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화 〉Chapter 3. 미궁팀. (5)
셋은 5지역 중간쯤에 와서 텐트를 쳤다. 미궁팀은 그들 말고도 두 팀이 더 있었다. 그들은 달랑 셋으로 미궁에 들어온 강준팀을 신기하게 구경했다. 장비나 이런 꼬라지를 보면 뉴비가 분명한데, 어깨에 짊어진 괴수 뼈다귀를 보면 또 그게 아닌 것 같기도 했다.
그래도 혜미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걸 보고 퍽 안심하는 눈치였다. 이만큼 있으면 하필 자신이 콕 찝혀서 죽진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 때문인 듯했다.
그들은 1인용 텐트를 쳤다. 다른 팀들의 대형 텐트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혜미는 겉보단 실속이 더 중요한 거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야영 준비를 다 끝내고, 막 저녁 식사를 하려고 할 때, 저쪽 팀에서 사람 둘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강준은 저들의 의도를 단박에 파악했다. 모를 수가 없지.
“불침번 때문에 왔거든요.”
그게 미궁팀 사이의 불문율 같은 거였다. 사람이 많으면 아무래도 잘 수 있는 시간도 늘어나니까, 절대 손해는 아니었다.
“저흰 셋뿐이에요.”
“그래서 한 타임 들어가셔야 할 것 같아서요.”
“지금 정하는 거예요?”
“네, 지금 정하는 중이거든요. 바로 오셔야 할 것 같은데요.”
강준은 바로 일어나 궁둥이를 탁탁 털었다. 혜미는 그새 저녁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그거라도 하는 게 그나마 자기 몫을 좀 채우는 기분이었다.
곧 강준은 의견을 조율하는 대화에 끼어들었다. 사실 그가 가도 딱히 무어라 할 얘긴 없었다. 원래 타임이 적으면 가장 힘든 파트를 맡는 게 원칙이었다.
“아무데나 두 분이 원하시는 타임에 할게요.”
어차피 한 타임이었다. 기껏해야 두 시간이니, 아무 시간에 해도 딱히 상관은 없었다. 그리고 곧 시간이 정해졌다. 새벽 2시부터 4시까지였다. 강준은 알겠다고 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언제예요?”
“2시부터 4시까지.”
혜미는 알겠다고 고개를 대충 끄덕였다. 강준은 그녀가 내민 일회용 접시를 받았다. 짭짤한 건포 두 장에 에너지바 한 개였다. 배는 안 차더라도 열량은 그만하면 충분했다. 오거남은 그걸 싹 다 해치우고도 무언가 아쉬웠는지, 아예 흡입하는 수준으로 짭짤한 손가락을 쪽쪽 빨았다.
“푹 자.”
“네, 선배님두요.”
셋은 각자 텐트로 들어갔다. 강준을 뺀 둘은 눕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졌다. 한 건 없지만, 그래도 제법 고됐던 모양이었다.
강준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잠이 들었다. …그리고, 곧 텐트를 통통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아저씨. 누군가 그를 깨웠다. 아, 젠장. 이럴 때마다 왜 군대에 온 것 같지.
“네…, 일어났어요.”
강준은 폰 화면을 켰다. 새벽 1시 50분이었다. 그는 한숨을 푹 쉬고 텐트에서 나왔다. 방금 눈을 감은 것 같은데, 벌써 이렇게 시간이 지났나.
그는 몸을 쭉쭉 펴면서 이리저리 비튼 다음에, 나머지 둘도 깨웠다. 체력 수치가 낮은 혜미는 진짜 피곤해 죽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래도 불침번인 걸 어떡하랴.
“많이 피곤해?”
“아뇨, 괜찮아요.”
혜미는 억지 웃음을 지었다. 힘들어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좋은 생각으로 하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그런 성격은 마음에 들었다.
셋은 램프불을 등지고 앉았다. 혜미는 저 새카만 공간에서 무언가 갑자기 확 튀어나올 것 같은 공포를 느꼈다. 그녀는 얼음처럼 차가운 추위에 핫팩을 꼬옥 쥐었다.
“아까 죄송했어요. 잠깐 정신이 나갔었나 봐요.”
“아냐, 괜찮아. 그럴 수 있지. 처음이잖아.”
대화는 거기서 뚝 끊겼다.
혜미는 끔찍한 추위에 계속 시달렸다. 미궁만 들어가면 모든 게 다 이루어질 거라는, 그런 풍선처럼 부푼 희망이 탕 터지는 기분이었다. 들어오는 건 어렵지 않았다. 여기서부터 이루어가는 게 만만치 않게 힘들 거라는, 그런 아찔한 감각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우물 안의 개구리였나, 하는 생각도….
그녀는 엄마 아빠가 너무 보고 싶었다. 갑자기 가슴이 울컥울컥했다. 눈앞이 뿌얘졌다. 그녀는 억지로 눈물을 참았다.
“오늘 딱 하루만 울어.”
“…네윽. 하루만, 딱 하루만, 큽, 울게요 선배님.”
