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 메카네크-165화 (166/266)

165화. 미국행(4)

검은 어둠이 내려 앉은 공간.

아득하게 높은 천장에는 초록색 수정이 하나 떠오른 채, 평범한 사람들의 눈에는 불편하기 짝이 없을 빛을 발산하고 있었 다.

그러나 그 빛은 희미한 데다가 약해서, 이 방에 내려 앉은 어둠을 밝히는 데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거기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그 런 것 따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있 었다.

거기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형상은 전 부 가지각색이었기 때문에, 장소가 아주 이상하다고 해도 그들보다 더 할 수는 없 어 보였다.

어떤 인영은 사람이 아니라 벌레의 얼 굴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걸 숨길 생각도 하지 않고 드러내 놓고 있었고, 어떤 자 는 드러난 신체 부위 전부가 지렁이 같은 벌레들이 모여들어 만들어져 있었다.

또 어떤 자는 살아 있지 않았고, 어떤 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끈적이는 액체로

되어 있었으며, 어떤 자들은 아름다우나 창백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하지만 그 검은 직사각형의 테이블에 둘러 앉아 있는 사람들은 서로에게 아무 런 관심도 없는 것 같았다.

“그러면 지금까지의 논의를 이대로 확 정 짓고, 다음 논의를 시작 하겠……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던 자들 중 한 사 람이 입을 열다가 말을 멈췄다.

그는 마치 옛 귀족이라도 되는 듯 화려 한 목걸이에 망토를 두르고 있는 남자였 다.

외눈 안경을 쓰고 있었고, 오른손에는 큰 보석이 박힌 보행 보조용 지팡이를 잡 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테이블이 아니라, 갑자기 열린 어둠 속의 문을 바라보고 있 었다.

원래 아무것도 없었던 공간에서, 녹색 의 문이 만들어진 채 열렸고, 그 안에 검 은 로브를 입은 사내가 서 있었기 때문이 었다.

“피 냄새가난다.”

“크르르.”

그의 꼴은 비참했다.

그는 아주 잠시 서 있었다.

하지만 그는 무너지는 것처럼 쓰러졌 고, 이내 로브 안에서 큼지막한 살덩이가 뛰쳐 나왔다.

사람이 아니라 문어와 같은 형태의 두 족류 괴물로 변한 모양이 었다.

그것은 꾸물텅거리며 검은 점액을 흘리 며 기었다.

그것이 테이블로 다가오자 거기 앉아 있는 자들은 이내 그것의 정체를 알아냈 다.

“머리를 잃었구나. 마도사여.”

쇠를 긁는 것 같은 목소리로 누군가가 말했다.

이어서 온갖 형태로 변한 사람들은 온 갖 형태의 발성을 냈다.

어떤 자는 마치 북을 치는 것 같은 목소 리였고, 어떤 자는 개가 호두껍데기를 씹 는 것 같은 소리로 말했다.

어떤 자는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 았고, 마치 음악으로 말하는 것처럼 음이 울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모든 자들은 동일한 감정을 표 현하고 있었다.

“재밌군, 재밌어. 릿슈펠트 의장님. 당 신의 부하들은 머리가 없어도 이렇게나 충성스럽군요.”

사마귀의 머리를 가지고 있는 자가 말 했다.

얼굴은 사마귀였으나 목소리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성의 목소리였 다.

“의장님. 저자가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 겠으나, 주인에게 비보를 전하기 위해 머 리를 잃고 달려온 종의 목소리를 혼자 들 으시 렵니까?”

이번에는 사마귀 여인의 목소리가 아니 었다.

그 옆에 앉아 있는 빨간색 눈의 소년의 말이었다.

흑발에 새빨간 눈동자를 가진 소년은 키가 작은 10살 남짓 되는 소년처럼 보 였다.

하지만 그 눈동자에는 위엄과 힘이 깃 들어 있었고, 그 목소리에도 이해할 수 없는 마력이 담겨 있었다.

그 순간 그의 목소리가 울리자 테이블 전체가 고요해지고 말았다.

“펠라인, 아르케스. 그대들의 호기심이 참으로 크구려.”

“릿슈펠트 공. 그대는 우리 니푸르의 임 시 수장이오…. 우리 모두가 이 일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소이다…. 이게 혹시 이 전의 ‘그 일’과 연관이 있는 건 아닌지…. 아니면 당신이 어디서 비밀리에 무언가 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물어 볼 권리가 있소만……

이번에 말한 것은 다른 사람보다 더 큰 의자에 앉아 있는 불 달린 여자였다.

