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새로운 달(1)
“재료로는 충분해. 하지만 나는 도와줄 수없어.”
하연의 몸은 백광에 휩싸여 있었다.
그녀의 반지가 은백색의 빛으로 타오르 고 있었는데, 평범한 빛들이 사방으로 찌 를 듯 날아간다면 이 반지에서 흘러나오
는 빛은 유백색의 안개가 되어 그녀의 몸 을 덮고 있었다.
“이해했어. 그 반지를 보고 더 적이 나 타날 가능성은?”
“매우 높아.”
“당연한 걸 물었군. 하지만….”
“그래. 최소한 이 영역 안에서 나는 지 부장 이상의 힘으로 현상에 관여할 수 있 어. 그러니까 걱정 말고, 움직여.”
가호라고 해야 할까?
하연에게서 나오는 빛의 아우라가 결계 밖까지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헤라오스의 종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괴 물의 몸이 뚝뚝 녹아내리는 것은 물론이 고, 트라우마 고블린을 비롯해 블랙 헥사 의 해골 함선도 평소보다 힘을 내지는 못 하고 있는 모양새였다.
“하나하나 무력화시켜서 이곳 결계를 향해 넣을게.”
“어서 가.”
하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후와 지 아의 모습이 결계 안에서 사라졌다.
그들이 결계 밖으로 빠져나와 마주한 광경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었다.
지상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거대한 산의 규모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이라, 만약 이 것이 솟아오르는 게 아니라 떨어지는 것 이었다면 인류는 대멸종의 역사를 다시 써야만 할 터였다.
그분 아니라, 최정상을 노리고 주변을 배회하고 있던 온갖 세력들이 갑자기 날 아오르는 산을 보고 당황하여 사방에서 몰려들고 있었다.
온갖 종류의 몬스터와 이계 존재들이 파도가 쏟아지듯이 사방에서 떨어지는 와중에, 결계를 향해 전진하는 세 강대한 적들은 자기들끼리 치고받으며 이계 괴 물들도 함께 휩쓸어 절멸시키고 있었다.
[대피 작전은 별 탈 없이 진행 중입니 다.]
지아의 보고는 간략했다.
대신 그녀는 영상을 진후의 머릿속에 직접 보냈다.
강화복을 입고 있던 헌터 대부분은 다 이빙을 하는 사람처럼 이 높디높은 곳에 서 사방으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본래라면 떨어지는 자들을 낚아채기 위 해 날개를 펴고 발톱을 세우고 있을 적들 이 가득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그들은 전 세력을 몰아붙 여 결계와 세 존재를 향해 쏟아지고 있었 다.
덕분에 각 헌터들은 구름조차 닿지 못 할 머나먼 하늘에서 불어닥치는 제트 기 류를 타고 사방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지아의 얼마 전 컨트롤 상황도 진후의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사방으로 떨어지는 헌터들을 향해 지아 는 일괄적으로 메시지를 발송했다.
[착지를 위해 에너지를 별도로 배분할 수는 없습니다. 지상의 관제 센터의 공급 거리에 도달하면 착지에 필요한 에너지 를 공급받는 형태로 자유 낙하를 시작하 겠습니다. 지금부터 필요한 최소한의 관 제 유도만을 공급하겠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고향처럼 보이는 곳을 향해, 영화에서 본 것처럼 쏘아져 가세요. 아, 저기 붉은 곳은 절대로 안 됩니다. 차라리 태평양으 로 가세요. 어서요.]
지아의 말을 따라 헌터들은 다이빙하는 사람들처럼 두 손을 차려 자세로 허리에 붙인 채, 바람에 몸을 맡기고 태평양, 남 미, 동남아시아, 혹은 북극을 향해서 빠 르게 떨어져 내려갔다.
지아의 간략한 관제하에 헌터들이 사방 으로 뛰어내리는 와중에, 진후의 주변에 는 오직 마지막까지 결계를 지키기 위한 자들만이 남았다.
“대표님.”
“반가워.”
“저도 그렇습니다.”
“흐아아… 후우! 드디어 나타나셨군! 이 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설명을 좀 해주 시겠어요”
그때 그들의 앞에 아름드리나무 세 뭉 치를 엮어놓은 사이즈의 거대한 머리통 이 떨어졌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아르케스가 피와 척 수액투성이가 되어서 캑캑거리며 뛰어나 왔다.
“싫은데.”
“그래, 설명… 뭐요?”
“설명할 시간은 없으니 다음 싸움이나 준비해요.”
진후는 간단히 말하고, 옆을 보았다.
어느새 예나와 기준이 나타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예나의 주변에는 강대한 냉기의 방벽들 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처럼 그녀를 따라 다니고 있었다.