허어응. 혜미는 양손으로 입을 가리고 울었다. 정말 지독하게 힘들었다. 몇 달 간 참았던 설움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그렇게 그녀는 한 시간은 정신 없이 운다고 보내고, 나머지 한 시간은 지독한 추위를 참으며 보냈다. 불침번이 끝나고 누운 그녀는, 딱딱한 깔개 위라도 이렇게 편할 수 있구나를 느꼈다.
…그리고 누운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땡땡땡 찢어질 듯 울리는 종소리에 퍼뜩 눈을 떴다. 강준도 눈을 뜨자마자 얼른 마나를 팍 퍼뜨렸다. 꽤 거리가 있는 오른편에 괴수가 한 마리 있었다. 레벨은 대략 140. 놈은 주위를 어슬렁거리기만 했다. 아무래도 이쪽의 머릿수가 너무 많아서 쉽게 덤비질 못하는 듯했다.
“뭐, 뭐지.”
잠에서 덜 깬 혜미는 몽롱한 눈으로 텐트에서 기어나와 공포와 추위에 떨었다. 오거남은 반사적으로 방패를 쿵 세웠다. 강준도 검을 불끈 쥔 채 경계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근처에 괴수가 한 마리 있다는 것쯤은 다 알았다. 마나 확장 정도는 다들 기본기처럼 배웠을 테니.
빠르게 대응한 덕에, 놈은 결국 주변을 배회만 하다가 물러났다. 싱겁게. 사람들은 에잇 퉤, 하고 바닥에 걸쭉한 침을 뱉으며 재수 없는 괴물 새끼를 욕했다. 차라리 확 덤비기라도 하면 돈이라도 벌 텐데 말이야.
“갔네. 들어가서 자.”
혜미는 쩍 하품을 하면서 얼른 텐트로 들어가 쓰러지듯 잠들었다. 추위도 피곤을 이기진 못하는 듯했다. 강준도 텐트에 들어가 누우면서 폰 화면을 켰다. 새벽 5시 30분. 미궁팀마다 기상 시간이 조금씩 다르지만, 그래도 보통 6시 전후가 많았다. 강준은 딱 1시간만 더 자고 일어나야지, 하고 알람을 맞췄다.
곧 새벽 6시가 되고, 강준은 시끌거리는 바깥 소음에 결국 깼다. 다른 미궁팀들은 자리를 정리하고 있었다. 불침번이 없는 짐꾼들은 지금부터 또 지옥의 하루가 시작됐다. 그래도 소속 되어 있는 짐꾼은 조금 대우라도 받는데, 무소속은 챙겨 주는 사람도 없었다.
웬만하면 쓰레기가 안 생기는 방향으로 짐을 꾸리지만, 그래도 생기는 쓰레기는 그냥 적당히 아무데나 모아서 불에 태웠다. 예전에 계속 쌓아 두던 게 좀 문제가 된 적이 있어, 이젠 이렇게 좀 모였다 싶으면 싹태우기로 의견들이 모였다. 몇몇은 불 앞에 모여 손을 쬐며 몸을 좀 녹였다. 캠프 파이어라도 하는 것처럼 실실 웃는 족속들도 적지 않았다.
다른 팀들이 그렇게 요란을 떨면서 자리를 정리하고 있을 때, 강준팀은 달랑 텐트 하나만 접었다. 다른 짐이 없어서 그게 끝이었다. 사람이 적으면 이런 게 편했다.
“스읍 후 스읍 후.”
혜미는 마치 보물단지 쥐듯 핫팩을 들고 얼얼한 부위를 대면서 녹였다. 아침도 어제 저녁처럼 건포 두 장과 에너지바 한 개였다. 그래도 주둥이에 뭘 좀 넣었다고 기운이 솟았다.
“가자.”
강준은 더 비비적거릴 필요가 없다고 보았다. 이대로 또 허탕만 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괴수 두 마리 정도는 더 잡고 싶었다. 무리가 안되는 선에서 짊어질 수 있는 짐의 용량이 딱 그 정도였다.
셋은 다시 7지역을 향해 출발했다. 1시간 30분 정도 더 걸으면 도착할 듯했다. 길은 장처럼 약간 꼬불꼬불했다. 가끔 코가 문드러 썩을 만큼 심한 악취도 났다. 괴수의 분비물이 틀림없었다. 그 고약한 냄새를 맡고 혜미가 몇 번이나 웩 헛구역질을 했다.
강준은 새벽에 근처까지 접근했던 괴수와 마주치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놈은 멀리 떠났는지 근처에 없었다. 여기도 허탕인가 싶을 때, 그의 기감이 딱 걸리는 놈이 있었다. 괴수였다. 아까 그 녀석이었다.
놈은 천장에도 매달리고 그랬다. 대강 느껴지는 윤곽으로는, 딱 거미처럼 생겼다.
“준비.”
강준은 딱 그 말만 했다. 그래도 팀원들은 척 알아듣고 바로 가방을 옆에 휙 내던졌다. 처음과 다르게, 이번엔 좀 그럴 듯한 진형이 만들어졌다.
놈은 처음 녀석과 달리 거침없이 덤벼들었다. 앗! 괴수의 끔찍한 형상에 혜미가 놀라서 몇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이번엔 오거남에게 어그로가 잘 끌렸다.