그녀가 말꼬리를 길게 늘일 때마다 미 간을 찌푸리고 있던 릿슈펠트 의장이었 으나, 이내 곳곳에서 동의의 음성이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 벌써 그 일의 보복 이 있을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직 우리는 해구에서도 무슨 일이 일 어났는지 모른다. 하물며 그자가 바다를 건너 의장의 수하를 쳤을 리가 없 지……

“그렇다면 뭐야 의장. 너 혹시 우리에게 숨기고 또 다른 적이랑 싸우고 있냐? 앙?”

여러 목소리들이 곳곳에서 들리자, 릿 슈펠트는 지팡이로 바닥을 툭툭 쳤다.

곧 다시 회의가 조용해지자 릿슈펠트가 말했다.

“좋소. 여러분들이여, 내 임시 의장이기 는 하나 그대들을 위해 이 정보를 나누리 다. 종복이여, 말해 보라. 무슨 일이 있었 지?”

그러자 바닥에서 기어 오는 문어의 몸 이 뒤틀렸다.

다리들이 구부러지면서 뭉치더니, 살덩 이에서 머리가솟았다.

마치 어린아이가 발판을 모아 사람의 얼굴을 그려 놓은 것처럼 생긴 기괴한 모 양새였다.

그것이 말했다.

“LA의 수정을 빼앗겼습니다…. 그자 가…. 밤의 여주인과 함께…. 나타났습니 다…. 모든 것이 파괴…. 우리 모두…. 죽 었습니다……

그 목소리가 적막한 회의장을 울리자, 잠시 후 여러 목소리가 울렸다.

자기들끼리, 가까운 사람들에게 속삭이 는 소리들이 여러 곳에서 나오자, 의미를 알 수 없는 소리로 가득 차게 된 것이다.

“이거 참놀랍군요.”

그러던 중 아르케스라 불린 빨간 눈의 소년이 말했다.

숨길 수 없는 호기심과 기대가 얼굴에 환히 드러나 있었다.

그는 릿슈펠트의 외눈 안경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릿슈펠트 의장. 당신은 분명 그자를 심 해에 처넣을 수 있을 거라 말했습니다만. 오히려 당신의 성이 무너졌군요.”

그 재미를 참을 수 없다는 목소리, 웃음 을 억지로 숨기는 듯한 미소에 릿슈펠트 도 차가운 미소로 대답해 주었다.

“아르케스. 당신도 꽤나 괜찮은 방법이 라고 동의했던 걸로 기 억하오만.”

“그랬었죠. 하지만 그자가 살아 남았을 분 아니라 당신의 성 중 하나를 부숴 버 렸다니, 이건 정말 예상 밖의 일 아니겠 습니까?”

“의장님.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다른 건 몰라도 수정은 회수해야 합니다. 그것은 너무나 값비싼 물건입니다.”

사마귀 여인이 말했다.

소년이 다시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의장님, 직접 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밤의 여주인이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오 랜만에 인사라도 하고 오시죠.”

소년이 그렇게 충동하자, 릿슈펠트는 지팡이를 손이 하얗게 되도록 꽉 쥐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입을 다물고 말했다.

“다녀오겠소. 따라오겠소? 아르케스.”

“좋지요. 의장님.”

***

“아무것도 줄수……

퍼엉

윌터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째서 자신의 복부가 폭발하는지.

하지만 시야가 너무나 빠르게 회전하는 것과 자신의 팔다리가 날아가는 것, 그리 고 땅에 머리가 처박히는 모든 것이 너무 선명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당연히 찾아오리 라고 기대했던 어둠이 그를 기다리고 있 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우성을 치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는 다.

허파가 없으니 성대를 울릴 바람이 올 라오지 않고,

바람이 올라오지 않으니 흙무더기 위에 처박힌 채 잃어버린 몸의 환상통만을 격

렬하게 느끼고 있었다.

팔, 다리, 몸, 모든 것이 다 사라졌다.

그 당황스러운 순간을 미처 다 이해하 기도 전에, 눈앞에 자신의 몸을 날려버린 자가 착지했다.

“너무 간단하게 처리하는 거 아니야? 마 법 결계를 최고도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하연이 물었다.

“글쎄. 이 정도 결계로는 이제 관통 탄 환을 견뎌낼 수 없다는 걸 배웠겠지.”

탄환, 탄환이 내 몸을 꿰뚫었단 말인가?

몇 겹이나 되는 마법 결계로 보호받고 있는 내몸을.

대포나 미사일 같은 걸로도 흠집을 낼 수없던 내 몸을……?

하지만 그는 그런 질문에 대답하기도 전에, 곧 머리가 붙잡힌 채 가면 쓴 자의 손에 들려 올려졌다.

그제야 그는 볼 수 있었다.

