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새로운 달(3)
만데스의 눈앞에 점점 더 바다가 가까 워진다.
입고 있는 갑옷 사이로 풍절음이 세차 게 몰아쳤다.
형광빛이 감도는 초록색 커튼 같은 오 로라를 막 통과한 찰나몄다.
옷감의 실들이 나부끼는 것처럼, 강화 복의 팔다리 사이로 하전 입자의 긴 띠가 나부끼다가 사라졌다.
강화복 외면은 뜨겁게 달아올라 백열로 빛나고 있었다.
화염 마법, 광선 공격, 화염 공격 따위 에 저항할 수 있도록 처리되지 않은 장비 였다면, 이미 운석처럼 공중에서 다 타서 사라질 터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떨어지는 자에게 아무런 위로도 되지 못했다.
하물며 귓가에 들리는 관리자의 음성조 차 들리지 않는 지금 이 순간에는 더더
욱
[자율 운행 프로토콜을 시작합니다.]
“뭐? 나는… 그게 무슨소리야?”
그는 설명을 들은 적 없다고 항의를 하 려다가 그만뒀다.
언제는 설명을 하고 이 옷을 입혔던가?
인형극의 연출자라도 되는 양 자기 멋 대로 구는 자들이 이 강화복을 입혔지만, 순순히 입어 준 이유는 단 하나였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그 처음 계획대로 그는 살아남 았다.
한 번도 싸워본 적 없는 이상한 공간에 서 이상한 괴물들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싸워, 마침내 지구로 돌아가라는 말 한마 디에 바람 사이로 몸을 던졌다.
하지만 이제 바다가 코앞에 다가왔는데 들리는 음성이 고작 자율 운행 프로토 콜?
그게 대체 무슨….
[10초 후 입수합니다. 마석의 남은 에너 지를 추가적인 물리 방어 주문으로 전환 합니다.]
[1 이
[9]
갑작스러운 카운트다운에 생각은 곧 멈 췄다.
그리고 3, 2, 1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바다에 충돌했다.
콰르릉!
눈앞이 온통 새파랗고 하얗게 뒤흔들렸 다.
그러더니 곧 깜깜해졌다.
대체 얼마나 깊은 곳까지 파고들었으면 빛까지 도달하지 않는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정신을 잃지 않았다.
목소리가 들렸다.
[헌터스 서버 망 확인 중… 접속 불가. 위성망 확인… 접속 불가. 콜사인을 이용 한 HAM 전리층 통신을 시도합니다. 통 신 언어는 모르스 부호… 반응 없음. 전
리층 교란이 확인됨. 해당 유닛은 모든 장거리 무선 통신에 실패하였음을 알립 니다.]
만데스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HAM이라는 것은 지구 전리층을 이용 한 아마추어 무선 통신을 의미하는 단어 였다.
다시 말해, 실제 좀비 사태가 일어나고 중앙 정부가 붕괴한다고 하더라도 지구 전리층만 무사하면 통신이 절대로 끊어 지는 일 따위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들은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지구 전리층이 교란돼?
대체 지구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
그가 이런저런 생각에 어찌할 줄을 모 르는 동안, 깊은 물속을 파고들었던 강화 복이 서서히 해수면으로 떠올랐다.
철썩이는 소리와 함께 새파란 바다, 그 리고 하늘이 보였다.
그는 간신히 몸을 뒤집어, 하늘을 올려 보았고, 마침내 모든 말문을 잃고 말았 다.
구름이 가리지 않은 곳 모든 곳이 오로 라로 덮여 있었다.
[근거리 내에 동일 유닛들을 확인했습 니다. 근거리 단파 통신을 확인. 알파 개 체를 중심으로 단거리 통신 모듈을 확보 합니다.]