괴수는 천장에 대롱 매달린 채 궁둥이를 세우고 갑자기 무언가 푝푝 발사했다. 누런 액체였다. 오거남이 얼른 방패를 들어 그걸 막아냈다. 동시에 치익, 하고 타는 냄새가 났다. 산성액이었다. 그건 혜미처럼 체력도 마력도 낮은 애한텐 아주 치명적이었다.
그래도 오거남이 한 번 어그로를 잘 끌어서, 강준이 도약할 시간을 좀 벌었다. 그는 산성액이란 걸 확인하자마자 무릎을 살짝 굽혔다가 한 번에 쑥 튀어올랐다.
- 벽력섬.
강준은 검을 번개처럼 빠르게 휘둘렀다. 그것은 단번에 놈의 머리통을 쪼갰다. 그러나 괴수의 생명력은, 머리가 잘리고도 한참을 더 발버둥칠 만큼 질겼다.
놈은 천장에서 뚝 떨어져 궁둥이에서 산성액을 찍찍 뿜어댔다. 누런 그것은 여기 저기에 떨어져 치익 소리를 내며 탔다.
죽은 괴수는 거미처럼 다리를 오므린 채 벌러덩 누워 죽었다. 강준은 놈에게 다가가 검으로 여기저기를 퉁퉁 쳐 봤다가 물러났다. 이놈은 절지 계열이라 비싼 값으로 팔리는 부위가 없었다. 미궁팀이 주로 하는 말을 빌리자면, 별로 먹을 게 없는 놈이었다.
강준은 오거남의 방패를 확인했다. 산성액이 맞은 부위가 조금 녹아 있었다. 다행히 덧댄 괴수의 뼈가 뚫리진 않았다. 보기가 살짝 흉했지만, 강준이나 오거남이 그런 걸 따질 위인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쓸 수만 있다면야.
혜미도 한 번 겪어 본 거라고, 전처럼 패닉에 빠지거나 그러지 않았다. 겁을 좀 집어먹긴 했지만, 그걸 이겨내려고 하는 노력은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1시간 만에 괴수를 두 번이나 더 만났다. 오거남이 괴수의 몸통 박치기에 부딪혀 팔목 뼈가 부러졌다가 혜미가 다시 붙인 것 외엔 특별한 사고는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점점 괴수와의 싸움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었다.
두 남자가 짊어진 짐의 양도 확 늘어났다. 강준은 또다시 짐꾼의 필요성을 절절히 느꼈다. 손에 여유가 없어 램프불은 혜미가 들게 됐다.
오전 10시, 그들은 드디어 7지역에 도착했다. 여기까지가 사실 강준의 목표로 설정한 목적지였다. 여유만 있으면 더 들어가도 문제 없었지만, 그러면 나중에 계획에 차질이 좀 생길 수도 있었다. 이만하면 둘도 어느 정도 경험치를 쌓았을 테니, 괜히 무리를 할 필요는 없었다.
‘나도 적당히 능력치를 올렸고….’
괴수를 총 네 마리 잡을 동안, 능력치도 꽤 상승했다. 레벨 차도 나고, 적은 수로 나눠먹은 덕이었다. 무력 2, 속력 1, 체력 1, 마력 1.
몇 주를 꼬박 고생해야 올릴 수 있는 수치를 단 이틀 만에 상승시켜 버렸다. 역시 미궁이 답이었구나, 싶었다.
별로 공적치가 없는 혜미도 레벨이 워낙 낮아, 조금만 얻어먹어도 쑥쑥 올랐다. 그녀의 스탯창을 살피니, 체력 2, 지력 1, 마력 1이 상승해 있었다. 오거남도 속력 1, 마력 1이 올랐다.
고생은 했지만 그래도 그만한 대가를 얻었다고 생각하는지, 혜미의 얼굴도 좀 환했다. …물론 미궁을 나가기 전까지 방심은 금물이었다.
“아직 끝난 거 아니니까, 미궁에서 완전히 나갈 때까지 방심하면 안 돼.”
“네, 선배님.”
셋은 좀 더 안으로 들어갔다. 3지역만큼은 아니지만, 7지역도 웅덩이가 군데군데 있었다. 예전 물뱀 소리에, 혜미는 겁이 나서 그 근처도 안 갔다.
그들은 괴수를 한 마리 더 만나 해치우고 사체를 해체했다. 혜미도 도와주고 싶어했지만, 독성 때문에 만질 수가 없었다.
이제 짐은 들 수 있는 한계치였다. 이 이상은 괴수를 더 잡아도 운반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이만하면 두당 천은 거뜬히 먹을 수 있을 듯했다. 그 예상치를 떠드니까 혜미의 눈에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떠올랐다. 하긴, 돈을 많이 번다는데 누가 싫어하랴.
강준의 짐이 좀 많아서, 그녀는 그의 짐가방을 대신 멨다. 피비린내가 진동했지만, 이제 꽤 익숙해져서 무덤덤했다.
셋은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가기 시작했다. 7지역 표지판을 지나 다시 5지역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돌아간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들의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미궁에서의 첫경험도 서서히 끝나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