그의 복부를 날려 버리고 땅을 관통해 들어간 탄환이, 아래로 수십 층을 통과하 여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그의 손에서 여러 개의 장 침이 들린 주사기와 라인들이 일어나 자 신의 머리를 찔러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뇌내 신경 물질 재구성 실시 중. 적대 반응을 일으키는 화학 물질을 물리적으 로 흡입한 후, 충성심을 제공하는 호르몬 을 인위적으로 분사하고 있습니다.]

잠시 후, 머리는 침착해졌다.

고통도 없어졌지만, 적대감도 사라졌 다.

“안내하겠습니다……

지아가 번역해 낸 기계음이 들렸다.

진후는 그 머리를 든 채 뒤를 돌아 보았 다.

여전히 남아 있는 괴물들을 강진이 온 힘을 다해 척살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따라온 기준과 예나도 각자 힘을 내서 괴물들을 소환하는 마법사들 을 모두 쓸어내고 있었다.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면 연락드리겠습 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끼리 중앙으로 먼저 돌파하자.”

[예.]

진후는 그 머리가 안내하는 대로 통로 로 들어섰다.

괴물들에게 사람을 먹이로 주는 장소와 는 달리, 다른 모든 곳은 깨끗하고 청결 했다.

새하얀 복도를 지나는 도중에 진후는 그에게 달려드는 자동 소환진에 모조리 데이터 폭탄을 박아 넣었다.

계속해서 쏟아지는 몬스터들이 다 터져 나가는 도중에, 마치 핵 방공호처럼 어마 어마한 두께의 방벽들이 줄지어 나타났 다.

“이....다음은 모릅니다

“그러면 이제 쉬어.”

전원이 꺼지는 것처럼 목이 잘린 마법 사의 영혼이 사라졌다.

진후는 그 영혼을 팩토리에 넣지 않고, 저 멀리 떠나가게 내버려 두었다.

인간을 먹이로 던져 주는 것들을 써먹 고 싶지는 않았다.

“이건 어쩌지?”

하연이 눈앞에 놓인 방벽을 보며 말했 다.

겉으로 보기에도 튼튼할 분 아니라, 한 층 전체를 합금으로 덮어 놓은 듯한 생김 새였다.

“부숴야지.”

콰아앙!

하지만 그것도 티타늄-텅스텐 초합금의 마하 단위 가속탄을 견뎌낼 수는 없었다.

레벨이 엄청나게 많이 오른 덕분에, 지 아는 자원이 허락하는 한, 원하는 만큼

두껍고, 무겁고, 큰 합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게다가 지아는 마나와 전력을 이용해 순간적인 전자기 가속으로 음속에 몇 배 에 달하는 속도를 그때그때 바로바로 만 들수 있었다.

따지자면 강도질을 위해 자주포를 들고 와서 집 대문에 쏴 버린 꼴이니,

집주인도 설마 여기까지 상정하고 방어 장치를 만들지는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부서진 문은 다시 그 재료가 되 어 버렸으니,

마지막은 문으로 문을 때려 부수며 진 후는 안으로 들어섰다.

안은 새하얀 공간이었고, 책상 위에 금 고가 하나 놓여 있었다.

“주인님의 방에 침범할 수 없다. 너는 내가 제거해……

펑!

진후에게 달려들던 최후의 소환수 열두 종도 모조리 폭발해 버렸다.

“이게 이렇게 되어야 하는데.”

진후가 살짝 한숨을 내쉬 었다.

이렇게 쉽게 풀릴 수 있는데 그동안 왜 그렇게 고생만 한 걸까?

“분명 우린 엄청나게 강하잖아. 이렇게 간단하게 일이 풀려야 하는데 왜 늘 더 강한 놈들이 나타나는 걸까?”

“꿈이 커서 그래. 그리고 이것들은 송사 리야, 잘난 척할 것도 못 되는걸. 침착하 라구 친구.”

오는 길에 진후가 했던 얘기를 돌려준 하연이 짤막하게 대꾸하고는 눈앞에 놓 인 금고 앞에 섰다.

“쏘지 마, 이건 내가 열 테니까.”

하연이 뭔가 주문을 사용하자, 금고의 좌우 모서리가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녹 아내 렸다.

그리고 그녀가 슬쩍 금고의 뚜껑을 밀 어 내자, 금고의 머리가 미끄러지며 떨어

졌다.

“서류, 서류, 서류. 이런건 나중에 봐도 돼. 지금 필요한 건…. 이거다.”

거기에는 비밀 서류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지만, 하연은 그런 서류들을 다 밀어 내 버리고, 그 안에 담겨 있는 초록색 구 슬을 꺼내 들었다.

“통신 도구야.”

“통신 도구?”

“지부장의 윗선 혹은 다른 수하들과 연 결할수 있을거야.”

하연이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