[통신 모듈 접속 확인. 지금부터 본 유 닛은 기전 지휘 체계의 유닛-134의 시리 즈 넘버를 그대로 계승한 채 임시 지휘 모듈의 지휘하에 지상 상륙을 시도합니
[GPS 확인 불가능. 천체 관측 불가능. 해양 환경 변화로 인해 기존 데이터베이 스와 단순 대조가 불가능]
[추락 시에 확인한 영상을 바탕으로 이 동 계획을 짜겠습니다. 지금부터 동쪽으 로 이동하겠습니다. 곧 동료들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만데스 씨.]
“…아, 알겠소.”
겨우 정신을 차린 만데스는, 강화복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헤엄을 쳤다.
두어 시간 정도 헤엄을 쳤을까. 그는 마 침내 그와 비슷한 처지의 강화복을 입은
무리와 마주칠 수 있었다.
“만데스!”
“이 목소리…! 에르반테, 넌가?”
“살아 있었군! 내 그럴 줄 알았어! 자네 가 강화복 어깨에 상처 좀 입었다고 죽을 인물이 아니라는 걸, 내가 알지!”
서로를 알아본 자들은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서른 명 정도의 생존자로 구성 된 무리는 그대로 다시 동쪽으로 헤엄을
치며 움직였다.
한 두어 시간 정도 더 헤엄을 쳤을까.
그들은 마침내 육지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던 섬 에 도착했다.
“이게… 이게 뭐지?”
[구리와 쇠로 만들어진 구조물이 다 녹 아내렸습니다. 지금은 그저 금속의 죽으 로 보이는군요. 과거에는 자유의 여신상 이었겠죠.]
“그럼 저기 보이는 것도… 저게 뉴욕이 란 말인가?”
[데이터베이스와는 일치하지 않습니다 만, 뉴욕일겁니다. 유감입니다.]
지아의 말을 들은 생존자들은 숨을 죽 여야만 했다.
뉴욕과 브루클린. 그 사이를 가로질러 바다로 흘러가는 강.
그 강들 사이로 솟아 있던 도시는 모조 리 녹아 곤죽이 되어 있었으며, 그 열기 와 독기가 여전히 피어올라 하늘로 치솟 고 있었다.
산불이 일어나 뿜어내는 연기만으로도 하늘이 부옇게 변하는데, 하나의 도시가 다 녹아내린 후에야 비로소 불길이 멈춘 모양이었다.
그 광경 속에서 말을 마저 잇지 못한 채, 그들은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지상에 발을 내디뎠다.
[지휘 모듈이 헌터스의 긴급 통신 시스 템과 접촉했습니다. 생존자들은 북쪽의 몬트리올로 이동 중입니다. 끊어진 통신 망은 헌터스의 통신용 스켈레톤이 주변 에서 중계 중입니다.]
지아는 말을 이 었다.
[만데스 씨. 본부와 연락한 결과 당신에 게 정보 공유 허가가 떨어졌습니다. 우리 는 당신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를 제공하 고자 합니다. 지금처럼 자유 헌터로 활동 하는 것과, 이대로 강화복과 함께 헌터스 본부로 이동하여 해방군에 합류하는 것 입니다. 그렇게 될 경우 충분한 봉급과 함께 당신 가족을 최우선적으로 쉘터로 지정된 도시로 입주하도록 하겠습니다.]
“해방군? 쉘터? 이게 갑자기 무슨 말이 오? 당신들은 헌터가 아니오? 갑자기 군 대라니…. 젠장, 그건… 그러니까 도시를 이... 이 꼴로 만든 자와 싸워야 한다는 말인가?”
만데스는 갑작스러운 설명에 모든 것을 이해할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눈앞의 곤죽이 된 도시를 보며 숨을 삼키기조차 어려웠다.
그가 비록 뉴욕 태생은 아니지만, 햇빛 을 받아 빛나는 황금색 도시에 대해서는 많이 보고 들었다.
그것들이 다 녹아내려 무더기가 된 채 쌓여 있는 광경을 보자니 도무지 믿기지 가 않았고, 주변의 일부는 심지어 강화복 의 안면 헬멧까지 벗고는 주위를 둘러보 고 있었다.