잡스러운 몬스터는 그 방벽에 닿는 즉 시 얼어붙어, 방벽에 또 다른 방벽을 쌓 아주는 형태로 변하고 있었다.
기준의 몸에서도 버프의 아우라가 끊임 없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주변 헌터들을 비롯한 마법사들의 마나 와 체력을 빠른 속도로 회복시켜주고 있 었을 뿐 아니라, 이전에 아리에타의 비밀 금고에서 훔쳐 온 아이템을 있는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뭐, 이젠 들킬 일도 없으니까요.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기준이 자기 몸 주변에 띄워놓은 여러 개의 아이템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지부장 내 조직인 니푸르의 수장 릿슈펠트는 그 광경을 보 면서도 고개만 절레절레 저을 분이었다.
“저들의 싸움은 나름 호각인 것 같지만, 호각은 아닙니다.”
“어째서 그렇죠?”
릿슈펠트가 눈앞에서 싸우는 세 존재를 바라보며 말하자, 진후가 되물었다.
“트라우마 고블린은 헤라오스의 상위 수하를 죽이는 일에 집중할 겁니다. 일단 저놈만 죽이고 나면 몸을 반으로 쪼개어 나누든 뭘 하든 블랙 헥사를 만족시키고 결계를 향해 진격할 수 있다는 걸 알 테 니까요.”
“블랙 헥사는 왜 우리 대신 저놈을 먼저 공격하는 겁니까?”
“그런 거죠. 나으리. 그러니까, 눈앞에 어설픈 놈.이랑 최악의 원수가 있다면 뭐 부터 죽이고 싶으시겠어요?”
아르케스가 말했다.
“둘 사이가 매우 안 좋다?”
“예.”
“그럼 우리 역할은 간단하군요. 트라우 마 고블린을 걷어 냅니다. 원거리 공격만 을 시도하겠습니다.”
진후가 두터운 탄 하나를 [금속 조작]을 이용해서 만들어냈다.
주변에 죽어 있는 몬스터들과 이계 존 재의 몸과 피, 그리고 갑옷 등지에서 뽑 아 올린 다양한 희귀 금속이 두터운 탄이 되어 공중에 만들어졌다.
거함 거포 시절에나 쓸 법한 무식하기 짝이 없는 두터운 포탄과 그것을 덮은 강 철의 탄피를 만든 진후가, 그 거대 탄환 을 그대로 공중으로 띄워 올렸다.
곧 그들의 머리 위에 떠 있던 스퀴즈가 빛의 날개를 아래로 내려 탄환 주위를 부 드럽게 감싸 안았다.
그리고 마침내, 날개가 전자기를 붐어 내며 빛을 발했다.
번쩍-!
콰르르릉!
헤라오스의 종을 공격하던 수십 마리의 트라우마 고블린의 몸이 공중에서 터져 버렸다.
거무죽죽한 핏덩이가 된 몸뚱이가 이때 까지 견뎌내던 보라색 불줄기에 휩싸여 공중에서 재가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진후가 어깨를 으 쓱하고는 말했다.
“원시적이지만 간결하고 강합니다. 레 일건이죠.”
“…하지만 저 녀석들은….”
아르케스가 입을 벌리자 진후가 말을 이었다.
“포탄이 뭐로 되어 있느냐도 나름 중요 한문제겠죠.”
트라우마 고블린과 동급인 몬스터의 몸 안에서 뽑아낸 희귀 금속.
게다가 레일건의 단점들이 모두 커버되 었다.
기존의 레일건은 포신의 형태를 유지하 기 어렵고, 사용되는 에너지를 계속 보급 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실전에서 쓰기 매 우 어렵다.
하지만 이곳은 그야말로 난전의 한가운 데라 물자는 넘쳐났고, 에너지도 공중에 손에 잡힐 만큼 끈끈하게 돌아다녔다.
마지막으로 포신 역할을 하는 것이 실 재하는 물질이 아니라 에테르로 만들어 진 날개라면?
“예나, 내가 계속 발사하는 동안 지켜 줘. 에테르 날개는 당분간 방어 역할에 쓰이지 못할 테니까.”
“알겠어요.”
말을 놓아준 진후의 음성이 기쁜 듯, 예 나가 고개를 끄덕 였다.
곧 이어서 진후의 주변에서 여러 개의 금속 조각들이 다시금 뭉쳐들면서 탄환 이 되었다.
탄환이 공중으로 하나씩 날아오를 때마 다, 미리 예열하고 있던 스퀴드의 에테르 윙 곳곳에 안착하는가 싶더니, 그대로 쏘 아졌다.
콰콰쾅!
콰르릉!
이미 굉음 때문에 우주 공간 아득한 곳 까지 날아오른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 다.
