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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5화 〉Chapter 20. 장 씨 일가. (3) (115/448)



〈 115화 〉Chapter 20. 장 씨 일가. (3)

이른 아침 식사 시간.

강준은 그 정사 소리를 엿들은충격으로 장혜연이 끙끙 앓을 거라 예상했는데, 그녀는 의외로 담담한 모습으로 출현했다. 행동도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생각보다 멘탈이 더 단단한데.

“밤새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고모님.”


“어, 응. 그래, 잘 잤다. 너는?”

“저도 무척 잘 잤습니다.”


밤새, 라는 단어에서 장화영의 시선이 아주 잠깐 강준에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사실 밤 늦게까지 강준에게 무진장 박혔으니까. 새벽 4시에 깼으니, 겨우 2시간 남짓 잤다.

“그럼 오늘은 제 검술을  주시는 건가요?”

장혜연이 의자에 앉으며 그렇게 살갑게 물었다. 장화영은 어제 거절한 것도 있고, 또  늦게까지 강준에게 박힌 죗값도 있고 해서, 흔쾌히 그러하겠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조카는 환히 웃었다. 강준은 저기서 어떠한 연기도 찾아볼  없었다. 진심에서 우러나는 미소임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 시선이 강준에게 닿자 같은 눈깔이 맞나 싶을 만큼 냉기 날리는 표정으로 변했다. 어제그것보다  심하게.


씨발년이, 감쪽같은데.




강준은 장혜연의 눈빛에서 어떠한 각오 같은 걸 읽었다. 물론 그게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 지는 몰랐다. 그건 시간이 지나면 차차 알게 되겠지.

“강준이 오늘 하루 더 묵기로 했다.”


“아…, 그렇군요.”

그 말을끝으로 식사가 시작됐다.

딸각딸각. 식당은 그릇에 수저 부딪히는 소리만 무미건조하게 울렸다. 그들은 곧 식사를 끝내고 각자의 방으로 다시 흩어졌다.


강준은 살짝 떠볼까 싶어 장혜연의 뒤에 따라붙었다. 당연히 대놓고 뒤따라오는 그의 존재를 그녀라고 모를 리가 없었다.


팩 돌아서서 노려보는 장혜연의 눈깔이 마치 원수를 보는 듯했다. 강준이 능글맞게 웃었다.




“어젯밤 잘 잤어?”


틀림없는 약점일 거라 생각하고 찔렀는데, 생각보다 멀쩡하게 받아쳤다.



“응, 너 없으니까 아주 잠이 잘 오더라.”


“그런 사람 치곤 얼굴이 좀 퀭한데.”

“네 눈알이 잘못된 거겠지.”


“왜 이렇게 뾰족하게 나와. 그냥 평범한 대환데.”



아차. 장혜연도 자신이 정도 이상으로 표독스럽게 대응한다는 걸 깨달았는지, 좀 자제하는태도가 됐다.



“…용건 있어? 없으면 갈게.”

“혹시.”


그녀는 다시 돌아서서 가던 길을 걷다가, 그의 말에 잠깐 멈췄다. 고개는 돌리지 않고.

“어젯밤 내 방에 찾아왔어?”

대답이 얼른 나오지 않았다. 장혜연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봤다. 강준은 그녀의 표정이 어떨지 궁금했는데, 의외로 태연했다.

“아니, 내가 갈 이유라도?”

“혹시 내가 그리워서 찾아왔나 싶어서.”


“절대로 그런 일 없어.”


“아, 그럼 다행이고.”

다행이고,라는 말에서 장혜연의 표정에 조금 금이 갔다. 그녀는 팩 돌아서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방문을 좀 세게  닫은 그녀는 당장 씩씩거리면서 주먹을 꽈악 쥐었다.




짐승 새끼. 악마 새끼ㅡ! 감히, 고모님을, 고모님을 유린하고 저딴 태도야?!


고모님이 말한 그 사랑은 그 순간 분위기에 휩쓸린 탓이라고 믿었다. 강준이 억지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그런 거라고. 저놈은 그렇게 하고도 남을 놈이니까.



고모님은 그냥 저 재능이 아까울 뿐인 거야. 그것 때문이야. 분명해. 아니면 그러실 리가 없어. 절대로ㅡ!

그게 밤새 끙끙 앓으면서 내린 결론이었다.  이유가 아니라면, 고고한 고모님께서  사악한 짐승놈에게 순결한 몸을 희생할 리가 없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고모님의 정결한 정신력을 알고 있었다.

사ㅡ아랑? 하, 웃겨 정말!