“아… 빌어먹을... ”
게이트가 열렸을 때부터 무슨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능력을 각성하고, 평범한 사람 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초인적인 힘을
과시하며 큰돈을 벌 때에는 아무런 고민 도 없었다.
게이트 안에서 괴물들을 처죽이며, 또 더 많은 돈도 벌고 연예인처럼 사는 것이 뭐가 문제였단 말인가.
그때 그의 머릿속으로 한 단어가 스쳐 지나갔다.
“자, 잠깐. 방금 내 가족이라고 했소? 가 족이 무사한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네. 방금 헌터스 메인 서버와 연결되었 습니다. 당신의 출생지로 확인된 도시는
운이 좋아 먹구름이 잔뜩 낀 덕분에 전자 기 화재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후... 정말 다행이군…. 내 가족들을 확 인하고 싶소만….”
[서버가 과부하 상태입니다. 개인적인 통신은 계약 후에나 가능합니다.]
“그거참 편리한 변명이시군. 그러니까 내가 지금 그곳으로 떠나도 되고, 당신들 과 함께… 군대에 합류해도 된다는 건 가?”
[그렇습니다. 이 통신은 살아 있는 모든 헌터들에게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중에 서 특별히 당신은 창공의 결전에서 생존
한 자로서, 조금 더 나은 조건을 제시받 을 자격이 있습니다. 아시겠지만 그곳에 서의 작전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인류는 첫 번째 멸망의 위기를 극복해냈습니다.]
“이게… 이게 극복이오? 나는 맥시코 사 람이지만 뉴욕이 얼마나 컸는지는 알고 있소. 수백만 명이 이 도시에 살았는 데….”
[우리 집계에 따르면 생존자는 광역 인 구 중 생존자는 1120만 명으로, 피해자 는 7백만 명 정도입니다. 하지만 만약 우 리의 작전이 실패했다면, 단 한 명도 살 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만데스는 그 광경을 다시 떠올렸다.
끝없는 괴물들과, 어디론가 사라져 가 던 달.
그래.
지구는 달을 잃었다.
만데스가 하늘을 올려다볼 때, 거기에 는 먹구름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너머에는 기존의 달 대신 다 른 무언가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젠장, 대체 어디서부터 우리에게 이 모 든걸 속인 거요?”
[속이지 않았습니다. 말할 수 없었던 것 분입니다. 우리도 시간이 없습니다. 선택 하십시오. 그러면 가족과 통화한 즉시 그 들을 쉘터로 이동시켜 드리겠습니다.]
“날강도 놈들이나 다를 바 없군!”
[제 주인님에게 사근사근한 설득을 기 대하지 마십시오. 그분 덕분에 당신이 지 금 살아 있는 거니까요. 저는 전력을 보 존하기 위해 이곳의 1천만 명도 살리지 말자고 제안했습니다. 당신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분이 거부하셨죠.]
“빌어먹을... 동의하겠소. 그러면 이 제….”
[환영합니다. 당신은 이제 인류 해방군 입니다.]
“네이밍 센스하고는… 당신 주인이 만 든 거요? 내가 입대할 줄은… 젠장.”
[그건 저도 동의합니다만. 어쨌든 그렇 습니다. 자, 가족과통화하세요.]
만데스는 더 불평하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 잔뜩 울어 눈이 퉁퉁 부은 아내의 얼굴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귀가 가려운데… 뭔가 ‘설득’에서 내 이름을 지나치게 파는 거 아니야?”
“오, 잘 팔고 있죠. 지금 이름 팔리는 게 어디 대수일까요?”
“그것도 그렇지.”
진후는 하늘을 올려 보았다.
반월이 자리를 갖춰 가면서, 대규모의 전자기 폭풍은 서서히 그쳐 나갔다.
