 하는 편이 내게는 이득 인 걸 알아주면 좋겠군.”
진후는 손목에 차고 있는 시계를 두드 리며 말했다.
“네가 한 일 때문에 시간이 없거든. 어 떻게 할 테냐? 가방을 넘기고 대화를 할 거냐, 아니면 본론을 꺼내기도 전에 파토 를 낼거냐.”
“그렇다면 돌려주마. 너희 눈 먼 자들은 주인님을 보지 못하느니, 그러므로 아직 도 이 장난감들이 소중하게 보일 터니 라.”
진후는 예상외의 말에 눈을 살짝 가늘 게 떴다.
진후의 뒤에 서 있던 강진도 예나와 기 준을 흘깃 보고는 비행기 주변을 살펴보 았다.
가방을 돌려주는 척하면서 습격해 오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꾸물텅거리는 촉수가 비행기 안 에서 삐져나오더니, 이어서 두 개의 가방 과 잘린 손목을 집어 던졌다.
텅.
날아온 핵가방 두 개를 강진이 공중에 서 받아냈다.
그는 악력으로 수갑 두 개를 구겨서 가 방을 서로 묶어버렸다.
그리고는 자기 품 안에 가방을 꽉 끌어 안았다.
[핵가방이 맞는 걸로 확인되었습니다. 신호도 정상 송출 중. 결계 밖으로 가져 가면 신호를 증폭하겠습니다. 그러면 미 군의 핵 강제 발사 코드들이 중지될 겁니 다.]
지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에 진후는 강진이 가방을 든 것을 확 인하고는 말했다.
[가라, 강진.]
[예. 대표님.]
곧 강진이 뒤로 돌아서 날아올랐다.
엄청난 속도로 멀어져 갔으나, 리드웬 은 정말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핵가방 같은 건 어찌 되든 상관이 없다 는 태도였다.
그제야 진후도 살짝 호기심이 생겼다.
“할 말이 있으면 공문을 보내거나 서울 에 있는 본부로 찾아오라고 하려 했지만, 저 잘린 사람들 손목을 보니 그건 어렵겠 군. 대체 왜 이런 짓을 벌인 거지?”
“드디어 말을 들어줄 생각이로구나. 좋 다. 우리에게 합류해라.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일에 너를 중요하게 사용해 주겠 다.”
하연이 옆에서 머리를 절레절레 저었 다.
“엘더가 되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야? 미안하지만 리드웬. 너의 실력으로서는 무리야. 진후, 이제 됐으니 돌아가지. 나 머지는 의회에서 인형이 와서 소각하면 끝날 거야.”
“푸흐흐흐……
하연은 리드웬을 바라보았다.
아까도 그렇고, 인형 얘기만 나오면 그 때마다 웃는 것이 아닌가.
“어리석구나, 의회가 나를 막을 수 있었 다면 너희가 오기 전에 이미 그렇게 했을 터. 그러나 그들은 나의 주인님을 두려워 하노라……
하연은 팔짱을 풀었다.
“들으라, 눈 먼 자들아. 나의 주인님이 너희를 위해 새로운 세계를 다시 일으킬 준비를 마쳤노라. 모든 악몽이 형상이 되 어 강림할 세계가… 열릴 것이다. 자, 그 분의 수하가 되어라.”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에어포스 원의 벽이 사르르 불타올랐다.
곧 비행기의 장갑이 녹아내리고 그 안 의 모습이 나타났다.
경호원과 순방을 위해 준비한 정치인들 은 모두 형태가 끔찍하게 변이해 있었다.
사람보다도 훨씬 커다란 살덩이 괴물이 된 자들이 구르륵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리드웬의 등 뒤에 모여 섰다.
이런 광경은 익숙하고, 또 좋아하는 것 도아니었다.
[정보 폭탄을 써.]
[네, 주인님.]
진후의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페타 바 이트 분량의 초고용량 데이터가 메시지 주문 일천여 개를 타고 리드웬의 정신을 가격했다.
빠드득!
압도적인 출력으로 압도적인 데이터를 정신에 쑤셔 박았으니, 제사장급 몬스터 조차 되지 못하는 리드웬으로는 도무지 견딜 수 없었다.
“ 끄르륵
콰아아앙!
결국 뇌가 폭발하며 마치 크레모어가 터지는 것처럼 두개골 뼈가 사방으로 비 산했다.
그것도 모자라, 리드웬이 변이시킨 모 든 탑승객들의 머리도 깔끔하게 폭발해 서 사방으로 비산했다.
“ 대표님
하연과 예나가 모두 진후를 바라보았 다.
하연은 마법 방벽으로, 예나는 냉기 벽 으로 자신을 지켰지만, 기준은 그 피 무 더기를 다 뒤집어쓰고는 건틀렛으로 안 면 투구를 닦아내야만 했다.
“...형……
“아니, 이게 이럴 줄은… 다른 애들은 얌전히 죽었다구……
진후는 뭐라 말하기가 애매하여 트라우 마 고블린이나 엘더의 아바타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하연이 말했다.
“됐어. 아무튼 이렇게 정리됐으니 빨리 돌아가자. 왜 인형이 내부 문제에도 나서 지 않는 건지는 반드시 알아내야… 왜 그 래?”
하연은 진후가 가만히 있는 것을 보고 말을 멈췄다.
진후는 천천히 하연을 바라보았다.
“녀석의 영혼이 느껴지지 않아. 대신에, 이 아래. 그러니까……
진후가 여전히 촉수에 묶여 있는 비행 기의 날개 갑판 위에서 아래를 내려 보았 다.
차갑고, 무정하기 짝이 없는 거대한 바 다가 펼쳐져 있었다.
“뭔가저아래에 있어.”
“저 아래?”
하연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엄청나게 많은 영혼들이 저 아래에 있 어. 그런데 인간의 영혼은 아냐. 대체 저 게 뭐지?”
진후의 목소리가 떨렸다.
“심해에 던전이라도 만들어진 건가?”
“아냐. 그런 게 아냐. 내가 인식할 수 있 는 것은 오히려 아주 적어.”
[주인님, 일대를 벗어나야합니다.]
그때 지아가 말했다.
[응급 방어 프로토콜을 이용하여, 제가 상태창을 억제하여 주인님의 영혼 감지 능력을 최소한으로 억제한 상태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인님이 이 정도의 감지량이 느껴지신다는 건, 매우 위험한 상황입니다.]
지아가 다시 말했다.
[저심연 아래. 뭔가가 있습니다.]
쿠르릉…
그때, 그들이 들어온 결계가 흔들렸다.
그리고는 서서히 가라앉았다.
비행기를 두르고 있던 촉수들은 풀려나 는 것처럼 그들이 나타난 게이트를 통해 사라졌고, 곧 비행기와 그들이 들어 있는
결계 자체가 바다를 향해 쏜살같이 떨어 져 내렸다.
“아냐, 우리가 떨어지는 게 아니야. 바 다가올라온다.”
진후가 말했다.
바다가 거꾸로 치솟으면서, 곧 어떤 노 랫소리가 들려왔다.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안, 지아가 경보를 터트렸다.
[대규모 최고 위험 등급의 정신 오염이 감지되었습니다. 헌터 모두의 방어 절차 를 개시합니다. 주인님, 강진과 통신이 될 동안, 가까운 핵잠에게 핵 투발을 요 청할 것을 강력히 제안드립니다.]
[그 정도야?]
[할 수 있는 건 뭐든지 해야만 합니다.]
지아의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