이곳 깊은 곳에서 만들어지는 자연 중 력이 대기와 바람을 아직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소음이 사방으로 전달되고 있었 다.
물론 그 소음의 원인이 되는 트라우마 고블린의 형태는 처참했다.
한 발, 한 발이 대도시 예산에 준할 만 큼 값비쌀 제사장급 몬스터의 신체에서 즉각 추출해 낸 탄환을 얻어맞았으니, 트 라우마 고블린이라고 해도 그걸 마냥 다 감당할 수는 없었다.
“계산 실수로군… 헤라오스의 종 따위 는 아무래도 됐다! 저놈을 먼저 죽여야 한다! 블랙 헥사나 헤라오스의 얼간이들 은 절대로 듣지 않을 테니… 우리라 도….”
퍼어엉!
트라우마 고블린 한가운데서 뭔가를 외 치던 고블린 사제 격 존재의 머리통이 터 져 버렸다.
정확히 저격해서 핀포인트로 맞춰 버린 레일건 탄환 덕분에, 박살 난 몸뚱이가
사방으로 튀겼다.
진후가 그것을 향해 손을 뻗자, 트라우 마 고블린의 피 안을 흐르는 대량의 철분 과 희귀 금속이 진후를 향해 빨려 들어오 면서, 죽은 고블린 사제의 몸뚱이도 그의 손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크르르륵!”
하지만 그 광경을 보고만 있을 트라우 마 고블린들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사방으로 산개하여 제멋대로 싸우는 두 존재를 무시하고 진후와 일행 을 향해 달려들었다.
사방으로 솟아 있는 얼음의 벽을 그대 로 건너뛴 채, 어울리지 않는 날개를 달 고 있는 고블린들이 두꺼운 무기를 들고 일행을 향해 떨어졌다.
[닿는 즉시 강제 공간 이동당하는 아이 템입니다. 이곳에서 맞는다면 그대로 우 주로 사출당해 버릴 겁니다.]
“내가 계속 무기를 공급해 드릴 테니, 한 번 쓰고 버리는 형태로 싸워요. 예나
씨도 같은 형태로 도와줘.”
“알겠어요”
진후의 머릿속에는 이전에 트라우마 고 블린을 만났던 기억이 뚜렷했다.
한 대라도 맞았다간 그 즉시 강제로 공 간 이동을 당해 버리는 아이템이니, 그에 준하는 마법 방어가 없다면 맞서 싸울 수 가 없는 괴물들이 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방법은 있었다.
곧 진후가 주변의 금속들을 있는 그대 로 끌어모아, 지상에서 두꺼운 창과 같은
형태의 아이템을솟구치게 만들었다.
마치 옛 전쟁 통에 함정을 파고 가득 박 아놓은 창들을 연상시키는 장비들이었지 만, 주변의 헌터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 창을 들고 떨어지는 트라우마 고블린을 맞상대했다.
한 번 마주치면 창이 사라진다.
그러면 또 다른 창을 봅아 들고, 때로는 얼음의 창까지도 뽑아 들어 싸웠다.
릿슈펠트는 뒤로 훌쩍 물러났고, 펠릭 스를 비롯한 마법사들도 뒤로 물러났지 만, 아르케스는 멍하니 트라우마 고블린 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거 맞으면 당신이라도 죽….”
펠릭스가 다급하게 말하는 동안, 아르 케스의 상반신을 고블린의 둔기가 휘젓 고 지나갔다.
휘저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닿는 즉시 기체가 되어 절반이 사라져 버렸고, 그
안개처럼 변한 공간을 둔기가 스치고 사 라졌으니까.
“뭐?”
릿슈펠트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긴장 좀하고 싸우랬더니!”
릿슈펠트가 당황하는 동안, 진후는 주 변의 금속 조각들을 일제히 솟구치게 하 여 다시 트라우마 고블린을 향해 쏘았다.
그것들이 날아가서 달려드는 고블린들 의 몸에 부딪치는 순간, 다시 한번 충격 파가 일어났다.
이번에는 안쪽, 결계의 안에서 일어나 는 막대한 파동이 었다.
“완성이다.”
진후가 중얼거 렸다.
[제물은 부족했지만, 이걸로도 완성시 킨 모양입니다.]
지아도 약간 놀란 듯 대답했다.
대지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거대한 산의 형태가 부서지 면서, 수축하여 구체의 형태를 만들기 시 작했다.
[무한로에 갇히기 전에 피해야 합니다.]
지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들 주변 에 순간 이동의 마법이 작동했다.
결계 안의 하연이 사용하는 대마법이었 다.
[나가자.]
진후가 모두에게 말했다.
그리고 산이, 그대로 붕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