고작 그따위 어설픈 감정에 고모님의 드높은 목표가 흔들릴 리가 없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오신 분이었다. 얼굴 좀 반반한 놈이 옆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든다고 넘어가실 분이 아니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내가, 내가 조금만 재능이 뛰어났더라면….



그게 너무 안타깝고 슬펐다. 그랬으면 고모님이  순결한 육체를 더럽힐 이유도 없으셨을 텐데.


장혜연은 이 모든  자신의 탓이라고 자책했다. 고모님은 자신을 대신해 희생을 하신 거라고.



그래서 그녀는 생각했다. 자신이 놈에게 거칠게 저항을 했기 때문에 그 목표를 고모님으로 바꾼 거라고. 그럼 순순하게 몸을 내어 주면, 놈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오겠지.

고모님을 저대로  순 없었다. 그것만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고모님은 그녀의 성역이었다. 절대 더럽혀서는  될. …적어도 저 짐승놈한테만은ㅡ!


일단그건 좀 있다가 다시 생각하자.



장혜연은 고모님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거라는 생각에 다시 마음이 들떴다. 어제 그 사고는 어쩔 수 없었던 거라고 생각했다. 고모님도 분명 속사정이 있었을 테지. 조카도 그랬듯이, 고모도 당연히 그런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녀는 깔끔하게 도복으로 차려입고 애검을 든 채 장화영의 개인 연무장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고모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렸다.



“들어가서 기다리지 않구.”


“아뇨, 어떻게 허락도 없이….”


“그러지 말라니깐. 우린 가족이잖니.”

가족ㅡ. 그 어감이 너무 좋았다.



장화영은 장혜연의 허리를 부드럽게 토닥토닥 두드려 줬다. 조카는 그게 너무좋았다. 또  달라고 조르고 싶을 정도로.

둘은 연무장 안으로 들어갔다. 장혜연은 이 순간 만큼은 세상에 단 둘만 있는 기분이었다. …사실 그래도 나쁘지 않을  같았다.

그녀들은 마주보고 앉은 다음, 먼저 무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길 나눴다. 주로 장화영이 설명을 하고, 장혜연이 듣는 역할이었다.가끔 조카가 질문을 하면, 고모는 성심을 다해 답했다.



그러나, 이번 주제는 장혜연에게 참 아리송했다.



“한 점에 무얼 넣는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 그거.”



생각에 빠진 장화영은 잠깐 애틋한 눈이 됐다. …강준을 보던 그 눈이었다. 장혜연은 갑자기 집중력이 확 흐트러졌다.



“그건 사람따라 다르다고 하더라.”

“아, 네….”

이러면 안 돼. 장혜연은 다시 흔들리는 마음을다잡았다.

“그 점에 어떤 걸 넣을지는 나도 모른단다. 그건 너에게 달렸지.”

“명심하겠습니다.”




둘은 곧 검을 쥐고 일어났다. 그리고 한바탕 대련이 이어졌다.


역시 대단하셔.


장혜연은 정말 있는 힘을 다해 휘둘렀으나, 장화영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고모님은 정말 싱거울 만큼 조카의 검을 요리조리 다 가볍게 막았다.




“오늘은 검끝이 좀 흔들리는구나. 잡념을 버리거라, 혜연아.”



장화영이 그렇게 외쳤다. 장혜연은 아무 생각 없이 검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 순간 그만 고모님의 신음 소리가 갑자기 떠올랐다.

아, 안 돼ㅡ!



장화영은 조카의 검을 뒤로 튕겨내고 물러났다.



“무슨 고민 있니?”


“죄송합니다 고모님.”


“아냐. 그런 날도 있는 거지. …오늘은 정신 수련을 좀 더 해야 할 것 같구나.”

“네, 알겠습니다.”

“여길 쓰고 싶으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 굳이 나한테 허락 받지 않아도 된다.”

원래는 고모가조카의 머리를  번 쓰다듬고 돌아나가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오늘은 아직 용건이 남았는지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장혜연은 궁금한 눈으로 고모님을 바라봤다.




“아직  말씀이  있으세요?”

“어…, 저기 혜연아.”


“네, 고모님.”

목소리가 확 낮아졌다. 주제가 달라졌다는 뜻이었다.

“강준이에 대한 얘긴데.”

“네, 말씀하세요.”

“예전에 고모가 너한테 부탁했던, 그거 있잖니.”

“아, 네.”


“이제 신경 쓰지 말 거라.”