달에서 정화되지 않은 영혼들이 쏟아져 인류가 멸망하지 않게 두기 위해 벌인 작 전이었으나,
그 부가적인 피해는 아직 다 가늠하기 조차 힘들었다.
[달이 지구에서 떠나가면서, 영혼의 고 리가 끊어지고 오로라가 지구 전체를 덮 었습니다. 단순히 태양에서 날아오는 대 전 입자분 아니라, 달로 향하는 영혼의
순환 과정이 끊어졌으니… 이렇게 역반 응이 있을 수밖에 없었죠.]
“…너무나큰 피해야. 너무나.”
진후는 한숨을 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 다.
“그래도 세상이 변했으니, 책임을 져야 지….”
진후는 앞에 놓인 보고서를 들어 올렸 다.
우선 생존한 미국 행정부는 고립주의를 천명한 채 거국 내각을 구성하여 DC 워 싱턴 지하로 숨어들어가 생존자들을 규 합하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는 것이 적 혀 있었다.
[그 자랑하던 항모들이 바다 위에서 녹 아 버렸으니 다른 도리가 없었을 거예 요.]
이어서 쓰여 있는 것은 중국은 중앙 행 정부가 실종된 채 X-1 에게 베이징을 빼 앗겼다는 것.
그리고 각 지방 성에서 당서기와 성장 (省長)의 권력 투쟁이 일어나거나 살아남 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는 것.
러시아는 큰 대륙을 연결하던 과학 기 반을 잃어버리고 유럽 지방에만 국가가 겨우 남아 있는 형태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유럽과 아프리카, 남미 대륙 대 부분이 전멸 직전의 상태에 내몰렸다는 점 등이 적혀 있었다.
“폭풍이라, 운이 좋았지.”
폭풍이 몰아닥치고 있던 동아시아는 비 교적 피해를 잘 피할 수 있었지만, 한반 도 남부의 여러 도시도 피해를 피할 수가 없었다.
오직 일본만이 태풍의 사정거리 안에서 비를 맞고 있었기에, 대부분의 도시가 안 전할 수 있었다.
[주인님. 인공 유도의 고리가 곧 완전히 안착됩니다.]
지아가 말했다.
반월의 뒤로 빛의 고리가 맺히기 시작 했다.
처음에는 솜사탕 기계처럼 보였다.
하지만 곧, 그것은 모든 사람의 눈에 보 일 정도로 선명한 고리가 되어 회전했다.
“마치 … 강착원반의 고리와 맞닿아… 8 을 만드는 것 같아.”
[그렇게 보니 비슷하네요. 달은 지구 주 위를 공전해야 하기 때문에, 영혼의 고리 와 강착원반의 소환점을 묶어서 같이 회 전하게 만들어 놓았어요.]
지아는 화면을 지상으로 돌렸다.
[원래 달은 반대편이 보이지 않기 때문 에서, 지상에서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 으니, 괜찮을겁니다.]
반월의 뒤에서, 강착원반에서 힘을 끌 어내는 검은 고리와, 영혼의 흰 고리가 함께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 영혼들은 아름답네. 순환을 마치면, 이제 지구에서 다시 태어날까?”
[모르겠습니다. 엘더들이 무슨 코드를 짜놨는지 아직 전혀 모르겠어요. 아마 달 에 가야만 알 수 있겠지만, 지금으로서 는….]
지아도 한숨을 푹 내쉴 분이었다.
진후는 팔짱을 끼고는 아래 테이블에 서 있는 지아를 내려보며 말했다.
“어쨌든, 식량부터 불출해줘. 인류 해방 군의 첫 역할은, 먹이는 것부터 시작이겠 네.”
[알겠습니다. 주인님. 지구의 지배자가 되신 걸 축하드립니다.]
“농담 같지 않은걸. 휴.”
하지만 진후는 이마를 찌푸리며 고개를 저을 분이었다.
그렇게 그는 폐허분인 세계의 왕이 되 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