거기서 장혜연은 돌처럼 굳었다. 장화영은 더 부드럽게 말을 하려고 신경을 쓰고 있던 탓에, 그녀의 그런 반응을 느끼지 못했다.

“네가 너무 싫어한다고 하더구나. 정말 미안하다. 고모가 네 맘도 몰라 줘서. …원치 않으면 안 해도 돼. 마음 쓰지 말 거라.”

장화영은 진심이었다. 정말 미안했다. 억지로 붙인 것도, 억지로 떼어내는 것도.




물론 장혜연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로. …가장 생각하기 싫은 시나리오로 흘러가고 있었다.



“혜연아?”

“아, 네 고모님.”


“미안해, 정말. 네 마음을 몰라 줘서.”


“아, 아니에요 고모님!”

장혜연은 빠르게 대가리를 굴렸다. 이야기를 이렇게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면 큰일이니까.



어차피 그녀는 각오한 바가 있었다. 밤새  눈으로 지새며 얼마나 이를 악물었던가. 그 하나의 결심 때문에.



“저, 저, 사실은…, 강준  사랑해요.”

“…뭐?”

“강준 씨랑, 혼인하고 싶어요 고모님.”



이번엔 장화영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그녀는 너무 당황했다. 설마 조카가 이런 말을  줄은 꿈에도 몰라서.

분명  사이는 사랑이 오고갈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조카가 일방적으로 사랑을 키웠다는 뜻이었다.

“사, 사랑한다고?”

“네.”


“정말이야?”


“네.”


장화영은 눈앞이 깜깜했다. 조카가, 강준을 사랑하고 있다니….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큰일이었다.



진짜로 큰일이었다.



장화영이 살면서 두 번째로 맞이한 큰 위기였다. …물론 이번에도  번째처럼 돌파구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 그렇,구나.”

이걸 어떻게 해야 되지? 어떻게 해야 돼?

장화영이 극도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장혜연은 자신의 희생을 뿌듯해했다. 고모님을 위한 숭고한 희생이었다고 생각해서.

고모님. 고모님은 제가 지켜드릴게요. 무슨 짓을 해서라도. 반드시요.




그걸 위해 한  바치는 것쯤이야 큰일도 아니었다. 어차피 그녀의 몸은  짐승놈에게 이미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지지 않았나ㅡ! 그렇다면 차라리 한시라도 빨리 저 악마의 손아귀에서 고모님을 구해내는  급선무였다.




“그래…, 알았다.”



장화영은 조카의 머리를 쓰다듬을 생각도 못하고 돌아섰다. 장혜연은 그게 살짝 아쉬웠다. 그래도 그녀를 지켜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고모님에게 확실하게 의견을 전달했으니, 이젠 강준의 차례였다. 정말 싫었지만, 어쩔  없었다.


장혜연은 곧장 연무장을 나와 강준을 찾아 돌아다녔다. 지나가는 제자들을 붙잡아 묻고 물어, 기어코 그가 있는 후원 연못에 도착했다.


등을 보이고 선 그의 자태는 확실히 늠름했다. 원수처럼 보는 장혜연의 눈에도, 외관상으론 정말 흠잡을 데가 하나 없었다. …만약에 앞으로 혼인을 해서 아이를 낳게 된다면, 성격만 저놈을 닮지 말아라, 하고 바랐다.



자박자박, 하고 자갈돌 밟는 소리에 강준은 천천히 돌아섰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이렇게 찾아온 건  의외였다.


“이게 웬일이야. 니가  다 찾아오고?”


장혜연은 턱을 좀 세웠다. 자지에 박혀 몇 번 쓰러지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장씨의 자존심은 죽지 않았다.




“용건이 있어서.”


“용건? 말해 봐.”




장혜연은 아까 복도를 걸으면서  생각해 왔던  천천히 읊기 시작했다.



“고모님께서 너와의 관계를 한 번 다시 재고해 보라고 하셨어.”

“아, 그래서?”

“그래서 말씀드렸어.”

장혜연은 영광으로 삼아라는 듯이 지껄였다.



“너랑 혼인하겠다고.”

참. 강준은 진짜로 웃음이 터져 버렸다. 가식적인 게 아니라 진심으로.




그가 그렇게 웃어 젖히니까 장혜연의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이, 이게 웃겨?”


“웃기지. 그럼.”


“너랑 혼인하겠다고 말씀드렸다니까!”


“어…. 근데, 어쩌지?”

장혜연의 이맛살이 점점 찌푸려졌다.


강준의 웃음기는 순식간에 싹 사라졌다.



“난 너랑 혼인할 생각 전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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